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16
215화
괴한의 습격이 있고 다음 날.
달달달.
서길석은 그의 집 침대에 앉아 다리를 떨었다.
그 후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놈이 계속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탓이었다.
‘그분이 남긴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괴한이 했던 말을 떠올린 서길석은 배신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개새끼. 그동안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혈육이라 해도 가차 없는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수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이대로 당해 줄 순 없지.”
몰락하는 게 확정이라 해도,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냐는 다른 문제였다.
서길석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야밤의 뜀박질 탓에 관절이 쑤셨으나,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끝까지 발악해 주마.’
그리 생각한 서길석이 방을 나서려는데, 그의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길석은 그녀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고 물었다.
“그건 뭐야?”
“뭐긴 뭐예요? 소환 통보서지.”
탁.
봉투를 받아든 서길석은 안에 든 서류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서길석의 소재지인 강남구 경찰서에서 날아온 통보서였다.
아내의 말대로 그의 출석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서장도 분명 돈을 받아먹었을 텐데, 막을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이딴 걸 보내는 꼴이라니.
서길석은 이를 악물며 서류를 바닥에 탁 내던졌다.
“X발!”
일단 공문서가 날아왔으니, 경찰서로 가긴 할 것이다.
우선 출석부터 해야 서장과 대화를 하든, 사건을 수사하는 놈들한테 돈을 처먹이든 뭐라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마음 같아선 바로 일본이나 동남아로 몸을 피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서길석이 숨는다 해도, 놈이 정보력을 이용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들키게 되리라.
명예와 지위를 다 버리고 도피하는 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검사 놈들한테 침을 좀 발라야겠어.’
서길석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비서에게 연락했다.
-예. 회장님.
“어. 현금으로 10억씩. 다섯 상자만 준비해 놔.”
-아,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서길석이 눈빛을 형형하게 빛냈다.
이 세상에 돈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
* * *
-그래. 고생해라.
“네. 아저씨도요.”
나는 광철이 아저씨와의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성자 놈이 습격당했다라.’
작업 시간에 다른 수감자에게 습격당해 혼수상태란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은 했는데, 아무래도 놈이 본격적으로 관련자들을 제거하길 마음먹은 모양이다.
아마 최근 측근들이 하나둘씩 잘못되기 시작하니까 위기감을 느꼈겠지.
궂은일 도맡아 하던 강유찬은 우리 지하실에 있고, 듣기로는 마테오는 골로 갔다고 한다.
이젠 서길석도 자금을 대줄 수 없게 됐으니, 선생 놈도 꽤 당황스러울 거다.
아무리 그놈이 미래를 안다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고춧가루를 뿌릴 줄은 몰랐을 테니까.
끼익.
사무실 의자 뒤로 기대며 슬쩍 눈을 감았다.
성자 놈이 변을 당한 건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한테 빼낼 만한 건 대충 다 빼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자와 함께 교회 사람들의 고혈을 빨던 정 목사까지 제거당해선 안 된다.
교회에서 모은 돈으로 로비하던 당사자이기도 하고, 교회 내부 사정도 알 만큼 안다.
그리고 일본이 선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놈이다.
아직 여기에 대해 알아낼 게 남았으니, 남은 정 목사는 최대한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겠지.
‘뭐, 그것도 선택 사항이지만.’
다만 진짜로 보호해야 할 사람이 교도소 안에 남아 있었다.
바로 판교신도시 리스트를 넘겨준 한인석 변호사다.
선생 놈을 담글 때 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니만큼 보호해 줘야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려는데,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표님. 대표님……!
합동기도원에 잠입한 사발이었다.
주기적으로 보고하라고 했는데도 한참 연락이 없길래 힘든 상황인가 했는데.
아마 주변에 신도들이 있어서 못한 게 아닌가 싶다.
탁.
“어. 여보세요?”
-하. 접니다.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무슨 합동 기도가 있다면서 모이라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가니까 어디 넓은 회관에 다 같이 엎드려서 자기들끼리 중얼중얼거리고…….
“그래서, 보고할 사항은? 신도들이랑은 좀 친해졌고?”
-아, 예. 다들 안면은 텄죠.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신도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인데, 상태가 좋지 않아 합동 기도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도가 몇 있다고 한다.
성수를 마시지 못해서 사탄의 미혹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성수의 정체가 마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그 사탄의 미혹이라는 것도 아마 마약의 금단 증상일 것이다.
-최근 마약 밀수를 막은 탓에 수량이 줄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에 나오는 사람들도 눈빛이 퀭하고 안색이 영 별로였습니다. 막 몸을 긁기도 하고요.
“전형적인 중독자들의 금단 증상이지. 혹시 성수의 위치는 파악했어? 그것만 알면 바로 임무 종료시켜 줄 수 있는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틀도 채 안 됐는데 어떻게 막 돌아다녀요? 일단 적응부터 한 뒤에 찾아볼 겁니다.
“그래. 조심성 없이 행동하다가 죽는 것보단 그게 낫지. 지원 필요하면 바로 연락해.”
-예. 걱정 감사합니다. 하하.
툭.
무전을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부장님과 고상미 일행이 서울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가면남과 만나기로 했으니, 또 내가 마중을 나가야지.
우선 만나서 대화를 좀 나눈 뒤에 도움을 받아야겠다.
조직에 해킹 툴을 다룰 수 있는 사람 하나 정도 있으면 진행 속도의 급이 달라지거든.
최대한 영입을 시도해 보고, 영 안 되겠다 싶으면 아군으로 만족해야겠다.
달칵.
겉옷을 챙겨입은 나는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삭. 삭.
어둡고 습한 방안, 한 남자가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다.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남자는 칼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끼익-.
