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하아…….”
남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뒤편에 도착한 이로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명을 쓰러뜨린 이후로 대여섯 명이 더 덤벼들었고, 전부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선생님들이 말리지 않나?’
하지만 그 소란에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이곳으로 피신한 것이었다.
벅벅.
머리를 긁던 이로운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어이!”
저벅.
짧은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빛.
강렬한 눈빛에 덩치도 큰 게, 웬만한 아이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할 인상이었다.
이로운은 본능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던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전학생이냐?”
“……오늘 전학 온 건 맞는데.”
“급식실에서 여섯 명을 눕혔다는 게 너냐?”
이로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름이 뭐냐? 난 김창식이다.”
“이로운이라고 해.”
“이름이 특이하네.”
악수를 하자는 듯한 모양새에, 이로운은 얼떨결에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좀 치는 것 같은데, 어디 출신이야?”
그 말에 이로운은 이주혁이 말해준 매뉴얼대로 답했다.
“성산보육원.”
“보육원? 너 고아냐? 아, 미안하다. 나쁜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니다.”
“어. 맞아.”
김창식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이로운의 어깨에 묵직한 팔을 둘렀다.
그도 작은 덩치는 아니었지만, 김창식은 이로운보다 머리 반 개는 더 컸다.
“어디서 격투기라도 배웠냐?”
“잠깐 배웠어.”
“야. 잠깐 배운 걸로 여섯 명을 이기긴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네.”
“어…….”
“친하게 지내자.”
김창식은 호의적인 태도로 나왔다.
그에 이로운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었다.
“왜? 내가 네 친구들을 때렸는데.”
“친구는 무슨. 그냥 학교에서만 보는 따까리들이지. 신경 쓰지 마라.”
그렇게 김창식은 이로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넌 고등학교 갈 거냐?”
“으응? 그건 잘 모르겠는데…….”
“공부 못 하지?”
“……어.”
“큭큭. 그럴 것 같더라고.”
입맛을 다신 김창식이 은근한 목소리를 냈다.
“너, 어디서 살아?”
“나? 정부에서 지원받은 집에서 살고 있어.”
“혹시 돈 좀 만져 볼 생각 없냐?”
“돈?”
“그래. 어쨌든 우리도 돈을 벌어야 할 거 아니냐. 부자도 되고.”
김창식은 어깨동무를 풀고 말했다.
“어때. 넌 돈 필요 없냐?”
그 물음에 이로운은 직감했다.
-불량한 놈들한테 접근해. 그러면 혹시 같이 일할 생각 없냐, 돈 필요하지 않냐고 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넌 덩치도 있고 싸움도 잘하니까. 그럼 일단 알겠다 하고 그놈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 그리고 거기에 누가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오면 돼.
이주혁의 지시사항을 머릿속으로 되뇐 이로운이 눈치를 슬쩍 살폈다.
“돈이야 필요하긴 한데…… 그건 왜?”
“내가 아는 형님들이 있거든?”
이로운은 저 ‘아는 형님’들이라는 말을 듣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형님들 심부름만 좀 하면 용돈 두둑하게 주시거든? 우리 같은 학생들한테는 꽤 큰돈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승진도 시켜 준다고.”
“그래?”
“사실 거의 회사지. 중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해서 돈 버는 거야. 어디 이런 기회가 또 있나 봐라.”
김창식은 눈앞의 전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심히 혓바닥을 놀렸다.
한 대도 맞지 않고 나름 치는 녀석들을 싹 다 눕혔다.
거기다 대화해 보니 성격도 순진한 것 같았다.
실력 좋은데 말 잘 듣는 놈.
이런 녀석을 데려가면 형님들이 좋아할 게 틀림없었다.
그리 생각한 김창식은 쐐기를 박기 위해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냈다.
“솔직히 우리가 고등학교 가 봤자 어디 가겠냐?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놈들이 뭐 하고 벌어먹겠어.”
“으음.”
