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마종석과 춘식은 집중한 채로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라세흠이 공격을 몰아치고, 남자가 방어한다.
그러다 기습적으로 반격하지만, 라세흠은 예상했다는 듯 피해낸다.
일련의 공방 안에 수십 번의 수 싸움이 일어났다.
“이야…. 부장님 상대로도 안 밀리네요.”
조용히 있던 춘식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부장님이 맨손 전투는 어디 가서 꿀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실제로 그랬다.
꾸준한 단련과 재능으로 만들어진 육체에서 나오는 완력과 스피드.
완벽하게 체득한 무술까지.
무기 없이 싸운다면, 어지간한 베테랑 킬러도 그를 이기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저 남자. 개방의 간부는 그런 그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특급 자리는 노름으로 딴 게 아니란 건가.’
위험도가 높다고 해서 전부 저들처럼 주먹질을 잘하는 건 아니다.
어떤 보안이든 뚫어버리는 해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위험한 사상가.
서클의 일을 방해할 정도의 금력金力을 가진 거대 기업의 회장 같은 사람도 위험도 1급에 속해있었다.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저 인간은 괴물이다.”
춘식에게 마종석이 설명했다.
“내가 알기론, 과거에 혼자 삼합회 지부 하나를 없애버렸다더군.”
“오호….”
“격투든, 사격이든 근접전 하나에는 도가 튼 사람이지.”
“부장님과 비슷한 과군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마종석이 혀를 내둘렀다.
그의 시선은 상대를 집어삼키려는 폭풍을 굳건히 막아내는 남자의 등에 닿고 있었다.
“하여튼, 버티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그런 마종석의 눈에, 남자의 손이 펼쳐지며 짐승의 발톱 같은 모양을 하는 게 보였다.
팟!
마종석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만!”
그와 동시에, 다시 격돌하려던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멎었다.
마종석은 남자를 향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실력은 이 정도면 충분히 확인하셨을 것 같습니다만.”
그에 남자는 펼쳤던 손을 거두며 라세흠에게 사과했다.
“이 정도 되는 실력자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피가 끓었나 보군. 사과하지.”
라세흠은 씩 웃으며 대꾸했다.
“뭐, 그거 가지고 사과할 것까지야.”
그리고 남자를 향해 은근슬쩍 물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인 것 같냐?”
남자는 흐트러진 거적때기 옷을 바로 하며 말했다.
“끝까지 보진 않았기에 섣불리 평가할 순 없겠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뭘?”
“네가 SA의 최강자겠군.”
끄덕.
라세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한데? 정답이다.”
마종석은 그의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충분한 답변은 됐습니까?”
“그건 아니지.”
“…….”
마종석이 눈을 가늘게 뜨자, 남자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손을 까딱였다.
“값은 치러야 할 거 아니냐.”
“아, 그 문제였습니까.”
“우린 무조건 선불인 거, 알고 있겠지?”
저벅.
마종석은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턱.
“선금으로 3만 달러. 나머지 2만 달러는 정보 확인 후에 드리겠습니다.”
“현찰 5만 달러라. 네놈이 이런 거금을 선뜻 줄 리가 없는데.”
가방을 열어 지폐를 확인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보스가 수완이 좋나 보군. 좋아. 5만 달러 치의 정보는 넘겨주지.”
“그럼…….”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는 라세흠을 향해 말했다.
“당신네 보스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직접.”
* * *
-…그렇게 됐다.
나는 부장님의 연락을 받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종석이 아는 정보 조직이 있다길래 달러 현찰까지 들려 보냈다.
언제까지고 꿍꿍이속 모를 민지훈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대화를 해줄 수 있냐니.
다행히 일이 꼬인 것 같진 않았지만, 조금 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30분 이상은 안 된다고 전해주십쇼.”
-그래. 고맙다.
이내 핸드폰에서 부장님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Hello?
한국어가 아닌 영어였기에, 나도 그에 맞춰 영어로 말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아, 그쪽이 SA의 보스겠군.
“…예. 뭐, 맞습니다.”
SA시큐리티는 영업 중지 상태긴 하지만, 정보 조직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공짜로 정보를 던져줄 순 없었다.
전생에서 만났던 이들이 그랬듯, 이런 족속은 항상 교묘하게 상대에게서 정보를 알아내곤 했으니까.
-난 개방의 위칭이라고 하오.
개방. 들어본 이름이었다.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이 조직은, 중국 뒷세계 최대의 정보 단체였다.
삼합회와 적대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호적이지도 않은 조직.
한마디로, 돈만 주면 뭐든지 알아내 주는 스케일 큰 흥신소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은 말하지 않고 물었다.
“나에게 연락한 이유가 뭡니까.”
-그쪽 일행의 목적을 들었소. 삼합회의 팔다리를 쳐내겠다더군.
거기까지 이야기한 건가.
순간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얼굴에서 힘을 풀었다.
그것까지 말했다는 건, 위칭이라는 이 남자의 입단속이 끝났다는 소리일 거다.
-내가 대화를 요청한 것은, 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오.
“이유는 왜 궁금한 겁니까.”
-그걸 들어야 제대로 판단이 설 것 같아서 말이오.
큰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없어져야 할 놈들을 없애는 데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런가. 알겠소. 정보는 이들을 통해 전해 들으면 되오.
“그러죠.”
뚝.
전화가 끊겼다.
이놈도 정보를 흘릴 생각은 없는지, 긴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나는 조용해진 핸드폰을 잠시 쳐다보다 중얼거렸다.
“…설마, 이거 하나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야?”
* * *
척.
라세흠에게 핸드폰을 돌려준 남자, 위칭이 조용히 생각했다.
‘없어져야 할 놈들이라. 생각도 하지 못한 이유군.’
