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4)
34화
그리고 멍하게 그의 손을 바라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저게 뭐지?
성하가 왜 여기 있고, 여긴 왜 이렇게 넓을까.
‘아, 대예배당이구나.’
주변을 보고 자신이 잘못 도망쳤음을 깨달았다. 이런 곳까지 오려던 게 아닌데.
대신전과 성궁의 교차 지점에 있는 성스러운 대예배당.
이곳은 성황의 공간이었다.
주위에 있는 장미 장식을 보니 알겠다.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밖에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큰 행사가 아니면 민간에게는 열지 않는 비밀 예배당이었다.
그렇긴 한데…….
‘왜 여기서 그런 걸 하고 계신 건가요?’
요이델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엄숙함은커녕.
“……이런.”
그는 대예배당에서 연기나 피우고 있었으니까.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터라, 하마터면 저게 연기가 아니라 겨울의 입김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일 뻔했다.
율리시스는 여유롭게 앉아 한낮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대예배당을 조금 다른 의미로 쓰고 있는 듯했다.
“콜록.”
흡연을 하지 않는 요이델이 괴로워 콜록거리자 그가 정화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탁한 공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흘렀다.
의외의 침입자에 잠시 신경이 쏠려 파악이 늦은 듯했다.
“기척이 암살자의 것은 아니다 했더니, 당신이었군요.”
그는 권태로운 시선으로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성스러운 공간 안에 앉은 은발의 남자는 얼핏 천사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다소 불경한 천사. 정말 남자주인공이 맞는 걸까?
“요이델 님께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렇지!
요이델은 절박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서, 성하. 그동안 어디에 계셨어요? 정말 뵙고 싶었어요!”
“당신이 저를 반기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율리시스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몸소 저를 만나러 와 주시고. 더없는 영광입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휘며 요이델을 지그시 응시했다. 고개가 기울어져 눈부신 은발이 살랑 움직였다.
“그보다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셨습니까.”
“앗, 뵙고 싶던 건 맞지만 비, 비밀 공간을 침범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이미 한 번 하셨으니.”
“제가요?”
가만히 과거를 되짚던 요이델은 지하 도서관의 비밀방을 떠올렸다.
“아!”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마르셀리나 님이 저를…… 좋아해 주세요.”
“……잘됐군요. 그대가 바라는 일 아니십니까.”
그는 요이델의 말에 시선을 낮췄다. 어쩐지 불쾌한 안색이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당신의 사적인 관계에 대해 제게 일일이 보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개를 기울인 율리시스의 눈길이 스르륵 잠겼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게…… 마르셀리나 님께서도 서관으로 오라고 제의를 하셔서요.”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즉답했다.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여유롭고 나른한 눈길이 날카로워지자 요이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 그런데 그 처리가…… 그 처리는 아니시죠?”
“저를 뭘로 보시고.”
율리시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다행히 그건 아니었구나.
요이델은 손을 꼼지락거리다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성하는 여기서 뭐를 하고 계셨던 건가요?”
“보시다시피, 예배.”
율리시스는 앞의 단상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고요?’
진심으로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그가 홀로 쓰는 예배당이었지만 제1 예배당의 규모보다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요이델은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생각하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햇병아리의 표정을 금방 간파했다.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성하께서는 왜 대신전을 세우신 건가요?”
“제가 신실해 보이지 않나 봅니다.”
누가 봐도 그래요.
요이델이 본 율리시스는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대외적으로는 누구보다도 훌륭히 성황으로서의 위엄을 보여 주지만, 이런 가면 너머의 모습을 목격할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요이델을 보던 율리시스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빵집의 베이커 씨는 빵 굽는 일이 항상 즐거울까요.”
“네, 네?”
질문을 받은 요이델은 곰곰이 생각했다.
“음, 빵 향기가 질리는 날도 있겠죠? 한 번 맡으면 좋지만, 계속 맡으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그럼 성하께서도 시간이 오래 지나서 무감해지신 건가요?”
“아뇨.”
율리시스는 옆에 있는 요이델을 흘긋 바라보고 재밌다는 듯 더 짙게 웃었다.
“별로.”
“그럼 왜…….”
“그보다, 어서 나가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는 밖을 잠시 보다가 뜻 모를 얼굴을 했다. 아, 너무 성하의 시간을 방해했구나.
요이델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찰나.
덜컹.
대예배당의 문이 열렸다.
“성황 성하를 뵙습니다.”
당황한 요이델은 재빠르게 몸을 굽혔다. 이게 뭐야?
