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벌써 꿈처럼 아득해진 시절의 기억이었다.
요이델은 햇병아리 신관이었고, 율리시스는 그를 마뜩잖게 여기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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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집무실.
이른 잠에서 깨어난 율리시스는 타의로 인해 자는 척 중이었다.
그를 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따가워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혼자만 쿨쿨 자고. 잠이 와요?”
그 손의 주인은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반쯤 울먹였다.
“나도 졸린데……. 잡무를 왜 나한테 다 넘기고 자냐고요! 다정하고 상냥하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성하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햇병아리 신관은 열심히 자신의 욕을 하는 중이었다.
“1년만 지나 봐요. 꼭 복수할 테니까.”
‘해가 지나 봤자 무엇이 될는지.’
웃음이 나왔다.
감히 대상을 앞에 놓고 저주하는 게 흥미롭되 거슬리진 않았다.
율리시스는 내심 저 건방진 햇병아리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가끔 저를 째리는 게 느껴졌으니까. 제 딴에는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어림도 없었다.
“차라리 상업 왕국으로 도망가서 상인을 하고 말지. 성하처럼 무시무시하고 나쁜 사람은 없지 않을까?”
‘도망?’
그건 심히 거슬렸다.
그러다 5분이 채 지났을까.
쿵!
꾸벅 졸던 요이델이 책상에 머리를 크게 박았다.
“아야! 아파…….”
그의 머리에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시킨 일은 제대로 마치지도 않고 무얼 하는 것인지.
“……혹시 깼나?”
햇병아리는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제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어쩌다 저런 아둔한 이가 반려의 자리를 꿰찼는지. 율리시스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깨셨어요? 성하?”
그의 눈앞에서 손이 왔다 갔다 했다.
“휴, 안 깼나 봐! 다행이다. 하긴 깼으면 요이델 님, 시킨 일은 다 하셨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눈빛으로 욕했겠지”
‘내가 그 정도란 말인가.’
율리시스는 면전에서 상관의 흉을 보는 햇병아리에게 배짱 점수를 두둑이 쳐 주었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씩씩한 것 아닌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번 사각사각 펜을 움직이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가늘게 눈을 떴다.
‘손이 욱신거리는군.’
얼마나 세게 펜을 움켜쥐는지, 그의 손에 통증이 공유될 지경이었다.
‘미련 맞도록 잔재주가 없는 인간이라 정도만 고집하나.’
그래서 요이델다웠다.
어느덧 절반 이상을 처리한 햇병아리가 뿌듯하게 웃었다.
그것도 찰나,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율리시스는 눈을 뜨고 요이델의 모든 모습을 지켜봤다.
‘잘도 자는군.’
어느덧 자란 분홍색 머리카락이 책상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눈은 감기고 입술은 반쯤 벌어졌다.
침을 흘리지 않는 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잠이 오십니까.”
율리시스가 조용히 답을 듣지 못할 물음을 던졌다.
“잘도 주무십니다. 시킨 일은 다 마무리 짓지도 못하시고.”
“우음…… 시끄러…….”
“……그대의 담력은 높이 쳐 줄 만합니다.”
율리시스는 턱을 괸 채 햇병아리 신관이 조는 모양을 두고 보았다.
꾸벅―
다시 꾸벅―
‘머리가 부딪히겠군.’
상당히 위태로운 작태였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얼굴 아래 손을 대 주었을 때.
요이델이 번쩍 눈을 떴다.
‘깼나?’
율리시스는 생각지 못한 상황에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으으음…….”
그러나 곧장 다시 자기 시작했다.
‘단순 잠꼬대였군.’
율리시스는 그 꼴을 보며 다시 비스듬히 턱을 괴었다.
잘 거면 얌전히나 자든가.
툭.
예상은 적중했다.
요이델은 얼마 안 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몸도 같이 기울어 머리에 모든 무게가 실렸다.
그의 커다란 손안에 부드럽고 따뜻한 볼이 쏙 들어왔다.
사랑스럽게 차오른 통통한 볼살의 무게가 온전히 그에게 기대어졌다.
잠에 빠져 색색거리는 고른 숨과 따사로운 형색이 도는 뺨이 신기했다.
그 천진난만한 나태함이 그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피곤했나 보군.’
남은 한 손으로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잠에 빠진 낯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햇병아리는 자신이 어디에 기대서 자는지는 알고 편안한 웃음을 짓는가.’
아마 자신의 손아귀 안이라는 걸 알았다면 기겁하고 일어났겠지.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손을 제 베개라도 되는 양 편히 썼다.
알 수 없는 잠꼬대도 웅얼거리면서.
“침은 안 흘리는 게 신상에 이로우실 겁니다.”
“으으…….”
꼭 알아듣는 것처럼 오만상을 썼다.
그는 퍽 무심히 대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베개 노릇을 해 주었다.
받친 손을 움직여 손안의 여린 피부를 쓸었다. 잡기 좋은 말랑한 살이었다.
저 손도 그렇겠지.
검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듯한 손. 사내로서 의구심이 아주 많이 들었다.
보통 귀족가의 자제면 기본 소양으로 익히기는 할 텐데 이 꼬락서니로는 전혀 연상이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태평한 얼굴이군.’
율리시스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무심코 말랑한 볼을 몇 번 더 만지작거렸다.
‘사람의 살이 원래 이 정도로 부드러운가.’
요이델의 잠든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잘 때는 웃는 듯 눈을 감는다.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는 편이며 한 번 잠들면 쉬이 깨지 않는다.
아마 살수가 다가와도 모를 태평함과…….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왜 저 햇병아리 따위를 관찰하고 있나?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머리를 쿠션 위에 내려놓았다.
