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322
324 죄의 삯 #1
“그래, 잘 생각했소. 이 근방은 에키드나가 지배하고 있는 마물의 숲이 있기 때문에 해가 금방 저물지. 이대로 숲에 있다간 마물들에게 습격을 당할 수도 있고.”
“….”
“이 숲에서 야영하는 것보다야, 지붕도 있고 벽도 있는 미궁이 훨씬 낫소. 숲지기인 내가 하는 말이니까 이건 확실하지.”
“….”
“미궁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중반부까지 거점이 확보되어 있어서 통제는 완벽히 이뤄지고 있소. 위험할 것도 하나 없어.”
스스로를 숲지기라고 말한 사내는 앞서가는 도중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떠들었다. 마치 조금의 침묵이라도 허용치 않으려는 것처럼 입을 벌리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런데 원래 자그마한 족속들이 다 그랬다. 님프도 그렇고, 난쟁이들도 그렇고 떠들어대는 걸 좋아하니까.
“아, 댁들에게 내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았소. 나는 델포이 행정청의 외곽부서 8급 관리인 산림감시관 탈리스요. 혹시 내 직책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질문을 하는 것 같기에 나는 적당히 대답하기로 한다.
“아뇨.”
“그렇겠지. 남들이 들어도 딱 모를 법한, 그런 변변치 않은 일을 하는 한직의 부서거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고, 반대로 일을 안 해도 티도 안 나는 그런 직종이오.”
스벌, 일을 안 해도 티가 안 난다니?
말단 관리더라도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나름대로 쏠쏠한 안정직으로 가늘고 길게 벌 수 있는 직종일 텐데 일도 안하고 놀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매리트가 아닐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스로를 탈리스라고 밝힌 숲지기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쏠쏠한 부업도 할 수 있지. 밤이 되면, 나는 이렇게 미궁의 견학을 안내 해주는 유희사업가가 된다고 할까.”
그때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히폴리테가 한 마디 한다.
“관리의 겸업은 금지되어 있을 텐데?”
“물론 그렇소만, 그냥 비밀로 하는 거지. 이렇게 부업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팍팍하기도 하니 어느 정도의 부업이야 사실 넘어가주는 추세요. 자, 아무튼 거의 다 왔소.”
이 남자는 우리를 플루토의 미궁으로 이끌고 있었다. 방금까지 부업이니 견학이니 떠들어대는 폼이 상당히 수상쩍기 없어서 긴장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자선사업처럼 선행을 베푼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세상에 무상의 선의는 없다는 게 내 철칙이었다.
선의라는 가면을 쓴 장사꾼들은 흔히 이 남자처럼 말이 많기도 한 편이고 말이다.
그런데도 이 남자를 따라나서기로 한 것은, 이 남자가 끝에 말했던 검은 머리의 괴물이라는 것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파스락, 파스락-.
한참 인적 없어 보이는 산길과 오솔길을 지나자 보이는 것은 어둑한 저녁하늘 아래로 빛나고 있는 횃불이었다.
나무 사이에 놓인 기묘한 느낌의 석조 건물. 그 검은 입구 옆에 선 사내 두 명이 횃불 아래로 검과 창을 든 채 눈빛을 번쩍이고 있다.
혹 이 숲을 관리하는 병사들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정규군에 소속된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그들의 복식이 자유롭고 무장도 가지각색인 것이 용병이나 도적 산적이라고 부르면 딱 알맞은 꼴이다.
우리를 발견한 그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숲지기, 그 뒤 사람들은?”
“숲에서 길을 헤매고 있던 분들이지. 위험해 보이기에 이리로 데려왔소. 먹을 것이랑 씻을 곳을 준비해줄 수 있소?”
“그거야 뭐, 당연한 일이지. 아, 하지만 들어가기 전에 여기 이곳에 서명하쇼.”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작은 팻말 같은 것을 내밀어 왔다. 넓적한 나무판에 걸려 있는 가죽 두루마리.
그곳에 적힌 것은 내부에서 본 것을 바깥에서 절대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 같은 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찍혀 있는 해골 무늬의 인장이 나의 눈을 찌는 것 같다.
“데스로스-.”
“오, 그 인장을 알고 있나?”
그것은 뱀이 두개골 사이를 구불구불 스쳐 지나고 있는 무늬. 즉 데스로스의 인간 사냥꾼들을 뜻하는 문양이었다.
