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요이델의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언젠가 다시 한번 저를 잊으실 날이 온다 하여도 괜찮습니다.”
“…….”
“그러나 당신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만은 못 하겠습니다.”
그의 말투는 침착했다. 그리고 진솔했다. 그 담담함이 요이델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앞으로도 제가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좋아요.”
“그렇다는 건…….”
율리시스의 얼굴이 밝아진 순간, 그의 몸이 훌렁 뒤로 넘어갔다.
“좋아요, 좋아요! 결혼해요! 우리 같이 살아요!”
요이델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숨통이 조이도록 세게 안은 요이델이 미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히 할 거예요! 고마워요, 너무 기뻐요. 진짜죠? 이제 절대 못 물러요!”
좋아 죽겠는 목소리가 요이델의 안에서 뻥 터져 나왔다. 율리시스도 그녀의 열렬한 긍정에 행복감을 느끼던 찰나.
“……요이델 님?”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요이델이 갑자기 몸을 들썩였다.
“사랑해요.”
요이델은 울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기쁜데……. 표현이 안 돼서 화가 나요. 어떻게 해야 율리시스 님이 진심을 느낄까요?”
빨간 눈시울로 하는 말에 율리시스는 기쁜 통증을 느꼈다. 그가 요이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미 충분합니다.”
“괜찮다는 말 말고요. 정말로요.”
율리시스는 훌쩍이는 요이델을 토닥거리며 어르고 달랬다.
“그럼 제 안목이 어떠하였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반지가 너무 예뻐요…….”
“마음에 드십니까?”
“안 들 리가 없잖아요!”
요이델이 울컥 말했다.
격한 호감에 율리시스는 안도한 듯 맥이 풀려 미소 지었다. 그가 요이델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추자 요이델이 뾰로통한 얼굴로 입술을 내밀었다.
“그런데 율리시스 님, 정말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하는 질문에 율리시스는 곤란한 듯 대답을 못 했다.
“앞으로 솔직해져야 해요. 아까 이것까지 포함해서. 전부요.”
요이델이 자신의 허리를 꾹 누르자 그가 아픔에 눈을 살짝 찡그렸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말하자면요?”
율리시스가 귀를 대라는 듯 손짓했다. 요이델이 갸웃하며 귀를 댔다.
가만히 듣다가 확 시뻘게진 요이델이 후다닥 귀를 가렸다.
“어, 어떻게 태연한 얼굴로!”
“여쭙기에 말씀드린 것뿐인데,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
“제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율리시스는 유유히 웃는 낯으로 버둥거리는 요이델을 진정시켰다.
“자꾸 때리시면 아픕니다.”
“일부러 놀린 거죠?”
“진심이지만, 저를 치시면 당신의 몸에도 통증이 가니 그만하십시오. 그보다…….”
탁.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작은 주먹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깊었다.
“저희의 통증이 어디까지 공유될지.”
그의 다정한 손길이 등을 쓸고 내려갔다. 그는 멍이 들었던 곳을 치유해 주었다.
율리시스는 언뜻 떨리는 눈빛으로 웃었다. 설레기는 요이델도 마찬가지였다.
나긋나긋한 그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으니까.
“여기까지는 같군요.”
“……저도 궁금해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는 마음이었다. 요이델도 율리시스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순간, 팔찌에 머리카락이 걸렸다.
‘하필이면 왜 이게!’
철컥철컥, 열심히 팔찌를 푸는데 도저히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하하, 아뇨? 팔찌가 머리에 걸렸는데 금방 풀어 드릴게요.”
율리시스는 제 손을 올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팔찌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물건을 확인한 율리시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단순한 팔찌를 숨기시는군요.”
“…….”
“제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율리시스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중얼거렸다.
“연분홍색이라…….”
“그냥 선물받아서 찼을 뿐이에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의문스러운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설마 눈치챘나?
요이델은 아카코스에게 받은 팔찌를 바닥으로 촥! 집어 던졌다.
“압니다. 당신의 취향은 저일 테니.”
가라앉은 목소리와 동시에 율리시스의 손길이 요이델에게 닿았다.
그의 상태가 묘하게 이전보다 거칠었다. 눈빛은 대놓고 까칠했다.
“하지만 제 속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율리시스 님?”
“당신의 마음 한 켠까지 모두 제 것입니다”
“네? 아, 잠시만…….”
“지금부터 저만 생각하십시오.”
눈빛과 목소리가 모두 가라앉았다.
율리시스는 저만 생각하라는 말을 철저히 지켜 냈다.
몰랐던 기분, 모르던 목소리. 숱한 밀어로 행복에 녹아 버린 밤이었다.
━━━━⊱⋆⊰━━━━
이른 아침.
율리시스는 방금 전 겨우 잠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이다지도 연약한데…….’
그가 본 그녀의 등이나 팔, 어깨에 할퀸 상처가 나 있었다.
