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이주혁은 민지훈이 보내온 정보를 읽고 있었다.
유현, 일명 레이븐.
글라자 내에서도 손가락 내에 꼽히는 실력자로, 의뢰를 맡으면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적혀 있기론 지시를 절대 따르지 않는 반골에, 집단에 속하기보단 개인으로 활동하는 걸 더 선호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속된 말로 독고다이란 소리다.
‘그래서 뜬금없이 한국에 나타난 건가.’
혹시 누군가의 지시로 인해 한국으로 넘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단독 행동이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글라자 전체가 엮인 일이라면 조금 난감해질 뻔했다.
‘마음 놓고 조져도 되겠어.’
고개를 끄덕이던 이주혁은 문서에 적힌 한 문구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놈 봐라. 완전 미친놈이네?”
[특이사항: 3년 전 글라자 내 한 파벌과 분쟁을 일으켜 궤멸에 이를 정도의 타격을 입힌 적이 있음.]* * *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글라자의 파벌 수장들은 다시 한번 모임을 가졌다.
오늘의 주제는 새로운 파벌의 등장과 레이븐의 심문이었다.
금발의 미녀, 마리아는 모두가 자리한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미하일?”
“음.”
“오늘은 드디어 꽁꽁 감추고 있던 분들을 공개할 시간이군요?”
미하일은 글라자의 새로운 전력이 되어줄 만한 이들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전의 회의에선 내부적인 회의가 필요하다며 그들이 누군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에 다른 수뇌부들은 심기가 조금 불편했다.
왜인지 의기양양한 미하일의 표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길래 그렇게 싸고도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말했잖나. 회의가 필요했다고. 바로 들여보내면 되겠나?”
“그러시죠.”
“좋아.”
미하일이 손짓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수하가 문을 열었다.
끼익-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들어 왔다.
순간 안에 있던 이들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남자는 체격이 상당했고, 풍기는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았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 수 없지만 척 봐도 강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인상이었다.
“호오.”
탁한 금발을 쓸어 넘긴 니콜라이가 호기심을 보였다.
어서 소개해 달라는 눈빛을 본 미하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이쪽으로.”
미하일은 옆으로 다가와 선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육진모 대장. 그 위명 높은 경호대를 이끄는 남자일세.”
그 말에 파벌의 수장들은 잠시 술렁거렸다.
“경호대?”
“경호대라면, 설마…….”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던 마리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미하일. 그 경호대가, 제가 알고 있는 경호대가 맞나요?”
“그렇네.”
미하일의 확언에 마리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한 가지만 더 물을게요. 대체 경호대가 왜 글라자와 함께한다는 거죠? 아. 단지 의문일 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에요.”
“그 질문엔 내가 대답하지.”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육진모가 마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러시아어에 미하일이 흠칫했다.
“우리 언어를 곧잘 하는군? 그런데 왜 영어만 사용한 건가.”
“배우는 중이었다.”
“최근에 배웠단 말인가?”
“그렇다.”
육진모는 미하일의 의문을 몇 마디로 일축하곤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궁금하겠지.”
“네.”
선생이 변고를 당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무력 집단인 경호대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건지는 의문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돈 때문이다.”
“…….”
그 말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돈 때문에 용병 일을 한다고? 그 경호대가?
“자세한 사정은 말할 수 없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 아닌가?”
침착을 되찾은 마리아가 빠르게 동의했다.
“네. 맞는 말이죠. 뭐든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요.”
마리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선생의 생사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경호대가 재정난에 허덕여 여기까지 올 정도라면, 분명 선생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당신의 말은 이해했어요. 미하일은 경호대가 새로운 파벌이 되어 줄 거라고 하던데, 이것도 당신 의견인가요?”
“맞다.”
육진모는 수뇌부의 면면을 살피며 덧붙였다.
“우리가 당신들 중 누군가의 소속으로 들어가면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아서 말이지.”
어찌 보면 오만한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수긍해야 했다.
“뭐, 미하일이 직접 확인했다고 했으니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겠죠. 우리의 시스템은 알고 있나요?”
“그렇다.”
“그럼 더 떠들 필요는 없겠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죠?”
스윽.
“난 동의하네. 새로운 바람은 언제나 환영이지.”
미하일이 손을 들자, 팔짱을 끼고 있던 니콜라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견은 없다.”
가만히 지켜보던 중절모 중년, 알렉산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다. 왜 하필이면 글라자를 택한 거지? 돈이 필요하다면 다른 곳도 있었을 텐데.”
그 물음에 마리아가 인상을 확 구겼다.
‘저 멍청이가. 제 발로 굴러들어온 복을 왜 걷어차려는 거야?’
하지만 육진모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우리 조직의 성격과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의뢰를 통해 보수를 얻는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말이지.”
“그렇군.”
그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알렉산더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난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마리아, 네 생각은?”
“전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전부 동의하는 거군.”
경호대의 합류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환영하네.”
“잘해 보자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은 육진모와 악수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신입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 글라자의 상황에선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선생’을 따르던 경호대가 합류했다는 사실만으로 서클 내에서 글라자의 발언권은 높아진다.
경호대의 위상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그럼 앉지.”
원탁에는 어느새 의자 하나가 더 놓여 있었다.
