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말로 제대로 긁어 버린 나는 경호대원들의 면면을 살폈다.
각자 반응은 달랐지만, 다들 일관되게 화가 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열이 받은 건 직접 나한테 한 소리를 들은 놈이었다.
“대장. 저런 말을 듣고도 참아야 합니까?”
“…….”
육진모는 열심히 상황을 중재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이렇게 자존심을 건드려 버리면 말릴 수가 없지.
억지로 붙잡아 봤자 반감만 생기거든.
차라리 한판 붙게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 중일 거다.
‘좋아.’
나도 괜히 작전을 앞두고 불필요한 도발을 날린 게 아니다.
놈들은 처음부터 우리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러면 실전에 들어가서도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냥 이 자리에서 한번 해소하고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다 보니 말이 조금 세게 나가긴 했지만.
결국 육진모는 이 흐름을 막아봤자 독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사는 안 물어보나?”
마종석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좋아. 그럼 자리나 좀 만들자고.”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의자와 테이블을 치워 링처럼 공간을 만들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육진모가 날 보며 제안했다.
“심판은 당신과 내가 맡는 걸로 하지. 과열되면 말려야 하니.”
“오케이.”
그렇게 간이로 만들어진 장소에 마종석과 상대가 마주 보고 섰다.
나는 경호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기 사용은 불가능, 목숨을 노리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남길 수 있는 공격도 불가능. 이후 일에 지장이 없도록, 어디까지나 친선 대련처럼 하자고.”
“동의한다. 준비는 됐나?”
그 말에 앞으로 나선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쿵.
녀석이 허리춤에 있던 장비를 내려놨다.
나도 마종석에게 물었다.
“이길 수 있지?”
“당연한 소리를.”
“자신감 좋아.”
마종석의 등판을 퍽 쳤다.
“우리 가오도 좀 살리고, 쟤네들도 못 까불게 만드는 거다.”
뚜둑.
몸을 푼 마종석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뭐, 준비는 다 된 것 같고. 시작할까?”
“그러지.”
척.
두 사람이 자세를 잡았다.
마종석은 무에타이의 준비 자세가 아닌 태권도처럼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걸 본 상대도 몸을 낮추며 양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둘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마종석에게 시비를 건 경호대원, 이재화는 인상을 구기며 상대를 살폈다.
그의 동료들을 공격하기도 했을뿐더러, 언젠가는 적이 될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 마디를 뱉었고, 그 때문에 여기까지 일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이재화는 오히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죽이거나 불구만 만들지 않으면 상관없단 거지?’
이참에 두들겨 패서 자신이 저 용병의 위에 있다는 걸 증명해야겠다.
그리 생각한 이재화가 천천히 마종석에게 접근했다.
자세를 보아하니 가벼운 몸놀림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싸우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저런 경우엔 간격을 확 좁히고 근접전으로 상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훅!
다가가려 하자, 상대는 앞발을 차올리며 접근을 경계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자세를 느낀 이재화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군.’
사실 이런 맨손 대련은 그가 자신 있는 분야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실력자라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을 눕힌 것만 열 명이 넘었다.
군용 무술을 하루에 수 시간씩 연습한 이재화와 달리, 그들의 실력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무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하나같이 깔린 채로 얼굴이 짓뭉개진 채 살려 달라고 빌곤 했다.
‘너는 뭐라고 빌지 궁금하네.’
탓!
땅을 박차고 스텝을 밟으며 하이킥을 날렸다.
그에 마종석은 살짝 상체를 기울이며 피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발차기는 페이크.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게 하이킥을 던져 주면, 대부분은 그 틈을 타 공격을 해 온다.
이때, 회전을 이용해 팔꿈치로 그대로 상대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것이다.
“……!”
들어오려던 마종석은 그걸 보곤 황급히 무게중심을 낮췄다.
하지만 이 공격도 허수다.
팔꿈치의 궤도를 생각할 때, 상대의 머리가 움직일 위치는 정해져 있다.
