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35)
왜 하루만 같이 보내자는 자신의 청을 조금도 반대하지 않고 들어줬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길래 이리 서럽게 우는지.
그러나 다 필요 없었다.
딸에게 잠시나마 온기를 빌려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때.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 돌아왔다.
“나 한국에 계속 있으려고······ 그래도 돼?”
“한국에? 계속?”
“응······.”
김덕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되지. 안 될 게 뭐 있겠노······.”
최고의 하루를 선물하려고 했는데.
어쩐지, 최고의 하루를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
8층 사무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주해림에게 물었다.
“진짜요? 김다빈, 몰라요?”
“네, 하나도 안 친합니다. 이름도 방금 기억났어요. 대표님이 말씀하셔서.”
“그건 기억난 게 아닌데요?”
“어쨌든요.”
이런 정내미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뭐, 그게 장점이긴 하지만.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마!”
이제 ‘마’만 들어도 알겠다.
스승님이 무슨 기분인지.
나는 기분 좋게 걸어가며 물었다.
“관람은 잘 하셨어요?”
그런데 김덕산은 답도 없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걸어와서는.
“고맙다, 시끼야!”
날 거칠게 안았다.
“악!”
“고맙다꼬!”
“아, 알았으니까 좀 놔주시죠?”
겨우 밀쳐내고 나니 보였다.
물만두처럼 퉁퉁 부은 눈이.
“······우셨어요?”
김덕산은 딴소리를 했다.
“첫째 약속은 지켰데이.”
“진짜요?”
“그래, 마.”
첫째 약속.
딸에게 아무것도 캐묻지 않기.
“의외네요. 스승님 성격이면 절대 못 참을 줄 알았는데.”
“그딴 게 어딨노. 약속했으니까 해야지.”
“어쨌든 잘하셨어요.”
“신기하긴 하대. 안 물으니까 알아서 다 이야기해주더만.”
“그러니까요.”
나는 싱긋 웃었고.
김덕산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더니 굵은 엄지로 뭔가를 두드렸다.
“자, 둘째 약속.”
둘째 약속.
직원들 특근비, 단미소 사장님 출장비, 인테리어 납기 당긴다고 추가로 들어간 인건비, 그 외 서비스 비용은 전부 김덕산이 지불하기.
지이이잉─
폰이 울려서 문자를 확인했다.
“에······ 왜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처음에 약속한 건 5백이었는데.
무슨 3천을 보내셨어, 이 양반아.
“성의니까 주는 대로 받아라.”
“넵······ 나중에 영수증 끊어드릴게요.”
“그럼 간다.”
“벌써요?”
“밑에 딸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오······ 이제 어디 가시게요?”
“몰라, 딸이 어디 좀 같이 가자네.”
“캬······.”
나는 엄지를 들어보였고.
그와 동시에,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와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지만.
“신유원.”
“예.”
“고맙다.”
“뭘요.”
김덕산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웃음은.
흔히 보기 어려운 거니까.
지금 오래 봐둬야지.
“시끼······ 진짜 간다.”
“넵! 즐거운 시간 보내십쇼!”
그렇게 >카페 어뮤즈>, >단미소>, >어뮤즈 아트 갤러리>, 세 가게의 첫 손님이 문을 나섰고.
주해림이 뚱하게 물었다.
“대표님.”
“네?”
“덕산 오빠, 오늘 왜 저렇게 기분이 좋아요?”
도대체 이 질문에 함정이 몇 개나 숨어있는 건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나 특별하신지 확인이나 해볼까?’
「초특대 행운」을 막아서는 마지막 관문으로 눈을 돌렸다.
있네, 내가 도울 수 있는 거!
김덕산이 떠난 어뮤즈 사무실.
난데없이 스턴 맞은 고블린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였다.
‘이거······ 퀘스트 맞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고.
눈도 감았다 떠보고.
뺨도 찰싹 때려보고.
다시 퀘스트를 확인했다.