내가 어찌하여 이 인장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 근방에서 아직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살짝 오묘한 감상에 잠겨 있을 때 데스로스의 사설 경비로 보이는 용병들이 말을 이었다.
“거기 적혀 있는 사항들을 지키지 않으면, 데스로스의 추격자들이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찾아가 죄의 삯을 물을 거요.”
그리고는 크흐흐, 하고 낮으면서도 음울한 목소리로 웃는 경비들에 루나가 궁금한 게 생겼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죄의 삯이 뭔데?”
“그야 당연히 죽음이지. 아무튼 환영합니다. 잘 들어가시고, 부디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요, 아가씨들. 그보다 사마리안이….”
루나나 히폴리테 같은 여성들을 슥슥 훑다 이내 나를 바라보는 남자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소?”
그들은 곧 나를 향해 의심의 날이 선 듯한 목소리로 인연을 확인하려 든다.
나는 혹 이들이 2년 전 데스로스의 투기장에서 근무했던 경비들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나를 본 기억이 있을 테지. 하지만, 아직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심드렁히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그런가, 아무튼 들어가쇼.”
그리하여 우리는 경비들이 열어주는 어두컴컴한 입구로 몸을 들이 밀 수가 있었다. 습하고 꿉꿉하면서도, 안쪽으로부터는 기묘한 냄새가 나는 것이 묘하다.
그르으….
또 야생 짐승인지 마물의 것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폼이 으스스하기도 했다. 그때 히폴리테가 차가운 돌벽을 손바닥으로 슥-훑더니 한 마디 한다.
“아무래도, 이곳은 델포이 당국에 신고 되지 않은 미궁인 모양이군. 간혹 도굴꾼이나 산적들이 미신고의 미궁에서 터를 잡는 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보다 우리가 누군지 신원도 확인을 안 하네?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진행하도 되는 건가?”
엘프리데는 제법 이해가 안 간다는 것처럼 혼자 물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이 미궁이 신원확인 같은 복잡한 짓거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보다 앞서 걸으며 미궁을 답파하고 있던 숲지기가 말 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 거요.”
“뭐? 왜 그럴 필요가 없는데?”
“누가 들어오든, 어떤 문제를 일으키든 통제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지. 데스로스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곳에서, 감히 누가 문제를 일으키겠소?”
그는 그것으로 설명이 충분하다는 것처럼 말을 멈췄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조잘조잘 떠들고 있던 것과 다르게, 미궁으로 들어온 그는 비교적이게 과묵할 정도라 느낌이 이상하다.
아까 그 모습이 진짜 숲지기일까, 아니면 지금 이 모습이 숲지기의 진짜 모습일까.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진짜 핫산 말대로야. 이 앞에 있는 뭔가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아!”
내 옆에서 카르마 탐지기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루나.
“지하에 있어서 빙글빙글 돌았던 모양이구나. 글로리아의 오빠가 정말 이런 곳에 있다는 걸까?”
루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물었지만 히폴리테는 쯧-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플루토의 미궁에 있다는 말이 뭘 의미하겠나? 이미 죽어 망자가 되었다는 소리겠지. 플루토의 미궁이란 본디 산적들의 소굴도, 도굴터도 아닌 지옥 그 자체니까.”
히폴리테의 기분은 미궁에 들어온 뒤로 그리 썩 좋아보이질 않았다. 그것은 엘프리데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둘은 자꾸만 인상을 쓰거나 헛기침을 이어갈 따름.
물론 이해는 한다.
히폴리테의 말대로 본디 미궁은 지옥의 입구다.
그런 곳에 산자가 발을 들이밀면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겠지. 심지어 그 패러노이도 무척 기분이 나쁜 것처럼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다.
“감히, 감히 플루토 님의 미궁을 데스로스 같은 도적 따위들이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니! 모두, 모두 사형입니닷…!”
물론 이 녀석이 기분 나빠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지만. 그때 앞서 걷고 있던 숲지기가 걸음을 우뚝 멈춘다.
“님프 아가씨는 플루토 신도, 사교도인 모양이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서 무척 기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요.”
“기쁜 경험이라면 혹시 사탕이 있습니까…? 아니면 과자…? 아니면 산더미처럼 쌓인 금화입니까…?”