금색과 은색이 반반 섞인 뱃지를 단 최고위신관들이 들어왔다.
당황하던 요이델은 단상 안쪽 공간에 몸을 숨겼다.
‘그래서 나가라는 거였어!’
요이델은 단상에 선 율리시스를 쪼그려 앉은 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짜 나쁜 사람이다.
그는 기척을 미리 읽었으면서 그런 건 알려 주지 않았다.
최고위신관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율리시스보다 몇 걸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요이델은 아직 고위신관으로, 그의 공간인 대예배당에 들어올 직급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들어와 엄숙하게 기도하는 절차까지 마치고 나서야 율리시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율리시스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쳐다봤다.
“성하, 예배는 안온히 마치셨는지요?”
정중한 인사에 율리시스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느긋한 그와는 달리, 요이델의 콩만 한 심장은 펄떡펄떡 뛰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혹, 예배가 끝나지 않으셨던 건 아닐지요.”
“말해 보세요, 경. 제가 조사를 시킨 것이 있어 급히 오신 것일 테니.”
“아! 예, 그럼 며칠 전 중요 안건으로 주셨던 대신전과 새로 무역을 틀 상단 관련하여 추린 곳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율리시스의 다정함에 감복하며 땀을 닦았다.
“우선적으로, 지난 게르암 사건 때 거래하던 상단이 잘려 나가서 이번 선정에는 꽤 오래 고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하.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했습니다.”
최고위신관들은 상단 목록을 뽑아 새로 조사하고 다닌 듯했다.
“하여 후보군 상단을 몇 추렸는데, 이번에는 상단주의 사돈의 팔촌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설마 게르암의 신분이 가짜였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브리칼트의 행동이 괘씸하여, 이번엔 전혀 제국과 연관이 없는 자들을 골랐습니다. 성국에 연고지를 둔 상단들이지요.”
요이델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셀투라스 상단은 어떨까 합니다.”
“예, 셀투라스는 전 대륙을 아우르는 거대 상단은 아니지만 오랜 연을 맺고 신뢰로 유통하는 상단이고, 비록 소왕국들과의 거래는 없지만 어차피 큰 수익이 창출되는 곳은 아니니 감수할 만합니다.”
아니다, 셀투라스는 용병이 약해서 일부 위험지역의 수수료가 다른 곳보다 비싸다.
성국에 필요한 것은 평야에서 재배되는 식료품들인데, 그건 주로 소왕국들에서 수확된다.
게다가 굳이 따지자면 성국의 우방국에 속하는 타국의 방계 상단이라, 본국의 경제 상황에 따른 영향도 많이 받는다.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다리를 톡 건드렸다.
그가 아래를 보자 요이델은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X’ 표시를 적었다.
‘왜?’
그가 눈으로 묻자 요이델은 빠르게 글을 썼다.
[수수료 높음.]율리시스는 그 글을 보았다.
“셀투라스 말고, 다음 후보군은 어디입니까.”
“케벨 상단이 있습니다.”
“케벨이라…….”
“신흥 세력이라 셀투라스보다 적은 값의 수수료를 받고, 본적이 해양 무역에 특화된 가문이라 연이 닿은 나라가 많습니다. 전문 상점을 여러 나라에 내서 대량 유통과 공급을 하기에도 용이합니다.”
별다른 이점이 없었다.
지상 대륙에는 해양을 낀 나라보다는 내륙 지방에 모인 나라가 많았다.
지상에 내려가 있는 대신전의 분관인 일반 신전들도 산이나 숲과 들에 모여 있었다. 그런 위치라면 케벨 상단의 영향력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대륙의 해안가 쪽으로 갈수록 치안이 안 좋고 쓸 만한 땅이 없는 데다가, 그나마 적합한 해안가는 브리칼트 제국의 영역이었으니까.
공예품, 미술품 혹은 광물 등 고가품들이 성국이 거래하는 물건들이었고, 그 외에는 주신의 흔적을 찾아오는 여행객 등이 있었다.
텔레포트 가능한 워프게이트가 아닌 바다를 타는 상단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아, 그렇지.]요이델은 율리시스의 옷자락을 다시 슥슥 잡아당겼다.
[오르비스 상단은 어떤가요?]율리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자부심이 강해 거래를 트기에는 복잡하다.
[그래도 제일 나을 거예요.]그건 요이델의 말이 맞다. 율리시스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요이델이 다시 뭔가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미켈레 씨가 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