──────────
《찬란한 30대: 특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시커먼 물이 흐르는 강둑 아래. 2382개의 요람이 강을 건너오고, 건너갈 준비를 한다. 날 선 칼을 든 남자, 그릇된 핏줄을 베어내니 67년 묵은 요람 하나, 소리 없이 흐느끼며 강을 건너리라.』
◇ 위 이야기의 주인공을 도우세요.
◇ 제한시간: 2시간 27분 15초
◆ 보상: 5000G, 「초특대 편지」 2종 해금
──────────
아니, 《특별》 퀘스트라고 이렇게 특별할지는 몰랐는데.
퀘스트 자체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미쳤나, 진짜······.’
보통 퀘스트 설명은.
가스불 끄는 건 잊지 않으셨나요, 금광이 저기 있으니 캐러 가봅시다, 같은 건데.
갑자기 무슨 암호문을 주고 앉아있네.
[ 시커먼 물이 흐르는 강둑 아래. 2382개의 요람이 강을 건너오고, 건너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날 선 칼을 든 남자, 그릇된 핏줄을 베어내니 67년 묵은 요람 하나, 소리 없이 흐느끼며 강을 건너리라. ]······이 외계어를 어쩌라는 걸까.
‘흐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방탈출 게임이잖아.
이래 봬도 신촌 방탈출카페, ‘스팀펑크 세계에 떨어진 공학도가 미소녀 마법사에게 납치된 건에 관하여’ 룸에서 신기록을 세운 몸이라고.
‘보자.’
이럴 땐 숫자에 주목하는 게 좋다.
2382개의 요람.
67년 묵은 요람.
근데 공통 키워드는 요람이고.
요람이라면 보통, 사람의 탄생을 상징하는데.
그럼 67살 먹은 사람?
2382명?
다시 읽어봤다.
[ 67년 묵은 요람 하나, 소리 없이 흐느끼며 강을 건너리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새까만 강물.
둥실둥실 떠다니는 요람.
그리고 소리 없는 흐느낌.
특히 강을 건너오고, 강을 건너간다는 표현은 되게 상징적인 건데.
······불길했다.
‘잠깐.’
저 기묘한 암호문에 정신이 팔려서 잠깐 놓쳤는데······ 제한시간은 왜 이런 식이었지?
[ ◇ 제한시간: 2시간 27분 15초 ]원래는 몇 분, 몇 시간, 몇 일.
딱 정해서 알려주곤 했다.
‘근데 이번엔 초 단위까지 있다고?’
나는 시야 한구석, 타이머를 확인했다.
『02:27:03』
『02:27:02』
『02:27:01』
그리고 초 단위가 0에 맞춰지는 순간.
『02:27:00』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 오후 3시 32분 00초 ]뭐야, 딱 떨어지잖아.
지금부터 2시간 27분이 지나면 6시 정각.
‘······6시에 무슨 일이 터진다는 건가?’
부지불식간에.
온몸에 엄습하는 불안감.
『02:26:59』
『02:26:58』
『02:26:57』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나는 메모지에 퀘스트 메시지를 옮겨 적었다.
그리고 다른 메모지 한 장을 뜯어 「매의 눈」에 돌려볼 만한 사항들을 적었다.
[ 지금 활성화된 특별 퀘스트에서 ‘요람’은 ‘인간’을 의미한다. ]이걸 탐에게 먹였을 때.
「양질 전환」이 제대로 작동하면 참이라는 뜻.
‘아씨.’
그러나 시도할 수가 없었다.
아직 사무실에 주해림이 있었기 때문.
나는 바로 주해림에게 외쳤다.
“해림 씨! 퇴근하세요!”
주해림은 짧게 답했다.
“아직 3시 반인데요.”
아, 이런 순간까지 원칙 지키지 말라고.
“······괜찮아요, 오늘은 퇴근하세요.”
“그럼 현재 시각 기준으로 일정 보고 마치겠습니다. >갓냥이는 살고 싶어!> 첫 베타 테스트가 다음 주중에 치러집니다. >생존보험> 크랭크인 날짜도 6일 뒤로 확정됐고, 이번 금요일 고사에 참석 요청 들어왔습니다.”
