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그날 밤, 나는 옷을 깔끔하게 빼입고 클럽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왁스로 머리도 싹 넘기고 반지에 목걸이까지 찼다.
탁.
좀 꾸민 게 어색해 보이진 않겠지?
차에서 내려 창문으로 내 모습을 확인해 봤다.
“음…….”
여전히 잘생겼네. 오케이.
차를 주차해 놓고 이명학이 기다리고 있을 클럽으로 향했다.
저벅.
네온사인과 조명이 번쩍거리는 유흥가를 잠시 걸어가자, 한 건물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껏 차려입은 남자들과 보기 민망한 차림의 여자들.
클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이었다.
“형님!”
날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명학이 담배를 밟아 끄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셨어요?”
“어.”
“목걸이 잘 어울리시네요.”
“쓸데없는 말은 됐고, 여기 줄 서 있으면 되냐?”
내 말에 이명학이 입꼬리를 재수 없게 올렸다.
“줄을 왜 서요? 저 이명학입니다.”
척.
이명학의 품에서 VIP 카드가 튀어나왔다.
나는 혀를 차며 녀석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렸다.
딱!
“아!”
“자랑이다. 그거 있으면 줄 안 서도 되는 거야?”
“네. 바로 입장.”
“가자. 그럼.”
클럽 입구로 향하며 이명학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지?”
“아, 예.”
“불러 봐.”
“음……. 저랑 형님은 최근에 알게 된 지인이고, 형님은 주식 투자가 성공해서 엄청나게 부자고…… 지용이 형 만나면 자연스럽게 형님을 호구로 잡는 게 어떠냐면서 모임에 데려갈 건덕지를 만든다……. 맞죠?”
“용케 외웠네?”
내 말에 이명학이 또 재수 없게 웃었다.
“이래 봬도 제가 머리는 꽤 좋거든요.”
“지랄.”
우리가 입구로 다가가자, 가드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이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익숙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비켜섰다.
“이야……. 이젠 뭐 VIP 카드도 필요 없네?”
“크흠.”
나는 이명학을 따라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쿵. 쿵. 쿵.
어두운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고, 누군지 얼굴도 보이지 않는 남녀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클럽은 몇 번 와 봤는데도 적응이 안 되네.
안에 가득한 사람들을 뚫고 가다 보니 어느새 한 문 앞에 도착했다.
이 안에 민지용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여기에요.”
“어. 들어가자.”
고개를 끄덕인 이명학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 앞에 서 있던 웨이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이사님. 혹시 민 사장님 만나러 오신 겁니까?”
“어. 얘기는 들었지?”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안에 말씀 전해 드리겠습니다.”
웨이터가 문을 열고 안에 뭐라 전달했다.
툭.
“이사? 네가 뭔 이사냐?”
내 물음에 이명학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조금씩 일도 배우고 있어요.”
“에이, 낙하산 새끼. 거기 직원들은 무슨 죄냐?”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들어오시랍니다.”
나는 머쓱한 표정의 이명학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섰다.
“…….”
눈 앞에 펼쳐진 방 안의 광경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양아치같이 생긴 놈 하나가 소파에 앉아 양쪽에 여자를 끼고 히죽대고 있었다.
“어, 왔어?”
셔츠를 반쯤 풀어헤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가왔다.
그에 이명학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슬쩍 숙이며 인사했다.
“먼저 놀고 계셨네요?”
“어. 얼굴 보기 힘들다? 빨리 앉아서 한잔 받아.”
이명학의 어깨를 툭툭 치던 남자는 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쟨 뭐야?”
초면에 싸가지 없게 반말하는 저놈이 바로 민지용.
민정수석의 장남이자, 자식 농사 흉년의 지분 8할을 차지하는 망나니 새끼다.
이명학은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설명했다.
“이쪽은 이주혁이라고, 최근에 알게 된 형.”
“반갑습니다. SA시큐리티 대표 이주혁입니다.”
내가 억지로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는데도, 민지용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이명학에게로 돌렸다.
