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79
078화
박성태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혼자는 뭐가 혼자야. 너 뭔데?”
인상을 구기며 말하자, 라세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을 옆으로 치웠다.
끼익-
‘뭐야, 이 새끼.’
라세흠의 엄청난 육체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 박성태가 어깨에 걸쳐 놨던 각목을 조심스레 늘어뜨리며 웃었다.
“내가 식사하는데 실례했구만. 할매. 다음에 다시 올게.”
“아냐, 아냐. 나도 마침 나가려고 했어.”
성큼성큼 다가온 라세흠이 박성태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그때까지 박성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자.”
결국 박성태는 라세흠에게 자연스럽게 끌려 마당까지 나왔다.
“자, 잠깐. 잠깐만! 좀 놔 봐!”
박성태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라세흠의 팔을 뿌리쳤다.
고개를 드는 박성태의 눈앞에 커다란 주먹이 날아들었다.
뻐억-!
“컵.”
금니 두 개가 허공을 날고, 박성태가 흰자를 보이며 풀썩 허물어졌다.
라세흠은 할머니를 돌아보며 물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아유, 괜찮여. 저기 장독 뚜껑 안 쓰는 거니께 갖고 가.”
“하하. 감사합니다?”
문가에 놓인 뚜껑을 집어 들고 대문 밖으로 나서자, 깡패 몇 명이 소리를 들었는지 다가오다 멈칫했다.
그리고 라세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욕을 내뱉었다.
“넌 뭐야 이 새끼야!”
“성태 형님은?”
“걔 이름이 성태였냐? 그 앞니 튀어나온 놈?”
피식 웃은 라세흠이 장독대 뚜껑을 던졌다 받았다 하며 무게를 가늠한 뒤, 그대로 던졌다.
후웅-! 퍽!
“컥!”
가슴팍에 뚜껑을 맞은 녀석이 뒤로 넘어져 뒹굴었다.
아마 갈비뼈가 박살 났을 거다.
“끄악!”
“썅!”
“X발 새…….”
라세흠이 당황한 깡패들을 향해 펄쩍 뛰었다.
공중에서 회전하며 한 놈의 옆통수를 후렸다.
그러자 녀석의 머리가 픽 꺾이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쿵!
“헙.”
그리고 착지한 뒤,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 녀석의 다리를 걷어차자, 놈의 몸이 반 바퀴를 돌고 머리부터 떨어졌다.
세 놈을 처리하자, 다른 집 대문에서도 깡패들이 하나둘씩 튕겨 나왔다.
이내 집에서 SA시큐리티의 작전팀, HID 출신 대원들이 근육을 꿈틀대며 걸어 나왔다.
“부장님. 왜 혼자 셋이나 잡으십니까?”
“독식하시네.”
“애초에 많이 오지도 않았구만.”
전부 다 이주혁이 시키는 대로 이 동네에서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다.
주민들에겐 양해를 구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었는데, 마침 한 집에 한 놈씩 들어온 것이다.
라세흠이 굴러다니는 각목을 주워 들고 살피자, 뒤에 있던 대문에서 박성태가 나왔다.
피가 질질 새는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으……. 으 그스끄…….”
“얌전히 누워 있지, 왜 튀어나왔어.”
라세흠은 다가가 각목으로 놈의 허벅지를 때렸다.
빡!
“끄읍!”
다리를 붙잡고 펄쩍펄쩍 뛰는 놈의 반대쪽 다리도 후려쳐주자, 녀석은 땅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그때, 저 멀리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야-! 뭐하는 새끼들이야!”
용역 깡패로 보이는 덩치 큰 놈이 사람들을 우르르 데리고 몰려오고 있었다.
“감히 성태 형님을……!”
라세흠은 개구리처럼 엎어져 있는 박성태를 힐끗 쳐다봤다.
‘이 비리비리한 놈 부하라고?’
그리고 고개를 드니, 덩치 큰 깡패가 두툼한 주먹을 쥔 채 달려드는 게 보였다.
뒤에서 대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또 혼자 하실 겁니까?”
“에이. 재미없다.”
라세흠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꼬우면 부장 하든가.”
미소를 지은 라세흠이 깡패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직!
다음 날.
박성태는 다시 한번 부하들을 데리고 동네 앞에 섰다.
이번엔 각목 따위가 아니라 전부 날붙이를 쥐고 있었다.
심지어 포크레인까지 몇 대 끌고 왔다.
박성태는 비어버린 앞니의 자리로 침을 쭉 뱉으며 투덜댔다.
“아, 임플란트도 아직 못 했는데. 조태수 개새끼가.”