이재화는 그곳을 향해 무릎을 확 쳐올렸다.
팔꿈치까진 피해낸 자들도 자세가 무너진 탓에 이 무릎엔 당하고 말았다.
‘맞고 뒈져라!’
그러나 이재화의 계획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꽈득.
마종석이 몸을 숙인 채 이재화가 들어 올리던 무릎 위 허벅지를 팔꿈치로 찍어 버린 탓이었다.
“끅……!”
근육이 충격을 받으며 상당한 고통이 몰려왔다.
“이 새끼가!”
이재화는 골반을 틀며 다리의 궤도를 틀어 마종석의 머리를 향해 브라질리언 킥을 날렸다.
후웅!
뒤로 빠지며 가볍게 피해 낸 마종석이 여유롭게 스텝을 밟았다.
‘……과연 명성을 노름으로 딴 건 아니라 이건가.’
머릿속에서 상대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저 용병은 근접전의 수를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
“후.”
땅을 디딜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통증은 점차 옅어졌다.
이재화는 아까와는 달라진 상대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든 하이 가드에, 살짝 앞으로 나온 무게중심.
무에타이 수련자들이 보이는 자세에, 이재화는 상대가 처음부터 자신을 속이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새끼, 근접전은 베테랑이야.’
어느새 다리의 고통은 거의 사라졌다.
미간을 좁히며 탐색을 위해 다시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귓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한 대 맞고 쫄았나?”
이재화는 아가리를 놀리는 저놈을 끌고 나와서 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X발!”
잠시 고민하던 그는 마종석에게 달려갔다.
어차피 계속 간만 본다 해서 뭐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마종석은 침착하게 뒤 없이 덤벼드는 상대에게 대응했다.
주먹은 옆으로 피하고, 발차기는 뒤로 피한다.
무릎은 손바닥으로 막아 내고, 팔꿈치는 거리를 벌린다.
무에타이 경기를 뛰어봤던 마종석은 어렵지 않게 체력을 관리할 수 있었다.
“크아!”
그러나 이재화는 일방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인지 힘을 더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조금 지친 듯한 기색을 보이자, 마종석은 슬슬 발동을 걸었다.
훅!
마종석은 상대의 명치를 노리고 앞차기를 내질렀다.
“큭!”
퍽!
발차기를 팔로 막아낸 이재화의 가드가 풀렸다.
그는 머리로 날아올 공격을 대비해 상체를 뒤로 기울였지만.
쩌억!
채찍같이 휘둘러진 마종석의 다리는 머리가 아닌 허벅지에 꽂혔다.
“……!”
이재화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가드를 올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로우킥이 한 번 더 날아왔다.
쩍-!
“끕!”
휘청이던 이재화가 핏발이 선 눈으로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퍼억-!
또다시 이어지는 로우킥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
마종석이 이재화의 머리통을 향해 돌려차기를 날리려던 그때.
“그만!”
벼락같은 외침에 마종석이 발을 멈췄다.
* * *
소리를 쳐 대련을 중지한 육진모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승부는 난 것 같군. 여기까지 하지.”
“그래 보이네.”
얼굴이 시뻘게진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대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큭. X발……!”
놈은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를 쓰는 듯 보였지만, 허벅지에 가해진 충격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것 같았다.
턱을 맞으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처럼, 로우킥도 많이 맞게 되면 근육이 한동안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심하면 며칠간 목발을 짚어야 할 수도 있고.
부장님한테 배운 사실이다. 내 몸으로 말이지.
하지만 마종석이 그렇게 심하게 때리지는 않았다.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거다. 조금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이런 X팔!”
내 조언에도 놈은 쌍욕을 내뱉었다.
나는 옷을 툭툭 터는 마종석에게 손짓했다.
“수고했다.”
“수고는 무슨.”
하긴, 이놈 잡는 거 보니까 그렇게 수고한 것 같지는 않긴 해.
그렇다고 그걸 입 밖으로 내면 진짜로 싸움이 날 분위기였다.
