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요이델은 놀랐으나 애써 감췄다.
그리고 저번에 아키스가 해 준 얘기를 떠올렸다.
‘네가 궁금해하는 브리칼트 얘기를 해 주지.’
아키스가 해 준 이야기는 평소의 브리칼트를 생각하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라보르비치가 브리칼트의 우방국이라는 건 개나 소나 다 알지. 사실 속국이나 다름없다는 것도, 개 같지만 다 알 거고.’
아키스의 어조는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했다.
‘브리칼트는 우리나라의 약점을 쥐고 있어. 그 약점은 브리칼트에게 더 불리한 쌍방 칼이지만, 라보르비치 국민들의 민심을 더 크게 잃을 게 분명해서 우리도 숨겼어. 그 오랜 약점이 발각될까 봐 브리칼트가 원하는 건 대부분 들어주기 시작했고.’
그가 한숨을 내쉰 것마저도 기억이 났다.
‘그러다 보니 끝이 없더군. 더 많은 것, 더 심한 것. 지금 라보르비치의 왕위 계승 때문에 내란이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아버지는 쇠약하고 멍청한 이복형이 왕세자가 돼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어. 그자는 브리칼트의 꼭두각시고…….’
그것은 요이델이 짐작한 것과 똑같았다.
‘얼마 전 브리칼트가 왕녀를 요구했어. 결혼 가능한 왕녀는 내 여동생밖에 없었지. 걔는 아파. 그래서 내가 걔인 척하고 대신 왔어. 아무도 모를걸.’
그건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어야 했는데.
요이델은 이른 조찬을 마칠 때까지 내내 그때의 대화를 생각하다가 포크를 내리며 말했다.
“아키스가 원로의 청을 들어준 건 아픈 가족 때문이지? 그래야 지오르베니에게서 약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없어도 내가 고칠 수 있어. 아니, 내가 더 도움이 될 거야.”
아키스는 분명히 멈칫했다.
“대신 나도 원하는 게 있어. 단순히 돌려보내 주는 것 말고 다른 거. 아키스가 어렵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거야.”
“……푸핫, 넌 납치된 와중에도 여전하다!”
아키스는 그 말을 듣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는 거야? 난 정말로―”
“그것 때문이 아니라 영애가 너무 진지한 게 고마워서.”
웃음기를 지운 아키스는 빤히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아키스는 내 여동생 이름이야. 내 이름은 아카코스. 그렇게 불러.”
“아카코스…… 순진하다는 뜻이지? 와아.”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마.”
아키스는, 아니 아카코스는 요이델을 바라보며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가족의 병은 성하께 축복을 얻어 치유했어. 약속을 심하게 빠르게 지켜 주시더군.”
“정말이야? 잘됐다, 아카코스! 그런데 언제?”
“저번에 네가 다녀가고, 널 보니까 성황에게 직접 얘기해 볼 용기가 나더라. 원로 얘기도 다 했지. 그 원로, 우리 땅에도 별채가 있거든. 다 알려 줬어. 그 원로만 보고 성국에는 나쁜 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반대더군.”
“그럼 성하께서도 다 알고 계셔?”
아키스는 끄덕였다.
“전부. 애초에 나를 들인 것, 여기서 나는 왕녀로서의 나 말이야. 아무튼 지오르베니가 네가 반려라는 걸 알고 거래를 했다더군.”
“그래서 성하의 태도가 조금 다르셨던 거구나.”
“너를 보호하려고 우스운 수도 눈감아 주신 거겠지. 천 년 넘게 결혼도 약혼도 안 했다는데, 자문이라고 해도 혼인까지 밀어붙일 게 뻔히 보이는 여자를 곁에 둘 리가 없잖아.”
아카코스는 말하다가 스스로 얼굴을 찡그렸다.
“참고로 난 그 보라 눈 기사가 말한 것처럼 뭐가 남들보다 못하지도 않고, 건장한 남자야.”
변명에 가까운 말이었다.
“적절한 때를 보고 있던 것뿐이야. 여기나 거기나 끌어내야 할 인간이 있으니까. 썩은 열매가 다시 타고 올라오지 않게 완전히 자를 수 있도록. 그날 성하께서는 많은 방안을 알려 주셨지.”
“그럼 나를 데려온 것도 성하와 아카코스가 계획한 일이겠네?”
“아닌데?”
요이델은 놀라서 얼어 버렸다. 아니라고? 그럼 지금 이건 뭐야?
멍한 요이델이 아카코스를 바라보자 그가 특유의 끈적한 웃음을 지었다.
“그냥, 네가 좋아서. 그리고 짜증 나잖아. 하필 반려일 게 뭐야.”
“…….”
“좋아하면 보고 싶고, 그리고 너한테 라보르비치도 보여 주고 싶었어. 성하께서도 네가 좋으니 한달음에 달려오는 거겠지. 그 팔목도 그렇고―”
빡!
요이델은 아카코스의 가슴을 주먹으로 크게 휘둘러 쳤다.
“뭐가 좋으니까야! 나는 싫어! 모두를 이런 곤란에 빠뜨리지 마!”
“아윽. 쿨럭.”
이후 몇 대 더 얻어맞은 아카코스는 아픔을 호소하며 사과했다.
“……그런데 아카코스, 브리칼트와의 일은 잘 모르는 거야?”
“콜록, 휴. 아, 주먹 너무 아파. 나도 그것까진 몰라. 아버지도 아프고.”
“이건 내 추측이지만, 맞는 것 같다면 얘기해 줘, 아카코스.”
그리고 요이델은 자신의 추측과 매장된 에너지원이 상당히 쓸 만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야기가 다 끝나니 대연회가 시작될, 해 질 무렵이 되었다.