개인적인 원한이나, 서클 내의 알력 다툼.
해봤자 그 정도라고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더 오래 대화하며 상대의 진의를 캐보고 싶었으나, 주어진 시간과 상황이 그리 여의치 않았다.
스윽.
위칭은 품 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라세흠에게 건넸다.
거기 적힌 주소를 본 라세흠이 물었다.
“이게 뭐지?”
“여길 찾아가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가 봐.”
위칭이 손을 휘휘 저었다.
라세흠은 별말 없이 몸을 돌리며 한국어로 말했다.
“하여튼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구만.”
마종석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너만 하겠냐.’
고개를 돌린 마종석이 위칭을 향해 말했다.
“머지않아 파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동안 몸 성히 잘 계십시오.”
“나 같은 홈리스가 위험할 일이 뭐가 있나?”
하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종석은 가볍게 목례하곤 라세흠과 춘식을 따라 판잣집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온 라세흠이 뻐근한 근육을 주무르며 투덜댔다.
“어우, 망할 놈. 더럽게 힘드네. 확인한다면서 정보는 또 바로 주지도 않아요.”
하지만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어쩐지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신나서 싸워놓고 뭘 궁시렁대나.”
“확실히 세상이 넓긴 하더라고.”
“그 사람 말인가?”
“그래. 대체 뭐 하던 인간이냐?”
라세흠의 질문에 마종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과거 삼합회 최강의 살수였다더군.”
“그럼 대륙 최고란 소리겠네.”
라세흠이 팔짱을 낀 채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 13억 인구 중에서 정점에 있던 사람이라. 여유만 있었으면 진득하게 한판 해보는 건데.”
“됐고, 여기 적힌 주소는 이 근처다. 바로 갈 거냐?”
“그게 낫지 않겠어? 오래 있어봤자 별로 할 것도 없는데.”
“그럼 이동하지.”
그가 알려준 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게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목적지 근처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웬 노인이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노인은 꼬질꼬질한 손으로 라세흠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네모난 가죽 주머니를 받아든 라세흠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주머니를 열었다.
“뭐야?”
내용물을 확인한 라세흠이 흠칫했다.
주머니 안에는 새하얀 종이 여러 장이 들어있었다.
“이게 그 정보인 모양입니다.”
춘식의 말에 라세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조용한 데서 내용부터 확인하자.”
스스슥.
세 사람은 축축한 분위기의 골목으로 조용히 들어가 다시 주머니를 열었다.
팔랑.
“맞나 보네.”
안에 들어있던 종이엔, 중국어와 영어를 혼용해 작성한 삼합회의 정보로 빼곡했다.
“사기당한 건 아니겠지?”
“돈을 밝히긴 하지만, 그만큼 값을 치른 건에 대해선 확실한 조직이다.”
마종석이 라세흠을 향해 물었다.
“일단 우리가 여기 온 목표는 달성한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라세흠은 잠시 고민했다.
삼합회의 정보를 얻기 위해 중국행 비행기를 타긴 했으나, 단지 그것만을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출발 전 이주혁이 그들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아까 말씀드린 정보가 1차 목표고, 2차는 선택 사항입니다. 힘들겠다 싶으면 굳이 안 해도 됩니다.
-뭔데?
-베이징으로 가면 경호대가 올 겁니다. 삼합회에 깽판 치러요.
“베이징으로 간다.”
그 말에 마종석이 혀를 찼다.
“진심이냐? 굳이 우리가 안 끼어도 되는 일일 텐데.”
“그렇다고 해서 빠질 이유도 없지.”
“그냥 아무나 두들겨 패고 싶은 건 아니고?”
라세흠은 인상을 구기는 대신 피식 웃었다.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다른 이유가 더 컸다.
“그쪽 놈들만 나서서 싸우면 우리 체면이 안 살잖아.”
전면에 나서서 싸운다는 리스크.
거기서 SA 측만 쏙 빠져버리면 그림이 좋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 아닌가 싶긴 한데, 그런 게 아닌 이상 이주혁이 굳이 말을 꺼낼 리가 없었다.
‘뭔가 생각하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어차피 그냥 돌아가나 한번 날뛰고 돌아가나 그의 입장에선 그게 그거였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실전이나 좀 뛰고 가면 좋잖아?”
“아니….”
“그렇긴 하죠.”
순순히 동의하는 춘식을 마종석이 험악한 눈빛으로 노려봤지만,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오케이. 그럼 다수결의 법칙에 의거, 우린 베이징으로 날아간다.”
“옙. 바로 가실 겁니까?”
“…젠장.”
마종석은 어디론가 걸어가는 두 사람을 따라가며 욕설을 뱉었다.
“길은 알고 가는 거냐!”
* * *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
“…….”
유현과 고상미는 그 안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초에 현재 제대로 된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은, 범죄에 발을 들인 후로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통해 베이징으로 향한다는 말에 두 사람이 난색을 보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도 안 돼서 둘의 사진이 박힌 위조 여권 두 개가 생겼으니 말이다.
까득.
고상미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승무원이 가져다준 견과류를 씹어먹었다.
유현의 복수는 끝마쳤지만, 아직 그녀의 복수가 남아있었다.
까드득.
주변을 둘러보니,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복장을 한 경호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에게 복수하기 위해선, 언젠가 이들도 모두 쓰러뜨려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 있자니 쌓이는 감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상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이륙 전 이주혁에게서 온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표 – 부장님도 합류 예정입니다.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 [해야 할 일은?] [대표 – 거점 타격 및 요인 암살.]씨익.
핸드폰을 접은 고상미가 감정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스트레스 좀 풀겠네.’
그에 옆에 있던 유현은 조용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