“…….”
“…….”
경호대원 측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패배한 대원을 노려보는 중이었고, 우리는 흡족한 얼굴로 마종석을 맞이했다.
착잡한 듯 대원의 상태를 살피는 육진모를 향해 말했다.
“대련은 대련이니까, 서로 악감정은 가지지 말자고.”
“그러지.”
“그 친구한테도 잘 얘기해 줘.”
“……알겠다.”
육진모는 몸을 일으킨 대원을 데리고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
그사이 나는 다른 경호대원들을 돌아봤다.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를 얕보는 기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 속이 시원하네.’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긴 한데, 우리 직원이 무시당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또 이런 게 하나하나 모여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는 법이거든.
마종석도 놈을 패 준 게 꽤 후련한지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었다.
끼익-.
잠시 후 나갔던 육진모와 대원이 들어왔다.
대원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쪽 직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음?”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의아한 것도 잠시, 이내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짐작이 갔다.
‘이 새끼, 제대로 닦였네.’
아마 대장한테 조인트라도 까였을 거다.
어쩌면 민지훈이 한 소리 했을지도 모르고.
스윽.
마종석을 돌아보자, 녀석이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사과 받아들이지.”
그에 나는 손뼉을 짝 쳤다.
“그래. 화해하니까 좋네.”
내 말에 대원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 상황의 원흉이 이런 말을 하니 열 받는 모양이다.
그런데 뭐 어쩔 거야?
쟤네 상관이 나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속으로 낄낄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언제 진입하는 거지? 해도 졌잖아.”
“안 그래도 지시가 떨어졌다.”
“그럼 내부 구조부터 설명해 줘.”
“그러지.”
육진모는 구석에 있던 원탁을 하나 가져와 중앙에 놨다.
그리고 그 위에 큰 종이를 쫙 펼치며 설명했다.
“이게 J가 있는 건물의 도면이다.”
“오호.”
“우선, 1층 로비에 있는 프론트 직원은 현재 매수된 상태다. 그곳은 스무 명 정도의 무장한 인원이 지키고 있지.”
“흠.”
1층에 스무 명이라.
“우리는 동시에 이 스무 명을 제압하고, 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최상층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이외의 적은 없나?”
“1층의 인원 일부가 주기적으로 건물 내부를 순찰하긴 하지만, 다른 층은 위장용 업장이고 지금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1층과 최상층만 신경 쓰면 된다는 소리네. 다른 보안시설 같은 건 없는 건가?”
“직원이 해제해 줄 거다.”
직원 하나만 매수하면 뚫리는 보안이라니.
너무 허술한 거 아냐?
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자 육진모가 덧붙였다.
“J는 현재 자신이 공격당할 거라곤 생각하고 있지 않다. 자세한 사항은 말해 주지 못하지만.”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참고로 이주혁, 너는 얼굴을 가리면 안 된다.”
“뭐? 왜?”
“이번 일은 네가 한 짓으로 알려져야 하니까.”
아, 그랬었지.
민지훈과 이미 얘기가 된 거였다.
내가 시선을 대신 끌어 주고, 그 대가로 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도와준다.
언젠가 민지훈을 조져야 하는 건 맞지만, 다른 놈들이 자꾸 건드리는 탓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거기다 내가 한국에서 민지훈의 뒤를 이어 모은 권력자들.
특히 비서실장 조병철에게도 내 능력을 입증해야 앞으로의 거취가 편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민지훈과 나 모두 윈윈이라고 할 수 있는 거다.
그렇게 넘어가려던 그때, 한 가지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내가 그걸 말해 줬던가?’
얼마 전, DS컴퍼니의 한국지부를 관리하던 오주찬의 핸드폰으로 J와 개인적인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민지훈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 줬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괜찮은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
J한테도, 민지훈에게도 엿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말이다.
씨익.
나는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건방지게 굴었던 대원 쪽을 쳐다봤다.
‘……한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