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77
75 다시, 중국 (2)
━냄새가 난다니 무슨 말이냐?
‘부작용이 없는 마약이라니. 너무 좋게 들린단 말이죠.’
마약이 왜 마약이라고 불리나. 그건 순간의 쾌락을 얻는 대가로 수많은 것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부작용도 없는 마약이라.
지금도 해독 능력이 좋은 각성자의 몸에는 그 어떤 부작용도 남기지 않는 마약이 있기야 했다. 하지만 샤오첸이 개발한 약은 일반인들에게도 그 어떤 부작용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약이 개발되었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요.’
━과거와는 달리 은월회가 망하지 않았으니, 그 나비 효과로 그 약이 개발됐을 수도 있지.
레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지만, 어쩐지 그 약 자체가 구리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치앤츠리앤이 말을 이었다.
“샤오첸이 개발한 약은 마치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줘요. 정말로 아주 좋은 꿈이요.”
하지만 중독성도 없고, 부작용도 없단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도 지장이 없다고.
“신체에 그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그 어떤 부작용도 남기지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그 약의 이름을 ‘메이멍’이라고 지었어요.”
메이멍, 한국어로 하자면 미몽. 말 그대로 아름다운 꿈이라는 뜻이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꿈’이라.
“그런 꿈이라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꾸고 싶어 하겠네요.”
“그걸 탓할 수야 있나요.”
정신적인 중독성은 별개라는 뜻인가. 신체적으로 중독성이 남지 않을 뿐,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건 다른 마약들과 별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런 걸 부작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약들에 비하면 메이멍의 중독성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어요.”
치앤츠리앤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실물을 보기 전까지는 무어라 말을 해도 의미가 없는 트집 잡기에 불과할 거다. 나는 치앤츠리앤에게 물었다.
“그 약,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치앤츠리앤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연구실에 있던 샘플은 모두 훼손되었습니다. 저희 쪽에서 보관 중인 샘플이 있기야 하지만…….”
“그것 또한 사라진 겁니까?”
“아니요, 완성품 이전의 것이라 완벽하지 않은 것들뿐이라서요.”
흠, 완성되기 전의 샘플만 있다는 건가. 결국 그것으로 저우샤오첸의 약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일단은 저우샤오첸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 친구가 납치된 곳이 어딥니까?”
“연구실이요. 그 친구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 근처에 그 친구를 지키기 위한 경호원을 배치하긴 했지만, 모두 죽은 채로 발견되었어요.”
“범인이 해성회라는 건 어떻게 알았죠? CCTV에라도 남았습니까?”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지만 확실해요. 그쪽에서 얼마 전 저우샤오첸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영입 제안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거든요. 당연히 샤오첸은 거절했지만요.”
“가족이 은월회에 있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그렇고, 해성회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해성회의 방식이라. 나는 치앤츠리앤에게 물었다.
“해성회는 어떤 녀석들입니까?”
내가 전에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해성회의 ‘ㅎ’자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놈들은 일반 조직원의 입에도 오르내릴 만큼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내 질문에 치앤츠리앤이 답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죠.”
그녀의 얼굴에는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 음, 나는 그녀의 이어지는 설명의 귀를 기울였다.
“해성회는 원래 지린성에서 활동하던 조직이에요. 원래는 러시아 쪽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죠. 하지만 최근 러시아 쪽에서 게이트가 열렸고, 블라디보스토크가 초토화되면서 해성회와 그쪽의 동맹 관계도 흔들리게 되었죠.”
아, 그랬던가. 러시아 쪽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말이지. 나는 숙소에 돌아가면 러시아 쪽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머릿속에 메모를 남기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틈을 노려 해성회에는 반란이 일어났어요. 반란을 통해 새롭게 보스 자리에 앉은 놈이 이 모든 문제를 일으켰죠.”
치앤츠리앤은 그 새로운 보스에 대해 말하며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대체 그 새로운 보스가 누구길래?
