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73
#373화
경찰은 우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경호대원이 자신 있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베이징에는 삼합회의 지부장 다수가 모여있다.
무슨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경찰들은 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항상 어디에나 부패한 관료는 있는 법.
삼합회 측에선 경찰의 방관을 위해 그들의 뒷주머니에 현찰을 두둑이 넣어줬다.
물론 경찰도 체면이 있으니, 출동은 하되 시간을 지연시키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런 상황을 선생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경호대원은 그리 말한 것이었다.
퓩!
“끄악!”
그러나 현장에서 체포되면 어림없이 감방행이었다.
호텔의 보안요원을 쓰러뜨린 경호대원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경찰이 곧바로 오진 않을 거다. 최대한 빨리 호텔을 빠져나간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마종석이 그를 따라 빠르게 달려 나갔다.
비상계단을 이용해 빠르게 1층 로비로 내려오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세흠과 고상미가 그들을 맞이했다.
“왔냐.”
어느새 복면을 뒤집어쓴 두 사람은, 총을 꺼내든 채 호텔 프론트 뒤에 엎드린 직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무슨 은행 강도가 된 기분이네.”
고상미가 복면이 불편한 듯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위장까지 한 거, 현금이라도 좀 털어갈까? 분위기상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투숙객들이 로비 쪽으로 다가왔다.
내부 비상벨이 울린 탓에 1층으로 내려온 듯했다.
그에 마종석은 그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며 중국어로 소리쳤다.
“전부 손들어-!”
“꺄악!”
“뭐, 뭐야!”
소스라치는 투숙객들.
마종석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성큼성큼 그리로 다가갔다.
“전부 아가리 닥치고 따라와! 소리 지르거나 괜한 짓을 하면 머리에 구멍을 뚫어버리겠다.”
“흐읍…!”
그러자 투숙객들은 벌벌 떨며 마종석을 따라 직원들이 있는 프론트로 걸어갔다.
“무릎 꿇고 있어라. 죽기 싫으면.”
그들에게 경고한 마종석이 경호대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손님들이 계속 내려올 거다.”
“상관없다.”
경호대원은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원이 도착했다.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봐! 가자!”
그걸 들은 마종석은 라세흠을 불렀다.
그리고 투숙객들을 향해 총을 겨누며 출구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우리에 관해선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다. 강남방의 보복을 받고 싶지 않다면.”
그 말을 남긴 마종석과 일행은 호텔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호텔 앞 도로엔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탁.
그들이 차에 올라 문을 닫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곧바로 액셀을 밟았다.
라세흠 일행에게 무기를 나눠줬던 가게 주인이었다.
부웅-.
후. 하고 한숨을 내쉰 라세흠이 마종석을 향해 물었다.
“야. 근데 강남방 그건 유머냐? 강남파?”
“…이봐.”
마종석은 그를 무시하고 운전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침에, 그것도 수도 호텔에서 이런 짓을 벌였는데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군.”
말 그대로였다.
호텔 안에서 총성이 들렸을 텐데도, 바깥으로 나와 상황을 살펴보는 이 하나 없었다.
“사이렌 소리가 없어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실제로 소음기 없이 발사된 건 한 발뿐이었으니 총소리인지도 확신하지 못했겠지.”
또 이곳이 베이징의 시가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도 한몫했을 터였다.
그리 설명한 경호대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북경 외곽에서 살인 사건이 몇 차례 있었다. 그것 때문에 치안이 흉흉해 외출을 삼가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더군.”
“살인 사건?”
“자세한 사정까지는 우리도 모른다.”
삼합회들이 베이징에 집결하고, 때마침 일어난 살인 사건들이라.
수상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거기까지 관심을 가질 여력은 없었다.
부우웅-!
혹시 모를 추적을 떼기 위해 한참을 달린 그들은 한 외진 장소에서 내렸다.
라세흠은 생각보다 더 낙후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베이징에도 이런 데가 있구나.”
“서울이라고 전부 고층 빌딩이 있는 건 아니지.”
“하긴, 베이징은 더 넓으니까.”
일행은 다 쓰러져 가는 주택의 대문을 넘어 들어갔다.
어딘가로 걸음을 옮긴 경호대원이 드럼통을 가져오더니, 익숙한 듯 그 안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화륵-.
마치 모닥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드럼통에 그는 복면을 벗어 던져넣었다.
“복면, 겉옷. 흔적이 남은 것들은 전부 태워라.”
“근데, 어차피 감시카메라에 얼굴 찍히지 않았냐?”
“그건 신경 쓸 필요 없다.”
라세흠은 알아서 처리했겠거니 하며 옷가지를 불타는 드럼통에 넣었다.
타닥. 타닥.
넣은 것들이 완전히 소각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에, 춘식은 주머니에 고이 모셔뒀던 선글라스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이야. 확실히 경호대가 대단하긴 합니다. 작전이 딱딱 맞아떨어지네. 살인 사건이니 하는 상황도 다 알고 계획을 세운 거 아닙니까.”
“대단은 무슨.”
심기가 불편해진 라세흠이 중얼거렸다.
“우리 SA시큐리티보단 못하지.”
그 말에 나뭇가지로 드럼통을 쑤시던 경호대원이 슥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왜. 맞잖아. 붙을 때마다 우리가 이겼던 것 같은데.”
경호대원이 미간을 좁혔다.
잠시 미뤄놓고 있던 사실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쪽에서 잡아둔 우리 대원이 있었지.”
라세흠이 어깨를 으쓱였다.
“맞는데, 걱정하진 마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물론 지하실에서.
뒷말을 생략했지만, 경호대원은 그가 좋은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순식간에 싸늘하진 분위기에, 팔짱을 끼고 있던 고상미의 손이 슬금슬금 권총 쪽으로 향했다.