“…사탕? 아니, 그건 모르겠고. 이 안 깊숙한 곳에는 명왕 플루토의 대리자가 있소.”
그것에 반응한 것은 오히려 히폴리테다.
“플루토의 대리자라니, 그게 정말인가?”
“뭐, 보면 알 테지.”
히폴리테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한 숲지기가 마침내 기묘한 레버 같은 것을 힘껏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던 벽이 천천히 밑으로 열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수없이 빛나는 횃불, 그리고 가득 모인 사람들을 비춰주는 게 아닌가?
그래, 그래! 죽여! 죽여라!
대가리를! 그래! 그렇게 좀 치라고! 아이, 새끼 저녁부터 꼴 받게 하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날선 외침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한 광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완전, 지하 경기장이군. 이런 형태의 미궁도 있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다만….”
히폴리테의 말대로였다.
레버를 작동하여 드러난 거대한 공동, 아래를 향하여 뚫려 있는 그 넓고 동그란 공간은 지하 경기장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지상에 있었던 데스로스 투기장이, 화재와 함께 지하로 내려온 것인가.
나는 그만 눈앞이 아찔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눈을 돌리거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뇌리에 생생히 박아 넣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곧 이곳이 내가 알던 데스로스의 투기장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는데.
그르으아아-!!
“히, 히이익! 살려줘! 사, 살려 달라고! 취소! 취소 할게! 도전을 취소할 테니-으아아악!”
그르으으으-.
아, 결국 11막까지 버텨오던 여전사 선수-! 11막의 수호자인 마른 뼈, 케인 빌리커스에게 당하고 맙니다…!
그런 나의 눈 아래에는 누군지 모를 여성이 검을 쥔 해골에게 찔려 피를 뿜어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해골과의 싸움이라니.
데스로스 투기장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짐승의 싸움은 많이 붙였어도 이렇게 노골적인 살인 쇼는 보여주지 않았을 터.
“그야아악!”
카르아아아-!!
다만 그것이 무척 끔찍한 장면이었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것은 내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루나가 버럭 화를 내버리고 만다.
“망자와 영혼들을 볼 거리로 다루고 있잖아? 혼령들을 이용해서 유희를 즐긴다니!”
부두술사인 루나에게 있어서 망자들을 볼 거리로 다룬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인 듯했다. 그렇게 파르르 떨고 있는 루나를 향해 숲지기가 묘한 웃음을 띄운다.
“아가씨, 그렇게 화냈다간 앞으로 있을 일을 보면 기절하겄소.”
“앞으로의 일?”
루나가 의아함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나는 모두의 시선이 이 지하 투기장 내에서도 가장 높고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곳에는 이 미궁, 이 지하에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자리 같은 것이 설치가 되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비단 깃발이 걸린 자리. 마치 왕좌와도 같은 황금빛 장식이 빛나는 의자에 기묘한 무언가가 앉아있다.
그것이 붉은 액체가 들린 와인잔을 이리저리 빙글거리며 가볍게 말을 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일순 싸늘하게 식었다. 방금까지 모두가 떠들어댔던 것이 거짓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침묵이 좌중들 사이를 내리 누른다.
일어나라, 쓸모없는 것. 쓸모없고, 쓸데없는 것아. 일어나 싸워라-. 겨우 죽은 것 정도로 쉴 생각은 아니겠지?
그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얼마간 핥듯이 퍼졌을까.
그으, 으아으으….
곧 모두의 눈앞에서 피를 뿜어가며 죽어가고 있던 여성 검사가 기묘한 신음을 흘리며 되살아났다. 아니, 저걸 살아났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르아으으-!
그아아-!
그 뒤 다시금 싸우기 시작하는 해골과 여성 검사를 보면 그런 의문 정도야 아무래도 관심이 없어지고 만다.
나는 결국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뭐겠소. 간단한 소일거리지. 형씨들도 도전해보지 않겠소? 20단계까지 있는 무대를 모두 처리하고 나면, 이 미궁의 주인에게 도전할 권리가 생기지.”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고 도중에 포기해도 되지만-하고 말을 뭉뚱그리는 사내에게 묻는다.
“주인에게 도전을 하면?”
“그럼 이 미궁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거요. 저기 저 휘황찬란한 의자에 앉아 있는 해골 대신에,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생기는 거지. 히야, 참 부럽지 않소?”
