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아키스는 요이델을 바라보며 시종이 준 은 쟁반 속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편지를 끼우고 앞을 돌려 요이델에게 직접 보여 줬다.
“공식적인 성황의 친서야. 네가 실종되자마자 나한테 보냈나 본데.”
“……!”
“표면상 100주년을 축하한다지만, 축약하자면 너를 돌려받으러 오겠다는군. 성황이 직접 움직일 줄이야.”
“말도 안 돼.”
율리시스가 직접 움직이려고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라끼리 비교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라보르비치와 성국의 국력 차이에서는 성국이 월등하다.
지상 대륙에서는 그나마 브리칼트가 견줄 법할까.
아키스는 흥미로운 듯 웃었다.
“진짠데. 봐, 행동 개시도 빨라. 어지간히 급했나 봐. 내가 성황에게만 편지를 남겼거든.”
“무슨 편지? 이상한 말 쓴 거 아니지?”
“왜. 너 여자라는 사실이라도 밝혔을까 봐? 아니, 약간의 자극만 줬을 뿐인데 효과가 좋아.”
“제대로 얘기해 줘!”
쾅!
요이델은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키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네 정체에 대한 건 안 썼어. 맹세해.”
저 여유로운 웃음을 믿을 수가 없다.
“성하께서 나 하나를 찾으려고 움직이시진 않을 거야……. 혹시 무슨 거래를 했어?”
“똑똑하네, 영애. 맞아. 그런데 그게 다는 아냐. 네가 생각하는 제안이랑은 좀 다르고 그것만으로 움직일 리는 없어. 그냥 너에 대해…….”
“뭐라고 쓴 거야!”
“그냥, 뭐 너랑 결혼한다고. 성황 당신을 포기하는 대신 부하를 데려가겠다고 썼지.”
“뭐?!”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맞지?”
요이델은 분노로 찡그려진 얼굴을 한 채 아키스의 크라바트를 거머쥐었다.
“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
“그럼 진짜 할까.”
아키스는 자신의 멱살을 쥔 요이델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요이델은 그의 바로 앞에서 주춤 멈춰 섰다.
아키스는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거짓말이 싫어? 아니면 나랑 결혼하는 게 그렇게 별론가?”
“어느 쪽이든 농담하지 마.”
“농담이라고 누가 그래?”
그의 금색 눈이 매혹적으로 휘어진 순간, 아키스가 손목 안쪽을 개처럼 깨물었다.
저릿한 통증에 내려다보니 살결에 상흔이 생겼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희 그거잖아. 반려 관계인가, 페어인가. 지오르베니가 그거 알아.”
“……!”
“그래서 널 노리는 거고. 성황보다 약하고, 널 죽이면 성황도 죽으니까. 나한테도 알려 줬지. 다시 말해서 위험한 건 너야.”
아키스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반려인 걸 알고 있었어?”
“응.”
“……설마 지오르베니가 나를 죽일까 봐 데리고 온 거야?”
“글쎄.”
아키스는 쿡 웃곤 요이델을 놓아주며 눈짓으로 상처를 가리켰다.
“그걸 봤으니 아마 성황 눈이 뒤집혀서 당장 달려올걸. 빨리빨리 좀 와 줬으면 좋겠네.”
“그럴 분은 아니야.”
“아닐까? 내가 남긴 잇자국이 흔적도 없이 싹 없어졌는데.”
손목에 있던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자신은 치유한 적이 없었다.
‘정말로 성하께서 알고 계셔!’
요이델은 팔을 감추고 아키스를 노려봤다. 아키스는 자신을 꺼리는 눈빛에 어깨를 으쓱했다.
“내 미인계가 안 통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성하의 옆을 보필했는걸.”
“그런 남자랑 비교하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잖아. 차라리 때려.”
아키스는 입매를 이죽거렸다.
“그런데 영애, 그 모습인데 괜찮아?”
요이델은 그제야 제 차림을 다시 보았다.
“그들이 너를 찾으러 오는 게, 영애에게는 또 다른 큰 문제 아닌가?”
반지가 없는 지금.
요이델은 본래의 남장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
“나도 마법은 쓸 줄 아니까 노력해 보겠지만, 기대는 마. 네 신성력이 장난 아니라 웬만한 신체 마법은 튕겨 내더군. 그 반지 대체 원료가 뭐야?”
“유품이야.”
“아, 그래? 요보힐데에 전통적으로 남장하는 취미가 있단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아키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설 속 대마법사를 능지처참해 뼛가루라도 갈아 만들었나?”
그 마법 반지의 원재료는 정말 뭘까?
이전에도 마르셀리나 님이 물어본 적이 있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다.
요이델은 아키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가 왜 이렇게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요이델은 아키스를 앉히고 의자에 묶은 채 똑바로 물었다.
“뭐야, 공녀? 이런 취미가 있어?”
“지금부터 취조할 거야.”
“좋지. 나에 대해 알려 주자면 보다시피 수많은 왕자, 왕녀 중 여덟째고, 음식은 안 가려. 여자는 너만― 읍.”
“나를 왜 데려왔어?”
“사랑하니까?”
말을 돌리는 아키스를 보며 요이델은 찡그렸다.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향낭을 버릴 거야.”