“기회를 주는 거라니까? 정 불안하면 한 번만 일해 봐. 말 그대로 그냥 심부름해 주고 돈 받는 거라고. 너 어릴 때 아버지 흰머리 뽑아 주고…… 아, 아니다. 어쨌든 인마. 학생이 이 정도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지가 않아요.”
이로운은 고민하는 척하며 눈치를 살폈다.
딱 봐도 자신을 꾀기 위해 열심히 설득하는 게 느껴졌다.
“으으음…….”
“새꺄. 이 형이 옆에서 다 알려 줄게. 걱정할 거 없다. 나만 믿고 같이 가 보기만 하자니까?”
김창식은 계속 뜸을 들이는 이로운의 죽탱이를 돌려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다.
“알았어.”
“오! 그래. 잘 생각했어, 인마.”
그제야 김창식은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학교 마치고 일 없지? 말 나온 김에 가자.”
“오늘 바로?”
“어. 한 3시쯤에 출발하자고.”
“수업은 4시에 끝나는데? 어, 그러고 보니 곧 수업 시작한다.”
이로운은 1시가 다 되어 가는 걸 확인하고 다급해졌다.
그런 그를 보며 김창식이 피식 웃었다.
“수업은 지랄. 한 시간 정도는 제껴.”
“뭐? 안 되지.”
“X발. 어차피 아무도 뭐라 안 해.”
김창식은 그 말과 함께 담배를 꺼냈다.
“한 대 피워.”
“난 안 피워.”
“재미없는 새끼.”
칙.
불을 붙인 김창식이 미간을 찌푸리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담배를 한두 갑 피워 본 자세가 아니었다.
이로운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킬러로 키워지던 시절 교관이 피우던 담배가 생각나 심기가 불편해졌다.
“어쨌든, 오늘 같이 가는 거다. 내가 오늘치 수금하고 반으로 찾아갈 테니까……. 아, 너 몇 반이지?”
“1반.”
“그래. 3시에 딱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후.”
“할 얘기 끝났으면 올라가 봐도 될까?”
김창식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짓했다.
“그래. 가라, 범생이 새끼야.”
“응. 먼저 가 볼게.”
멀어지는 이로운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김창식은 바닥에 가래를 모아 뱉었다.
“병신.”
저렇게 어리바리한 놈이면, 어떻게 잘 구슬려서 계속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형님들이 용돈 좀 챙겨 주시겠는데. 큭.”
김창식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흡입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조직의 보스가 된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 * *
슬슬 해가 지고, 네온사인이 하나둘씩 켜지는 시간.
나와 부장님은 저녁을 간단히 먹고 클럽이 있는 유흥가로 이동했다.
“이야, 오랜만이네.”
“네가 주철수한테 팔아먹은 클럽이 이 근처지?”
“네. 거의 다 왔어요. 저깁니다.”
한때 JS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키웠는데, 주철수의 현금 유통을 막기 위해 100억이라는 비싼 돈으로 매각했었다.
과거로 돌아온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였다.
나는 감회에 젖은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저녁 시간이라 클럽이 오픈하진 않은 상태였다.
“좀 둘러볼까? 들어가 봐도 되고.”
“들어가진 말고, 열 때까지 주변에서 기다립시다.”
“오케이.”
오픈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 위해 근처의 가게로 이동하려는데, 이쪽으로 걸어오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선 클럽 건물로 들어갔다.
나와 부장님은 시선을 마주쳤다.
“저놈들인가?”
“아마 그런 것 같은데요.”
“따라갈 거냐?”
“글쎄요……. 그냥 다시 나올 때 덮치죠. 안 나오면 오픈하고 나서 잡고.”
“그래.”
우리는 근처의 포장마차로 이동해 기다리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오뎅 다섯 개랑 떡볶이 1인분 주세요.”
“예~ 안쪽에 자리 있습니다. 앉아서 드셔도 돼요.”
“아, 그럼 오뎅은 그냥 탕으로 주실 수 있어요?”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요~.”
