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이주혁이 미국에 있던 그 시각, 서울의 풍원한정식.
한국은 이제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하아…….”
풍원한정식의 사장, 임유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 오픈을 준비하고 있던 강예원이 그런 그녀를 보며 물었다.
“사장님. 그렇게 걱정되세요?”
“으, 응?”
“어제부터 계속 한숨만 푹푹 내쉬시던데요.”
“아……. 그랬어?”
입구 쪽 대기석에 앉아 있던 임유나가 머쓱한 듯 웃었다.
강예원은 어느 순간부터 바뀐 그녀와 이주혁의 관계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확신에 가까웠다.
스윽.
카운터에 몸을 기댄 강예원이 눈을 좁혔다.
“주혁이, 걔 미국 출장 갔잖아요.”
“응. 맞아.”
“또 위험한 일 할까 봐 그러시는 거죠?”
“그렇지…….”
임유나가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전에도 이주혁을 걱정하긴 했지만, 특별한 관계가 된 지금은 그 걱정의 크기가 완전히 달랐다.
강예원은 현재 SA시큐리티의 프론트 직원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주혁이 위험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걸 대강 알긴 했다.
척 봐도 몸을 쓸 것처럼 생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뭘 하든 잘하는 애잖아요. 그리고 이번엔 투자 관련해서 출장 간 거라면서요? 너무 걱정할 것까진 없을 거예요.”
“그런가…….”
임유나는 주방에서 한창 식재료를 준비하는 정태섭을 쳐다봤다.
본직은 SA시큐리티의 직원이나, 임유나의 경호를 하느라 얼떨결에 주방의 에이스가 된 남자였다.
“태섭 씨.”
“예. 사장님.”
“주혁 씨 있잖아요.”
의아한 듯한 표정의 정태섭에게 임유나가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투자 때문에 미국 간 거 맞죠?”
“…….”
그 질문에 정태섭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원래 과묵하고 표정 변화가 크게 없는 성격이었기에 그게 눈에 확 들어왔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임유나는 정태섭의 반응에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럼.”
이주혁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어디 가서 애먼 짓을 하고 다닐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먹구름이 낀 것처럼 답답해졌다.
만약 이주혁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거라면?
“으음…….”
그렇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이주혁이 그랬다면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할 만큼 위험한 일을 하러 간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임유나가 이주혁에게 전화라도 걸어 볼까 고민하던 그때.
딸랑-.
도어 벨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에도 들르는 손님은 있었기에 임유나는 몸을 돌리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몇 분…….”
“한 명일세.”
남자의 얼굴을 본 임유나가 깜짝 놀랐다.
그 정체는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
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고 소탈한 차림새로 혼자 온 것이었다.
“조병철…… 실장님?”
“혹시 지금 식사 되나?”
“네. 준비해 드릴게요.”
“고맙네.”
임유나는 조병철을 빈자리로 안내했다.
“사람이 적은 걸 좋아해서 일찍 왔네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나?”
“아니에요. 10시부터 영업하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아, 혹시 잠깐 시간 내줄 수 있겠나? 자네한테 이야기할 게 있어서.”
“네.”
조병철의 맞은편에 앉은 임유나가 살짝 긴장했다.
과거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고 전해온 이 사람.
말투와 행동거지는 점잖았지만, 다른 이들의 위에 서 있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내가 말했지? 자네 아버지하고 친분이 있었다고.”
“네. 그러셨죠.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그럼.”
쪼르륵.
조병철은 임유나가 따라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참 아끼는 친구였는데, 그때는 사정이 있어서 장례식에 못 간 게 한이야.”
“그런가요…….”
작년에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자 기분이 울적해졌다.
“유나 너도 정말 어릴 적에 몇 번 본 듯한데, 너무 어릴 때라 기억 안 나지?”
“죄송해요…….”
“까먹는 건 당연한 건데 뭘. 그 어린애가 이렇게 잘 자란 걸 보니 내가 다 흐뭇하네. 장사도 잘하고 있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게랑 실력 좋은 직원들 덕분이죠.”
