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사실이 알려지자 대신전이 발칵 뒤집혔다. 흥분한 신관들에 의해 아침 일찍 급히 의회가 소집됐다.
“고위신관의 실종이라니요!”
대신전은 물론 성국을 뒤져도 요이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추적 결과, 왕녀는 라보르비치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성하.”
율리시스는 모두를 아우르는 위치에서 묵직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회의장에 단 한 명의 결원도 없이 모든 인원이 출석했다.
“라보르비치의 왕녀의 귀국 신청은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이델 신관은 저희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감히 간청드립니다, 성하. 왕녀의 무례에 대해 국가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성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왕녀를 데려온 지오르베니 예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 순간 회의장 한쪽으로 이목이 쏠렸다.
그는 말끔한 안색으로 앉아 있는 원로 지오르베니였다.
율리시스의 감정 없는 푸른 눈도 그에게 닿았다.
“왕녀의 품행에 대해서 익히 들으셨지요? 그간 신원 보증인으로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몇 신관들이 그를 질책했다.
“말씀해 보세요, 예하!”
지오르베니는 겉으로는 곤란한 척했으나 속으로는 칼을 갈았다.
상황은 그조차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한낱 라보르비치의 왕녀가 자신의 명을 거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건 모함이다.
‘무슨 뜻으로 해석해야 하나. 왕국이 어떻게 되든 소용없다는 뜻인가? 왕녀가 이리 독단적으로 행동하다니!’
설마 자신이 쥐고 휘두르려던 패에 발등을 밟힐 줄이야.
아니지, 아니야.
감히 라보르비치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그가 저질러 놓은 악행의 꼬리를 성황이 밟으려 하는 실정이었다.
이대로면 그가 그간 쌓아 온 공들인 탑도 곧 무너지고 만다.
‘그래, 라보르비치에 덮어씌우면 되겠군.’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이 일을 잘 이용하면 그의 품위도 지키고 당분간은 안전하게 직위를 유지할 수 있을 터.
아직 브리칼트의 준비가 다 되지 않았으니, 성황을 배신하기엔 이르다.
‘원래 목적이던 반려의 정체도 알았고.’
바로 그거다.
‘이왕이면 거기서 죽어 주면 좋겠군!’
그럼 성황도 죽는다.
‘본래 왕녀를 들인 건 성황을 유혹하여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함. 신족의 핏줄이 이어지는 건 매우 좋다. 허나 성황은 바위가 따로 없었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제거하는 게 뒤탈이 없겠군.’
자신의 죄를 물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훨씬 약자인 요이델 신관을 제거하는 게 손쉽다.
“지오르베니.”
그 순간 그의 이름이 불렸다. 마치 속내를 읽히기라도 한 것처럼.
성황은 의중이 불분명한 차분한 얼굴로 그를 호명했다.
“라보르비치의 왕녀는 자국의 100주년 건국 기념제를 맞이하여 부름을 받고 급히 귀국했습니다. 후견인인 원로도 알고 계신 바일 겁니다.”
“예, 성하. 이 지오르베니도 언질을 받았지요.”
“아아! 저는 또…… 정말 놀랐습니다, 아이고.”
“이해합니다. 매우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경들께서 이렇게 많이 모이셨으니.”
지오르베니는 뻔뻔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그 왕녀가 성황에게는 그런 전달을 했다고? 건방진 것 같으니!
어쩐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수상하다 했다.
모두가 혼란스러웠으나, 율리시스만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요이델 신관은 왕녀의 요청에 따라, 보다 먼저 왕녀와 함께 건국 기념일 대연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기사들이 놀라 소동을 일으켰으나, 실종은 사실이 아닙니다.”
율리시스는 평소처럼 고아한 투로 말했다.
그를 본 지오르베니는 혼란에 시선을 떨었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라보르비치에서 곧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연회가 열립니다. 성국 또한 학술원을 세울 예정이니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하여 사절을 보내려 합니다.”
율리시스의 시선이 지오르베니에게 향했다.
놀랍게도 율리시스는 옅은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찰나였으나 지오르베니는 똑똑히 봤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그는 하얀 편지를 열고 라보르비치 왕가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마침 초대장이 왔습니다. 왕녀의 후견인이신 지오르베니 원로가 이번 파견에 적합할 듯한데, 원로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성하께서 분부 내리신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지오르베니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일이 이렇게 풀리다니. 역시 자신은 운이 좋다.
그는 숙인 고개 아래에서 호쾌히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다.
긴급 회의가 파하고 아침이 됐다.