“나도 물어볼게. 성황이 공녀를 남자로서 사랑해서 남장하고 살아?”
“반려 관계는 내 마법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야. 성하는 아무 잘못 없어.”
요이델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말했다.
“아키스가 원로의 청을 들어준 건, 아픈 가족 때문이지? 그래야 지오르베니에게서 약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없어도 내가 고칠 수 있어. 아니, 내가 더 도움이 될 거야.”
성국의 수많은 시종들을 통해 아키스의 동태를 들었다.
그중 한 시종이 “왕녀님이 성국에서 나는 희귀한 약초들을 수소문하고 있어요.”라고 몰래 언질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것들은 전부 좋다고 소문난 약재였다.
어떤 희귀 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고 거짓 소문이 난 약초까지 전부 사들였다.
그러나 아키스는 아픈 곳이 없다.
“대신 나도 원하는 게 있어. 단순히 돌려보내 주는 것 말고 다른 거. 아키스가 어렵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거야.”
요이델은 아키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
성국의 일행은 서둘러 라보르비치에 도착했다.
라보르비치와 성국은 국격이 다르므로 율리시스는 안내받은 왕궁의 가장 큰 방, 자국 왕의 방보다 거대한 방을 임시로 머물 곳으로 배정받았다.
라보르비치는 기후가 온난하고 비약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
율리시스가 보기에는 그랬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까지 호기롭게 도전하는 왕자가 있는 점이, 가장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농작물 재배가 용이한 땅이라 거래를 하기에 나쁘지 않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드물게 초조한 기분을 느꼈다.
성국에 있을 시절 아키스 왕자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리고 그 원로에 대해 그가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때는, 요이델의 납치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그래서 요이델을 건드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긴밀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손목에 상처가 생겼을 때는 미칠 뻔했다. 그 뻔히 보이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서든 요이델이 내게 의사를 전했을 터.’
그 햇병아리는 신성 마법을 곧잘 습득했고 충분히 자신을 지킬 줄 알았다. 그러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콰드득.
“성하, 소, 손이 망가지십니다.”
그를 보필하기 위해 따라온 기사들은 율리시스가 창문의 틀을 부순 걸 보고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걱정했다.
수심에 찬 옥안이어서 걱정되는 마음에 쳐다봤더니, 그가 느닷없이 기물을 으스러뜨리는 게 아닌가.
“……제 손은 괜찮습니다.”
율리시스는 가만히 웃었다.
이제 곧 대연회가 열린다.
지상 대륙의 국가들 중에서는 신생에 속했지만, 그래도 100주년을 무사히 맞은 나라다.
‘그리고 브리칼트가 신임하는 국가이기도 하지. 복속인가.’
마차들은 끊임없이 줄지어 들어왔다.
전부 각기 다른 나라의 축하 손님이었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왕궁 내의 기척을 살폈다.
‘저곳에 요이델이 있군.’
지난번에도 추적한 적이 있어 요이델의 기운을 읽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기척이 같이 읽혔다. 바로 그 왕자.
율리시스는 지오르베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한, 지오르베니도 별다른 수를 쓰지는 못할 터.
율리시스는 묵묵히 있는 지오르베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라이오스를 불렀다.
“전달은 됐습니까.”
“네, 성하. 바삐 귀환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다른 준비는.”
“마쳤습니다.”
확인 후, 율리시스는 다시 요이델의 기운을 읽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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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르베니는 초조함에 복도를 서성였다. 복도에도 보는 눈이 있었다.
“화장실은 가도 되겠나?”
“보필하겠습니다.”
백금발의 과묵한 성기사가 따라 나왔다.
지오르베니는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들어갔다. 성기사는 자신을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얘기도 없이 도망가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오르베니는 통신구를 꺼내 주위의 눈치를 마구 살피다 겨우 연결했다.
그리고 외부에 들리지 않도록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성황이 자신의 충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지오르베니가 그의 아래에서 일을 한 게 백 년이 넘었다.
그 절반에 달하는 기간을 뒤로 브리칼트와 내통하며 개인적인 권력과 재산을 모으는 용도로 쓰긴 했지만.
그러나 성하를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제 딴에는 정말로 그를 존경하고 신관의 삶을 사랑했다.
성하께서는 자애로운 분이시니 조금의 사익 추구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하게 비리를 저지르던 게르암이 경질된 순간, 지오르베니는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욕심이 조금씩 커져서 더 이상 가책을 못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모든 걸 잃을 수는 없었다.
성하가 자신의 충심을 의심하고 브리칼트가 더 좋은 제안을 내미는 지금, 지오르베니는 성하를 저버릴 수밖에 없다.
―듣고 있습니까?
―아, 응.
―왕녀!
능력이 괜찮은 왕녀를 골라 보내 달라고 한 게 자신의 오판이었다.
라보르비치의 현 국왕을 그 자리까지 올려 준 게 자신인데, 은혜를 모르고 이런 뒤통수를 치다니.
지오르베니는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해 질 무렵 열릴 대연회에서 성황의 눈이 떼어질 틈이 있을 거요. 그때 요이델 신관을 내 눈앞에 데려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