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물론 지오르베니는 요이델을 안전하게 데려가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연락을 끊고 아무 일도 없는 양 자리로 돌아가 율리시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신관을 제거해야겠군.’
반려 관계에 대한 옛 문헌을 찾아보니, 죽을 때 함께 죽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성황보단, 아직은 서투른 쪽을 없애는 게 훨씬 간편했다.
지오르베니는 성황을 떠올리며 신족의 핏줄을 못 남기게 되는 건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
‘혹은 그의 반려가 남자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도 좋겠지.’
후손을 만들 수 없는 통치자라는 건 크나큰 흠이 될 터.
성국이 세워진 천오백 년의 세월 동안 성황은 흠결 없는 생활을 유지했다.
동시에 그의 특별한 피는 많은 이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 맥이 끊기는 것이다.
‘내부의 인사들도 충격을 받겠지.’
성황의 성격상 모르는 이에게서 아이를 볼 턱이 없다.
아무리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여태 그 흔한 혼인 한번 한 적 없는 남자였다.
지오르베니는 학술원을 떠올리며 턱을 쓸었다.
‘그건 유지하는 게 좋을 텐데.’
성황이 제거되고 나면 빈 후계 자리는 누가 채울 것인가.
당연히 자신이어야 하지만…….
지오르베니는 곰곰이 생각했다.
마르셀리나는 기민하고 올곧다.
하일은 잔지식이 많고 성격이 강직해 고집을 꺾기 쉽지 않다.
‘내 친우들과도 여기까지인가 보군.’
지오르베니는 짧게 고민하다 눈을 감았다.
역시 다 죽이는 게 옳다.
━━━━⊱⋆⊰━━━━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연회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번 학술원 소식이 널리 전해진 뒤로, 주변국들의 관심사가 높아졌다.
지리적으로 아직 브리칼트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나라가 많았다.
그런데 나름 우방국으로 손꼽히는 라보르비치가 그 제안을 수락하다니.
‘우리도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사실 손해일 건 전혀 없지.’
각 나라들 사이에 그런 인식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정말 성황 성하께서 오셨군!”
“소문이 진실일 줄이야.”
성황이 방문했다는 소문은 빨리 퍼져 나갔다. 게다가 직접 대연회 참석까지! 혹시나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니.
참석한 귀족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연회장엔 유독 기사들이 많이 보였다.
“직접 오실 줄이야……. 그것도 이 작은 왕국에.”
“씁, 입조심하게. 여기에 뭔가 투자할 가치가 있는 거겠지. 그게 무엇인지 알아봐야겠군.”
귀족들은 줄을 댈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모두의 시선을 끄는 율리시스 본인은 정작 태연하고 모든 것에 무심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듣던 대로 태양처럼 찬란하고 따사로운 분위기였으나, 다가가기 쉬운 느낌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외모와 수많은 성기사들, 신관의 존재에는 이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지오르베니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
“요이델 신관은 보이지 않는군요. 왕녀는 찾아보셨습니까, 원로.”
“……아직입니다, 성하.”
지오르베니는 라보르비치 왕가의 입장을 기다렸다.
실제 브리칼트의 지지를 받는 왕족은 지금 병상에 있는 늙은 국왕이 아닌, 왕세자였다.
십여 년 전, 그 사건에 쓰일 제물 마련을 흔쾌히 허락해 준 것도 왕세자였으니.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방문을 알자마자 뛰어왔어야 할, 그 왕세자가 보이지 않았다.
“왕세자 전하 드십니다!”
텅!
“꺄아악!”
그때 밧줄에 꽁꽁 묶인 왕세자가 앞으로 내던져졌다. 모인 귀족들은 놀라 혼비백산하여 연회장의 모서리 쪽으로 달아났다.
왕세자를 문에서 밀어내고 서 있는 건, 그 왕녀…… 아니 왕자였다.
‘이 무슨!’
지오르베니는 경악하여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스르릉.
그때 지오르베니의 주위에 있던 이들이 지오르베니를 향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성기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각국의 기사들도 함께였다.
“아, 아니 왜……. 이, 이곳엔 신관을 데리러 온 것 아니셨습니까?!”
“애석하게도 그는 안전하니 염려 마십시오.”
지오르베니는 당황한 기색으로 율리시스를 바라보았다.
“원로 지오르베니는 죄인 게르암 사건의 주축으로, 불법적인 약물을 각국에 유통하여 심각한 피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19년 전 발생한 아르사륜 대륙 대형 실종 사건의 유력한 범인으로 주목된다.”
“……성하! 아닙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지오르베니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게르암이 죽어서 끝난 줄 알았는데. 게다가 그 옛날 사건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은 어떻게 알고?!
말문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주위의 일반 귀족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라보르비치에서 사라진 인물이 가장 많았지만, 각국에서도 같은 시기에 실종이 빈번했다.
그러니 그게 사실이라면 나라를 막론한 죄인인 것이다.
“당시 죄인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이 지금의 왕세자.”
