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238
238 – 깊은 계곡의 심연, 에레보르 #8
태초의 불꽃.
내가 기억하기로는, 엘프리데가 지니고 있는 최강의 궁극기 같은 것이었다.
십 여분 넘는 긴영창 시간을 가진 마법은 불 속성의 기본 마법인 화염구와 같은 작은 구체를 허공에 발사한다.
그러나 그 위력은 화염구와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닿은 것 모두를 전부 불태울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발산했던가?
그아아아-!!
그것을 우습게보고 있던 이 울가르트의 거인은 마침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엘프, 이건, 이건 아, 으아, 으어아아아-!
녀석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삭하게 익어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고통스러울 테지. 산채로 불에 타는 것만큼 끔찍한 것이 또 있을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녀석의 손바닥에 억눌려 있던 나 또한 이 끔찍한 열기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불을, 불을 꺼야 한다!
화악, 화악-.
그때 거대한 부채가 사방을 뒤흔드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거인 녀석의 거대한 날개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엘프리데의 궁극기는 정말 지독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바람 따위로 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아아아-!! 수르트의 불꽃인가!? 생명을 갉는 기술이라니, 엘프, 이건 네 목숨의 불꽃이다! 너 또한 오래 살지 못할 텐데-!! 어서 불꽃을 거둬라-!!
“하아, 하아…. 화염구-.”
파바바밧-.
수많은 화염탄이 거체에 박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히폴리테와 내가 관절을 혹사시켜가며 고생하고 있는 것처럼, 엘프리데 역시 이 상황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것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나의 몸을 지붕처럼 누르고 있던 손바닥이 옆으로 치워짐과 동시에 거체가 쿵-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때서야 나는 지금까지 악물고 있던 턱에 힘을 빼고 숨을 몰아쉴 수가 있었다.
얼마 전 체력 스텟을 잔뜩 투자했기 때문에 망정이지, 버티지 못했다면 그대로 납작한 쥐포가 되어버렸을 테지.
“흥, 별 거 아니군. 사마리안, 다친 곳은 없나?”
나는 거친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밀쳐 올리느라 고생하고 있었던 히폴리테는 어느새 기세를 갈무리한 모양이었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으나 같은 고생을 한 사람 답지 않게 여유가 있는 걸 보니, 과연 그녀와 나의 거리가 아직 멀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애초에 히폴리테라면 녀석의 손바닥 공격을 쉬이 피할 수 있었을 테지. 내가 납작해지는 걸 막기 위해 같이 버텨준 것이지 싶다. 실제로도 그게 맞을 것이고.
“하-, 스벌.”
여러 감상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튼 살아남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화륵-화륵하고 타오른 거대한 신체는 이윽고 근육과 살, 깃털 따위의 모든 것을 태워 하얀 백골만을 남겨 버린다.
매캐하고 이상야릇한 탄내음이 사방에 진동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에, 비교적 상태가 멀쩡한 나와 히폴리테가 엘프리데와 안티오페의 부축해 일으켰다.
“으, 뭐야, 뭐지? 벌써 끝났어?”
거인의 어깨에서 떨어졌을 때 머리를 부딪친 걸까? 이마에 커다란 혹이 난 안티오페가 나의 뺨따귀 몇 대에 정신을 차려 눈을 끔뻑거렸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엘프리데의 상태는 영 좋질 못했다.
“흐으, 하아….”
우리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못하고 숨을 헐떡일 뿐.
붉은 눈동자에는 동공이 풀려 있고 그 볼과 이마는 정말 불에 타는 것처럼 펄펄 끓는다.
그런 엘프리데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고 있던 히폴리테가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마력이 폭주하는군. 한계를 넘어서는 재주를 부리면 이렇게 되기 마련이지. 성수 남은 게 있나?”
히폴리테의 말에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꾸러미에서 유리병 한 병을 꺼냈다.
몇 골드를 들여 샀던 상급 성수 병이 전부 다 깨지거나 잃어버리고, 결국 남은 것은 이것 하나 뿐.
히폴리테는 그것의 마개를 딴 뒤에 그 안에 들어 있는 하얀 빛 감도는 액체를 엘프리데의 이마에 차르르 뿌려주었다.
