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3)
33화
대신전의 보고라 불리는 마르셀리나였다.
그녀는 하일보다도 오래 산, 율리시스를 제외하면 이 성국 내의 최연장자였다.
일전에 잠깐 본 게 다라서,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부드러운 겉모습과 달리 꽤 단호하고 연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장기전이 될 겁니다.”
라이오스가 조금 흔들리는 눈빛으로 요이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장기전?!”
“마르셀리나 할멈은 공부한 걸 제대로 머리에 넣을 때까지 밖에 안 보내 준다니까.”
“저, 정말이야?!”
“물도 밥도 안 주고 엄청나, 진짜. 화장실 간다고 하니까 뭐라고 한 줄 알아?! 땀 내서 참아 보라더라, 허.”
휘스테론은 그날 일을 떠올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놀라 얼어 있는 요이델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손을 흔들었다.
“끝나면 데리러 올게! 새벽이 되더라도 꼭 올 거야! 걱정 마, 델!”
요이델은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호위기사를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 차렸다.
그리고 얼른 마르셀리나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요이델은 마르셀리나가 마련해 놓은 듯한 책상에 앉아 긴장감으로 눈을 부릅떴다.
‘좋아. 열심히 하는 거야. 마르셀리나 님이 가르쳐 주실 걸 예습해 보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니 엄격한 스승이라면 오히려 좋았다. 자신이 모르는 많은 것을 알려 줄 테니까.
요이델은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칠판에 빼곡히 적힌 수식을 발견했다.
고심한 듯한 흔적이 잔뜩 묻어 있는 마법 수식.
아직 풀지 못한 듯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쓴 것 같았다.
요이델이 서재에서 봤던 책들 중에 저런 것도 있었다.
‘아, 저 글씨. 메디아어랑 비슷해. 조금 더 어렵게 생겼지만.’
요이델은 그것들을 가만히 눈으로 살피다가 하나를 깨달았다.
‘이걸 지우면 될 것 같은데.’
늘어진 마법 수식들 중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시동어의 한 종류였는데, 고대 언어로 적어야 하는 부분이라 혼동하기 쉬웠다. 언어 체계가 다르다.
‘이 부분을 중간에 자르고, 언어를 대체해서…….’
이음새를 변경하니 나머지도 손대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요이델은 침착하게 하나씩 다시 적어 나갔다.
‘좋아. 이제 될 것 같아.’
어느새 이마에 고인 땀을 슥 닦아 내고 뿌듯한 마음에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바로 읽었더라? 다시 생각하니 이상했다.
‘나 이걸 술술 읽었어.’
다시 바라봐도 낯설지 않았다. 스스로도 믿기 힘들었다.
요이델은 칠판에 적힌 마법 수식을 보고 그 옆에 적힌 메모를 천천히 읽어 나갔다.
“금술에 대하여…….”
흥미로운 주제였다. 금기된 마법이라면 마르셀리나의 주 종목인 생물, 정신 계통 마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니까.
쿵―
그때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에 옆을 돌아보니 동그란 눈을 한 마르셀리나가 책을 전부 떨어뜨리곤 입을 벌리며 서 있었다.
“어떻게…….”
목소리가 바르르 떨려 왔다.
“그 난제를 풀었죠……?”
━━━━⊱⋆⊰━━━━
“더 먹어 보세요, 요이델 군.”
“배가 터질 것 같아요…….”
“이렇게 말라서 어떻게 문제를 풀겠어요? 먹어야 힘이 나죠. 어서 더 먹어요. 우리 요이델 군은 소중한 인재이고 영재예요.”
마르셀리나는 호호 웃으며 요이델에게 달달한 디저트류를 듬뿍 챙겨 먹였다.
“요이델 군, 이건 어떻게 풀면 되는 거죠?”
지금 요이델은 딱 곤란해서 달아나고 싶을 지경이었다.
마르셀리나가 이렇게 된 건 약 한 시간 전.
제멋대로 칠판에 손을 댄 자신을 나무라겠지, 싶어 사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맞는 답을 찾은 거라고 해도 불쾌할 수 있으니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온 마르셀리나는 양손을 크게 번쩍 들었다.
이미 요보힐데 공작 부부에게 당한 전력이 있던 요이델이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던 그때.
“대단해요, 요이델 군! 당신이 그때 그 요이델 군이 맞나요?”
마르셀리나는 박수 치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곧장 요이델의 앞에 몇 가지 수식을 들이밀었다.
“이건 다른 틀을 적용하면…….”
놀랍게도 요이델은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 나갔다. 자신조차 의아할 정도로 쉽게. 꼭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앞서 요이델이 해결한 마법 수식은 메디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메디아 출신인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도 풀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 어린 신관이 해내다니.
‘이 소년의 신성력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지.’
마르셀리나는 흐뭇한 눈으로 분홍 머리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신관. 그가 보여 준, 은빛 분수의 물이 비처럼 찬란히 쏟아졌던 사건은 놀라웠다.
사실 요이델이 신성력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땐,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과거 요이델의 악행을 기억하고 있었고 대단한 능력들을 보긴 했지만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가에 묻히고 먹어도 된답니다. 많이 긴장했나 보군요.”