“SA시큐……. 거긴 뭐 하는 회산데? 자기소개를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아, 경호업체입니다.”
“경호업체? 참나.”
대답을 들은 민지용이 비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 싸가지 봐라?
묘한 표정으로 내밀었던 손을 거두니, 이명학이 눈치껏 끼어들었다.
“에이, 형. 이 형 돈 되게 많아.”
“그래?”
눈빛이 달라진 민지용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진짜 돈 많아?”
뿌득.
“민지용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호오.”
민지용은 슬쩍 미소지으며 이명학 쪽을 쳐다봤다.
어디서 이런 호구를 물어 왔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이름이 뭐랬지? 이주혁 씨?”
“맞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일단 앉아요.”
갑자기 태세를 바꾼 민지용이 어이가 없었지만, 여기서 내가 이놈을 족쳐 버리는 건 안 된다.
내가 타고 들어갈 놈이니 벌써 건드릴 순 없지.
자리에 앉자 민지용이 바깥을 향해 외쳤다.
“여기!”
“예!”
민지용이 문을 열고 들어온 웨이터에게 손짓했다.
“샴페인 하나에, 글라스도.”
“알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애들도 몇 명 더 데려오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꾸벅 허리를 숙인 웨이터가 떠나고, 민지용이 내 쪽을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기대해요. 여기 물이 좋거든.”
“……좋네요.”
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두고 보자고. 민지용.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 민지용과 이명학의 지인들이 몇 명 더 도착했다.
그놈들한테도 나를 소개한 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대화의 주제는 들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지만, 난 여기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입장이니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걔를…….”
“푸핫! 진짜냐?”
그렇게 놈들이 술을 퍼마시며 떠드는 사이, 웨이터가 무언가가 든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즐거운 시간 되십쇼.”
민지용은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인 쟁반의 뚜껑을 열었다.
탁.
‘이 새끼들…….’
그 안에는 작은 봉지에 나눠 담긴 흰색 가루들이 있었다.
내가 미간을 꿈틀거리는 사이, 룸 안에 있던 남녀 모두가 쟁반에 있던 마약을 한 봉지씩 챙겼다.
이명학도 내 눈치를 보다 슬쩍 하나를 챙겼다.
민지용은 가만히 놈들을 둘러보던 나에게 웃으며 손짓했다.
“주혁 씨는 안 하시나?”
“아, 예.”
“에이, 빼긴. 그럼 이참에 한 번 배워 봐요. 명학이 네가 좀 알려 드려라.”
고개를 돌린 쟁반에 있던 작은 빨대를 들고 자기 앞에 흰색 가루를 일자로 부었다.
그리고 빨대를 코에 댄 뒤 쭉 빨아들였다.
“스읍……. 하. 이거 비싼 거다, 얘들아…….”
“흡.”
“후…….”
주변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마약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가관이네.”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이명학이 취해서 조금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저, 형님. 이제 어떻게 하죠?”
“그거 줘 봐.”
까딱까딱.
이명학이 자신의 몫으로 받은 봉지를 나한테 넘겨줬다.
그걸 받아 든 나는 봉지를 열어 위스키 잔에 부어 버렸다.
“앗.”
“왜. 아깝냐?”
“아닙니다.”
내 것도 똑같이 털어 넣은 뒤, 위스키를 흔들어서 잘 섞어 줬다.
주위를 살피니 다 같이 약을 빤 남녀들이 풀린 눈으로 해롱대고 있었다.
“쯧쯧. 마약 단속을 그렇게 시켰는데도 없어지지가 않네.”
마약 근절을 위해 만든 국민건강재단을 더 확대하든지 해야겠다.
이놈의 나라는 마약이 자꾸 어디서 솟는지 모르겠다니까.
슥.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에 들어있던 코카인 위스키를 바닥에 촥 뿌려 버렸다.
그러자 이명학이 당황하며 물었다.
“형님. 어디 가세요?”
“슬슬 가 봐야지. 멀쩡해질 때까지 내가 왜 기다려 줘?”
“음.”
