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에, 에이, X발.”
박준규는 안절부절못하며 막혀 있는 벽을 막 더듬더니, 이내 비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갈게! 나간다고.”
끼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온 박준규가 내 눈치를 봤다.
“오랜만이다?”
“……우리가 반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반갑게 인사하재? 그냥 물어보는 거 몇 개만 대답하면 사지 멀쩡히 보내 줄 거야.”
“…….”
박준규는 자기 손을 살포시 움켜쥐었다.
나한테 꺾였던 손가락이 쑤시나?
나는 주눅이 든 박준규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물었다.
“이 클럽에 도는 약, 네가 푼 거지?”
“약이라니…….”
“처맞고 시작할래?”
주먹을 슬쩍 들자 박준규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이 새끼들은 발뺌이 아주 습관이야. 그래서, 네가 팔아먹은 거 아니라고?”
내가 노려보며 말하니 박준규는 결국 사실을 털어놨다.
“……맞다.”
역시, 여기 있는 마약은 박준규가 유통한 게 맞았다.
분명 이놈의 윗선이었던 동아극장 사장은 내가 애들 시켜서 처리했는데.
그새 라인을 갈아탄 건가? 끈이 떨어졌는데도 어떻게 또 그 판에서 살아남은 모양이다.
“누구 물건이야?”
“음?”
“네가 유통이면 공급한 새끼가 있을 거 아냐. 그게 누구냐고?”
“…….”
얌전히 대답하던 박준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말 못 한다. 이거지?
“누구길래 비밀을 지켜 주려고 하시나.”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몰라.”
“모른다고? 이게 어디서 약을 팔어?”
내 말에 박준규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정말이다! 난 일개 말단이야. 네가 윗선을 날려 버려서 나도 겨우 자리 잡은 거라고.”
“흠……. 그래도 어디서 오는 물건인지는 알 거 아니냐.”
“부, 부산.”
“부산?”
끄덕.
“내가 듣기론 그렇다.”
부산이라…….
뭔가 시나리오가 그려지는데?
아무래도 부산에서 들어오는 마약이면 러시아 마피아 놈들 물건일 거고.
부산의 정광제를 통해 거래를 하던 놈은 선생이니, 결국 여기 도는 마약은 선생이 뿌린 거라는 말이 된다.
“흠.”
“더 이상 물어볼 건 없나?”
박준규가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걸 보며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박준규. 민지용 알지?”
“민지용? 그 망나니?”
얼마나 악명이 높으면 이런 놈한테도 망나니 소리를 듣냐.
“그건 왜 물어보지?”
“그놈이 참여하는 사교 모임. 들어 봤나?”
물어보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박준규는 의외로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는 봤지.”
“혹시 거기 약 팔아먹는 것도 너냐?”
“……맞는데, 왜?”
씨익.
내가 미소를 짓자 박준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별건 아니고……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이왕 이렇게 만난 거, 끝까지 써먹어야지.
***
클럽에서 나온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후.”
하룻밤치곤 꽤 성과가 있었다.
민지용에게 나라는 존재도 알려 줬고, 그를 통해 놈들의 사교 모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또 우연히 박준규를 붙잡아서 마약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알아냈고.
나름 순조롭게 풀려가는 상황에 만족스럽게 로비로 들어서는데, 저쪽 의자에 앉아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나 씨?”
유나 씨가 왜 여기 있지?
내 중얼거림에 책을 읽던 유나 씨가 이쪽을 돌아봤다.
“주혁…….”
유나 씨는 반갑게 일어서다 갑자기 멈칫했다.
그리고 멍하니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왜 그래요?”
그리로 다가가며 묻자, 유나 씨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르시네요.”
아. 머리도 싹 넘기고, 평소엔 안 하던 장신구 같은 걸 하고 있으니까 좀 낯선가 보네.
그에 머쓱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하하. 잠깐 어디 다녀올 일이 있어서요.”
“그래요? 어딜 다녀오셨길래 이 밤에 들어오세요?”
“그, 클럽에 볼 일이 있…….”
미소를 지은 채로 설명하던 나는 유나 씨의 표정을 보자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
“…….”
“저, 절대로 놀러 간 건 아닙니다! 거기 자주 오는 사람을 만나야 해서 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꾸미고 가셨다구요?”
의심에 눈초리에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거기 있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꾸며야 의심을 안 살 것 같아서…….”
잠시 싸늘한 눈빛을 보내던 유나 씨가 다시 눈웃음을 지었다.
