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르자오시에 도착한 라세흠 일행은 마종석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이쪽이었던 것 같은데…….”
“알고 가는 거 맞지?”
“눈에 익는 곳까지 왔다.”
계속해서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던 마종석은 판자촌같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눈가를 덮는 덥수룩한 머리에, 적당히 걸친 허름한 옷가지.
손에 들린 기다란 지팡이까지 거지라는 소리를 들어도 무방한 겉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라세흠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보통 인간은 아니구만.”
빌어먹는 이라기엔 상당히 균형 잡힌 자세와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추레한 인상의 남자는 마종석을 슬쩍 돌아보곤 중국어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오랜만에 안부도 물을 겸…….”
그에 마종석이 중국어로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치우고, 용건만 말해.”
그러자 마종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제 그런 일은 할 생각 없다.”
남자가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얼굴 보니 반가웠고, 이제 가라.”
“정보가 필요합니다.”
“네놈한테 줄 정보가 나한테 어디 있다고?”
“삼합회에 관한 겁니다.”
그 말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국에서 죽은 듯 살던 놈이, 갑자기 삼합회는 왜?”
“자세히 설명해 드릴 테니, 자리를 좀 옮기시죠.”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짚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마종석은 라세흠 쪽을 보며 손짓했다.
“뭐라는 건진 몰라도, 분위기가 영 이상한데….”
“일단 따라 가보시죠.”
“그러자고.”
그렇게 두 사람은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끼익-.
남자의 안내에 따르던 일행은 허름한 판잣집 안으로 들어왔다.
털썩.
그의 집인 듯, 자연스럽게 탁자 옆의 의자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
“같이 온 사람들은 누구냐.”
“…일행입니다.”
“일행이라고?”
코웃음을 친 남자는 라세흠 쪽을 턱짓하며 말했다.
“SA시큐리티의 유명인사가 네 일행이라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라세흠이 미간을 좁혔다.
“SA? 지금 내 얘기하는 거냐?”
“진정해라.”
라세흠에게 손을 뻗은 마종석이 설명했다.
“이 남자는 중국 최대 정보 단체의 간부. 당신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저 인간은 확실히 우리 편인 거냐?”
“…확신은 못 한다. 대신, 적이 되지 않을 거라곤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마.”
마종석은 눈동자를 힐끗 굴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대화와 행동은 모두 정보가 된다.”
“…….”
작게 혀를 찬 라세흠이 입을 다물었다.
이어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빨리 말하던가….”
마종석이 다시 시선을 돌리자, 남자가 여유로운 자세로 물어왔다.
“꽤나 불같은 성격이군. 그나저나 다른 하나는 누군가? 네놈과 같이 다니기엔 낯선 얼굴인데.”
그 물음에 답한 건 춘식이었다.
“DS의 도살자. 그렇게 불리던 놈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중국어에 라세흠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무, 뭐야. 너도 중국어 할 줄 알아?”
“예. 기초적인 수준이지만요.”
“에이 씨. 나만 못 알아듣고 있었네.”
남자는 머쓱한 듯 웃음 짓는 춘식을 보며 조금 놀란 표정을 보였다.
“도살자. 현장에서 은퇴한 뒤 종적을 감췄다고 알고 있었다만…. 이건 의외군.”
그런 남자에게 춘식이 말했다.
“굳이 제 정보를 알려드린 이유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짜로 받아먹을 순 없지. 이제 이야기해 보게나. 날 무슨 연유로 찾아온 건지.”
“지금부터 설명할 건 상당히 비싼 정봅니다. 이야기를 들은 후엔 최소한의 대가는 주셔야 할 겁니다.”
마종석이 끼어들어 경고했다.
그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도와달라고 온 놈이 뻔뻔하긴. 좋다. 어디 들어나 보자.”
“그 전에, 라세흠. 영어는 할 줄 아나?”
“그나마 낫지.”
“지금부터는 중국어 말고 영어로 합시다.”
이곳의 네 사람이 전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영어밖에 없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삼합회에 관한 건 뭐냐. 그것부터 말해라.”
“그 전에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삼합회에게 지금 나눈 대화를 팔 생각이 있으십니까?”
“내가 거기 ‘예’라고 하겠나? 생각이 있든 없든 아니라고 대답해야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행의 표정을 본 남자가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탁.