도중 아카코스에게 지오르베니의 연락이 왔으나, 대충 받아 주고 무시했다. 이제 지오르베니는 독 안에 든 쥐였다.
더해서 그 위에 있는 브리칼트도.
‘성하께서도 네가 좋으니 한달음에 달려오는 거겠지.’
그런데 요이델의 머릿속에는 그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그럴 리가 없는 말인데,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는 말인데 자꾸 떠올라 이마를 툭툭 쳤다.
‘그럴 리 없잖아.’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멸망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눈빛으로?
쓸 만한 신관으로서 아낀다는 게 분명하다.
여전히 드레스 차림새였던 요이델은 아카코스가 안전하게 있으라고 한, 대연회 홀의 최상단 비밀 귀빈실 안에서 이리저리 서성였다.
사실은 요이델도 처음 입어 보는 드레스 차림에 조금 들떠 있었다. 신관복은 보통 백색이니까.
라보르비치 왕가 특유의 적발 가발을 쓴 요이델은 얼핏 보기엔 왕가의 혈족 같아 귀빈실에 있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성하께서는 이미 와 계실 텐데. 어디 계실까?’
―성하라니…….
그때 자신의 안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미쳤나 봐. 이제 또 다른 내 목소리가 들려. 근데 내 목소리가 이렇게 낮았나?’
―요이델 님?
‘어, 어떡해. 나 귀신 목소리가 들리나 봐……. 무서워.’
울먹이는 요이델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귀로 들리지도 않고, 머릿속에 들리는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웅웅 울리는 소리 같았다.
―제 목소리가 들리신다는 겁니까.
‘싸늘한 눈이라고 해서 죄송해요, 성하. 제 머릿속에서 흐윽…… 나가 주세요.’
―이건 환청이 아닙니다.
‘귀신도 자아가 있나 봐, 으앙.’
―자꾸 죽은 사람 취급하지 마십시오. 당신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페어링의 단계가 깊어지면 마음이 통한다고. 그것 아닙니까?
요이델은 문장을 완벽하게 성하의 톤으로 구성하는 귀신에게 화들짝 놀라 주위를 바라보았다.
페어링!
설마 그와 단계가 깊어졌단 말인가? 왜?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진짜 성하세요?’
왜 제 머릿속까지 들어오세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똑같은 기분으로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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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다행인 건, 텔레파시는 조절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만일 모든 생각이 그에게 흘러들어 갔으면 그를 무서워한다거나,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까지 들켰겠지.
‘외부 상처랑 그로 인한 통증, 이젠 마음속 공유까지.’
해제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깊은 수렁으로 들어갔다.
왜 마음이 깊어진 걸까?
그래도 텔레파시로 인해 율리시스의 행동에 제약을 주지 않게 된 건 좋았다.
그는 팔목의 상처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자신이 다치면 그에게도 반응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그걸 우선으로 물었다.
그리고 요이델은 율리시스에게 라보르비치와 관련하여 알아낸 일들을 전부 알려 주었다.
하여 이 사실을 근방 국가들에 알리고 검을 뽑아 든 게 지금의 일.
요이델은 숨죽여 아래를 지켜보았다. 지오르베니가 하얗게 질려 갔다.
‘성하께서도 마음이 아프시겠지.’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그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눈길로 지오르베니를 내려다봤다.
“제가 원로직에 있음을 탐탁지 않게 여긴 자들의 모함입니다, 성하. 부디 성하의 충실한 종으로서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성실히 임했던 이 지오르베니의 억울함을 다시 살펴 주시옵소서.”
“원로.”
“성국에 몸담은 자로서 어찌 타국의 이득을 위해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성하. 제 충심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연회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오르베니는 자신의 끝이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여전히 젊고 단단한 눈빛의 율리시스를 올려다보았다.
어릴 적, 그와 같은 신관이 되리라, 그를 보필하리라 다짐했던 그때와 비슷한 눈높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끝이군.
지오르베니는 자조했다. 그리고 감은 눈을 떴다. 이대로 끝일 순 없다.
“……이 미천한 성하의 종을 살펴 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혹시 성하와 반려 관계에 있으신 분이 말 못 할 신분임을 이 지오르베니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까?”
이제 같이 죽자는 심정이 되었다.
율리시스는 지오르베니의 말을 차분히 들었다. 그에게는 아직 어떤 동요도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듣는 귀는 둘 외에도 많다. 자신이 죽어서 사라져도, 그의 추문은 남겠지.
지오르베니는 칼날이 대어진 자신의 목 아래를 바라보았다. 흡사 마귀였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성하의 표정은, 오로지 자신밖에 보지 못했으리라.
칼날보다 섬뜩한 게 그곳에 있었다.
“원로는 평생 중 단 한 번 사면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성하,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저는 진실합니다. 부디 이 명예를 걸고서라도……!”
“그만하게, 지오르베니!”
쾅!
그때 왕궁 대연회 홀의 문이 열리고 한 중년의 백발 남자가 들어왔다.
“서품이 박탈된 신관이 어떻게 신관으로서의 명예를 걸 수가 있겠나. 신관으로서의 기록이 소멸되어 그저 일반인인 것을. 대가로 치를 수도 없는 명예, 걸지 마시게.”
그는 삼 원로 중 한 명인 하일이었다.
하일은 반짝반짝하고 단정했던 이전의 모습 대신,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눈빛은 언제나 그렇듯 총기가 넘쳤다.
“허억, 헉, 성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송구하오나 이 자리에서 성하의 자비를 빌려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율리시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하일은 손을 들었다.
“자네가 그토록 찾던 증거는, 여기 내 몸속에 흐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