치이익-.
그러자 잘 달궈진 불판에 물을 뿌린 것처럼 하얀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그 덕인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던 엘프리데의 상태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흐….”
“상태가 많이 좋아졌군.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다. 빠르게 치료소에 데려가는 게 좋겠지. 방금 전투로 심연의 존재들이 우리에 대해 눈치 챘을 거다. 차원문인지 뭔지를 빨리 찾아,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한다.”
스륵-.
히폴리테는 아직 정신을 못차리는 엘프리데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뒤에, 거대한 의자에 다시금 다가갔다.
그러자 활활 타올랐던 불길 속에서 기이하게 빛나는 주문진 같은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동그란 원형에 소용돌이처럼 뱅글뱅글 그어진 선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봐도 이게 차원문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엘프, 이게 네가 말한 차원문 같은데. 작동시킬 수 있겠나?”
“…메르큐리-.”
엘프리데의 자그마한 읊조림과 함께 우우웅-하고 빛을 뿜어내는 소용돌이의 마법진.
이윽고 우리들 전부 화사한 빛에 감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어둠 속에 있었다.
다만 깊은 밑바닥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 아닌, 작게 타오르는 화롯불이 빛나는 방 안 비슷한 것이 보인다.
난로와 침대.
그리고 낡은 고서적들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까지.
아무 것도 없던 심연을 거닐던 우리에게 이 사람 냄새가 물씬 피어오르는 공간은 제법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편으로는 불안함을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더욱이, 의자에 앉아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저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너는 누구지? 백은의 장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히폴리테가 검을 겨눈 채 물었다. 그러자 백색 로브를 걸친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웃는다.
“한번 쯤,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리를 마련했지. 심연 속에, 미끼들을 풀어가며 말이야. 에레보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시 묻겠다, 너는 누구지?”
히폴리테의 말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여차하면 베겠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만을 할 뿐.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는 건지. 너희 아마존들은 시끄럽구나. 이것도 전부 마르스 녀석의 업이지.”
백색 로브의 남자가 의자에 앉은 채로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조용히 있어라.”
그와 동시에 파직-하는 전류 같은 것이 사방으로 튀어 히폴리테와 안티오페 그리고 엘프리데를 가격한다.
“으아, 으어악, 아악-!”
그 강하던 히폴리테가 스턴건에 맞은 사람처럼 바닥에 엎드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안티오페와 엘프리데 또한 마찬가지.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어둠 속에서 우리가 진땀을 빼며 상대했던 거대한 괴물보다 몇 배는 위험한 녀석이다.
내 목덜미를 울리는 위험센서 같은 것이 고장 난 것처럼 저릿저릿해지고 심장이 커다랗게 쿵쾅거린다.
시발, 조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그런 느낌으로 크게 당황하고 있을 때, 남자가 스윽-하고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는 로브를 벗었다.
남자의 머리는 하얀 빛으로 보일 정도로 빛나는 백금발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깊게 들어간 눈은 금색으로 번뜩여서 무척 눈이 부실 정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수염과 눈가의 아래를 살짝 그어내린 주름 또한 완벽하게 조형이 된 것처럼 어딘가 소름끼치는 면이 있다.
인간이 아닌 것만 같은 그 모습에, 나는 녹스님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밤의 여신 녹스님이 아니고, 아마도 다른 존재.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도-.
“당신은 혹시-.”
“됐다. 우리 사이에, 통성명이 필요가 있나? 높은 곳에서 너를 계속 봐 왔다, 지그레스. 보면 볼수록 누군가 떠오르는 모습이지 않을 수가 없더군. 그래서 이렇게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 그게….”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저 힘 있는 존재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였다만, 눈앞의 남자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구태여 심기를 거스르거나 한다면 내 몸이 바싹 구워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 건지….”
“딱히. 할 말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입장이기도 하고. 하지만, 요새 네가 갖고 놀고 있는 장난감은 제법 위험해 보여서 말이야.”
“장난감요…?”
“어른이 된 도리로 주의를 주는 것이 적당하겠지. 앞으로 강령술은 금지다, 지그레스.”