“······네. 끝입니까?”
“끝입니다.”
“네, 퇴근하세요.”
“예.”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정리하는 주해림.
나는 바로 다시 메모지로 눈을 돌렸다.
[ 67년 묵은 요람 하나, 소리 없이 흐느끼며 강을 건너리라. ]그리고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아무리 봐도 죽음을 암시하는 표현 같았으니까. 그것도 6시 정각에······.
‘미치겠네.’
그런데 이렇게 급박한 순간에도 사람은 간사한지. 내 주변에 67세 혹은 68세인 사람이 없나, 떠올리고 있었다.
‘······없는 것 같아. 없어.’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누가 됐든 살려야지, 당연히.
다른 단서들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날 선 칼을 든 남자······.
그릇된 핏줄을 베어내니······.
정체 없이 짙어지는 불길한 예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설이 나왔고.
“씨ㅂ.”
“······.”
가방을 메고 옆을 지나치던 주해림이 걸음을 멈췄다.
“아, 해림 님한테 한 말 아닙니다. 죄송해요. 오늘도 수고하셨고, 조심히 들어가십쇼.”
그런데.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메모지 글귀를 훑어보는 주해림.
“소설 쓰세요?”
“네?”
“시커먼 물이 흐르는 강둑.”
“······.”
“쉬운 표현으로 써주세요. 복잡해요. 복잡하게 쓰려니까 고통스럽죠.”
“아, 그럴게요. 퇴근 잘 하시구요.”
나는 방해꾼을 내보내려고 대충 둘러댔지만.
주해림은 이상하게 여기에 꽂혀있었다.
“요단강, 스틱스, 황천, 삼도천, 그런 죽음의 강 표현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실제로 있는 강이에요?”
실제로 있는 강?
나는 주해림에게 되물었다.
“시커먼 강이 있어요?”
“공장 폐수?”
하아······ 됐다.
다시 메모지로 눈을 돌리는데.
주해림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 저희 동네에 있어요. 시커먼 강.”
이건 뭔 소리야.
“탄천이요. 숯처럼 검은 물이었대요. 그래서 이름도 탄천. 암튼 퇴근하겠습니다.”
탄천?
탄천 아래?
‘아.’
문득 떠오른 생각.
그리고 얼기설기 맞춰지는 퍼즐들.
‘혹시?’
나는 바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마워요, 해림 씨!”
그리고 주해림보다 먼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탄천으로 향하는 길.
꽉 막힌 강변북로.
“젠장.”
답답한 마음에 운전대를 만지작거렸지만.
암호문의 답은 어느 정도 나와있었다.
‘······아무래도 맞는 거 같아.’
탄천이 중요한 키였다.
오면서 검색해보니.
조선 시대에 탄천 주변에서 숯을 구워 숯내, 탄천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비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시커먼 강’이 정말로 탄천이라면, 지리적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 시커먼 물이 흐르는 강둑 아래. ]탄천의 남단.
일원, 수서 일대.
넓게 보면 성남, 분당까지.
[ 2382개의 요람이 강을 건너오고, 건너갈 준비를 한다. ]이건 여러모로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처음에는 너무 헷갈렸다.
사람 2382명인지.
차 2382대인지.
2382세대가 사는 아파트 이야기인지.
그러나.
계속해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죽음’이었기에.
바로 지도 앱에 검색했던 장례식장.
그 검색결과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일원이든, 수서든, 성남이든, 분당이든.
장례식장이 있는 곳에는 큰 종합병원이 당연한 듯 붙어있었으니까.
그 순간.
모든 의문들이 풀려갔다.
2382개의 요람이란.
2382구를 안치할 수 있는 영안실이거나.
2382개의 병상이 있는 병원.
나는 바로 그것들을 키워드로 검색했고.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진성서울병원의 총 병상수는 2,382병상으로 국내 2위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