“하긴, 주혁 씨가 그런 데를 좋아하지는 않으시죠.”
“당연하죠. 하하…….”
나는 왜인지 등짝이 식은땀으로 젖은 걸 느끼며 물었다.
“근데, 유나 씨는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저번 회식 때 주혁 씨 직원분이 뭘 두고 가셔서요.”
“뭐를요?”
“여기…….”
유나 씨 품에서 작은 칼이 나오길래 깜짝 놀랐다.
“그걸 두고 갔다고요?”
“네. 그분들 계시던 자리에 있던 거예요.”
칼을 받아 들고 확인해 보니, 날 아래쪽에 에이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에이씨.”
이런 지랄 맞은 감성의 소유자는 딱 하나, 백기준 그 새끼밖에 없다.
“이건 제가 갖다줄게요. 늦은 시간에 감사해요. 이런 일은 부장님 시키셔도 되는데.”
“어차피 집 가는 길도 이쪽이라 들른 거예요.”
“아, 집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내 말에 유나 씨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오늘은 마음만 받을게요. 제가 차를 끌고 와서요.”
“아직 밤길이 워낙 흉흉해서 걱정이네요.”
“괜찮을 거예요. 동생이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거든요.”
“그래요?”
우리 예비 처남이 경찰 준비중이라고 했나?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해 봐야겠어.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다음에 또 봬요.”
유나 씨가 차를 타고 떠난 뒤, 나는 다시 내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집이 없는 건 아닌데, 일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거기까지 가서 잘 시간이 없네.
그래도 후배 녀석들이 거기서 지내고 있으니 먼지가 쌓이거나 하진 않을 거다.
그렇게 사무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데.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음?”
퀭한 표정으로 우울한 기운을 풍기는 백기준이었다.
“어디 가?”
“잠깐 밖에…….”
“이 야밤에?”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백기준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물었다.
“근데 뭐 잃어버린 거 없냐?”
“안 그래도 내 에이미를 잃어버려서 찾으러 나가는 중이다…….”
피식.
“이거?”
내가 칼을 슥 꺼내자 백기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유나 씨가 주워 오셨다. 잘 좀 챙겨.”
“에, 에이미…….”
감격한 표정을 짓는 백기준을 밑에 둔 채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고 올라가 버렸다.
달칵.
나는 내 사무실로 들어가 불을 켰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린 서류들을 보니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빨리 머리 잘 쓰는 애들한테 짬 때리든 해야지, 내가 붙잡고 있으려니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다.
우재성이 회사 내부 문제는 다 처리해 주기도 하고, 경찰 하나랑 검사 하나를 포섭한 덕에 내가 그나마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다.
“후…….”
털썩.
해야 할 일도 많고, 벌려 놓은 것도 많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존재가 튀어나와서 일이 너무 복잡해졌다.
애초에 내 목표는 강남파를 재계 3위의 기업으로 만들기 전에 무너뜨리는 것까지였는데, 어쩌다 보니 이 나라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놈까지 붙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역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어휴.”
나는 소파에 그대로 벌러덩 누웠다.
장남 쪽은 작업을 쳐 놨으니, 다른 자식들한테도 접근해 봐야겠다.
‘민수진…….’
현재 미대 재학 중인 민기형의 막내딸.
다음 타겟은 너다.
***
“푸…….”
한편, 클럽에 남은 이명학은 나른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탁.
이명학이 잔을 내려놓고서 코를 훌쩍거렸다.
“X발 새끼……. 지가 뭔데 하라 마라야…….”
코카인을 흡입한 이명학은 뇌가 활성화되는 걸 느끼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얌전히 따라 주지만, 언젠가는 이주혁 그놈도 조져 버릴 것이다.
마약에 취한 여자들을 더듬거리던 민지용이 이명학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라 했냐?”
“아뇨. 혼잣말이요.”
대충 둘러댄 이명학이 입맛을 다시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 형.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
“그, 이번 모임 있잖아요. 혹시 장소 정해졌어요?”
“장소? 이번 호스트가 누구였더라. 석천이였나?”
“그랬던 것 같은데요.”
잠시 고민하던 민지용은 인상을 구기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X발. 그럼,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지.”
“그래도 형한테 제일 먼저 알려 주잖아요.”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건데?”
이명학이 눈을 삭 굴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 아까 제가 데려온 그 새끼 있잖아요.”
“어? 어. SA 뭐시기 걔? 돈 많다는?”
