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
3화
쾅!
그 순간 대신전 어귀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쿵! 쿠르릉!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할 듯 대단한 파열음, 땅을 뒤흔드는 진동에 대신전의 모두가 놀라 경보음을 울렸다.
“마수의 침입인가!”
“그런 것과는 궤가 다릅니다. 무너진 결계가 없어요.”
“그렇다면 내부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성하께서 계시는데 어떻게 감히…….”
이상한 일이었다.
하늘이 찢어진 듯한 굉음이 들렸는데 무너진 건물도,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하인가?! 아니, 그도 아니었다.
모두가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운 그때, 대신전의 원로 3인방은 눈을 번쩍 떴다.
“나타나신 게지.”
“율리시스 님이 드디어!”
보통의 신관들이라면 느끼지 못했겠지만, 원로원은 알 수 있었다.
방금 전에 일어난 그 폭발음은 단순한 굉음이 아니라는 걸.
그건 분명히 힘이 충돌하는, 무엇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두 개의 강한 힘이 서로 섞이지 못하고 밀어내다가 결국 하나로 합쳐지는 소리. 인연이 이어지는 파장.
“분명히 성하의 힘이었네! 다른 하나도 강력하더군. 찰나의 순간임에도 느꼈지. 그렇다면 상대도 신관이란 말인가?!”
중년의 신관들은 기쁨에 떨었다.
그들은 원로원이자 대신관이며, 사실은 율리시스의 혼인을 추진하는 위원회였다.
율리시스는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었다.
이 대신전이 세워진 성국 팔라디움의 주인이자, 신족의 마지막 후예.
그는 신족의 혼혈로서 피를 남겨야 하는 의무가 있는 자였다.
물론 그런 상소문을 올릴 때마다 그가 웃으며 불태워 버리긴 했지만.
그런데 때가 왔다.
“율리시스 님께서 드디어 일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찾으신 게야!”
“맙소사……!”
순리에 맞춰 삶이 흐른다더니, 여태껏 신붓감 목록을 들이댈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던 그가 드디어 짝을 찾은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걸려들어 올 줄 알았다면 무리한 강요는 안 했을 텐데.
어찌 됐든 기쁜 일이었다. 그동안 여자를 멀리하더니 다 짝이 있어서였나.
원로 3인방은 한껏 올라간 광대를 숨기며 후후 웃었다.
“경사지. 경사야.”
“나는 아기님의 존함을 미리 지어 놨다네. 케케묵어 영원히 못 쓸 줄 알았더니, 드디어 다시 꺼내 들 때가 된 것인가…….”
원로 중 한 명은 낡은 다이어리에 쌓인 먼지를 털어 냈다. 그들은 모두 성직자답지 않게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다이어리를 끌어안은 백발의 남자는 가장 감격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러다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대체 누구란 말이오? 율리시스 님께서 곁에 두시는 이가 있었소?”
“음…….”
“뭐, 알아서 하셨겠지. 하하하!”
원로들은 곧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반려를 찾는 데 성공했으면 됐지, 만남이 뭐가 중요할까.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자만 아니면 누구든 어떤가.”
반평생을 기다린 경사에 그들의 마음이 설렜다.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서 만나게 된 기쁜 소식이었다.
‘부디 안온하시기를.’
그들은 마음속 깊이 율리시스의 행복을 바랐다.
━━━━⊱⋆⊰━━━━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율리시스는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붉어졌다. 요이델이 치아로 찍다시피 입을 맞춰 살결이 찢어졌기 때문이었다.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멱살을 틀어쥔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정말 저질렀어.’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율리시스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잠잠하게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대체…….”
그때 요이델의 생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깊게 가라앉은 율리시스의 음성이었다.
“피.”
그는 손에 묻은 자신의 피를 낯선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남의 피는 수도 없이 묻혔으나 제 몸속에 흐르는 피를 보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제껏 어떤 공격도 그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런 그를 그의 가슴팍에나 겨우 오는 작은 소년이 무너뜨렸다.
율리시스는 자신의 입술을 함락시킨 정신 나간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엔 명백한 경멸의 빛이 서려 있었다.
“미치셨습니까.”
율리시스의 음성이 무섭도록 낮았다.
