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쿵.
요이델의 등 뒤로 문이 닫혔다. 공작 부부는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아 침묵했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해.’
아까부터 자꾸만 느껴졌던, 몸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위험 신호가 계속 그녀의 심장을 쿵쿵 치는 것만 같았다.
“요이델 요보힐데, 우린 몹시 피곤해. 착한 아이는 부모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단다. 우리에게 신수를 보여 주렴.”
“네?”
놀라 되묻자 공작 부인이 눈을 찌푸렸다.
“말대꾸는 누구에게서 배웠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렴. 신수를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야. 신수는 어디 있지?”
“방금 전에는 저를 보러 오셨다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렴. 그래야 착한 아이지. 그렇지 않니…… 요이델!”
공작 부인이 터트린 분노에 귀가 찌릿 아팠다. 큰 노성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마치 저 소리에 학습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게 자식이 그리워 찾아온 부모의 일반적인 태도일까? 아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어도, 적어도 이게 보통이 아니란 건 알았다.
요이델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그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등을 문에 기댔다.
“죄송하지만 신수님께서 현재 뭘 하시는지, 어디에 계시는지는 저도 몰라요. 신수님의 알현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왠지 모르겠지만 이 몸이 그들을 멀리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공작 부부의 안색이 점차 굳어 갔다.
그 이상한 느낌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여긴 대신전이고 두 분은 외부인이세요.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규율을 어길 수는 없어요.”
“이런, 델.”
“신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셔야만 해요. 누구도 절차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무리한 부탁이었다. 요이델은 절대 그 투정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단순히 피곤해서 예민해진 것이라면, 이쯤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터였다.
공작 부부는 그런 요이델을 바라보다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못 본 새에 제 머리로 사고할 줄 알게 됐군.”
“그래, 잘했다. 신수도, 광물도, 꽃밭도 모두 네 실적이더구나.”
그들은 서서히 요이델에게 다가왔다.
“그것까진 좋았지. 네가 정말로 성국에 모든 걸 갖다 바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야.”
“제가…….”
“백치처럼 멍청하던 네게 티끌이나마 있는 재능을 발견해 신관으로 올려 보낸 게 13살 무렵의 일이었다.”
그 노기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본 적 있어. 저 눈빛, 아주 많이 봤어.
지금과 똑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혼내는 부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안 갈래요, 무서워요. 엄마, 아빠.’
그때 깨달았다. 어린 요이델이 원해서 성국에 온 게 아니었다는 걸.
두 쌍의 녹색 눈이 분노하고 있었다.
불현듯 떠올랐다. 요보힐데라는 성을 어디서 봤는지.
‘브리칼트 제국의 악역 가문. 황가와 결탁해 성국을 무너뜨리려다가 결국 목이 베이고 마는 최악의 인간들. 금지된 마법을 사용하는…….’
바로 그 순간.
짜악!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잡생각이 드나 보구나. 요이델 요보힐데. 집안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요이델의 뺨에 점차 붉은 손자국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누가 가족을 이런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까.
“이게, 어, 도대체 무슨…….”
요이델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붙잡고 상황을 파악했다. 처음엔 그저 충격과 함께 아프기만 하더니, 점점 열이 오르며 뺨의 고통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게르암 신관을 네 손으로 잘라 내다니, 제정신이냐!”
공작은 반지를 낀 손으로 뺨을 쳤다. 볼에 붉은 상처가 한줄기 또렷하게 생겨 피부에 묻어났다.
“성국의 빈틈을 알아 오라고 기껏 보내놨더니, 게르암을 고발하지를 않나. 그 전엔 게르암이 일을 진행시키는 동안 성황의 눈을 돌려놓으랬더니, 쓸데없이 사형을 선고받질 않나. 일을 키워도 정도가 있는 거다.”
“어쩜 이리 멍청한지. 역시 네가 아니라 시엔델이 살았어야 했어. 무능력한 너보다 훨씬 뛰어났던 시엔델이!”
요이델은 그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된 건 율리시스 습격 때문이다.
그게 게르암이 신전의 이름을 파는 동안 눈을 돌리기 위해서 한 거였다니.
‘그럼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좋아한 게 아니었나?’
원작 속에서 그녀는 율리시스를 향해 이해가 안 될 정도의 집착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어쩌면 그녀의 의지가 아닐 수 있다니.
‘그런데 시엔델은 누구지?’
요이델은 그런 이름을 처음 들었다. 시엔델이 살았어야 한다는 말은 시엔델이라는 사람이 현재 살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넌 너로 사는 게 아니야. 시엔델의 대체품이지. 늘 네가 죽인 시엔델을 떠올리며 그 애처럼 살아야 해.”
지금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엔델?’
한참 생각하던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욱신거렸다. 두통과 함께 어떤 기억이 밀려 들어왔다.
몇몇 흐릿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기억들 속 자신과 시엔델은 사이가 꽤 좋은 남매였다.
‘쌍둥이였구나.’
다만 부모님이 금기 마법을 연구하는 장면을 몰래 보았고, 실수로 사고가 났으며, 그 자리에 하필 둘이 있었던 게 문제였다.
‘시엔델은 요이델을 감싸다가…… 죽은 거야.’
요이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요이델이 비뚤어지게 자란 거다. 자신의 앞에서 그 장면들을 봤고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님이 그렇게 세뇌했으니까.
‘너 때문에, 너만 아니었어도!’
시간이 흐른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작 부부는 요이델에게 남장을 시켜 처음부터 딸은 없었던 것처럼 만들었다.