“그것만 있다고 다 되나. 사장 경영 능력이 중요한 거지.”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해요.”
임유나가 느끼던 묘한 불편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두 사람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나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던 조병철이 불쑥 물었다.
“그러면…… 우리 임 사장님, 애인은 있는가?”
“아, 애인이요?”
조병철의 가벼운 물음에 임유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거, 이거. 있나 보네? 하긴 네 외모면 남자는 골라 만나지. 누구야? 그 복 받은 사람은.”
“그, 경호…….”
경호업체라고 대답하려던 임유나가 멈칫했다.
SA시큐리티는 기자의 거짓 기사로 살인 누명을 쓴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이주혁이 오해받을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개인 투자자예요.”
“오. 투자자? 이름이 뭔데.”
“이주혁 씨예요.”
“이주혁……. 혹시 그 이주혁?”
“주혁 씨를 아세요?”
잠시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조병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가 아는 그 이주혁인지는 모르겠는데……. 소문을 하나 들어서 말이야.”
“소문이요?”
임유나의 반응에 조병철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본인이 맞으면, 최대한 빨리 그 사람이랑 헤어지는 게 좋을 거다.”
* * *
해가 지고, 주변 사위가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한 시간.
사삭.
내 일행과 경호대원들은 J가 있을 건물을 향해 조용히 움직였다.
나는 주변의 행인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걸 보고 경호대장 육진모에게 물었다.
“그래서 J 그놈은 어떻게 처리할 거지? 죽일 건가?”
“가능하면 생포하고, 여의찮으면 사살한다.”
“확인.”
작전은 이러했다.
우리 인원은 총 열다섯 명.
다섯씩 세 조로 나눠서 두 조는 각각 앞문과 뒷문으로 침투한다.
침입이 최상층까지 전달되면 안 되기에, 일시에 배치된 적들을 제압해야 했다.
나와 직원들 다섯으로 이루어진 한 조는 자율 수행.
앞이든 뒤든 적절하게 판단해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철컥.
건물에 가까이 붙은 나는 소음기를 부착한 기관단총을 견착하고 수신호를 보냈다.
혹시 안에 들릴지도 모르는 관계로, 지금부터 대화는 무전으로만 해야 한다.
저벅.
우선 우리는 앞문 조와 함께 움직였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다들 익숙한 자세로 따라오고 있었다.
이로운은 아무래도 이런 실전 경험이 없는 탓인지 조금 긴장한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가 야습하는 입장이니 그리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거다.
어디까지나 이번엔 경호대 놈들에게 묻어갈 작정이니까.
‘저걸로 보고 있으려나.’
입구 쪽에 달린 CCTV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쯤 매수된 직원은 화면에 비친 우리를 보며 배신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휙. 휙휙.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육진모가 우리와 대원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진입하자마자 왼쪽에 둘, 오른쪽에 둘이라는 의미였다.
사전에 협의를 거쳐 우리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까딱.
육진모가 진입 신호를 보냈다.
‘시작이군.’
슬금슬금 움직이던 우리는, 그 신호와 함께 육진모를 필두로 입구로 달려갔다.
타다닷!
입구로 침투한 경호대원들은 좌우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갈겼다.
파바박! 파박!
소음기 때문에 총알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순찰 중이던 적들에게 박혀 들어갔다.
“끅.”
“커억!”
털썩. 쿵.
육진모가 말했던 적 넷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제법이네.’
혹시 바로 무력화되지 않을까 싶어 조준하고 있었는데, 쓰러진 놈들은 하나같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움직이면서 정확히 머리를 노린다라.
상당한 사격 실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까딱.
육진모가 신호를 보냈고, 우리는 다음 타깃을 제거하기 위해 빠르게 이동했다.
천장 곳곳에 달린 감시 카메라는 매수된 직원이 통제 중이다.
지금 불청객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파바바박!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게 적들을 제거해 나갔다.
