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이야, 중량 딱 좋네.”
개조한 에어소프트건과 고무탄, 방탄복을 캐리어에 담아 챙긴 라세흠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는 그런 라세흠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들로 이상한 짓 하지 마라. 혹시 경찰에 잡히면 내 물건이라고 불지 말고.”
“예, 예. 걱정 마시라니까. 그럼 가볼게요.”
“멀리 안 나간다. 그리고, X팔. 문 수리비랑 외상값은 꼭 가져와라. 안 주면 지옥 끝까지 찾아갈 테니까.”
“아, 알았어요. 얘들아, 가자.”
배상훈과 백기준은 서로를 쳐다보다 이내 그를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턱.
“부장님 혼자 다 들 거면 저희는 왜 데려오신 겁니까?”
그 물음에 양손의 캐리어를 올렸다 내렸다 하던 라세흠이 뒤를 슬쩍 돌아봤다.
“그러게. 묵직한 게 내가 평소 하던 무게랑 비슷해서 그런가 보다.”
“운동은 정말 광적으로 하시네요. 근데 아까 그분은 누구십니까? 꽤 친하신 것 같던데.”
“음. 예전부터 알던 사람.”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라고 넘어가기엔…… 좀 마음에 걸려서요.”
백기준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라세흠이 피식 웃었다.
“왜. 민간인이 종류별로 스코프를 가지고 있어서?”
라세흠의 말대로였다.
원래 영점이 조절되는 스코프는 일반인이 소지하고 있으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 가게에선 8배율 스코프까지 팔고 있었다.
충분히 수상한 상황이었지만, 라세흠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게 중요하냐?”
“중요하죠. 혹시 어둠의 경로로 구한 거면, 우리 월급 주는 놈한테 불이익이 갈 수도 있으니까요.”
배상훈의 단호한 표정에 라세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우리만 잘하면 되는 일이고, 그 양반도 불법적으로 구한 건 아니거든.”
“확실한 거죠?”
라세흠이 의심을 거두지 않는 배상훈을 향해 캐리어를 확 들었다.
“그럼 새꺄. 내가 니들한테 이런 걸로 구라를 치겠냐?”
“그건 또 그렇네요.”
매사에 진지하지 않고 전투광인 라세흠이었지만, 이런 문제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길래 군수품을 막 자기 가게에서 팔고 그런대요?”
백기준의 호기심 섞인 질문에 라세흠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여기서 말할 건 아니고……. 나중에 때가 되면 설명해줄게.”
“부장님도 이주혁 닮아갑니까? 대놓고 궁금하게 만들면서 중요한 건 비밀로 하시네.”
“그래. 말 잘했다. 이주혁이 걔는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길래 깡패 같은 놈들이랑 엮이는 거야?”
티 나는 말 돌리기였으나, 이건 배상훈과 백기준도 항상 궁금했던 문제였다.
세 사람은 골목길을 걸으며 이주혁에 대한 의문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부대에 있을 땐 그냥 아버지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평범하진 않지. 학창 시절부터 양아치들 때려잡고 다녔던 놈이니. 혹시 그때 조폭들이랑 엮인 거 아냐?”
“일리가 있네. 근데 강남파는 그렇다 쳐도, 선생인지 하는 그놈까지 목숨 걸고 조지려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흠…….”
“음…….”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뭐, 언젠간 자기가 설명하겠지.”
“그럴까요.”
“사실 그놈도 알고 있을 거다. 우리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어주고 있다는 거.”
거의 4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가족 같은 놈이니,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라세흠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우린 그냥 믿고 따라가자고. 그 녀석이 평생 숨길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긴 하죠. 그리고 그땐 부장님도 말해주셔야 할 겁니다.”
백기준의 집요한 한마디에 라세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새끼. 알았다.”
어느새 골목을 나온 라세흠이 둘에게 캐리어를 하나씩 건넸다.
“그럼, 일단 복귀해서 준비하자. 끈 있으니까 다들 등에 메고.”
히죽.
라세흠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까지 뛰어간다.”
***
중앙지검의 사무실.
서해결 검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주혁이 넘겨준 목사의 수첩.
서해결은 거기 적혀있던 계좌들을 추적해 약 70%의 신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차명계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꽤 큰 건이라 인력이 많이 붙은 탓이었다.
하지만 계좌의 주인을 특정한 것과 별개로, 서해결은 한 가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돈을 받았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수첩에 있던 계좌의 주인이 정말 새사람 교회로부터 돈을 받았느냐.
그걸 입증하는 게 문제였다.
계좌의 주인은 밝혀냈어도, 세탁된 자금을 추적하는 건 어려웠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돈의 행방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서해결 검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주혁 씨한테 부탁해야 하는 건가…….’
만약 그런다면, 이주혁은 어떤 방법으로든 알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 거고, 그건 서해결의 신념과 부딪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해결은 이미 이주혁과 몇 개의 사건을 처리한 이상 그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후…….”
서해결은 핸드폰을 들어 강남경찰서의 송태석 과장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전달했다.
이주혁이 일을 함께 처리해달라고 소개한 사람이자, 꽤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한 베테랑 경찰이다.