요이델은 유일한 외동아들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공작 부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직접 그렇게 말했었다.
‘이름 빼고는 자기 것이 하나도 없었어.’
요이델은 짧은 뒷머리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원작에서는 요이델이 남장 여자인 게 밝혀진 후, 공작 가문은 모르는 일이라며 꼬리를 자른다.
그래서였구나. 지금 공작 부부를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겠어.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이 기억은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단단히 잠긴 자물쇠 너머를 비집고 훑어보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남았구나.’
그리고 어쩐지 원작 속에서 악역으로만 묘사되었던 요이델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눈떴던 차가운 감옥에도 공작 부부는 찾아오지 않았어. 만일 조금이라도 요이델을 생각했다면, 사형 집행 소식을 듣고 내버려 두진 않았을 거야.’
지금도 그들은 요이델에게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협박을 하고 있었다. 원작 속의 철저한 악역 가문답게.
‘요보힐데 가문은 나를 버리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어. 그럼 언젠가 자신들이 위험할 때, 나를 세작으로 몰아 도망가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야.’
절대로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요이델은 바닥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찝찝하고 묘하게 슬픈 기분이었다.
‘정말 외톨이었구나.’
하지만 진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나았다.
묵묵히 고개를 숙인 요이델을 보며, 공작 부부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래, 이렇게 고분고분해야지 평소의 요이델답지.
아까는 꼭 다른 사람인 줄 알 뻔했다. 시엔델의 능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요이델에게도 나름 마음에 드는 점은 있었다. 부모의 뜻을 거스를 줄 모른다는 것.
“……그래, 좋다.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어. 네가 고위급이 되었으니 게르암의 역할을 하면 되겠지. 이제까지의 실수는 눈감아 줄 수 있다.”
공작은 명령조로 요이델을 한껏 낮추보며 말했다.
브리칼트의 황제는 값비싼 사프란 꽃잎마저 성국에서 발견되어 게거품을 물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무역을 맺어 종자를 확보하는 한편, 이를 갈기도 했다.
식물이라면 어떻게든 재배할 노력을 해 보기라도 할 수 있으나, 신수는 불가능했다.
3백여 년 만에 태어난 신수는, 성황과 더불어 성국의 국격을 높이는 상징물이 될 터.
신이라면 치를 떠는 황제에게는 미쳐 쓰러져 버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들의 딸인 요이델이 그 관리자라는 점.
‘연구 가치로서 충분하지.’
요보힐데 가문은 금지된 마법을 쓸 줄 알았다.
당연히 그중에는 영혼을 다루는 것도 있었고. 생명을 복제하는 것도 해 봤다. 안 해 본 금기 마법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운이 좋아 신수가 알을 낳거나, 그 신수의 정신을 세뇌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무척 도움이 될 터였다. 신수는 연구감으로도 손색이 없었고, 일종의 공격 무기로도 쓸 만했다.
그런데 이건 왜 답이 없지?
공작 부부는 의문스러운 눈으로 요이델을 노려봤다.
요이델은 계속 따끔거리는 뺨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괜찮아, 울 일이 아니야. 괜찮아.’
전생에서도 혼자였던 요이델은 눈물을 참는 법을 배웠다.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는 곳에선 울면 안 된다. 지금 마음이 아픈 건 혼자 방에 가서 울면 되니까.
공작은 여전히 잠잠한 요이델을 바라보다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너, 뺨에 난 상처가 어디 갔니?”
이것이 치유 마법까지 터득했나?
분명히 자신이 낸 상처가 있었는데 흔적조차 없이 깨끗해졌다. 요이델도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정말이야, 아프지 않아.’
요이델은 깜짝 놀라 자신의 뺨을 만졌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만들 수 있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설마 성하께서?’
요이델이 혼란으로 떨고 있을 때, 공작 부인이 한숨을 쉬며 요이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여태까지 착한 아이였던 것처럼 이 뒤로도 그래야 한다. 성을 떼었다고 한들 너는 우리 아이야. 그러니 우리가 시키는 일은 다 할 수 있겠지? 우선 네가 할 일은…….”
“못 해요.”
“뭐?”
잔뜩 화가 난 공작 부인은 당장 요이델을 노려봤다.
그러나 요이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얘, 얘가 왜 이래. 방금 뭐라고 했니?”
“사형대에 올랐다 내려왔다더니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군.”
둘은 당황하면서 혀를 찼다.
요이델은 아까 맞았던 뺨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곰곰이 생각했다.
“다시 잘 생각하고 말해 봐라. 네가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못 하겠어요.”
요이델은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공작 부부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기대에 못 미친 건 죄송해요. 두 분의 말씀대로 가문의 명예를 떨어뜨릴 수는 없어요. 그러니 저를 요보힐데 가문에서 내쫓아 주세요. 받아들이겠습니다.”
대경실색한 공작 부부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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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던 율리시스의 뺨이 부어오른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요이델과 율리시스는 신체적 고통을 공유한다.
‘햇병아리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군.’
반지에 긁힌 듯 길게 그어진 가느다란 선이 그의 뺨에도 나타났다. 손가락으로 스윽 훑자 얇은 핏방울이 맺혀 흘렀다.
“……과연.”
율리시스는 눈을 감고 차갑게 미소 지었다.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요이델 님.
그는 곧장 뺨을 치유했다. 어딘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싶더니, 이거였나.
감은 눈을 천천히 뜨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에는 냉기가 말라붙어 서늘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다.
그들이 있는 응접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