율리시스의 몸도 똑같았다.
그는 자신의 상처 위에 요이델의 손을 올려 보았다.
“이렇게였나.”
손톱이 딱 들어맞았다.
전부 요이델이 낸 상처였다.
상처를 공유하니 똑같은 곳에 흉이 생길 수밖에.
“…….”
요이델을 치료해 주려던 율리시스가 순간 멈칫했다. 결국 그는 상처를 없애 주지 않았다.
제대로 된 생각은 아니나, 그는 소중한 반려가 남긴 흉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율리시스는 지난밤 원 없이 잡았던 하얀 손을 떠올렸다.
부드럽고 작은 손을 처음 잡았을 때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언제 잡아도 말랑해서 가끔은 뼈가 들어 있는 게 맞나 의심스럽기도 했다.
요이델은 이 예쁜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줬다. 따스하게 미소 지으면서.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봐 주며.
“사랑해요, 율리시스 님.”
그리 말해 주었다.
그가 원하는 만큼, 계속.
속삭이는 소리가 몇 번을 들어도 좋아서 과한 욕심을 부렸다.
‘미쳤군.’
기억을 돌이킨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요이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편하게 잠든 그녀의 모습은 요정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감히 불만인 것이 있었다.
왜 저를 외면하고 자는 것인지.
‘이쪽을 보고 잘 수도 있지 않나.’
불쑥 욕심이 밀어닥쳤다.
요이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으음!”
그녀의 쇄골까지 이불을 덮어 주자 얼굴을 찌푸린 요이델이 율리시스의 손을 쳐 냈다.
그는 잠시 멍해졌다.
잠꼬대임이 분명한데 왜 서운한가.
‘……어쩔 수 없나.’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하긴, 결국 울려 버렸지.
종국에는 그에게 화를 내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는 지은 죄가 있었다.
욕심이 과한 탓에 원망을 받는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저를 미워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율리시스는 요이델에게 사랑만 받고 싶었다.
조용히 반성한 그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 요이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등을 보인다면, 저가 가는 수밖에. 편안한 잠을 깨우기는 싫었다.
율리시스는 강아지처럼 물끄러미 위를 바라봤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나.’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세상에 이 정도로 사랑스러운 이가 있어도 되는가.
그런 사람이 자신의 반려라니.
“팔이 저리실 텐데.”
그런데 손을 머리 아래에 모아 자는 모습이 꽤 불편해 보였다.
저런 식으로 자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는 이제 그녀의 건강에 참견할 권리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기에.
‘남편…….’
율리시스가 낯설지만 꿀처럼 달콤한 호칭에 얼굴을 붉혔다.
요이델은 모르겠지만 이제 그녀는 정말 곤란해질 예정이었다.
그를 남편으로 인정해 버린 이상, 그는 그녀를 절대 놓을 생각이 없었으므로.
율리시스는 잠든 요이델의 머리카락에 조심히 입을 맞췄다.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다시 봐도 자세는 바꿔 주는 게 낫겠군.’
“으음…….”
“깨우지 않습니다. 더 편히 주무십시오.”
율리시스는 몽글한 솜 베개를 만들어 조심히 머리를 받쳐 주었다.
요이델이 깨어날 듯 인상을 찡그리다가 도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은 꿈 꾸시기를.”
쪽.
뺨에 가볍게 굿나잇 키스를 했다. 어쩌다 보니 밤은 훨씬 지났지만.
“하암…….”
“저보다 잠이 좋으십니까?”
단꿈을 꾸는지 요이델이 헤실 웃자 스 무형의 상황에까지 질투가 났다.
“그대의 좋은 꿈을 저도 알고 싶습니다.”
나직이 말하다가 조그맣게 움직이는 입술에 제 입술을 댔다.
어서 일어나서 자신과도 놀아 주면 좋으련만.
율리시스는 지난 밤 동안의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속상해했다.
‘……유치해서 못 봐주겠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는 자괴감에 벌떡 일어났다.
‘짐승도 아니고 도대체.’
숙면을 취하게 두어야 맞는데 왜 쓸데없이 그녀를 깨우고 싶어 하는가?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다. 그를 아는 누군가가 본다면 미쳤다고 하리라.
“곤히 주무시고 일어나신 뒤에는 저를 가장 먼저 찾아 주셔야 합니다.”
율리시스는 침대가 밀린 것을 발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원상 복구시켰다.
그는 문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해서 밖으로 나갔다.
저곳에 계속 있다가는 그녀의 숙면을 방해해 버릴지도 몰랐으므로.
휙―!
그 순간 단검이 율리시스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성하셨군요.”
“……차기 수장 아니십니까.”
그는 휘르무트였다.
율리시스는 가볍게 피했지만 보통이라면 머리가 꿰뚫렸을 실력이었다.
“한 번쯤은 분노를 받아들여 드리고 싶으나, 혼자만 아프고 마는 몸이 아니라.”