“……!”
“큰 힘이 없던 라보르비치의 왕세자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밝혀지지 않은 후원자의 힘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왕세자의 자금줄을 추적한 결과, 게르암이 사용했던 차명 계좌 중 하나로 드러났다. 그 실소유주는 지오르베니 원로. 독성이 강해 1급 금지 식물인 시체꽃을 개량하고 유통하여 만든 불법 자금도 그 계좌에 은닉하였지.”
하지만 그건 브리칼트의 일이다.
지오르베니는 입을 벌리려다가 말았다.
아직은 모른다. 설마 오랫동안 그를 위해 헌신해 온 자신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이리 커졌는가? 고작 그 신관 하나 건드린 것 때문에?
“하여 지오르베니를 원로의 자리에서 파면한다.”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성황뿐이었다. 지금 저 말은 즉결 선고였다.
“성하!”
다급히 정신을 차린 지오르베니가 체통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곧장 시릴 만큼 냉정한 시선이 돌아왔다.
율리시스는 그의 당황을 가볍게 거절했다.
“직위 해제는 물론 성직자로서의 서품을 박탈한다. 인간 지오르베니는 신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지난 100년간의 기록에서 이름을 제한다.”
순간 지오르베니의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간의 친절에 잠시 망각했다.
성황은 원래 너그러운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해당 사건은 결단코 모르는 일입니다. 성황이시여,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오르베니는 곧장 의혹을 잘라 내며 율리시스 앞에 납작 엎드렸다.
그는 기어야 할 때를 알았다.
“시체꽃은 마법으로 인해 죽은 이들이 묻힌 땅 위에서 피어나는 꽃, 별칭 원한의 꽃. 위험하기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개량은 더욱 위험하여 다루는 방법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전의 1급 서고와 브리칼트 중앙 마탑에만 금서로 보관되어 있고, 그대는 대신전 동관의 주인으로서 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1급 서고에 출입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
“하면 그대가 의심하는 인물이, 저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도, 그대도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브리칼트란 말입니까?
율리시스의 말에 숨겨진 뜻을 모두가 알아들었다.
평소 브리칼트를 생각하면, 그 제국이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에 지오르베니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율리시스는 아키스라 불렸던 왕자, 아카코스를 쳐다보았다.
“기쁜 건국제에 실례이나 죄인을 판결해도 되겠습니까, 왕자.”
의례상의 물음이었으나 이미 협의된 일이었다.
이건 율리시스가 아카코스를 대외적으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지오르베니는 죄인이나, 성국 제일의 가치는 자비.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는바, 백여 년간 성국을 위해 봉사한 시간을 참작하여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의 선언에 장내의 수많은 이들이 술렁였다.
율리시스는 지오르베니의 억울함을 다 안다는 듯, 자애로운 얼굴로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선택하십시오.”
챙그랑.
율리시스는 한 기사의 단검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검을 빼어 들었다.
“저의 즉결 처분 혹은 자결 중에서.”
요이델이 안전하다는 건 진실이었다. 그가 직접 확인했으므로.
더 깊은 마음의 단계.
―성하, 지오르베니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어요!
페어링의 두 번째 단계.
텔레파시.
단둘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대화 덕분이었다.
━━━━⊱⋆⊰━━━━
사건의 시작은 둘이 만나기 전, 몇 시간 전의 일로 돌아간다.
납치 직후 요이델은 옷시중을 받으며 머릿속으로 자신의 추측을 정리했다.
‘땅을 판 이유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함. 그건 아마도 시체.’
그리고 휘스테론이 가져다준 그 자료에는 주신의 신전의 출입 건수 통계치가 있었다.
방문 수치가 눈에 띄게 증폭된 건 19년 전쯤이었다. 메디아가 문을 닫은 시기와 일치한다.
‘메디아는 보물을 잃었고, 금기 마법에는 대가가 필요해. 가장 좋은 대가는 산 제물이지.’
제물로 쓰인 자들에게도 인연은 있었을 터. 가족이든 지인이든.
그리고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은 보통의 안식으로 대체할 수 없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어느 것에 의지하고 싶어지기 마련이야.’
대표적인 게 바로 종교였다.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련을 어딘가에 위로받고 싶은 마음.
주신 시엘로의 신전.
영문을 모른 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가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거다.
주신을 믿는 사람들이 라보르비치에 가장 많은 이유.
‘전부 태울 수는 없기에 지상 대륙의 방식대로 시체들을 땅에 묻었겠지. 구덩이를 땅속으로 깊이 파야 했을 거야. 그리고 그 장소는…….’
요이델은 화병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거야.
똑똑.
아카코스는 조찬을 위해 요이델을 데리러 왔다. 요이델은 재빨리 펜을 휘갈겼다.
“낯선 곳이라 울적해. 아키스, 성국에는 이런 모양의 주황색 꽃이 피는데 아키스의 땅에도 혹시 있어?”
“이건…….”
요이델이 그린 건 이전에 봤던 시체꽃이었다.
“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