“가, 강령술…이라니.”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내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아.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눈앞의 남자에게는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이 남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빼앗기만 하면 반발을 사기 마련이겠지. 네가 좋아할 만한 보상을 주도록 하마. 먼 대륙의 이방 신도 처리 해줬고, 마땅히 상을 받는 게 당연하겠지.”
“상이요…?”
파지직-.
거친 전류가 튀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체 뭐지 싶어서 당황하고 있을 때, 그는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와 나의 복부에 자신의 손바닥을 구겨 넣었다.
콰드득-.
손바닥을 구겨 넣었다는 표현보다 정확한 게 없을 것이다.
이 남자의 손이 지금 나의 뱃가죽을 뚫고 관통하듯 들어가 있는 것이다!
“흐아어어아-!”
뱃속의 내장과 장기를 손바닥으로 헤집는 그 기묘한 감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고통스럽지는 않은데,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았으니까.
“역시 봉인되어 있나. 열심히 그릇을 만들긴 했다만, 마지막에 와서 억눌러버렸군. 그러고 보면, 그는 언제나 근심과 걱정이 많은 남자였지.”
“으에엑-!”
“아, 잘못 건드렸다. 뭐, 실수할 수도 있지.”
“히이이이!”
“…생각보다 어려운데,”
“흐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끔찍한 감각이 대체 언제쯤 끝나고 있을까 싶었을 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손바닥과 무릎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뒤늦게서 다가오는 통증.
내 배를 휘젓고 있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의자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있다.
“델포이로 가라. 그곳에 가서 네 운명을 받아들여라.”
“델포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제 이게 끝이군. 그럼 이제 에레보르 당신 차례이오만, 당신은 할 말이 없소?”
남자의 눈이 나의 어깨 너머를 응시하는 듯했다. 내 어깨 뒤에 누가 있는 건가? 그런 생각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
딱히-.
“뭐, 그렇겠지. 아무튼 내가 할 말은 끝났소. 이제 에레보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콰르릉-.
커다란 천둥 소리와 함께 백색 로브의 남자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게 모습을 감췄다. 그가 앉아 있던 의자만이 번개 맞은 것처럼 불에 타고 있을 뿐.
실제로 번개 맞은 것과 다를 바가 없겠지.
이제 끝난 건가, 그렇게 살짝 안도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그레스.
숨이 막혀오는 압박감 같은 것에 나는 정신을 가다듬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 뱃속을 직접적으로 휘저은 탓이 있는 것인지 눈앞이 점점 가물가물해진다.
나 에레보르에게는 규칙이 있다. 심연에 들어온 것들 중 하나는 나의 것으로 바쳐야 한다. 지그레스, 이들 중 제물로 바칠 여자를 정해라.
제물로 바칠 여자를 정하라고?
나는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큰 진동이 벌어지며 이 비좁은 방 안의 구조가 변한다.
그리하여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이한 갈고리였다. 교수대처럼 높이 솟은 장대에 달린 날카로운 갈고리에, 제법 익숙한 여성들의 있는 것이다.
“델피나-?”
그것은 델피나와 그녀를 제외한 파티원, 리리와 에드윈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그녀들이 갈고리에 매달려 있는 모습에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너와 같이 온 이들 중 한 명을 제물로 바쳐라. 그리하면 나머지는 모두 보내주도록 하지.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내 발밑에 엎드린 채 바르르 떨고 있는 여자들을 바라봤다. 히폴리테 그리고 안티오페와 엘프리데.
히폴리테와 엘프리데는 이미 정신을 잃은 지 오래고, 안티오페만이 공포로 얼룩진 눈을 한 채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그 강렬한 번개를 맞고도 기절하지 않다니. 그녀가 튼튼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등에 그려져 있는 번개 모양이 저항감이라도 만들어줬는지 모를 일이다.
“아, 안 돼. 제물, 제물 싫어. 나, 날 바칠 생각이지. 내가, 내가 가장 너와 친하지 않으니까!”
그냥 기절하지 않은 게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던 것인데. 안티오페는 그런 내 생각을 멋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상황이 상황이니 패닉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다. 나였으면 거짓말 안하고 오줌을 지렸을 거다.
“제물이라니….”