저 멀리서 홀로 있는 율리시스의 앞으로 뛰어오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한숨도 못 잔 듯 얼굴에 피로가 역력했다.
“창공의 빛, 성황 성하를 뵙습니다.”
그들은 무례인 걸 알면서 율리시스의 앞을 막아섰고, 곧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휘스테론마저 드물게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지오르베니 예하는 안 됩니다. 부디 재고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그대들의 염려를 압니다.”
푸른 눈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번 사절로는 저도 갑니다. 화려한 초대를 받았으니, 마땅히 응할 생각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음성은, 듣는 이도 차분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표정은 그다지 침착해 보이지 않았다.
아키스가 놓고 간 편지를 발견하고 읽었을 때부터 그랬다. 우스운 내용이라 믿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요이델 님을 해할 자는 아닐 겁니다.”
“그래도……! 성하는 바보야. 아무것도 모른다고. 지금 요이델이 얼마나 떨고 있을지 몰라! 그 애는, 그 애는……!”
휘스테론은 분통이 터져서 가슴을 퍽퍽 쳤다.
자기가 요이델이 여자라고 밝힐 수도 없고. 미치겠다.
“압니다, 경. 왕녀의 이번 행동은 독선적이었으나 일정 부분에서는 미리 합의된 바로, 저는 요이델 님을 믿…….”
그 순간 율리시스가 말을 멈췄다.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 안쪽을 확인한 그의 안색이 확연히 굳었다.
“번복하겠습니다. 당장 갑니다.”
율리시스의 기운이 단숨에 흉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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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에서 회의가 소집된 같은 시간대, 라보르비치 왕국 안.
“널 뭐라고 부를까? 영애? 보는 눈이 있으니 이름을 부르긴 그렇고.”
아키스는 요이델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달그락, 달그락.
요이델은 드물게 화가 난 얼굴로 이른 식사를 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뭐든 상관없으니까 돌려보내 줘.”
“이런, 이제는 왕족 취급도 안 해 주네.”
“……무례한 사람한테는 나도 무례하게 할 거야.”
“반말도 꽤 맘에 드네. 하지만 돌려보내는 건 안 돼. 난 할 일이 많거든. 곧 우리 건국 연회도 열리고.”
“그럼 옷차림은 왜 이러는 거야?”
“아, 그건 내 취향. 머리는 네 원래 색이 너무 튀고 여장은, 아니 본모습 차림은 신분 위장 겸.”
아키스는 요이델을 비스듬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남성용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 색이 아키스와 똑같이 붉게 바뀐 요이델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있지, 영애. 불만이 많은 것치고는 너무 잘 먹지 않아? 이 새벽부터 배고프다고 하고.”
요이델은 디저트까지 전부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탁.
“잘 먹어야 성국으로 돌아가지. 아키스는 무례한 납치범이니까.”
“그래. 잘 먹어서 좋네.”
쿡 웃은 아키스도 식사를 마쳤다.
요이델은 아키스를 쏘아봤다.
그녀는 손님으로서 극진히 대접받았으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나를 어떻게 하려고?”
“말했잖아, 결혼하자고.”
“거짓말. 정말로 왜 데려온 건지 말해 줘. 여장은 왜 했어?”
“너도 남장했잖아. 너나, 나나.”
“그건…….”
요이델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아키스. 왜 질문을 알면서 대답해 주지 않는 거야.”
아키스는 시종들을 물리고 홀의 창문을 보며 크라바트를 고쳐 맸다.
그의 붉은 머리는 진짜였다.
아키스는 창문으로 비치는 요이델의 얼굴을 보고 다시 짙게 미소 지었다.
“건국 연회에 큰 손님을 초대하고 싶어서. 명색이 100주년이기도 하고 나도 좀 얻어야 할 게 있거든.”
라보르비치 왕국은 왕위 계승을 놓고 소란스러운 실정이었다.
요이델은 그런 아키스의 뒷모습을 묵묵히 째려봤다.
“나를 인질로 삼아도 소용없어. 성하는 절대 오시지 않을 테니까.”
“왜?”
“좀 더 의미 있는 걸 가져왔어야 해, 아키스. 나는 성하께 그렇게…… 대단한 의미는 없는걸.”
“내 생각은 다른데.”
똑똑.
그때 조찬용 홀의 문이 열리고 시종이 다가왔다.
그는 은 쟁반을 들고 아키스에게 어떤 말을 속삭였다.
시종의 전언을 들은 아키스는 씩 웃었다.
“너, 네 생각보다 훨씬 사랑받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