상대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지만, 경호대원들의 사격술엔 속수무책이었다.
괜히 군대에서 방탄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거든.
쿠당탕.
결국 마지막으로 보이는 한 놈이 땅을 굴렀다.
치직.
육진모는 무전으로 뭐라 통신을 주고받더니 수신호를 보냈다.
놈을 따라가자, 뒷문으로 침투했던 인원과 함께 안경을 쓴 왜소한 인상의 남자가 모여 있었다.
“다, 당신이 선생입니까?”
남자의 물음에 육진모는 능숙한 영어로 대꾸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아…….”
“최상층으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남자는 조금 위축된 듯한 태도로 말했다.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승강기를 이용해 곧바로 최상층에 도달할 순 없습니다. 그 아래층에 내려서 다른 승강기를 이용해야 하지요.”
“그렇군. 그럼 2조는 1층에서 대기하면서 혹시 모를 적들을 경계한다. 3조는 1조와 함께 올라간다.”
“그러자고.”
참고로 3조가 우리다.
“그나저나 다른 직원들도 있지 않나? 당신 혼자 감시 카메라를 관리하는 건 아닐 텐데.”
내가 의문은 던지자, 남자는 흠칫하더니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통제실에 직원이 여럿이긴 하지만, 야간에는 두 사람씩만 당직 근무를 합니다.”
“그럼 당신 말고 나머지 하나는 어디 있어?”
남자가 안경을 슥 추켜올리며 말했다.
“수면제로 재워 뒀습니다. 눈을 가리고 손발도 묶어 뒀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새끼, 아주 제대로 돼먹은 배신자네?
“그럼 이동하지.”
육진모의 말과 함께,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조끼리 나눠 탔다.
우웅-.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주혁아.”
“네?”
“이번엔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라뇨.”
부장님이 다 안다는 듯 어깨로 나를 툭 쳤다.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보나. 네가 곧이곧대로 저놈 명령을 따를 리가 없잖아.”
거참. 사람을 뭐로 보고…….
근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할 수가 없다.
“어차피 지금은 우리밖에 없잖냐. 어떻게 할 건지 말해 봐.”
“그러니까 사실…….”
나는 내가 민지훈의 위치를 J에게 전달했다는 걸 말해 줬다.
그러자 부장님이 경악했다.
“이야……. 이 사악한 새끼.”
“하하.”
“그럼 J였나, 그놈도 지금 대비하고 있는 거 아냐?”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선생이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겠죠.”
J가 세력을 키우기 위해 비밀리에 양성하던 조직을 싸그리 궤멸시켜 버린 경호대.
그들이 자신과 같은 나라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놈은 분명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99%였던 이번 작전의 성공 확률이 90%로 떨어졌단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J를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다.
“들어보니 원래부터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다곤 하는데, 이렇게 야밤에 괴한들이 총 들고 쳐들어올 거라곤 생각 못 할 겁니다.”
비밀 통로 같은 걸로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1층에는 경호대 한 조가 남아 대기 중이다.
낙하산 피고 뛰어내리는 거 아니면 답이 없지.
“그럼 왜 굳이 말을 안 한 거냐? 작전에 크게 지장도 없는걸.”
“개체 수 조절이죠.”
“뭐?”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들 잡아 족치잖아요?”
“그렇지.”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경호대 놈들, 조금이라도 수가 줄면 좋지 않겠어요?”
“오호라.”
내 뜻을 알아챈 부장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가 좋아하는 그거네? 이이제이?”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말이죠.”
비록 지금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세력을 키워 경호대와 함께 민지훈을 박살 내야 한다.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리곤 다시 앞으로 쳐다봤다.
오늘 이후론 상황이 급격하게 달라질 거다.
나는 더 거물이 되어야 하고, 돈과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
승강기 유리창에 비친 내 미소가 오늘따라 음흉해 보였다.
씨익.
‘조금만 기다려라.’
DS컴퍼니의 J 이사.
놈은 내 계획의 첫 번째 제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