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20
60 잘 못 하거든요, 이런 건 (1)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저택을 봐요. 수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이 거대한 저택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존뿐이었다. 사용인이 들락날락한 흔적은 있지만, 상주하는 인원은 없었다.
이 거대한 저택에 존은 늘 혼자였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이 안에서 존은 언제나 뼈에 사무치도록 외로웠다고.
‘이런 외로움이 사람을 얼마나 좀먹는지 알고 있거든요.’
나 또한 설록진의 밑에 있을 때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내가 정을 준 이들은 모두 죽었고, 설록진을 아는 사람들은 내 시선이 닿자마자 치를 떨며 도망갔으니.
그놈의 생일 파티 이후로는, 내게 말을 붙이는 직원들마저 사라졌을 정도다. 혹여나 나에게 말실수를 할까 봐 무서워 그런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지독하게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거요.’
원래도 나는 그리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육원에서도, 헌터 아카데미에서도 나는 늘 모난 돌이었고 언제나 사람들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바빴으니까.
그래도 말이지, 그런 식으로 아무도 내 말을 받아 주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상황에 내게 말을 건네주는 건 오직 설록진뿐이었다. 그래도 나라는 사람을 챙기는 건 그놈뿐이었다는 거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죠. 흙탕물이 가득한 오아시스라서 그렇지.’
━그래서 그 녀석이 널 아껴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설록진은 내게 제법 관대했다. 툭하면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엇나가는 나를 살려 둔 게 그 증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제법 나를 아낀다는 티를 팍팍 내긴 했지. 설록진이 아낀다는 애완견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말이다.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호되게 혼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 직접적인 해를 입힌 적은 없거든요.’
자신이 하는 말만 잘 듣는다면, 설록진은 제법 관대한 주인이었다.
━그래서 설록진이 좋은 주인이었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뭐냐?
레이의 말에 나는 생각을 멈췄다. 그렇게 들렸나? 아니, 잠깐. 정말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애초에 네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며, 저들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행동하라고 말하는 걸 ‘아껴 준다’고 말할 수 있는 거냐?
레이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건 아껴 주는 게 아니야. 또 다른 방식의 학대일 뿐이지.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레이가 덧붙였다.
━그 녀석은 끔찍한 인간이었어. 너에게 잘 대해 줬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 녀석이 정말로 너를 아꼈다면, 네게 그런 짓을 했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도 네가 그 녀석이 제법 네게 관대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그 녀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겠지.
‘제가 설록진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설록진을 옹호하는 거라고요?’
━그래.
충격이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는데.
‘일단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지금은 존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니까요.’
내 말에 레이가 투덜거렸다.
━꼭 이런 말만 나오면 도망간다니까.
나는 레이의 투덜거림을 애써 무시하고 존에게 시선을 돌렸다. 복잡한 생각을 구석으로 미뤄 놓고 나는 존에게 물었다.
[앞으로는 어쩔 생각입니까?]
[어, 글쎄요.]
존은 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몇 년간은 그냥 다이애나가 원하는 대로 살아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가. 확실히 이 거대한 저택에서 인형처럼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네 멋대로 살라고 해 봤자 막막할 뿐이겠지.
존은 확실히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이렇게 살라며 존에게 조언하는 것도 맞진 않는데……. 내가 대답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 맞다.]
존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캐시 티켓을 나에게 건넸다.
[이거 돌려드릴게요.]
없던 욕심도 생길 만한 액수였지만, 내게 티켓을 건네는 존의 얼굴에는 그 어떤 아쉬움이나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사람이었지.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져요.]
[예에?]
내 말에 존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렇게 큰돈을 저한테 주신다고요?]
[예. 빨리 교환하러 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카지노 곧 망할 거니까.]
[카지노가 왜 망,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이 큰돈을 저한테 준다는 겁니까?]
과거의 인연에 대한 보상이라는 게 내 대답이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존에게 그런 말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겠지.
[그냥, 당신이라면 그 돈을 아주 잘 써 줄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나는 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태까지 했던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보상이라니…….]
[여기에서 몇 년이나 날렸잖습니까. 그 대가라고 생각해요. 나도 그쪽 보스를 치면서 나름대로 챙길 걸 챙겼으니, 그쪽도 챙기라고요.]
이건 사실이다. 다이애나의 비밀 금고에는 현금과 귀금속이 잔뜩 있었으니까. 거기에서 찾은 것까지 모두 현금화시키면 못해도 몇십억은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정도 돈을 존에게 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설명에도 여전히 존은 내게 티켓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돈을 제가 가질 이유는 되지 않죠. 저 말고도 훨씬 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럼 그걸 목표로 하면 되겠네요.]
[예?]
[조금 전에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잖아요. 그 돈이 더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나눠 주는 거요. 그걸 목표로 해요.]
[그게 무슨…….]
여전히 어리둥절해 보이는 존에게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쨌든, 이미 그건 내 손을 떠난 돈이에요. 그러니까 갖기 싫으면 당신 마음대로 처리해요.]
내가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달은 존은 곧, 어떤 결심을 했는지 내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 데에 쓸게요. 이 돈.]
[당신을 위해서도 쓰고요. 일단은 당신 몸부터 잘 챙겨야 하는 거 알죠?]
다른 이를 돕는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남을 돕지 않고 그냥 나 혼자 잘 사는 게 백 배는 더 편한 길이다.