“근데 형님. 진짜 담가도 된답니까?”
“그래. X발 처음 보는 놈 있으면 그냥 쑤셔라. 민수 갈비뼈 박살 낸 그 새끼도 칼 들어가면 쪽 못 써. 가라.”
“이 X발 새끼들. 아직도 허리가 쑤시네.”
박성태는 터덜터덜 걸으며 품에서 꺼낸 나이프를 펼쳤다.
그리고 어제 왔던 집의 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마당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 박성태의 뒤에는 부하 셋이 따르고 있었다.
“형님. 저희가 잡을 테니까 형님이 쑤시십쇼.”
“그래. 잘 붙잡아라. 보통 놈이 아니야.”
지난번엔 방심해서 처맞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집 현관문을 슬쩍 당기자 안에서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거지 중인가.’
현관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니,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새끼는 아마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성태가 성큼성큼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어이 할매. 오늘은…….”
달그락.
분명 누군가 설거지를 하고 있던 건 맞는데, 상상했던 할매의 왜소한 뒷모습이 아니었다.
찹. 찹.
‘이런 X발.’
수저의 물을 턴 라세흠이 뒤로 돌았다.
“오늘은 혼자 안 왔네?”
박성태는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뭔데 네가 자꾸 여깄어?”
“나? 봉사활동이지.”
“썅…….”
라세흠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커다란 국자를 집어 들더니, 박성태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빠악-!
“해충 구제 봉사.”
박성태가 의식이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말이었다.
‘X바…….’
쿵.
***
툭툭.
주철수가 무감정한 어조로 담뱃재를 털며 무릎을 꿇은 초췌한 몰골의 남자에게 물었다.
“조 부장.”
“……예. 사장님.”
“이틀 안에 끝낸다며?”
조태수 부장은 말없이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왜 아직 소식이 없지?”
“……사장님.”
“응? 대답해 봐.”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하.”
주철수가 담배를 비벼 끄고 의자 뒤로 기대앉으며 물었다.
“조 부장. 우리가 몇 년 봤지?”
“……8년입니다.”
“음. 퇴직금이나 좀 챙겨 주려고 했는데, 명예퇴직이 아니니까 필요 없겠지?”
“사장님.”
벌떡 일어난 조태수 부장이 주철수 옆으로 달려가 무릎을 쿵 꿇었다.
“사장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하지만 주철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꾹 누르고 말했다.
“조 부장 가신다. 곱게 보내 드려.”
“사장님!”
이내 사장실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큰 덩치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조태수 부장의 팔을 붙잡았다.
“살려 주십시오!”
“빨리 데려가. 고생했어, 조 부장.”
“사장님. 사장님!”
조태수 부장이 끌려 나가고, 주철수는 핸드폰을 들어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주 사장. 어쩐 일이야.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서요. 서장님.”
-뭐? 무슨 부탁인데.
“경찰 인력을 좀 빌려야 할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경찰서장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 회장. 미안한 말인데, 저번에 받은 건 이번 사건 덮어 주는 대가였잖아? 이런 의뢰는 따로 착수금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럼요. 당연히 드려야죠.”
그 말에 주철수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 겁니다.”
-마지막? 오케이. 알았어. 시간, 장소 보내 놔.
“예. 서장님.”
전화가 뚝 끊기고, 주철수가 다시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인사이동이 좀 있겠네…….”
***
“이쯤 당했으니까 슬슬 경찰을 이용할 겁니다.”
내 말에 라세흠 부장이 의문을 표했다.
-경찰? 강남파가 그 정도 파워가 돼?
“돈이면 다 되는 거죠. 진작 돈 먹여 놓은 인간들이 많을 겁니다.”
강남파가 경찰에 잠입시킨 이중 스파이, 황성빈.
그놈을 경찰 내에 꽂은 놈을 찾으려면, 누가 강남파와 커넥션이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경찰이 신계구역에 출동하도록 둘 생각이었다.
누가 경찰들을 움직이는지, 현장에는 누가 도착하고 오더를 내리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송 팀장에게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긴 한데, 송 팀장도 믿을 만한 인간은 아니다.
아직은 멀쩡해 보이지만, 나중에는 실적에 미친 인간이 되거든.
-근데 경찰을 어떻게 이용하겠다는 거냐? 강남파를 도우러 온 경찰이잖아.
“일단 경찰이 오기 전에 빠져요.”
-빠지라고?
“경찰도 때려눕힐 순 없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뭘 고민을 해 이 양반아.
하여튼, 강남파 측은 두 번이나 실패했으니 애가 타겠지.
돈으로도, 힘으로도 안 되면 결국 이용할 만한 건 딱 하나.