육진모는 그 의자에 앉으며 여상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뭐죠?”
“요즘 내부 사정이 별로 안 좋다던데.”
그 말에 수뇌부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리고 미하일을 노려봤다.
네가 말한 것 아니냐는 시선에 미하일이 허허 웃었다.
“직설적이군. 그건 어떻게 알았나?”
“미하일.”
“이제 한배를 탔는데 알려 줘야지 않겠나.”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을 적당히 숨기며 경호대를 묶어 놓을 계획이었던 마리아는 보이지 않게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하지만 이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그건 사실이에요. 재정적 문제가 있죠. 어떻게 아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잠시라도 몸담을 조직인데, 그 정도는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마리아는 육진모의 ‘잠시’라는 말에 집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경호대는 글라자에 오래 묶여 있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길어 봤자 2, 3년 정도겠어.’
눈치와 감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마리아는 육진모의 의중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경호대가 돈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어떠한 계획을 꾸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굳이 경호대라는 조직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게 복수든 뭐든 간에 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혹시 모르니 대비를 해야겠지.’
마리아는 몇 초 지나지 않아 결론을 도출한 뒤 육진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피아들의 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해 왔지만, 여러 일이 겹치며 재정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 와중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켜 마피아들의 공분을 살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전부.
설명을 듣던 육진모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 레이븐이라는 자가 규정을 어기고 단독 행동을 저질렀다는 건가?”
“확실하진 않아요. 다만 평소의 행실과 성격, 상황으로 미루어 추측한 거죠.”
“흠.”
거의 평생을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온 육진모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체계가 느슨한 집단의 특성상 그런 별종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세한 정황을 듣기 위해 레이븐을 여기로 불렀어요.”
“타이밍 한번 좋군.”
핸드폰을 확인하던 니콜라이가 말했다.
“말썽꾼이 도착했다.”
그 말과 동시에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깐, ……!
-……시오!
콰앙!
회의장의 문이 굉음과 함께 열리고, 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의 얼굴을 본 이들은 눈썹을 꿈틀했다.
평소엔 죽은 생선 같던 눈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엿보인 탓이었다.
레이븐은 질척하게 흘러나오려는 살기를 최대한 참아내며 물었다.
“뭐지?”
“이봐. 레이…….”
마리아는 뭐라 말하려던 니콜라이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마 당장 복귀하라고 명령식으로 이야기한 탓에 기분이 상한 눈치였기에, 최대한 달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레이븐. 이렇게 갑작스레 연락해서 미안해요.”
“용건부터.”
“네. 혹시 최근에 드라콘을 몰살한 게 당신인가요?”
그 물음에 레이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왜 묻지?”
“그 일 때문에 우리의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서요.”
“내가 한 게 맞다.”
곧바로 나온 대답을 들은 이들이 침음성을 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잠재운 마리아가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제가 당분간 마피아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드렸지 않나요?”
“그랬나?”
레이븐의 뻔뻔한 대답.
마리아의 고운 이마에 핏대가 섰다.
“……후. 이미 일어난 일, 당장 책을 잡진 않을게요. 대신 이건 대답해 주셔야겠어요. 누가 의뢰한 거죠?”
원래 의뢰자의 정보는 어지간하면 비밀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유현도 아예 눈치를 밥 말아 먹은 건 아니었다.
“마스트 코퍼레이션.”
“마스트요?”
다들 의아한 듯한 기색을 보였다.
예상한 후보들이 몇 있었지만, 마스트는 그 안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스트 코퍼레이션은 마피아들이 만든 유령 회사 중 하나다.
마리아도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세력이 큰 건 아니라 별 특이사항은 없던 걸로 기억했다.
“뭐, 그나마 다행이군.”
시선을 돌리자, 니콜라이가 마리아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어쨌든 의뢰자가 마피아라면, 이번 일도 적당히 덮을 수 있겠어. 안 그래?”
“…….”
마리아는 묘하게 올라간 니콜라이의 입꼬리가 왜인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지금 의심해 봤자 얻을 건 없다.
그때, 레이븐의 차가운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볼일 끝났으면 가 보겠다.”
“잠깐만요.”
마리아가 떠나려는 걸 막자, 뒤돌아서려던 레이븐이 멈칫했다.
“말할 건 다 말한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조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의뢰자의 인상착의를 아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서요.”
“미안하지만, 할 일이 있다.”
“레이븐.”
“궁금한 게 있다면 문자로 해.”
“당신 문자 확인도 안 하잖……!”
레이븐이 몸을 다시 돌리던 그때,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육진모가 묵직한 한마디를 뱉었다.
“직접 보니 왜 평판이 그런지 확실히 알겠군.”
“뭐?”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레이븐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조직에 속해 있으면 규칙을 따라라.”
“못 보던 놈이 있길래 뭔가 했는데, 오지랖 담당으로 들어왔나?”
레이븐의 도발에 육진모는 성큼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대체 얼마나 급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너 때문에 일어난 이 일보다 급한 건가?”
“…….”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정론이군. 조사에는 협조하지.”
그 대답에 마리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날 설득할 수 있다면 말이야.”
육진모는 날카롭게 쏘아지는 레이븐의 눈빛을 마주했다.
“좋다.”
그리고 몸을 틀어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며 말했다.
“해 주지, 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