물론 그 과정에 이주혁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접근했다는 것 자체가 송태석이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사건의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송태석 과장에게서 답신이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 두 놈을 더 털어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증거가 될 만한 뭐라도 나올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그리 문자를 보낸 후, 잠시 고민하던 서해결 검사는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주혁 씨.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러자 전화 너머로 이주혁이 미소 짓는 게 느껴졌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
나는 서해결 검사의 전화를 받고 운전석의 시트를 다시 바로 세웠다.
왠지 아주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았다.
서해결은 그동안 꽤 고생을 했는지, 별로 좋지 못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그 계좌의 주인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음…….”
하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첩에는 계좌만 있을 뿐, 송금의 증거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서해결 검사의 성격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뒤를 캐진 못했을 터. 그러니까 나한테 전화해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거고.
역시 내가 발로 뛰어야 확실하게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건가?
처음엔 새사람 교회로부터 돈을 받아 처먹은 놈들을 우선적으로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 놈을 족치는 게 먼저였지.’
내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를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과 관련된 이들의 범죄 사실을 밝힌 뒤, 그와 엮어 놈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 이상, 서해결이 말한 놈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단 제 메일로 정리하신 리스트 보내주십쇼.”
-알겠습니다.
“그럼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뒷자리에 있던 노트북을 들고 내 무릎 위에 펼쳤다.
전원을 켜 메일함에 들어가 보니, 서해결의 이름으로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툭. 툭.
파일을 저장하고 문서를 열자, 계좌번호와 그 실소유주의 이름이 깔끔하게 정리된 표가 눈에 들어왔다.
“오호. 컴퓨터도 꽤 잘 다루는…… 음?”
계좌 옆에 적힌 이름들을 위에서부터 슥 훑던 중, 나는 뭔가를 눈치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적힌 정·재계의 인물들. 그리고…… 한인석의 비밀 금고에서 찾은 판교신도시의 투자자들.
이 두 리스트에서 겹치는 이름들이 굉장히 많았다.
거의 유사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나는 한 가지 가정을 떠올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설마…….’
이거, 어쩌면 일이 생각보다 쉬워질 수도 있겠는데?
탁.
내가 노트북을 두드리며 리스트를 확인하던 그때.
저벅.
산길 저 위에서 내가 보냈던 황성빈이 터덜터덜 내려오는 게 보였다.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지, 녀석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근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좀 늦었네. 위에서 누구라도 만났나?
차로 다가온 황성빈은 창문을 두드리려다, 날 보고 그냥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녀석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잘 됐습니까?”
“예. 뭐…… 시키신 대로 다 찍어왔습니다.”
황성빈은 내가 자기 혼자만 굴린 탓인지 살짝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내장된 만년필을 꺼내 나한테 넘겼다.
“그럼 확인해 볼까요.”
“여기서 말입니까?”
“네. 노트북도 있으니, 그냥 여기서 보면 되죠.”
내가 바로 볼 줄은 몰랐는지, 황성빈은 당황한 티를 팍팍 냈다.
이 새끼, 아무래도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만년필을 건네받아 아래쪽을 열고, 메모리 카드를 꺼내 노트북에 삽입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영상이 시작된 시간이 내 생각보다 늦었다.
꾹.
녹화된 영상을 재생해 보니, 영상의 시작 지점은 건물 입구였다.
하지만 내 계산대로라면, 황성빈은 녹화가 시작된 시간 몇 분 전에 여기 도착했을 거다.
이 말은 즉.
스윽.
날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 새끼가, 무슨 헛짓거리를 했다는 뜻이지.
아마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딴짓을 했거나…….
그게 아니면, 이 영상 직전에 녹화된 파일이 삭제됐거나.
내 생각으론 후자의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시설 안에서 나한테 노출돼선 안 될 무언가가 이 카메라에 담겼고, 그걸 눈치챈 사람이 영상을 삭제한 거다.
그 사람은 시설 안에 있던 선생 놈의 하수인이겠지. 그것도 황성빈과 안면이 있는 사이인.
‘강유찬이려나.’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산 위 시설의 관리자가 이 영상을 지웠을 거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굳이 지금 추궁해봐야 경계만 살 테고, 확실한 것도 없으니.
시선을 거두고 영상을 클릭해 재생했다.
그러자 황성빈의 시점으로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흠……. 별일은 없었습니까? 누군가 길을 가로막았다던가.”
“아뇨.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래요?”
내가 의아해서 물으니 황성빈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접촉이 있던 게 분명한데…… 비밀로 하겠다 이거지?
그렇게 계속해서 황성빈이 시설 내를 돌아다니는 걸 지켜봤다.
검은 옷을 입은 직원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지나다니긴 하는데,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별것 없길래 슬슬 영상을 뒤로 넘기던 중, 나는 한 공간을 발견하고 일시 정지를 눌렀다.
탁.
‘빙고.’
황성빈의 시야에서 보이는 건, 드넓은 사격장의 모습이었다.
총화기 상자에 부착해 놓은 추적기가 여길 가리킨 이유가 이거였다.
여긴 아마 공리회의 전투원들이 사격 훈련을 하는 곳이 아닐까.
그러니 총성이 들려도 의심받지 않게 사격장으로 위장해놓은 거겠지.
영상을 끝까지 확인한 뒤, 노트북을 덮으며 옆을 돌아봤다.
황성빈은 그런 나를 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길 쳐야죠.”
나는 씩 웃으며 내 계획을 말해줬다.
이어지는 내 말에 황성빈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오늘 밤에 바로.”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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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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