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얘네는 왜 안 와?”
지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니 싸돌아다니지 말고 들어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사고는 좀 쳐도 말은 잘 듣는 애들이라 살짝 걱정이 됐다.
그놈이 찾는 건 고상미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저,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이로운이 자원하길래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가 갔다 올게.”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왜, 걱정되냐?”
“아, 네.”
살짝 고민하긴 했는데, 이로운은 걔네들이 어디로 자주 다녔는지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럼 따라와.”
“넵!”
그렇게 나는 이로운과 함께 후배 놈들을 찾으러 나섰다.
“어휴.”
차라리 그냥 어디 다른 데 정신 팔려서 연락을 못 받은 거였으면 좋겠네.
“보통 올 때는 이쪽으로 돌아왔어요.”
“그래?”
이로운은 눈치껏 나다닐 때 다녔던 길로 나를 안내했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 골목에서 북을 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퍽!
“……!”
그에 나는 곧장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 * *
“개쉐끼야!”
부웅-!
덩치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이전보단 확연히 빠르고 날카로웠으나, 상대에게 닿기엔 무리였다.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한 레이븐이 빠르게 발차기를 날렸다.
퍽! 콱!
복부와 얼굴에 차례대로 들어간 발차기에, 덩치가 숨을 헉, 내쉬며 휘청거렸다.
“말했을 텐데.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무사히 보내 주겠다고.”
“X발럼이!”
“으아!”
레이븐은 뒤이어 달려드는 돼지와 난쟁이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뢰도 아닌 일에 사람을 해치고 싶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겁만 주려고 했는데…… 실력 차이를 인지를 못 하는 건지.’
돼지의 턱이 돌아가고, 발차기를 맞고 날아간 난쟁이가 벽에 부딪혔다.
“컥!”
“크어억…….”
덩치가 치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한번 달려들려던 그때, 라세흠의 조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넌 아직 약해. 그런 만큼 앞으로는 너보다 강한 놈들을 더 많이 상대하게 될 거다. 그런 놈들과 싸울 때 필요한 게 있지.’
‘부, 부장님도 더 쎈 놈이랑 싸운 적이 있으신 깁니꺼.’
‘아니. 어쨌든, 하나만 머리에 새겨 넣고 명심해라.’
후욱!
돌진하는 덩치를 향해 레이븐이 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덩치는 몸을 꺾으며 양팔을 상대의 허리로 뻗었다.
‘누가 도와줄 때까지 시간만 끌어. 그리고 다구리 치는 거다.’
‘예에?!’
덩치는 이를 악물고 상대의 옷깃을 쥐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이내 주먹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순간 눈앞이 번쩍하더니, 다리가 풀리며 얼굴이 어딘가 쿵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후, 후웁…….”
간신히 호흡하며 되돌린 시야에는 옆으로 누운 바닥이 비쳤다.
순식간에 당해 땅에 엎어진 것이다.
덩치는 분한 감정에 이를 갈았다.
그러나 명치에 발차기 한 대를 더 얻어맞고 땅을 굴렀다.
“커헉!”
라세흠에게도 이 정도로 두들겨 맞은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때와는 달리 상대에게 명백한 적의가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게 덩치의 마음을 꺾으려 하고 있었다.
“X팔. 이대로, 이대로…….”
“마지막 기회다.”
그 말에 덩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고상미 어디 있어.”
“…….”
덩치는 고뇌했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바엔, 차라리 그냥 말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이놈을 막아 줄 텐데, 여기서 미련하게 버틸 필요가 있나?
순간 그런 생각들이 치밀었다.
“퉤.”
하지만 덩치는 이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빙시야. 니 같으면 잘도 알려 주겠다.”
“……사적인 감정은 없다.”
레이븐은 싸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덩치는 쓰러진 친구들의 상태를 살폈다.
둘 모두 크게 다치진 않았는지 비척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후우…….”
핸드폰은 진작 저 멀리 날아가 부서진 상태였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덩치는 왜인지 그리 무섭지 않았다.
“뎀비라. 니 공격은 내가 다 파악했다.”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레이븐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
미처 반응하지 못한 덩치의 옆구리에 발차기가 틀어박혔다.
퍼억-! 쿠당탕!
덩치는 한참 땅바닥을 구르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마!”
“석호야!”
애타게 덩치를 부르던 돼지와 난쟁이가 쏘아지는 눈빛에 움찔 떨었다.
“이, 이 쉐끼가 감히 석호를……!”
그렇게 레이븐이 나머지 둘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순간.
“동작 그만.”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레이븐이 천천히 옆을 돌아보자,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레이븐을 노려보며 경고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가 이주혁인가?”
SA시큐리티에 관한 정보를 받았을 때 서류로 확인했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고상미와 관계가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레이븐은 잠시 땅에 쓰러진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잔챙이인 이들과는 달리, 한 조직의 수장인 저 남자가 알고 있는 정보가 더 많을 것이다.
“날 아나 보네.”
“알지. 덕분에 일이 줄었다.”
“글쎄다.”
피식.
이주혁이 슬쩍 웃음을 흘렸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 * *
나는 눈앞에 태연히 서 있는 놈을 유심히 살폈다.
신체는 밸런스가 단단히 잡혀 있었고, 척 봐도 단련을 통해 만들어진 근육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네가 이런 거냐?”
난 알면서도 물었다.