쿠션에 얼굴을 뉘기까지 어떤 서사가 발생했는지 모르는 요이델은 마냥 행복하게 자고 있었다. 상당히 안일한 자였다.
그러나 이 태도가 싫지 않다.
예민한 그마저도 느긋하게 만드는 태평함이 제법 괜찮았다.
그는 요이델의 목을 덥히는 머리카락을 걷어 주었다.
‘머리가 꽤 길었나. 저번에 봤을 때는 턱 끝 즈음 같더니……. 앞머리는 더 잘랐군. 멋을 내는 걸 보니 행여 잘 보이고 싶은 이라도 생긴 건가.’
햇병아리 주제에 멋 부릴 시간이 어디 있다고. 일을 더 시켜야겠다.
“푸우.”
“깰 듯 말 듯 하면서 잘도 자는군.”
햇병아리 팔자가 상팔자다.
율리시스는 피식 웃으며 달빛을 가려 주었다. 적은 빛이라도 수면에 방해될 수 있으니.
아무도 없고 모두가 잠든 적막한 밤, 홀로 깨어 있는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곁에 두고 귀중한 것을 보듯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잡무 처리는 내가 하게 생겼…….”
율리시스는 정리된 서류 더미를 보고 말을 멈췄다.
마지막 몇 장을 제하고는 모두 놀랍도록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군.”
커튼이 내려와 외부의 모든 것이 차단되는 드넓은 공간 속.
이번에는 무심코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인지하며, 요이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잘하셨습니다.”
간격을 띄우고 쓰다듬어서 손이 닿지도 않는, 아주 미미한 칭찬이었다.
차마 잠을 깨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바라보기에는 어쩐지 애가 달았다.
율리시스가 새벽녘 창가를 보지 못한 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요이델을 따라 깊이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말았을 테니까.
그가 자신의 웃는 얼굴을 인정한 건 이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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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악! 왜 안 깨웠어요!”
요이델은 이상한 기분에 눈을 번쩍 떴다.
햇볕이 쏟아지고 왠지 푹 잘 잔 것 같고……. 이 느낌은 늦잠이다.
“어떡해! 시간이 촉박해요! 율리시스 님도 빨리 일어나요!”
요이델은 아침부터 절망했다.
그러나 뒤에서 느긋하게 그녀를 끌어안는 사람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행복하게 웃으며 요이델의 배에 손을 둘렀다.
“율리시스 님!”
“조금 더 주무셔도 됩니다.”
“다 가능하다고 하면 안 된다니까요! 깨워 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그냥 뒀어요?”
율리시스가 잠긴 목소리로 키득 웃었다.
“곤히 잠에 빠져 계시는데 어떻게 방해합니까.”
“침을 흘리면서 자도 깨워야 한다고요!”
“항상 그리 주무십니다만.”
율리시스는 투덜거리는 요이델을 품에 안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안지 마요.”
“무서운 햇병아리.”
그는 가볍게 중얼거리며 뒷덜미에 키스했다.
“하지 마요, 하지 마.”
“다음부터는 꼭 깨워 드리겠습니다.”
“진짜죠? 이번엔 정말이죠?”
“물론입니다.”
“……그럼 해도 돼요.”
요이델도 그를 돌아보고 꼭 껴안았다. 잠에서 갓 깨어 서로의 체온이 끌어안기 딱 좋게 포근했다.
“그런데 오늘은 율리시스 님도 늦잠을 잤네요?”
“음…….”
율리시스는 머리를 받치고 요이델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날이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예전의 꿈을 꿨습니다.”
“예전이요? 우와, 율리시스 님은 꿈을 잘 안 꾸지 않아요? 뭐였어요, 그게?”
“당신이 저를 무서워하시던 시절의 꿈입니다.”
“아!”
요이델이 반가운 듯 활짝 웃었다.
“어제 한 얘기들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대가 다른 세상에서 겪었다던 이야기들 말씀이시군요.”
어젯밤에는 전생으로 알던 옛 기억과 처음 그를 만났던 때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율리시스는 그녀의 명랑한 모습이 조금 마음 아픈 눈치였다.
아주 작은 표정 변화였지만 그걸 알 정도로 그와 그녀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요? 예전 일이에요.”
“머리로는 이해하나 그리 쉽지만은 않군요.”
그는 한숨 쉬며 요이델의 동그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그대에게 과거의 저는 일관적으로 한심한 모습을 보였으니.”
“어쩔 수 없던 일이잖아요! 지금은 생각도 안 나요.”
요이델은 쿡쿡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 더 생긴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이잖아요?”
“…….”
“앞으로도 저랑 비밀을 더 많이 만들어 볼래요?”
“과거를 돌이키면, 그대가 저를 사랑하시는 지금이 진실로 기적 같습니다.”
율리시스의 목소리가 애틋했다. 둘의 심장이 두근두근 설렜다.
“……근데 예전에도 그렇게 무서워하진 않았어요.”
“거짓말.”
쪽.
먼저 몸을 일으킨 율리시스가 뺨에 가볍게 입 맞추자 요이델이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요이델은 자신을 추슬러 주는 그의 목뒤에 손을 둘렀다.
“조금 무서워했을 뿐이에요!”
요이델은 어느덧 자란 아름다운 은발을 손으로 쓸었다.
어쩐지 율리시스의 눈빛이 짙어졌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한 요이델은 단호하게 그의 눈을 가렸다.
“안 돼요.”
“안 됩니까?”
나긋한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결혼식이잖아요.”
드디어 1년을 기다린 결혼식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