“넌 여기 있다가 내가 말한 거 꼭 전달해.”
“알겠어요.”
“까먹지 말고.”
이 새끼는 그냥 못 미덥다니까.
내 눈초리에 이명학이 불만스럽게 투덜댔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 모임에 형님 데려가자고 지용이 형 꼬시라는 거.”
“그래. 내가 거기 관심이 아주 많고, 거기 데려가 주기만 하면 그날 비용은 내가 다 댄다고 꼭 전해야 된다.”
“알겠다니까요. 근데 형님이 벌써 가시면 지용이 형한테는 뭐라고 말하죠?”
“대충 둘러대. 약 빨고 토하다가 집으로 튀어갔다고 하든가.”
그 말에 이명학이 깜짝 놀랐다.
“그거 좋은데요? 저도 처음 했을 때 어지럽고 토하고 난리였거든요.”
“그것까진 안 궁금하다. 수고해.”
“옙. 들어가세요.”
“나 없다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아이, 형님. 저 진짜…….”
탁.
문을 닫고 나오자 이쪽으로 걸어오던 웨이터가 후다닥 달려와 물었다.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아니…… 우욱. 속이 안 좋아서…….”
바로 연기에 들어가니 웨이터가 당황한 듯 날 부축하려 했다.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혹시 안에서 저 찾으면 먼저 집에 갔다고 좀…… 우욱!”
“지, 진짜 괜찮으신 거 맞…….”
휙휙.
대충 손을 내저어 웨이터를 쫓아내고 걸음을 옮겼다.
타닥.
나는 왔던 대로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자 VIP들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춤추고 비비적대고 있는 스테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광란의 현장을 그냥 지나치려는데, 한 여자가 나한테 팔짱을 슬쩍 끼며 물었다.
“오빠. 혼자야?”
“싱글이긴 한데, 제가 좀 바빠서.”
정중하게 손을 떼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저 멀리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 새끼는…….’
미간을 찌푸리고 보는데도 누군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내가 두들겨 팬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놈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놈이 기절할 듯이 화들짝 놀랐다.
잠시 멍하니 이쪽을 보던 놈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
저놈이 도망가는 걸 보니까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유나 씨와의 데이트를 빙자해 마약 공급책을 추적할 때 내가 족쳤던 놈이었다.
이름이 박준규였나. 그때도 골목길을 쫓아가서 때려잡았던 기억이 나네.
“박준규!”
내 부름에도 박준규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너무 시끄러워서 못 들었나 보네.
그럼, 가까이 가서 말해 줘야지.
히죽 웃는 나는 땅을 박찼다.
탓-!
시끄러운 음악 속.
어지럽게 흩어져 춤추는 사람들의 틈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며 놈을 추적했다.
순식간에 나와 박준규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안간힘을 쓰며 인파를 뚫고 도망가던 박준규가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팔다리를 격하게 휘적거리며 사람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X바알! 비켜!”
“준규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냐?”
“미친!”
박준규는 휘청거리며 사람이 적은 복도로 뛰어갔다.
슬슬 잡아볼까. 더 이상 놔두면 다른 사람이랑 부딪힐 수도 있다.
나는 다리의 속도를 높여 박준규의 뒤로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놈의 머리를 턱 붙잡고, 그대로 옆에 보이는 남자 화장실 안으로 던져 넣었다.
휙!
“아악!”
날아간 박준규가 문을 퉁 열며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음악이 시끄러운 탓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천천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비틀거리며 일어난 박준규가 대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달칵.
“허허. 준규야. 다 숨었니?”
“X발! 나한테 왜 이래!”
박준규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왜 이러긴. 마약이 도는 클럽에 마약을 팔던 네가 돌아다니는데, 당연히 붙잡아서 물어봐야지.
“할 말 많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
아, 이거 귀찮게 하네.
나는 어쩔 수 없이 옆 칸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변기를 밟고 올라간 뒤 칸막이에 두 손을 짚었다.
씨익.
칸막이 위의 내 얼굴을 본 박준규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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