확언을 받으면 조금 더 열심히 이놈을 팰 수 있을 것 같았다.
“해, 행님……!”
돼지랑 난쟁이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지만, 덩치는 바닥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걸 보아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닌 듯 보였다.
그래도 내 후배들이 흠씬 두들겨 맞은 걸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내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이런 거냐고.”
“먼저 덤벼들길래 대응했을 뿐이다.”
그 뻔뻔한 말에 난쟁이가 소리쳤다.
“행님! 저 쉐끼가 다짜고짜 고상미 어딨냐, 이래 물으면서 막 협박했으예!”
나는 놈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 하는 놈인가 했더니, 네가 그놈이구나.”
고상미가 회사를 나서자마자 느꼈다던 살기.
이놈이 바로 그 범인이 분명했다.
대체 고상미를 왜 찾는진 몰라도, 결코 좋은 의도는 아닐 거다.
“물어볼 게 많은데, 순순히 따라올 의향이 있나?”
“이것부터 대답하면 고민해 보지. 고상미는 어디 있지?”
“알면 어쩌게. 죽일 거냐?”
내 질문을 들은 놈이 잠시 침묵했다.
“……어디 있지.”
“고상미를 적대하는 놈에게 그걸 알려 줄 이유가 없는데.”
“그럼…….”
순간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한 마디만 전해 다오.”
“들어는 주지.”
“‘유현’이 찾아왔다고.”
“……뭐,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끄덕.
대답을 듣고 물러나려는 ‘유현’을 불러 세웠다.
“잠깐.”
“음?”
“아직 정산해야 할 게 남아 있잖아.”
스윽.
나는 정신이 드는지 꿈틀거리는 덩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애들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
공격적인 어투에 놈이 고개를 살짝 틀었다.
“어쩌자는 거지?”
“어쩌긴 뭘 어째. 로운아.”
“네. 형.”
“애들 챙겨라.”
“넵.”
이로운이 덩치를 부축하고 물러나는 걸 확인한 뒤,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물었다.
“어떻게 할래. 나랑 같이 갈까…… 아니면 여기서 끝낼까.”
“하.”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놈은 비웃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안 그래도 한 번은 확인하려고 했지.”
“그래. 긴말 안 한다.”
뚜둑.
나는 어깨를 한 바퀴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 좀 맞자.”
* * *
“귀신 같은 놈입니다.”
재황캐피탈의 사장이자, 대부업을 넘어 금융계의 큰손.
신재황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럼, 정보 제공 없이 순수 본인의 능력만으로 그런 성과를 냈다는 건가?”
“지금으로선, 예.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으음…….”
대통령비서실의 수장이면서 이주혁이 주도하는 ‘모임’의 실세, 조병철은 그 답변에 침음성을 내며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이주혁이 모임의 인원들이 투자한 금액을 주식으로 불려서 돌려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주혁를 보는 시선이 나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조병철은 이주혁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감한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라.’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기도 하고, 금융계를 꽉 쥐고 있는 신재황에게 이주혁에 관해 물어본 것이었다.
“저도 아는 애들한테 연락을 돌려 봤는데, 이주혁이랑 친한 사람은 딱히 없답니다.”
“허.”
그 말인즉슨, 지금껏 이주혁이 벌어들인 돈은 전부 자신의 통찰력과 판단으로 일구어 낸 것이란 의미였다.
물론 뒤를 캐본 결과 부해양조의 ‘원元소주’와 같이 직접 발로 뛰어서 만들어 낸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식이나 부동산, 문화 산업 투자로 불린 수익이었다.
조병철이 이상하다 느낀 점은 바로 그거였다.
저렴할 때 들어가서, 가장 비쌀 때 판매한 것.
아무리 경제를 잘 알고 투자 관련 지식이 있다 해도, 이주혁처럼 한 번의 실패 없이 전부 대성공을 거둔 케이스는 드물었다.
‘괜히 선생 그 친구가 선택한 게 아니란 건가.’
어찌 됐든 걸출한 인물이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중히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이유로 임유나에게 슬쩍 말을 흘린 것이다.
비록 결과는 썩 좋진 않았지만.
“그나저나 조 실장님. 그놈, 믿어도 되는 거 맞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영 뒤가 구려서요.”
“글쎄.”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SA시큐리티라는 업체를 만들기 전까지의 기록이 전무했으니까.
특임대에서 복무한 게 특징이긴 하나, 이런 쪽에 연루될 만한 사건은 딱히 없었다.
큰 특징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후 바로 입대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선생과 만나서 이런 큰 그림을 그렸단 말인가.
‘뭔가 있다면 부모님인가.’
이주혁에 치중하느라 다른 가족들은 알아보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선 두 사람 모두 고인이기도 했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 관해서도 조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이 있던 프라이빗 룸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내게.”
덜컥.
문이 열리고, 노인과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휠체어를 탄 60대 남짓의 노인과 그걸 밀고 있는 남자였다.
“왔나.”
“예. 실장님.”
노인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조병철의 맞은편에 앉은 신재황에게도 인사했다.
“신 사장……. 오랜만이군.”
“으음. 그렇구만.”
신재황은 대강 인사를 받고선 시선을 돌렸다.
눈앞의 노인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탓이었다.
이내 노인은 조병철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엔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낮은 채도의 조명이 노인의 얼굴을 비추자, 조병철은 그를 향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 이주혁과 아는 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