나는 잠깐 생각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 틈을 타 히폴리테가 한 마디 묻는다.
“그 주인이라는 것이, 저기 저곳에 앉아 있는 언데드 강령술사인가? 과연 대리자라 부를 만은 하군.”
“언데드 강령…? 나는 그런 건 잘 모르오. 그냥 이곳에 도전할 사람들을 몇몇 소개해주고 푼돈이나 받고 있는 거지. 아무튼 잘 생각해보쇼. 만약 참가하고 싶다면 1실버를 내면 되고.”
그럼 난 이만 가보겠소-하고 숲지기는 책임감도 없이 발걸음을 돌려 버린다.
결국 우리는 이 기묘한 투기장의 관중석에 남게 되었는데, 이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엘프리데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한 마디 설명했다.
“저거, 아무리 봐도 리치네. 이런 미궁에 리치가 있었을 줄이야. 우리만으로는 상대하기 버거울 수도 있겠는데. 핫산, 너 플루토의 아들이라며. 그럼 저 녀석도 네 친구 같은 거 아냐?”
엘프리데가 나보고 뭐 어떻게 좀 해보라는 것처럼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끝없는 플래시백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쓸모없는 녀석. 쓸데없는 녀석! 어서 일어나! 일어나서 싸워! 죽기 전까지 네게 휴식이라고는 없다-!
인격과 인신의 모독을 서슴지 않는 악덕 사장 같은 말씨.
몇 달간 뇌리에 박히듯 했던 그 강압적인 목소리.
지금도 종종 악몽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그 존재가, 불에 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악몽이 지금 버젓이 나의 앞에 앉아 붉은 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악몽에서나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까지 하다.
자, 다음 도전자는 없나? 참가비 1쿠퍼. 이겨내는 무대 하나당 참가비 두 배의 값을 배당 받을 수 있지. 20단계까지 버텨낸 용자는 100골드가 넘어가는 답례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웅성, 웅성-.
100골드라는 말에 주변의 청중들이 크게 술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1쿠퍼로 100골드까지. 100골드라면 그 어떠한 쓰레기 같은 것들도, 쓸모없는 삶도 가치있게 만들어 줄 테지. 자, 도전해라. 끝까지 싸워 금빛의 영광을 얻든가-.
“아니면, 처참하게 쓸모없는 시체가 되거나겠지. 스카르가드-.”
스윽-.
나는 무대 가까운 난간까지 나아가며 말했다. 그러자 공허한 붉은 안광이 나를 향하는 것이 보인다.
그 대사는 옛적에 바꿨어. 끝까지 싸워 금빛의 영광을 얻든가, 시체가 되어 나를 위해 싸우게 되든가다, 쓸모없는 것아.
“….”
나는 더 이상 말 할 것도 없이 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살점하나 없는 백골 위로, 놈의 뱀같았던 얼굴이 생생히 덧붙여지는 것 같다.
달그락-.
녀석이 마른입을 벌려 말 한다.
오랜만이구나, 쓸모없는 떨거지 녀석. 사마리안 주제에, 사람하나 죽이지 못해 벌벌 떨던 애송이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왔지?
“날 기억하나?”
기억하냐고? 그야 당연하지. 네가 태운 불길의 통증이 없는 살을 태우는 것 같거든. 매일 밤 네 살을 씹어 먹는 것만 생각했는데, 잘 됐네. 그래서 도전 할 거냐?
“….”
거둬주고 먹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머저리-! 너에게 죽어 억울해 하는 카스토르의 원망어린 비통이 들리지도 않냐?
“여기에 있지, 그 녀석.”
그흐흐, 그래. 있다. 믿었던 친구에게 찔렸던 녀석이, 곱게 죽을 수 있었겠어? 만나고 싶다면 도전해.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지.
“패러노이, 동전.”
“알겠습니닷…!”
나는 패러노이의 입에서 떨어지는 1쿠퍼짜리 동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엄지와 중지로 힘껏 튕겨 높은 곳을 향해 쏘아낸다.
피슝-.
손가락에 튕겨나간 금속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리치, 스카르가드의 옆에 서 있던 해골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바스슥-하고 박살이 나는 두개골.
이 자식이, 내가 아끼는 스컬 워리어를….
“거기서 잘 봐둬.”
나는 마침내 난간을 훌쩍 뛰어넘어 무대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