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살아 있을 때 이런 날이 오다니…… 어흐흑,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일은 감동에 겨워 눈물을 주룩 흘렸다.
그는 낡은 다이어리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오래도록 공사한 보람이 있는 휘황찬란하고 멋진 예식용 궁이었다.
하늘은 높고 눈부시고, 성하는 결혼하시고.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은가?!”
원로의 주책에 주위 신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하일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질 날이 오는군요. 우리 성후님께서는 저를 살리러 온 천사가 아니실는지…….”
“마댜.”
“음하핫! 역시 신수님께서도 저와 같이 생각하시지요?”
“웅!”
플로테스는 하일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방싯 웃었다.
황제가 품었던 돌을 흡수한 후 말과 생각이 쑥 늘었지만 몸은 여전히 봉제 인형 같았다.
플로테스도 오늘은 신전의 문양이 수놓아진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제게 오세요, 신수님. 주책도 병이라 가까이하면 옮기 마련이지요.”
“주책이 아니라 감동이네! 냉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군. 쯧!”
마르셀리나는 하일의 분노를 대충 듣고 흘렸다. 그녀는 식순을 점검한 후 겨우 숨을 돌렸다.
“대원로님! 이제 아가씨, 아니 성후님을 모시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슈레오가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평소 성격대로면 몇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어야 할 율리시스와 요이델이 보이지 않았다.
마르셀리나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남관의 원로님, 두 분은 어디 계시지요?”
“성궁에 계시지 않겠나. 괜히 미리 독촉해서 부담 드리지 말게.”
“공석에서는 말 놓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존대를 하세요. 게다가 원로님의 아기님 작명 다이어리가 더 부담인 걸 모르시나요. 호호.”
“이, 이건……!”
하일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 둘의 아기님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으므로.
“그냥 다이어리일 뿐입니다, 대원로! 소지하는 것조차 안 된단 겝니까?”
“두 분은 아기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듣지 않겠다고 하셨지 않나요. 특히 성황 성하께서는요.”
“성하께서요? 흐음.”
하일을 보조하던 파멜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는 것이 있는가? 그 신통한 능력으로 무언가 미래가 보였는가?”
“알려 드리면 은퇴해 주실래요?”
“그게 되겠나! 내가 지금 당장 은퇴해도 자네가 원로가 되지는 못할걸세. 그냥 말해 주면 덧나는 게야?”
“그럼 제가 얻는 게 없죠.”
파멜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분명히 봤다.
‘성하를 엄청 닮았던데…….’
쾅!
그러던 그때 휘스테론과 라이오스가 급하게 들어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 성하를 보신 분 계십니까?”
그들의 말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마르셀리나는 머리가 어지러워 이마를 짚었다.
“성궁에 계시지 않나요?”
“주위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사람들이 일제히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 남았는데요?!”
“아니, 두 분이 함께? 전부? 이게 무슨 일입니까!”
모두 경악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하일은 기쁜 낯으로 접었던 다이어리를 몰래 다시 펼쳤다. 그는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크흐흐, 어쩌면 아기님 이름이 모자를 수도 있겠군…….”
━━━━⊱⋆⊰━━━━
조금 전, 대신전 내부.
“어딜 가는 거예요?”
요이델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율리시스가 보여 줄 것이 있다면서 요이델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새로 지어진 성궁이었다.
“우와…….”
“마음에 드십니까?”
거대한 가림막을 걷자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휘황찬란한 궁이 나타났다.
현재 사용 중인 성궁은 대신전 내에 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들이 머물게 될 성궁은 조금 더 뒤편의 안락한 터에 위치했다.
“율리시스 님이 숨겨 뒀던 이유가 있었네요……. 놀라워요.”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율리시스는 긴장감으로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지금 보여 줘도 되는 거예요? 아직 공표가 안 됐는데요?”
“누구보다도 그대에게 먼저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와, 특별하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칭찬도 받고 싶고.”
그의 투정에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요, 최고로 마음에 들어요! 이제 여기서 같이 사는 거예요?”
요이델은 진심을 다해 활짝 미소 지었다.
새로운 성궁은 온통 요이델의 취향에 맞게 지어졌다.
그녀를 만난 후 율리시스의 냉기는 눈에 띄게 감화되어 둘이 공유하는 취향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건 접목에서 끝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화려하고 온난한 빛을 띠는 새로운 성궁은 로사리움을 연상케 했다.
그가 기념비적인 천년 성궁을 허물고 새 성궁을 짓겠다 선언했을 때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율리시스가 차가운 낯으로 성후를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하자 모두들 납득했다고.
요이델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주는 게 좋은 건 사실이었으므로.
“진실로 좋으십니까?”
“그럼요!”
“얼만큼?”