이들 중 한 명을 바쳐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고?
무척이나 부조리 했다.
그와 동시에 좋지 못한 생각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느낌도 있었다. 나의 눈은 기절한 채 땀을 흘리고 있는 엘프리데를 바라봤다.
저 녀석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떠올려 보면, 지금도 이불을 불쑥불쑥 걷어차며 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만약 이 중에서 한 명을 포기하라면, 당연히 엘프리데가 되겠지.
하지만 나는 쉬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혀와 목을 움직여,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 치려면, 녀석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눈앞으로 되새겨지기 시작했으니까.
처음으로 내게 용돈을 주었던 때나.
무사히 함정을 해제해 칭찬을 해줬을 때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겨난 잠깐의 정적.
그 정적을 가르고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약하군.
“예?”
역시, 하이포스의 신들은 틀렸어. 너는 신의 좌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그레스.
“…루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입니까?”
글쎄. 하지만, 내 마음에는 들었다. 네가 누군가 한 명을 바쳤다면, 나는 너 또한 함께 이 심연 속에 가둬버렸을 거다.
기이이익-.
그때 방 한구석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온통 새까만 검정색 뿐.
가라. 이 이상 너를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나 역시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뜻하지 않게 짊어진 지옥의 왕좌는 생각보다 바쁘거든.
이대로 날 보내주겠다고?
이 세상에 무상의 호의는 없는 법이다.
혹시 또 이대로 빠져나갔다간 생각이 바뀐 이 어두운 존재가 함정에 빠졌구나-! 하고 나를 골탕 먹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뇌물도 줄 겸 내가 어깨에 메고 있는 짐짝을 뒤적였다.
“그….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례로는 이 정도 뿐인데요-.”
내가 꺼낸 것은 루나가 자신의 모습을 얼키설키 만든 부두 인형이었다.
재밌군. 좋다, 받아가지.
그것으로 어두운 그림자와 나의 대화는 끝이 났다.
나는 동료들 그리고 델피나를 비롯한 녀석들의 허리를 전부 묶고 난 뒤에 녀석들을 질질 끌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종유석이 튀어 나오고 도마뱀들이 돌아다니는 어두운 동굴 같은 곳이었다.
빛나는 이끼들도, 괴상하게 발광하고 있는 버섯들도 제법 눈에 익다.
때문에 나는 이곳이 해골 기사를 만났던 계곡의 동굴 근처 어딘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우리가 심연의 최하층인지 무엇인지에서 벗어난 것만은 확실했다.
“벗어 난 건가?”
안티오페가 자신의 이마에 난 혹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봤다.
“젠장, 젠장-. 내가, 내가 방금 뭘 봤던 거야. 젠장-.”
묘하게 진정하지 못한 것처럼 욕지기를 내뱉는 안티오페에, 나 역시 그때서야 심장이 몹시 쿵쾅거리고 속이 다 울렁거렸다.
“뒤지는 줄 알았네.”
“우리 전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우리가, 우리가 방금 누굴 만났던 건지 알기나 해? 아, 이게 대체 뭐지?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도 않을 거야!”
“스벌, 그렇겠지.”
“반응이, 반응이 뭐 이리 미지근해! 우리들은 위대한 존재들을 목도 했던 거야! 나는 숨 쉬는 것조차 힘 들었다고…!”
“아무튼, 살아남았으니까 됐잖아. 빨리 나가자. 얘네들 좀 업어 봐.”
“그런 웅대한 존재들과, 아무렇지 않게 말을 섞다니. 이해할 수 없어. 너, 대체…. 그들도, 너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말을 했고. 이게, 이게….”
안티오페는 방금 있었던 일에 어지간히도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 녀석은 쥬피테르를 섬기는 신전 기사단. 자신이 섬기며 기도해오던 그 중심을 만났으니 돌아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렇게 한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우물쭈물하던 안티오페는 이윽고 나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저기, 그, 핫산…님.”
[작품후기]오늘은 4연참을 해봤습니닷…그야말로 궁으로 상대 타워에 다이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
그 반동으로 조만간 우물에서 하루 쉴지도 모릅니닷…ㅠㅠ….
239회
여름의 끝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