곰팡이가 슨 문을 열고 나오자, 바깥에 앉아 있던 남자의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어디 나가니?”
“예.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좀 늦게 들어올 거예요.”
품 안에 칼을 대충 숨긴 남자가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었다.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밑창을 다 잘라 낸 신발이었다.
덜컹.
남자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가 사는 곳은 잘 사는 동네는 아니었다.
형편이 조금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이곳은 그가 나고 자란 곳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대며 걷다가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한 젊은 여자를 멀리서 찍은 사진과, 그녀의 주소가 적힌 메모지였다.
“…….”
물끄러미 사진을 지켜보던 남자는 어젯밤의 일을 곱씹었다.
-구정남 씨. 당신의 범행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증거도 가지고 있고요.
사실 구정남은 이 일대에서 살인과 강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것도 많은 피해자를 내면서 말이다.
살해한 사람의 수만 열한 명에 달했고, 중상을 입은 피해자도 거의 스물에 가까웠다.
한 마디로 연쇄살인마.
-너, 너 뭐야?
-이대로 경찰에 신고하면, 구정남 씨는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 겁니다.
-이……!
-그 대신, 한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그의 제안은 이러했다.
구정남이 지금까지 벌여 온 열댓 건의 살인을 함구하는 대신, 이 주소로 가서 범행을 저질러 달라는 요구였다.
왜 그런 걸 시키는 건지 의아하긴 했지만, 구정남으로선 손해 볼 게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범행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었으니까.
턱.
적힌 주소는 바로 옆 동네라 구정남의 집에서 멀지 않았다.
목표의 집 앞에 도착한 그는 근처를 대충 살폈다.
CCTV 없고, 가로등도 드문드문 놓여 있다.
그리고 동네의 생활 수준도 높지 않으니, 집 안으로 침입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히죽.
구정남이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사진으로 본 여자의 외모는 꽤 봐줄 만한 수준이었다.
그 남자가 어떻게 죽이라고는 말지 않았으니, 죽이기 전 잠깐 가지고 놀아도 별문제는 없으리라.
그리 생각한 구정남은 천천히 집 주변을 둘러보며 어디로 들어가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남자를 누군가 불렀다.
“저기요. 아저씨.”
“……!”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웬 젊은 남자가 담벼락에 기댄 채 구정남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왜 남의 집을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고 있어요?”
백기준은 담벼락에서 등을 떼며 팔짱을 끼고 물었다.
“혹시 뭐, 빈집털이 같은 건가?”
동요를 숨기며 구정남이 모자를 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얼레. 대답이 없으시네. 진짜 도둑이야?”
필리핀에서 돌아온 뒤로, 백기준은 이주혁의 지시를 받고 강예원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나와 있던 참이다.
이 타이밍 마침 나타난 수상한 놈을 그냥 보낼 순 없기에, 백기준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보통 사람은 이쯤 하면 아니라면서 부정할 텐데, 그쪽은 입을 꾹 다물고 있네?”
“증거 있어?”
“뭐?”
“내가 도둑이라는 증거 있냐고. 그냥 이 집안에서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들여다본 거야.”
그 말에 백기준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아, 그래? 빈집에서 소리가 났다고?”
반응도 그렇고 변명하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뭔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증거도 없이 겁박할 순 없는 일.
만에 하나 정말 죄가 없는 사람을 잡아다 심문했다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 그리고 넌 뭔데 간섭이야?”
“얘 남자친구니까, 여기서 그만 서성대고 가쇼.”
꾸욱.
구정남은 굴욕감과 열등감을 느끼며 주먹에 힘을 줬다.
이내 그는 백기준의 배를 칼로 헤집는 상상을 하며 몸을 돌렸다.
“쯧. 별 미친놈이 돌아다니네.”
백기준은 멀어지는 구정남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관상도 어딘가 싸하고, 대화 도중에 살기도 느껴졌다.
그런 눈빛은 보통 사람을 몇 번 죽여 본 놈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거였다.
강예원을 경호해야 하는 백기준으로선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철야를 해야겠는데.’
백기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수상한 남자가 걸어간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나는 가면남과 만나기 위해 풍원한정식으로 향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가 거의 만남의 장이 되어가는 것 같긴 한데, 주변에 제대로 된 음식점이 있어야지.
딸랑-.
“어, 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서 돈을 정리하던 강예원이 나를 맞이했다.
“그쪽은?”
“맨 끝방에 계셔.”
“그래. 고생해라.”
지금 시각은 오후 3시.
점심도 지나고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대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직원들을 제외하곤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그거 때문에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거지만.
가장 안쪽 방 앞으로 걸어가 닫혀 있는 문을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그러자 미리 안쪽에 앉아 있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음?”
그런데 놈은 여기서도 흰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걸 보고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대체 밖에 나와서도 그걸 쓰는 이유가 뭐야?”
가면남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 나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상대를 알기 전까진 정체를 무조건 숨겨야 한다는 주의라.”
“목소리까지 변조하고 있었으면 열받을 뻔했다.”
턱.
나는 가면남의 맞은편 방석 위에 앉았다.
“그리고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뭐지?”
“우리 서로 맨얼굴 보지 않았나? 그런데 대체 왜 가면을 고수하는 거야? 내가 그새 까먹을 것 같아서?”
분명 민지용이 주최했던 마약 파티에 잠입했을 때 이놈과 마주쳤었다.
처음 가면남을 알아본 것도 전생에 뉴스에서 나온 얼굴이 기억났기 때문이었고.
“…….”
내 질문에 가면남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넌 잘 모르겠지만,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건 모든 남자의 로망이라고. 아이언맨도 안 본 건가?”
……아이언맨은 얼굴 깠는데?
이 새끼, 내 예상보다 정신 나간 놈일 수도 있겠는데?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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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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