“네? 최고, 그러니까 마음이 설레도록 마음에 든다고요.”
“잘 안 들리는데.”
율리시스가 은근히 재촉하자 요이델은 재빨리 짧게 쪽 뽀뽀했다.
원하는 걸 얻어 낸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잘 들리는군요.”
“밖에선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감히 누가 저희를 보겠습니까.”
“정말…….”
얼굴이 빨개진 요이델이 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런데 율리시스 님은 상관없어요? 원래 살던 곳이 더 편할 텐데 무리해서 강행한 거 아니에요?”
“편한 곳이라…….”
율리시스는 그 단어에 의문을 느끼는 듯 말꼬리를 끌었다.
“그렇다면 당신 하나만 껴안고 살아도 만족스러울 듯한데.”
“아, 안 돼요. 이상한 말 하지 말고요. 성궁을 구경시켜 주려는 거 아니었어요? 어서 가요.”
당황한 요이델이 율리시스의 등을 밀었다. 어쩔 수 없이 앞서 걷게 된 그가 요이델에게 손을 내밀었다.
“누가 보면 제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아니라고요?”
“글쎄요.”
율리시스는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염려 마십시오. 저 역시 기존의 성궁보다 새로운 성궁이 마음에 듭니다. 튼튼한 성을 짓는 게 저의 목적이었으니.”
“하지만 그 성궁도 예쁘고 단단했는데요?”
“당신이 머물 곳이니 말도 안 되게 튼튼하여야 마땅합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이전의 성궁은 당신을 머물게 하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왜요?”
“제가 기거할 곳이기에 큰 애착 없이 지었던 궁입니다. 그리 튼튼한 곳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율리시스의 말에 요이델이 속상한 듯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지 말아요. 만약 제가 집을 짓는 사람이었으면, 율리시스 님의 집은 엄청 신경 써서 튼튼하게 지었을 거예요.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제 뜻이 그렇습니다.”
율리시스는 산뜻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는 요이델 님과 살 공간이기에 새로 지은 것뿐입니다. 그대가 안전하도록. 저 혼자 살고 말 곳이 아니기에.”
“밑에 있는 신관들을 엄청 괴롭혔다면서요?”
“의외로 본 성격을 드러내고 사는 게 적성에 맞나 봅니다.”
율리시스는 제가 말하고도 피식 웃었다.
“요이델 님께 말씀드린 적은 없으나, 현재 성궁이 위치한 곳에는 과거 제 부모님이 살던 성이 있었습니다.”
과거 얘기가 나오자 요이델이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그 정도로 어린 소년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부군 아닙니까.”
“……그러네요. 그럼 다 알려 줘요. 듣고 싶어요.”
“거대한 유리로 지어진 아름다운 성이었습니다.”
브리칼트의 대공이 악의적인 소문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그의 입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요이델은 마음이 아팠다.
아주 작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러나 한순간에 무너지더군요.”
“무너져요?”
헛소문과 다른 진실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
“어머니의 일가족과 어머니, 아버지 모두 잔해에 깔려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 것만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벌써 오래전 일이군요. 특별히 대단하지도 않은 끝이었습니다.”
“……율리시스 님은요? 안 다쳤어요?”
“제 꼴이 보기 싫다며 평소와 같이 내쫓긴 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기에 멀쩡했습니다.”
천운이라며 덧붙이는 율리시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희.”
요이델은 그를 꽉 끌어안고 아주 천천히 말을 거르고 걸렀다. 그를 힘껏 안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희는…… 그러니까 저희는…….”
“괜히 겁에 질리게 만들었군요.”
“…….”
“그런 사고가 있었으니 그곳에 우리의 집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순전한 제 욕심이니 요이델 님께서는 염려치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요이델은 그를 더 껴안았다.
두려워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무던함이 안쓰러웠다.
“……저희에게는 플로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
“맞아요! 플로에게는 날개도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심히 빠져나올게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약속해요!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요.”
요이델은 진지했다. 율리시스와 요이델이 추락할 때 플로테스가 그들을 잡아 줬다고 들었으니까.
그 순간 율리시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요이델에게 등을 보이며 웃었다.
“진심이에요! 왜 웃어요?”
그의 반응이 왜 저럴까. 요이델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답은 이상한가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위로보다는 이쪽이 제 취향인 듯하여.”
“칭찬치곤 묘하네요.”
요이델이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결혼식 날에 싸울 수는 없으니까 넘어가 줄 거예요.”
“영광입니다.”
다정하게 미소 지은 율리시스가 그녀를 데리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도 있어요?”
“사적인 공간은 비상시를 대비해 전부 이어져 있습니다.”
숨겨진 문을 따라 내려가니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런데 여긴…….
“예전에 율리시스 님을 봤던 거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