“우리 개방丐幇은 정보 팔아 먹고사는 조직이다. 그런 놈들 입을 다물려면 그만큼의 이게 필요하지.”
엄지와 검지를 비비는 남자.
그에 라세흠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삼합회에서 이 정보를 원하면 연락해라. 그놈들이 제시한 금액 이상으로 쳐주지.”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이빨을 보이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좋다.”
라세흠은 식은땀 한줄기를 흘리며 생각했다.
‘거들먹거리는 게 열 받아서 일단 질렀는데, 너무 크게 부르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마종석이 자신 있게 데려왔으니까 이 새끼가 책임지는 게 맞아. 음.’
라세흠이 고뇌하는 사이, 마종석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린 삼합회의 세력을 대폭 축소시킬 겁니다.”
“초장부터 터무니없군. 계속해 봐.”
“수장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이때 서로 간의 반목을 부추기고, 빈틈을 파고들어 재기하기 못하게 할 작정입니다.”
“흠….”
남자는 정보 조직 소속이다.
삼합회는 왜 건드리려는 건지, 자세한 계획이 무엇인지는 당연히 묻지 않았다.
값을 치르면서까지 그걸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대신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네놈은 어떤 정보가 필요한 거지?”
“삼합회의 내부 사정.”
“구체적으로.”
“현재 유력한 수장 후보. 놈들의 본거지와 세력. 그리고 어떤 놈들이 편을 먹었는지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잠자코 마종석의 요구사항을 듣던 남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지금껏 용병질로 번 돈을 다 가져와도 값을 치르기엔 모자라다. 애초에 그건 삼합회에 대한 명백한 적대 행위기도 하지.”
“…….”
“나보고 그런 위험부담을 지면서까지 도와달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위험부담이라.”
라세흠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삼합회가 없어지면, 위험할 일도 없는 거 아닌가?”
그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 자들과 다니니 같이 미쳐버렸군.”
“너희는 정보 단체냐, 삼합회의 개냐?”
라세흠의 한마디를 들은 마종석이 깜짝 놀랐다.
슬쩍 얼굴을 드는 남자를 향해 라세흠이 쏘아붙였다.
“우리 세력이 얼마인지, 계획은 어떤지. 자세한 건 들어보지도 않고 꼬리를 마는 건가?”
“…….”
“우린 그딴 깡패 새끼들한테 지지 않는다. 이 홈리스 놈아.”
남자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몸을 긴장시키는 라세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내 판단이 성급했을 순 있다.”
스윽.
“그러니, 그런 말을 당당히 내뱉을 수 있는 네놈 실력 정도는 확인해 봐도 되겠지?”
두 사람의 투기가 맞부딪혔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마종석이 다급히 라세흠을 말렸다.
“이봐. 저래 보여도, 저 사람은 위험도 ‘특급’이었던 남자다.”
“특급?”
“그래. 서클에선 개인의 전투력에 따라 위험도 등급을 나눈다.”
‘서클’에서 사용하는 개념인 위험도.
내부인이든 외부인이든, 적대적 인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닌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매기던 등급이다.
사상이나 세력 같은 것들도 평가에 영향을 주긴 하나, 무엇보다 가장 큰 기준은 전투력이었다.
무력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무력은 판도를 바꿔버릴 수도 있었다.
무술을 단련하지 않은 일반인은 4급.
평범한 조폭이나 전투 경험이 다수인 이들은 3급.
혼자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조직의 행동대장, 특수부대 출신의 무술 전문가 정도면 2급.
무장 인원 다수 제압이 가능한, 고도로 훈련됐으며 전쟁 경험이 있는 정도의 군인이나 살인에 도가 튼 킬러는 1급이다.
“하지만 특급은 이야기가 다르다.”
단신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거나, 어떠한 수단을 써서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
한 마디로, 일당백一當百.
“‘최강’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게 특급이다.”
“최강이라.”
“그리고, 저 남자는 대륙의 정점에 근접했던 사람이다.”
“…….”
“신중하게 고민해라.”
마종석의 설명을 들은 라세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약하자면, 졸라게 세다는 거지?”
“…그래.”
“이봐. 홈리스 양반. 나는 몇 급이지?”
라세흠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남자가 답했다.
“특수부대 출신에, 강남파 전투원들과 연변 킬러들을 제압. 내 기억상 추정 1급이었던 것 같군.”
