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부웅-.
차를 타고 움직이던 나는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운 뒤 그리로 향했다.
“아저씨.”
“어. 주혁아! 왔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광철이 아저씨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탁탁.
아저씨는 불을 끈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던져 넣고 다가왔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
“고생은요. 차 타고 왔는데.”
너털웃음을 짓는 아저씨한테 물었다.
“좀 괜찮으세요?”
여긴 마포구의 장례식장.
사망한 김우천 전 민정수석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다.
광철이 아저씨는 여기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거고.
내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내드리고 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고생하셨어요. 식사는요?”
“아직. 너도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까? 여기 바로 옆에 백반집 하나 있던데.”
“좋죠.”
우리는 걸어서 근처 백반집으로 향했다.
“백반 두 개요.”
“아니, 세 개요.”
광철이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내 주문을 정정했다.
그리고 가게 바깥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쟤도 같이 왔다.”
“뭐야. 언제 따라왔어?”
윤건한.
내가 광철이 아저씨한테 경호원으로 붙여놓은 녀석이 창밖에 서 있었다.
왜 안 들어오고 저러고 있는 건진 알 수 없었다.
“평소에도 저랬어요?”
“우리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자리 비켜준 모양이다. 넌 그동안 별일 없었어?”
“저야 뭐 늘 비슷하죠.”
“너희 회사, 영업 그만뒀다며.”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저씨한테는 아직 말씀 안 드렸는데?
이런 내 의문에 답하듯, 아저씨가 바깥쪽을 턱짓했다.
“아.”
윤건한, 저 녀석이 말해준 거구나.
맡은 일이 일인지라 서울로 불러들이진 않았지만, 당분간 SA시큐리티의 영업을 중지한다는 공지 문자를 돌렸었다.
아저씨가 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그럼 이제 뭐 하려고? 계획이 있으니까 접었을 거 아니야.”
“일단 투자에 집중하려고요.”
고개를 끄덕인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내 말에 동의했다.
“그래. 몸 상하는 일 말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걸로 돈 버는 게 낫지.”
그러던 아저씨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근데 그렇게 되면… 네 친구들 직장은 어떡하냐?”
“따로 일자리를 구해줬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이네. 고용보험은 들어놨지?”
“당연하죠. 제가 악덕 사업자도 아니고.”
달그락.
음식이 놓이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건한이 있잖냐.”
“네.”
“이제 내 옆에 안 둬도 되지 않겠어?”
“혹시 걔가 불편하게라도 한 거예요?”
“아니,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스윽.
광철이 아저씨가 아직도 바깥에 서 있는 윤건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쟤 봐라. 내가 어디 가기만 하면 딱 붙어서 고생하잖냐.”
“그래도 위험해요. 아시잖아요.”
아저씨는 장례를 치르는 중인 김우천이 떠올랐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의견을 굽히진 않았다.
“그래. 뭘 걱정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날 해코지할 이유가 없잖아. 정계에 복귀할 생각도 없고, 변호사 사무실이나 관리하는 아저씨를 뭐 하러 노리겠어?”
“지난번에 당했던 거 생각 안 나세요? 웬 놈이 연장 들고 찾아와서 건한이가 때려눕힌 거.”
그 말에 아저씨가 입맛을 쩝 다셨다.
“저 녀석이 너무 고생하니까 그러지. 주말에도 안 쉬어, 취미 생활을 하래도 운동밖에 안 해. 걱정이 안 되겠냐?”
“원래 좀 우직한 놈이라 그래요. 그리고, 그게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저씨가 잠시 침묵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데요?”
내가 한 번 더 묻자, 아저씨는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털어놨다.
“사실, 조금 지쳐서 말이다.”
“…….”
“네 빽이 돼주겠다고 큰소리치긴 했는데, 막상 내가 정말 도움을 주고 있긴 한가.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무슨 소리세요. 아저씨.”
나는 아저씨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제가 아저씨한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기댈 곳 없이 살아왔지만, 아저씨를 보면 항상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냥 다 그만두고 아저씨랑 웃고 떠들며 평범하게 살아갈까, 이런 고민도 했고.
상황이 그렇게 두지 않았을 뿐, 아저씨는 나에게 있어 가족 같은 존재다.
그러니까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을 전속으로 붙인 거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진심을 담아 말하니, 아저씨가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하다. 이번 일로 많이 심란해서 그런가, 약한 소리를 해버렸네.”
김우천이 아저씨의 은사이자 멘토라고 했었나.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드신 모양이다.
“아니면, 아드님이랑 시간을 보내는 건 어때요?”
“응?”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미국에서 쉬다 오는 거죠.”
미국이라면 아저씨를 노리는 사람도 없을 테고, 힐링도 할 겸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말에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괜찮네. 한번 고민해보마.”
“그래요.”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건한이 보고 들어와서 좀 먹으라고 해.”
“네.”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저씨가 보지 못하게 고개를 돌린 나는 표정을 굳혔다.
광철이 아저씨, 유나 씨. 또 내 직원들과 지인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내 주변 사람이 힘들어진다.
‘계획을 단축시킨다. 과격한 수단을 쓰더라도.’
딸랑.
눈썹 아래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뒤, 가게 문을 열고 말했다.
“들어와서 밥이나 먹어라.”
* * *
삼합회 사천지부. 일명 소룡방小龍幫.