춘식이 그만하라는 뜻에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나 라세흠은 상황에 방점을 찍어버렸다.
“꼬우면 여기서 한판 해보든지.”
그 말에 마종석이 이마를 짚으며 조용히 뇌까렸다.
“이런 또라이 새끼…….”
* * *
국회의원 장진호.
여당인 민생당에 속한 의원인 그는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후…….”
얼마 전 대두된 클럽 스텔라의 마약 문제.
거기에 그의 아들이 연루된 탓이었다.
그 일 때문에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아들이 일반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진 않았겠지만,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던 배우였기에 더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X발 새끼들. 아들놈이 약쟁이인 걸 왜 나한테 지랄들이야?”
장진호는 담뱃불을 붙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언론사의 입을 막고, 야당 의원들의 공격을 막느라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사실, 그가 이렇게 비판받는 이유는 이번 일뿐만은 아니었다.
이전에 한 실언이나 논란거리 때문에 그의 평판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 그의 집무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벌컥!
“뭐야?”
“경찰입니다. 장진호 의원님?”
장진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찰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큰 덩치에 위압감을 주는 얼굴.
아들 때문에 간 경찰서에서 봤던 남자였다.
“당신, 특수국 소속 아니야?”
조폭들을 잡아넣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수사국에서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인가.
혼란에 빠진 장진호에게 특수국의 과장, 박건이 말했다.
“당신을 뇌물공여 및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뭐? 그게 뭔 개소리야?”
장진호가 당황해 소리쳤다.
“마약은 무슨 마약!”
뇌물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마약은 그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세한 건 서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고도……!”
스윽.
박건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보여줬다.
장진호는 다급히 종이를 빼앗아 들고 확인했다.
“구, 구속영장…? 집어치워! 니들이 어떻게 나한테!”
“장진호 의원님.”
슥.
박건이 표정을 굳히며 수갑을 꺼냈다.
“곱게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제력을 행사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그 말에 장진호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
“손 내미십쇼.”
장진호는 허탈한 얼굴로 양손을 내밀었다.
철컥.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박건이 정중하게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
.
.
그 후로도 경찰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정치인, 공무원들의 비리가 연쇄적으로 터진 탓이었다.
마치 누군가 조작한 것처럼, 잘 숨겨왔던 그들의 민낯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탈세, 뇌물 수수. 마약 유통 방조로 모자라 그걸 덮어주기까지.
속속들이 밝혀진 악질적인 범죄 행각에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흠…….”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은 턱을 쓰다듬으며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이거, 참. 얼굴 맞대고 지내던 사람들이 저리되니 마음이 영 안 좋구만.”
그의 뒤에 서 있던 김정우는 당신이 저렇게 만든 게 아니냐는 말을 참아냈다.
대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실장님.”
“음?”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이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런 일이라면?”
머릿속으로 신중히 단어를 고른 김정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쩌면, 누군가 이런 판을 짰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잖습니까.”
“약삭빠른 몇 명은 이미 눈치챘겠지. 근데 그네들이 할 수 있는 게 있겠나? 저 인간들이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인데.”
“아….”
“김 실장이 이런 쪽에 호기심이 많을 줄은 몰랐네.”
흠칫.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호기심은 좋은 거지.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도 있잖나.”
미소를 지은 조병철이 김정우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내 라인, 총리 라인이 타격을 입었어. 그럼 총리는 누굴 의심할 것 같나?”
“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봐. 나와 총리 정도의 인물을 건들 만한 파워가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지.”
국무총리와는 달리,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장은 의전 서열이 높진 않다.
하지만 VIP의 최측근이면서 권력을 대행할 수도 있는 그의 실질적인 권력은 막강했다.
그런 그의 파벌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둘 정도였다.
잡으라는 간첩은 안 잡고 정치인들 약점이나 잡는 국정원장.
또는 수사권, 기소권을 쥐고 있는 꼬장꼬장한 검찰총장 정도가 다일까.
“그럼 아마 검찰 쪽을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영 감이 없진 않군. 하지만 정답은 아니야. 걔가 이런 판을 짤 인간은 아니거든. 총리도 그걸 알고 있을 거고.”
조병철이 담배를 꺼내 물자, 김정우가 재빨리 불을 붙였다.
칙-.
“결국, 그 양반이 할 수 있는 건 속으로 의심하는 것밖에 없단 소리지. 두 눈 뜬 채로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갈 때까지 말이야.”
김정우는 머리를 굴리다 물었다.
“실장님은… 총리를 실각시킬 생각이신 겁니까?”
그에 조병철은 코웃음을 치며 담배 연기를 뱉었다.
“실각은 무슨. 날리려면 언제든지 날려버릴 수 있는데 내가 뭐하러 이런 귀찮은 짓을 하겠나?”
이번 총리는, 현재 대통령이 그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측근이었던 인물이다.
다만 최근에 욕심을 좀 내는 모양이길래, 겸사겸사 수족을 쳐낸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김정우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자기편까지 철창 신세를 지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의 이해할 수 없단 얼굴을 본 조병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다 떠먹여 주면 재미가 없는 법이지. 한번 잘 생각해 보게.”
그 말에 김정우가 보이지 않게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 망할 영감탱이가?’
그런 김정우의 귀에, 조병철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잠시 중국에 다녀와 줘야겠네.”
“…예? 갑자기 말입니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 녀석이 삼합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더군. 그럼 필시 좋은 일 때문은 아니겠지.”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김정우에게 확인사살처럼 한마디가 더 날아와 꽂혔다.
“휴가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다녀오게.”
김정우는 얼굴을 푹 숙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X발. 더러워서 이직하든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