“마, 마르셀리나 님…….”
“편하게 셀리나라고 불러요, 요이델 군.”
오히려 성하에게 불만이 들었다. 이런 영재를 이제 소개시켜 주시다니.
게다가 이렇게 뼈마디가 도드라질 정도로 연약한 이를 그냥 놔두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잘 먹이고 포동포동하게 살찌워서 더 건강하게 만든 다음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지!
그녀는 마치 손주를 대하는 듯한 느낌으로 요이델을 바라봤다.==
“천천히 먹어요, 요이델 군.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편히 말하고요.”
“읍, 네! 가, 감사합니다.”
요이델은 입안 가득 넣은 디저트를 우적우적 겨우 씹으며 말했다.
이런 호의를 그냥 받아도 되는 걸까? 아직 익숙하지 않아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그런 요이델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어 주던 마르셀리나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요이델 군, 금술 중 영혼 교환 마법의 대가는 무엇이죠?”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많은 산 제물이 필요해요.”
“그렇다면 바꿔치기를 시도하다가 오류가 발생했을 때 빠져나간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요?”
“보통 영혼은 소멸하고 육체는 깨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르셀리나는 척척 대답해 내는 요이델을 보며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하, 하지만 금술은 산 제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질 거예요.”
“아주 많은 산 제물을 태워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죠. 그건 어떤 경우에 해당할까요?”
조금 더 어려워진 문제에 요이델은 잠시 고민했다.
“영혼을 바꿔 담으려는 대상의 연령이 낮을 경우입니다.”
그 말에 마르셀리나는 표정을 굳혔다. 뭘 잘못 말했나? 요이델이 눈을 굴릴 때쯤 마르셀리나의 앙다문 입이 천천히 열렸다.
“……우리 애, 영재 아니고 천재였어.”
마르셀리나는 벌떡 일어나 마구 박수 쳤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
첫 수업을 듣고 며칠 뒤.
주방에 마르셀리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 요이델 군을 본 사람 있나? 언뜻 이곳으로 들어간 것 같던데.”
“방금 나가셨습니다, 예하.”
“다람쥐처럼 빠르군. 과연 내 제자 요이델 군. 이렇게 애를 태워야 잡는 맛이 있죠. 오호호! 어디 숨었나―”
탁.
문이 닫히고 주방 홀에 적막이 감돌았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요이델 님.”
“고마워요.”
“많이 힘드신 겁니까?”
요이델은 대신전 조리장의 도움으로 조리대 서랍장에서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그는 요이델을 조금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여기 건초염에 좋은 약초예요. 손수건에 발라서 묶으면 좋을 거예요.”
“아휴, 매번 이런 걸 다…….”
그는 감동한 눈빛으로 헤벌쭉 웃었다.
이후에도 몇 번 마르셀리나의 수업을 착실히 들은 요이델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피하게 됐다.
‘하일이 침을 튀기며 칭찬한 이유가 있었군요.’
거기까지는 하일 님이 내 얘기를 하다니, 하며 감동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돌연 마르셀리나의 눈빛이 번뜩였다.
하일이 줬던 남관의 출입증을 봤기 때문이었다.
‘요이델 군, 알겠지만 복수 선택은 규율 위반이 아니에요. 서관으로 와요. 남관에 가면 약초나 길러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식물을 기르는 게 얼마나 지루한지 알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죠. 다 살고 죽은 사람…… 아니 마수…… 콜록, 이 아니라 생명을 연구한답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열심히 마르셀리나와의 수업을 피해 다녔다. 그때부터 마르셀리나의 집착 증세는 심해졌다.
‘마르셀리나 님이라면 충분히 하일 님을 성서로 때리고도 남으실 분이야.’
성하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닐까 조금 의심했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자칫하다 자신도 성서로 맞는 게 아닐까, 하고 소름 끼치는 생각도 들었다.
‘성하만이 마르셀리나 님을 막을 수 있어.’
그러나 율리시스는 바쁜 몸이라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잘 보이지도 않았고.
“휴…….”
“요이델 군의 숨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엄마야.
저 복도에서 들려온 마르셀리나의 목소리에 소름이 쫙 돋았다.
‘성하께 말씀드리면 또 냉랭한 오해를 받을 수 있겠지만, 다른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은걸.’
그런데 마르셀리나의 육감은 거의 야생동물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달한 듯했다.
성하는 어디 계실까?
‘위치 추적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페어링은 그렇게 되지 않았고, 요이델도 추적 마법을 쓸 수는 있었지만 그는 그녀의 마법에 잡히기에는 능력치가 턱없이 컸다.
“요이델 군―?”
쿵.
목소리가 또 들리자 요이델은 아무 데로나 도망쳐 문을 열었다.
거대한 나무 문은 밀기 힘들었으나 등으로 으랏차차 열고 빠르게 문을 닫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아, 하아…….”
갔나? 가셨을 거야. 설마 여기까지…….
“요이델 님.”
“꺄악!”
반사적으로 경기를 일으킨 요이델은 뻣뻣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잠깐만, 그런데 이 목소리…….
“성하……?”
그토록 찾던 성하께서 왜 여기에 계실까? 그것도 손에 저런 걸 들고.
요이델은 눈을 비비고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