“미, 미미, 미친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요이델은 긍정했다.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 굉장한 빛의 파장이 일어났다.
이건 요이델로서도 목숨을 걸고 한 입맞춤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방법이 통했다!
목숨을 건졌다는 기쁨과 함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먼저, 그의 약점이 입술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장치니까.’
요이델은 그걸 알고 있었다.
원작의 남자주인공이 극도로 순결을 유지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병적일 정도로 꺼렸던 이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가 성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남자주인공이 접촉을 꺼리는 이유는 성직자라서가 아니라, 그와 입을 맞추는 순간 운명적으로 뗄 수 없는 유대 관계가 생기기 때문이었어.’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어 둘을 묶어 두는 관계.
‘페어링.’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율리시스처럼 특별한 피를 지닌 이들도 쉽사리 맺지 않는 관계였다.
‘힘이 우세한 쪽이 손해일 테니까.’
이런 관계는 한쪽의 힘이 크고 다른 쪽이 약할 때 사용하는, 반려를 맞이하는 방법이었다.
힘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사랑할 때. 수명이 긴 사람이 수명이 짧은 사람을 사랑할 때.
상대를 잃지 않기 위해 힘을 나누어 주는 것.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는 깊은 관계일 때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고, 마음속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했다.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남자주인공은 절대 하지 않았지만.’
페어링은 강자에게는 특별히 좋을 게 없었다. 관계 중 한쪽이 약할 때, 힘과 수명을 부여받는 기능이 있을 뿐.
다시 말해 율리시스에게는 좋을 게 없었다.
게다가 페어링의 매개체가 입맞춤이라는 건 원로들도 모르는, 그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
“당신은 무엇인가를 알고 계신 겁니까. 의도된 계획이었냐 묻는 겁니다.”
내가 책에서 봤어요! 이렇게 말해도 누가 믿어 줄까?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들킨 이상, 다른 어떤 거짓말을 둘러대도 소용이 없을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뻔뻔하게 나가자. 그는 변명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한다.
“정말 죄송해요.”
요이델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은 죄송하다는 말 외에 해야 할 말이 없었다. 목숨은 부지했으나, 이다음도 문제긴 했다.
율리시스는 내려놓았던 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수많은 침입자를 죽였던 예리한 칼날에 그의 서슬 퍼런 눈이 비추어졌다.
그로서도 자신을 따르는 신관을 직접 죽이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는 벌벌 떠는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초식 동물을 사냥하는 맹수처럼 한 걸음씩 포위망을 좁혀 갔다.
‘고작 이 정도의 위협에 벌벌 떠는 자가 어떻게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지를 수가 있나.’
세작인가. 그렇다면 어디의?
불쾌하고 또 불쾌했다.
율리시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적의를 가지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가갈수록 요이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당신을 죽이면 이 계약도 사라질 겁니다.”
칼끝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자 분홍색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졌다.
바닥에 쌓인 짧은 머리카락들이 율리시스의 발아래 짓밟혔다.
“괜한 고생을 하셨습니다. 편히 받아들이셨다면 단번에 끝났을 것을.”
요이델은 떨리는 몸을 바로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니요.”
스윽―
그가 요이델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는 순간, 아주 작은 핏방울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종이에 벤 듯 얇은 상처였다.
그러나 피부를 따라 내려오는 피의 흔적은 두 개였다.
하나는 요이델의 것.
나머지 하나는 율리시스의 것.
두 명 모두 같은 위치에 같은 상처가 났고 똑같이 피를 흘렸다.
페어는 모든 것을 공유함을 뜻했다.
‘당연히 죽음도 함께한다.’
율리시스는 제 목에 흐르는 가느다란 핏방울을 손으로 닦아 내었다.
하늘 같은 그의 눈동자가 손에 묻은 붉은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곧 요이델의 눈으로 향했다.
늘 동요 없이 푸르던 눈이 당황으로 떨렸다. 이 현상은 무엇인가.
그는 모르는 일이었다. 원작을 읽은 요이델은 알고, 그는 아직 모르는 것.
“죄송하지만, 성하께서는 저를 검으로 베실 수 없어요.”
떨리는 목소리에는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저를 죽이신다면 성하께서도 숨이 멎으실 거예요.”
요이델이 노린 건, 바로 그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