음식을 주문한 부장님이 희희낙락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을 그렇게 드시고도 배가 고프세요?”
“한창 먹을 나이 아니냐.”
“허이고. 그럼 안 먹을 나이는 언젠데요.”
“이빨 다 빠졌을 때?”
내가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들자 부장님이 낄낄댔다.
“대신 법인 카드는 안 됩니다.”
“엇.”
“양심은 있어야죠.”
결국 부장님은 본인 돈으로 오뎅탕에 마른안주까지 시켜 먹었다.
엄포를 놓지 않았다면 뭘 시켰을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달그락.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해는 점점 더 떨어져 사위가 어두워졌다.
탁.
클럽 안에서 나온 사람들이 줄 펜스를 세웠다.
슬슬 영업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일어날까?”
“가시죠.”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후줄근한 차림새로 갔다가 들어가지도 못하면 곤란했다.
저벅.
나와 부장님은 모자를 눌러쓴 채 가드들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사가 잘된다는 게 사실인지, 우리처럼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녀들이 몰려들었다.
슥.
여기저기 치장한 사람들 뒤에 가서 서자, 줄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 들어가십쇼.”
어느새 우리 차례가 왔다.
내 행색을 슥 훑어본 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십쇼.”
다음은 부장님의 순서였다.
“음.”
부장님은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살피는 가드를 노려봤다.
그에 가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드, 들어가십쇼.”
끄덕.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던 부장님이 가드에게는 보이지 않게 히죽 웃었다.
“봤냐? 아직 먹힌다니까.”
“……예. 좋으시겠습니다.”
곧바로 익숙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쿵쿵대는 음악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리모델링은 거의 안 했네.”
예전에 내가 관리하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테이블을 잡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단 자리부터 잡죠.”
“뭐?”
“자리 잡자고요!”
“어어. 그래.”
부장님은 조금 정신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의 2층에는 프라이빗 룸이 꽤 있었는데, 그 맨 끝 쪽에 사장실이 있었다.
“어서 오십쇼, 형님들! 테이블 잡으시려고요?”
주변을 슥 훑으니 웨이터 하나가 후다닥 다가왔다.
“어.”
“부킹은 필요하세요?”
“됐어. 알아서 할 테니까 적당히 마실 거랑 안주로 준비해 줘.”
“예엡!”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떠났다.
그러자 부장님이 내 귀에 대고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일단은…….”
나는 사람들이 클럽으로 속속들이 들어오는 걸 보며 말했다.
“돈부터 좀 쓸까요?”
.
.
.
중앙의 테이블, 껄렁하게 생긴 놈이 붉어진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훈아! 나도!”
“아, 누님 잔도 받아야지!”
저놈의 정체는 배상훈이었다.
“이 새끼, 아무리 봐도 진짜 노는 거 같은데.”
나랑 부장님은 그 옆옆 테이블에 앉아 배상훈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돈 펑펑 쓰며 놀 사람이 필요해서 급하게 불렀는데, 뭘 해야 할지 알려 주자마자 신나서 택시 타고 오더라.
“야. 근데 술이 뭐 이렇게 비싸냐.”
“그러게요.”
우리는 이 클럽에서 가장 비싼 세트를 주문했다.
그러니 웨이터들만 대여섯 명이 붙었고, 배상훈은 판을 키우는 게 낫다며 주변 테이블에 있는 남녀를 다 불러 모았다.
그걸 보고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떼어 내느라 고생했다.
“어휴.”
지켜보는 내가 다 쪽팔렸다.
가까이 있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술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머리를 싹 넘긴 웨이터 하나가 슬쩍 다가왔다.
“저, 형님.”
“음?”
“저희 사장님이 형님을 좀 뵙고 싶답니다. 이쪽으로 오신다는데 괜찮을까요?”
큰손이랑 안면도 틀 겸, 누가 이렇게 돈을 써 대나 확인해 볼 생각인 거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웨이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와.”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