경찰이다.
내 기억으로는 몇 년 후에 비리로 체포되는 경찰서장이 유력 후보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매수된 경찰들이 꽤 많을 거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우리가 없으면, 거기 경찰이랑 깡패 놈들밖에 없잖아.
“기억나죠? 이이제이.”
주철수도 엿 먹이고, 부패 경찰도 엿 먹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황이다.
이제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큰 게 물 겁니다.”
낚싯대에 미끼는 걸어 놨으니까.
***
한 시간 후,
강남파에서 돈을 받아먹는 부패 경찰, 강력팀장 김성우.
그는 서장에게 직접 명령을 받고 신계구역으로 향했다.
자꾸 개인적인 일에 부려먹는 X같은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챙겨 주니 참고 있었다.
어제도 카지노에서 오백 넘게 잃어서 급전이 좀 필요한 상황.
‘본전은 찾아야지. X발.’
김성우 팀장은 낡은 동네의 집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 건지. 김성우 팀장이 데려온 순경 몇 명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직폭력배들이 재개발을 위해서 노인의 집에 침입해 사인을 강요하는데, 수법이 아주 악랄하고 폭력적이다…… 라고 한다. 그러니까, 다들 경찰봉 챙겼지?”
“예.”
다들 용돈 줘가며 더러운 일에 몇 번 데려갔던 놈들이라,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같이 몇 번 카지노에 들렀던 강력팀 형사 하나가 물었다.
“팀장님. 어디까지 가능합니까?”
“적당히 해라. 죽지 않을 만큼만.”
“흐, 좋네요.”
어차피 경찰은 공권력.
잡아넣어야 하는 게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이라는 이름과 묵직한 경찰봉 두 개만 있으면 대부분 얌전히 따라온다.
김성우 팀장과 경찰들은 흩어져 각각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쿵쿵.
“경찰입니다!”
그러자 안에서 한 노인이 문을 열었다.
“경찰 양반들이 여긴 어쩐 일이유?”
“아, 신고받고 왔습니다. 할머니 집에 계속 죽치고 있던 그놈. 지금 어딨습니까?”
“잉? 무슨 말이여?”
노인의 말에 김성우 팀장이 웃으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다 알고 왔습니다.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누구 맘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는 거여! 경찰이면 다…….”
김성우 팀장은 어깨를 붙잡는 노인의 손을 확 뿌리쳤다.
노인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 문을 벌컥 열었다.
“어디 숨었나…….”
집 안에 들어선 김성우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계속 이 안에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노인 외에 다른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좁은 집에 숨었을 리도 없고, 경찰이 여기로 출동했다는 소식도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쯧.”
김성우 팀장은 혀를 차며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때, 안경을 쓴 한 남자가 수첩을 들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남서 김성우 팀장님 맞으시죠?”
“예? 누구십니까.”
“서울일보 강주환 기자입니다. 재개발 건으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조직폭력배들을 체포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성우 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만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갑자기 기자라니?
대문 밖으로 나오니, 다른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찾아온 기자가 한 명이 아닌 것 같다.
‘X발. 누가 흘린 거야?’
따라붙는 기자를 손짓으로 제지한 김성우 팀장이 다급하게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뭐야?
“서장님. 여기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뭐? 기자들이 어떻게 거길 가?
“일단 제가 수습해 보겠습니다.”
-하, X발. 말 안 나오게 잘해.
전화를 끊자, 몰려온 기자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며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찰칵!
“팀장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주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체포는 성공하신 겁니까?”
“카메라 치워요. 카메라 치우시라고!”
김성우 팀장이 기자들을 뿌리치고 있던 때, 동네 입구로 한 무리가 들어왔다.
강남파에서 경찰들을 도우라고 보낸 용역들이었다.
그 모습에 기자들이 흥분하며 사진을 찍었다.
“혹시 저 사람들이 그 조직폭력배들인 겁니까?”
“김성우 팀장님. 한 말씀만 해주십쇼!”
김성우 팀장은 완전히 꼬여 버린 상황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와중에 카메라의 플래시는 계속해서 터졌다.
소란에 집 안으로 들어갔던 팀원들이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김성우 팀장이 손가락을 들어 강남파에서 나온 용역 깡패들을 가리켰다.
같은 편을 체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김성우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새끼들 잡아.”
“예?”
“잡으라고!”
담벼락 뒤에 숨어 있다가, 기자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합류해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사람.
이주혁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주철수의 사주를 받고 저 부패 경찰을 움직인 끄나풀이 누군가 했는데…… 이거 바로 답이 나와 버렸네?
‘서장이었구나?’
이번 생은 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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