“1급?”
저벅.
라세흠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이거 뭔가 자존심 상하네. 어이, 특급.”
뚜둑.
목을 좌우로 꺾은 라세흠이 씩 웃었다.
“내가 당신을 이기면, 나도 특급인 건가?”
“그 결과가 공식적으로 그쪽에 알려진다면.”
“쩝. 그래?”
스윽.
오른발을 뒤로 뺀 라세흠이 중얼거렸다.
“그럼 당분간은 비밀이겠네. 새로운 특급이 생긴 건.”
그에 맞춰 지팡이를 탁자 옆에 세워 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자만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남자의 눈빛에서 살기가 일렁였다.
“너처럼 덤비다 죽은 놈들이 꽤 되거든.”
드륵-.
어느새 판잣집 내부의 가구를 옆으로 치운 춘식이 말했다.
“실력만 확인하는 겁니다?”
턱.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종석이 이마를 짚었다.
“제기랄.”
그와 동시에, 라세흠이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퉁!
그리고 한껏 뒤로 젖혔던 다리를 앞으로 내질렀다.
파앙-!
남자가 여유롭게 피했다.
라세흠은 공기를 가른 다리를 땅에 디딘 뒤, 사우스포 자세에서 원투를 날렸다.
오른손, 왼손.
묵직한 주먹이 남자의 얼굴을 향해 쇄도했지만, 그는 가볍게 물러나며 공격을 흘려냈다.
라세흠은 잠시 공세를 멈추고 상대를 분석했다.
‘기묘한 스텝을 보면 격투기 쪽은 아닌가….’
상대의 밑천을 까보기 위해 라세흠이 다시 한번 접근했다.
이번엔 신중하게 다가가 주먹과 발차기를 섞어 견제했다.
주먹을 던지면 상체를 젖혀 피하고, 로우킥을 날리면 뒤로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남자가 아웃복서처럼 공격보단 방어와 회피에 치중하자, 라세흠은 자세를 바꿨다.
탓.
경쾌하게 스텝을 밟은 그가 옆차기를 질렀다.
파악!
직선적이고 빠른 기습에, 남자는 양팔을 교차했다 풀어내며 발차기의 충격을 상쇄했다.
처음으로 공격이 닿았으나, 유효타는 아니었다.
그에 라세흠은 몰아치듯 연속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탁! 후욱!
남자는 땅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발차기를 피해냈다.
회피하지 못할 것 같은 공격은 손바닥과 팔뚝으로 쳐내며 흘렸다.
“빠르고 묵직하군. ITF인가?”
“태권도에도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
두 차례 공방이 있었지만, 입을 열 수 있을 만큼 서로 전력을 내보이진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수비로 일관하던 남자가 라세흠의 발차기를 흘리곤 안으로 파고들었다.
라세흠은 턱을 노리는 손바닥을 맞잡은 뒤.
짝!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줬다.
꾸우욱!
“이런 무식한……!”
남자는 손을 으스러뜨릴 듯 조여오는 힘에 다급히 라세흠의 턱을 올려 찼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목표에 닿지 못했다.
순간 벌어진 빈틈에, 고개를 최대한으로 틀어 피한 라세흠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탓!
손을 놓은 라세흠이 남자에게 접근하며 주먹을 날렸다.
관자놀이, 턱, 경동맥, 울대, 간과 낭심.
남자는 급소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에 난색을 보이며 팔을 황급히 움직였다.
팍! 파바박!
1초를 나눈 시간 동안 두 사람의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졌다.
‘이건 크라브 마가…. 태권도가 주가 아니었단 거냐.’
남자는 의도적으로 옆구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자 라세흠은 약점을 물어뜯기 위해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그건 남자의 노림수였다.
그는 역으로 접근하며 라세흠의 울대를 노렸다.
“!”
그러나 허수를 던진 것은 라세흠도 마찬가지였다.
라세흠은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돌진한 남자의 가슴팍에 어깨로 충돌했다.
쿵!
이어 밀려난 남자를 향해 깊숙한 뒤차기를 먹였다.
퍼엉-! 쿠당탕!
한 바퀴 구르며 몸을 일으킨 남자의 눈빛을 본 라세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히죽.
“이제야 그 눈깔에서 여유가 사라지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