율리시스의 말에 휘르무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 동생과 결혼하실 겁니까?”
“물음이 너무 당연하십니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반드시. 만일 눈물 한 방울이라도 냈다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의 간절한 부탁에 율리시스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런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리해 주십시오. 저 역시 부탁드리겠습니다.”
“…….”
“더하여 비록 맞아 드릴 수는 없으나.”
“하…….”
“폭언을 원하신다면 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휘르무트를 바라봤다.
그 진심에 휘르무트조차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는 무력하게 팔을 떨궜다.
“……당신이 괜찮은 놈이라 다행입니다.”
그에게 성큼 다가간 휘르무트가 고개를 숙였다.
“성하께서 체면과 지위를 모두 굴하고 이곳까지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도 잘 압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정중하게 노려봤다.
“하지만 그 약속, 하늘이 무너져도 지키셔야 합니다. 행복하게 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오라버니!”
팍―!
그 순간 요이델이 뛰쳐나와 휘르무트를 밀고 율리시스 앞에 섰다.
“뭐 하는 거예요?”
“아, 아니야. 네가 뭘 오해한지는 알겠는데 이번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요이델은 율리시스에게만 물었다. 휘르무트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오라버니. 더 이상 끼어들지 마세요.”
“요이델 님, 그렇지 않습니다. 차기 수장께서는 그저―”
오해를 풀어 주려던 율리시스는 말을 더 하지 못했다.
요이델이 그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율리시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많이 아파요?”
“……많이 아팠습니다.”
“……?!”
휘르무트는 배신자의 등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래 해명을 하려 했던 율리시스는 태세를 바꿨다.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 주었기에. 율리시스는 힘없는 척 헛기침을 내뱉었다.
“여기도 아팠습니다.”
“멱살까지 잡았어요? 어쩐지, 옷에 주름이 생긴 것 같더라니!”
휘르무트는 요이델의 매서운 눈길을 받았다.
“난 억울해!”
휘르무트의 외침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
누명 쓴 휘르무트가 돌아간 후.
다시 침실로 돌아온 요이델은 자리에 멈춰 섰다.
“율리시스 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요이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았다.
“율리시스 님도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말고요.”
“…….”
“사실 알아요. 오늘은 둘이 싸운 게 아니었잖아요. 제 생각이 맞죠?”
요이델도 그들이 다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관계를 정리할 필요는 느꼈기에 율리시스의 편을 들어 주었다.
여기에서는 절대적으로 율리시스가 불리하니까. 둘 다 하지 말라고 중재하면 그의 입지가 줄고 만다.
그래서 아무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라버니를 나무랐다.
“둘이 서로 협박하지 말고 괴롭히지도 말아요. 제게 소중한 사람들이잖아요.”
진심이었다. 율리시스가 더 좋았지만 둘 다 소중하다.
“오라버니 앞에서 누가 더 소중한지 보여 줬으니까 이제 더는 안 그럴 거예요. 오라버니가 서운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요이델은 그의 손을 잡았다.
“저는 무조건 율리시스 님 편이니까요.”
“……요이델 님.”
“앞으로 또 서로 치고받으면 성하라고만 불러 버릴 거예요. 지켜 줄 거죠? 실망시키지 않을 거죠?”
“지키겠습니다.”
“휴우!”
가벼운 협박에 성공한 요이델이 방긋 웃었다.
“그럼 이제 안아 줘요. 아침이라 추워요.”
율리시스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심장이 따뜻해졌다.
“아침에만 안아 드릴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하면 지킬 거예요?”
“힘들겠습니다.”
“뭐예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뭐라고 하면 꼭 저한테 일러야 해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알았죠?”
“제 아내 덕에 든든하군요.”
“내 남편이니까요.”
율리시스도 즐거운 듯 미소 지었다.
그가 요이델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껴안았다.
“앗!”
“왜 그러십니까. 아프십니까?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별안간 들린 요이델의 비명에 율리시스가 사색이 되어 물었다.
불편한 듯 그를 의지한 요이델이 그를 휙 째려봤다.
“왜 저만 아픈 건데요?”
“아…….”
“정말 이건 말도 안 돼요! 누가 봐도 율리시스 님이 훨씬 튼튼한데 왜 저만……. 웃어요?”
요이델이 정색하며 묻자 율리시스가 입을 가리고 다른 곳을 봤다.
“방금 웃지 않았어요?”
“아닙니다.”
“거짓말, 방금 되게 재밌다는 것처럼 웃었는데? 아니에요? 손 치워 봐요!”
요이델이 오기로 폴짝 뛰었다.
“아닙니다.”
“에이, 거짓말. 봐요! 꺄아악!”
둘은 서로를 보며 실없이 웃었다.
그녀를 휙 들어 안아 버리는 율리시스에게서도 즐거운 웃음이 나왔다.
따뜻한 아침을 맞이한 행복의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