그곳의 수장인 류비엔은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그는 아직 베이징을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차기 산주 자리를 정하기 위해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일 터.
그러니 베이징에 머물며 동태를 살필 생각이었다.
“쯧.”
탁!
류비엔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거칠게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 늙은이가….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지?”
러시아의 암살조직, 글라자.
그중 류비엔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간부, 미하일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두 사람의 계획은 이러했다.
미하일이 그의 휘하에 있는 살수를 보내 경쟁자를 제거하면, 삼합회의 수장이 된 류비엔은 그가 중국에서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분명 이렇게 흘러갔어야 할 계획이, 무언가에 의해 틀어지고 말았다.
“리신페이는 의식불명이라 쳐도, 그 늙은 여우가 문제인데…….”
이 중요한 타이밍에 병실에 누워있는 리신페이는 이미 경주에서 뒤처졌다.
다만 홍콩지부장, 장쉬안이라는 장애물이 아직 남아있었다.
제약회사를 통해 긁어모은 자금력과 기술력.
지부장 가운데 가장 오래 전前 산주를 모셨다는 명분까지.
류비엔이 산주 자리에 오르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그였다.
“러시아 놈들을 이용해 치우려고 했는데… 글러 먹었군.”
러시아 킬러를 이용하는 것 말고 다른 계획을 세워야 했다.
‘아예 죽여버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만…….’
류비엔의 경쟁자가 모두 암살당하면, 당연히 그에게 의심의 화살이 돌아올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똑똑.
류비엔은 노크 소리에 상념을 멈추고 말했다.
“들어와라.”
덜컥.
호텔 방을 단단히 지키고 있던 수하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방주님. 개방에서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그 웃기지도 않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이상하군.”
드륵.
의자에 앉은 류비엔은 수하에게서 가죽으로 된 봉투를 건네받아 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개방이라는 정보 조직에서 정보를 사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 안에 담겨있던 종이엔, 다른 삼합회 지부들의 최근 동향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종이에 적힌 활자들을 훑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지부장들이 움직였다는 내용부터, 의식불명에 빠진 리신페이 쪽은 아직 움직임이 없다는 소식까지.
“흠.”
큰 감흥 없이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류비엔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멎었다.
장쉬안이 관리하는 홍콩지부에 관한 정보가 적힌 부분이었다.
“빈민가 놈들이 주기적으로 사라진다라…….”
명운제약이 단순한 제약회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빈민들의 실종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었다.
“재밌군.”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빈민들을 이용해 만들어 낸 결과물인데.
‘과연 그게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에 대한 결론은, ‘알 수 없다’였다.
개방은 전지全知하지 않았고, 명운제약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선 알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류비엔은 다른 관점에서 고민을 이어나갔다.
만약 명운제약이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본단에 알려진다면?
‘원로들은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르겠군.’
조직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삼합회의 망령들.
장쉬안이 빈민들을 사용해 삼합회에 도움이 될 만한 걸 가져온다면 옳다구나 하고 장쉬안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류비엔은 다른 지부장들을 끌어들여 여론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명운제약이 수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일어날 일이었다.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재단하는 건 좋지 않았다.
류비엔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기하고 있는 수하를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 연락 온 거 있나?”
“예. 칭하이, 윈난의 지부장이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류비엔이 혀를 찼다.
그의 사천지부는 삼합회의 본단과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축에 속했다.
그 탓에 웬만하면 베이징 근처에 있는 자들과 손을 잡는 게 좋았다.
“일단 자리를 만들자고 전해라. 내일 12시, 장소는 이 호텔 로비.”
“예. 알겠습니다.”
수하가 객실을 나서자, 류비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쉬안이 가장 큰 난적이긴 하나, 다른 이들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모두가 눈치를 보면서 혹시 나도? 따위의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겠지.
볼 것도 없는 놈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위협이 될 만한 자가 없진 않았다.
생각을 이어가던 류비엔이 한 가지 계획을 떠올렸다.
‘왕줘페이. 그놈 정도면 적당하려나.’
그는 휘하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쓸모없는 사람을 골라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선 그 자신도 피를 봐야 하는 법.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총이 날아온다면, 칼을 쥐고 싸우던 이들도 힘을 합치게 되어 있다.
류비엔은 그 점을 이용해 판을 주무를 생각이었다.
‘어떤 놈들이 삼합회를 건드리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그날 밤, 홍콩의 한 빈민가.
어둠에 잠긴 한 골목에서 처절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끄아악…!”
그와 동시에 칼이 떨어지자, 비명은 뚝 멎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더 죽인 남자가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은 자상으로 가득했고, 등과 옆구리에는 칼이 두 개씩이나 꽂혀있었지만.
저벅.
남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멀쩡히 걸음을 옮겼다.
골목 바깥으로 나오자, 피 칠갑이 된 그와 달리 말끔한 옷을 차려입은 노인이 물었다.
“복수는 잘 끝마쳤나?”
“예…. 감사, 쿨럭!”
휘청대던 남자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어…? 왜 몸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몸에 꽂혀있던 칼을 확인한 남자가 꿈틀댔다.
그러나 이내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숨통이 끊어진 걸 확인한 노인은 골목 안을 확인했다.
바닥에는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고,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시신들이 나뒹굴었다.
“칼이라곤 쥐어본 적도 없는 평범한 남자가, 혼자서 5명을 참살慘殺할 정도라니…….”
노인, 장쉬안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슬슬 써먹어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