“네. 그 호구 새끼. 제가 생각해 봤는데, 그놈이 얼굴도 멀쩡하고 돈도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 모임에 끼워 주는 건 어때요?”
그 말에 민지용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급 떨어지게 무슨…….”
“그래. 걔 부모도 없다며?”
민지용과 다른 남자들이 불만을 토했지만, 이명학은 이주혁이 시킨 대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같은 선상에 서자는 게 아니라, 그냥 가지고 놀자는 거죠. 구색만 맞춰 주면서. 돈도 많으니까 물주로 만들고요.”
“흠.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 돈을 자기 돈이라고 착각하는 민지용이 턱을 쓰다듬으며 반론했다.
하지만 이명학은 이럴 때를 대비해 이주혁이 언질해 준 정보가 있었다.
“그 새끼 재산이 몇천억이랍니다.”
“뭐?”
“진짜로?”
관심이 가는지 민지용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에 이명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러니까 계속 빨아먹잔 소리죠. 단물 다 빠질 때까지 떡밥만 조금씩 던져 주면서요.”
“오호.”
“그 고아 새끼도 어떻게든 우리한테 빌붙어서 인맥 좀 넓히려고 하려는 것 같은데, 괘씸하잖아요?”
그 말에 민지용이 피식 웃었다.
“재밌겠네. 네가 맡아서 해 봐.”
“애들한테 전달해 놓을게요. 그놈이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줘야겠어요.”
“큭. 오케이. 그럼, 이번 모임에 걔도 데려와. 호스트한테 그 새끼가 모임 비용 다 댈 거라 전하고. 이주영? 이주혁인가? 걔한테는 돈 내기 싫으면 꺼지라고 해.”
“그렇게 전할게요.”
민지용이 옆에 앉은 여자의 무릎 위로 털썩 누우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X발. 돈이 그렇게 많단 말이지?”
***
다음 날, 나는 민수진이 다니는 서명대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민기형 와이프의 아버지. 그러니까 민수진의 외할아버지가 만든 서명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교였다.
부웅-.
고급 세단을 타고 캠퍼스로 들어가니, 주변에 있던 학생의 시선이 모였다.
창문 너머로 학교 안을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방학 시즌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진 않았다.
끼익.
나는 한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긴가.’
이곳이 민수진이 다니는 회화과가 위치한 B관이었다.
방학이긴 하지만, 민수진은 졸업 작품 때문에, 학교에 자주 나간다고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돈을 때려 박은 건지 대리석 바닥에 복도는 또 엄청 넓었다.
대학은 다 이런 건가? 안 가 봐서 모르겠다.
저벅.
그렇게 사람이 나올 때까지 복도를 걷던 중, 한 사람이 자판기 앞에서 낑낑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남자애 하나가 음료수 여러 개를 양손에 챙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턱.
“도와드릴까요?”
바닥에 놓인 음료수 몇 개를 들며 말하자, 녀석이 살았다는 듯 웃으며 이쪽을 돌아봤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얼굴이 또 어째 익숙했다.
“어? 형?”
“이준우?”
박준규한테 붙잡혀 마약을 팔다 나한테 잡혔던 꼬맹이, 이준우였다.
그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뭐야. 여긴 어쩐 일이냐?”
“이 대학교에 붙었으니까 왔죠!”
“너 작년에 고3이었어?”
“네. 모르셨어요?”
얼굴도 앳되고 덩치도 작아서, 나는 한 열일곱 살쯤 되나 했는데.
“근데 왜 벌써 와 있냐? 아직 개강도 안 했을 텐데.”
“아……. 그게, 그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뭐 그렇게 하고, 넌 무슨 관데?”
“저 회화과요. 원래 그림 그렸었거든요.”
“회화과라고?”
물어볼 사람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네.
“회화과면, 혹시 민수진이라고 알아?”
내 말에 이준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잘 알죠.”
“오. 그래?”
이준우가 양손과 주머니에 가득 든 음료수를 들며 말했다.
“이게 민수진 선배 심부름이거든요.”
“심부름?”
흠…….
이거, 재밌는 냄새가 나는데?
“줘 봐.”
“네? 이거 가져다드려야…….”
“줘 보라니까.”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주자 이준우가 얌전히 음료수를 넘겨줬다.
“오케이. 네가 앞장서.”
“어딜요?”
“어디긴. 민수진 심부름이라며?”
내 말에 이준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씨익.
“갖다주러 가자고.”
잠깐 대학 생활이나 좀 해 볼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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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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