하지만 존은 신에게 다가온 행운을 그냥 움켜쥐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존이라면, 저 돈을 허투루 낭비하지는 않을 거다. 정에 너무 약해서 그렇지, 바보처럼 돈을 낭비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일단은 여길 벗어나 볼까요.]
* * *
존은 우리와 함께 호텔로 가기로 했다. 일단은 그곳에서 머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기로 했다.
존을 끌고 온 나를 보며 한서현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포기한 듯 한숨과 함께 독수리를 불러냈다.
[와우.]
존은 조심스럽게 그 위로 올라탔다. 덜덜 떠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냥 혼자 두고 가기에는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그러게 아까 니키라는 여자한테 존도 같이 부탁하지 그랬냐.
‘그 사람들에게 존은 방관자 내지는 동조자로 보일 수도 있잖습니까. 혼자 거기에 끼어 보낼 순 없죠.’
새를 조종하고 있는 한서현은 여전히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단단히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네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얼마나 한서현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무시라니. 얼토당토않다. 다만, 살인만큼은 아직 허락하고 싶지 않은 건데…….
━확실하게 말해 둬야 할 거다.
‘예.’
레이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으으,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이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호텔로 가서 제대로 말을 해 봐야지.
한서현이 조종한 새는 금세 호텔에 닿았다. 존은 비틀거리며 아래로 내려섰다. 한층 창백해진 표정의 존을 보며 나는 얼른 말을 건넸다.
[일단은 저 호텔에 가서 쉬어요.]
[으, 예…….]
뭘 할 상황이 아니지.
[몸이 괜찮아지면 바로 그 티켓부터 현금화하고요.]
지금은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물밑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던 다이애나가 사라졌으니, 카지노는 곧 망하고 말 거다. 내 경고에 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호텔로 들어가는 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막상 이렇게 보내고 나니 영 불안한데.
‘음,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으면? 설마하니 저 사람까지 끌고 올 생각은 아니지?
‘아니죠.’
자신을 보호할 수단도 전혀 없는 일반인을 데리고 올 수는 없지. 그래도 왠지 걱정이 돼서…….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나 봐요?”
삐딱한 한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있는 한서현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불량 청소년 그 자체였다.
“아니야, 하나도 신경 안 쓰여.”
내 말에 한서현의 표정은 더 사나워지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나를 노려보던 한서현이 여전히 삐딱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얼른 들어가기나 해요. 우리 해야 할 말이 많잖아요?”
“그, 그렇지.”
끄응, 더는 피할 수 없겠구만. 그렇게 한서현과 김재호를 데리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내 눈에 신경 쓰이는 실루엣이 하나 걸렸다.
“음, 일단 너희 먼저 들어가라.”
“또 왜요.”
“저 앞에 있는 푸드 트럭에서 먹을 거 사서 들어갈게.”
내 말에 눈을 빛낸 김재호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갈래.”
“아니, 재호도 서현이랑 같이 들어가.”
나를 노려본 한서현이 김재호의 팔뚝을 툭 쳤다.
“들어가자.”
“왜?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혼자서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잖아.”
누가 봐도 비꼬는 말투다, 저거. 하지만 찔리는 게 많은 죄인인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김재호는 한서현의 경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니까 나도 같이 가고 싶다고.”
“형까지 나 속상하게 할 거야?”
크흠, 나는 한서현의 말을 못 들은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김재호는 결국 한서현의 손에 이끌려 호텔 안으로 끌려갔다.
“많이 많이 사 와!”
김재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내고 나는 바로 푸드 트럭으로 향했다. 나는 핫도그 하나를 주문했다.
━하나만 사는 거냐?
‘예, 애들 줄 거는 이따가 사 갈 겁니다. 이건 다른 녀석의 몫이거든요.’
여기에서 저번에 마주쳤던 꼬맹이 말이다.
핫도그를 산 나는 저번에 녀석을 발견한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역시 내가 아까 본 게 헛것이 아니었다. 벤치 뒤에는 눈에 익은 자그마한 몸뚱어리가 있었다.
[안녕.]
지나가는 사람을 피하듯이 등을 돌린 녀석에게 나는 인사를 건넸다. 내 인사에 작은 어깨가 잘게 떨렸다.
[얼굴도 안 보여 줄 거야? 핫도그도 사 왔는데?]
내 말에 녀석이 슬금슬금 고개를 돌렸다. 그 녀석의 얼굴을 본 순간, 내 얼굴에 맴돌았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내 질문에 녀석은 황급히 무릎 사이로 얼굴을 감췄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내 눈에는 시퍼렇게 멍이 든 녀석의 얼굴이 들어온 다음이었으므로.
[누가 이런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 가뜩이나 볼품없는 얼굴이 아주 못 볼 꼴이 됐는데.]
[지금 누구더러 못생겼다는 거예요?]
내게 빼액 외치는 녀석을 보며 나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기운을 차렸네.]
나는 할 말을 잃은 녀석에게 핫도그를 건넸다. 녀석은 우물쭈물하면서도 내게서 핫도그를 받아 갔다.
[일단 먹어.]
온종일 배를 곯았을 녀석에게 윽박부터 지르고 싶진 않았다. 일단 얘기를 나누기 전에 배부터 채워 줘야지.
━그리고 나면?
‘들어야죠, 저 때릴 데도 없는 애를 누가 저 꼴로 만든 건지.’
━답이야 뻔할 것 같다만…….
그게 문제다. 나도 레이와 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
‘그래도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야죠.’
만약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이 녀석을 이렇게 만든 범인이라면, 글쎄. 더는 좋은 사람인 척을 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제2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