내 눈짓에 치앤츠리앤이 말했다.
“지금 해성회의 보스는 첸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보스 자리에 앉은 남자죠.”
“오.”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제아무리 막 나가는 범죄조직들이라지만, 몇 가지 규칙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는 거다. 아무래도 좋을 남과는 달리,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철저히 챙긴다는 것. 이른바 ‘꽌시’다. 중국에서는 관계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번에는 우리를 개무시했던 치앤츠리앤이 지금은 우리를 깍듯하게 챙기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그 관계를 무시하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잃는 짓이다.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찍히면, 이 바닥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가족이야 말해 뭐해, 가족의 뒤통수를 치는 놈을 어떻게 믿겠는가.
“대체 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겁니까?”
아버지가 조직의 보스라면, 자신에게도 떨어지는 게 많을 터.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다니.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천륜을 저버린 이를 믿을 수는 없지요.”
하이에나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치앤츠리앤의 경멸도.
치앤츠리앤의 말이 사실이라면, 해성회는 내가 짐작한 것보다도 위험한 놈들일 가능성이 컸다. 이런 상황에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니까. 특히, 첸륜이라는 남자가 그렇다.
‘위험한 놈일 거라는 생각이 팍팍 드는데요.’
쑤어하오주 때와는 다르다. 그녀는 강했지만, 동시에 놀랄 만큼 순진하지 않았는가. 이쪽은 그 반대다. 힘은 약할지도 모르겠으나, 그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이 가지 않는 쪽이다.
“해성회는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지만, 아주 거슬리는 상대죠. 이번 일만 봐도 그래요. 저희 쪽에서 항의를 해 봤자 해성회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할 겁니다.”
해성회는 이곳에 그 어떤 거점도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 은월회가 해성회를 저격해도, 해성회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저희를 부른 겁니까?”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그쪽을 건드릴 수 없으니까요. 만약 저희가 해성회를 친다면…….”
“그쪽에서는 은월회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말하겠죠.”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해성회는 은월회와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지린성에 본진을 두고 있었다. 힘이 약해진 은월회에서 원정으로 전쟁을 벌였다가는 그날로 회의 문을 닫아야만 할 거다.
그래서 치앤츠리앤이 우리를 끌어들인 거다.
전쟁 없이 그놈들에게 한 방을 먹여 주기 위해서.
“저우샤오첸이 이미 그들의 본거지로 끌려갔을 가능성도 생각해 둔 겁니까?”
치앤츠리앤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우샤오첸이 납치당한 건 5일 전 새벽이에요. 지금쯤 어디에 있을 줄 어떻게 알겠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리무진은 호텔 앞에 닿았다. 나는 리무진에서 내리는 대신, 한서현에게 시선을 던졌다.
“서현아, 몸은 좀 어때?”
한서현은 내가 하려는 말을 이해한 듯,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나는 한서현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과 눈을 맞대며 상태를 확인했다. 강철 체력을 가진 김재호는 물론이고 에드워드와 차송진까지, 상태가 모두 나쁘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납치되었다는 연구실로 가 주시죠.”
치앤츠리앤은 놀란 듯 내게 되물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미 납치당한 지 5일이나 지난 상황,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예. 휴식은 필요 없어요.”
내 말에 차송진이 잠깐 앓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우리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었던지라 가만히 입을 닫았다.
━지금 쉬고 싶다고 말했다가는, 사람이 납치되었는데도 자기만 챙기는 비정한 인간이 될 테니까 말이지. 머리를 잘 썼구나.
레이의 말에 나는 억울해졌다.
‘저 그렇게 매정한 사람 아니거든요?’
도대체 나를 어떤 인간으로 생각하는 건지!
* * *
우리는 교외에 있는 한 집에 도착했다. 볼품없어 보이는 집 앞에 멈춰 선 치앤츠리앤은 우리를 안내했다. 예상대로 이 집은 위장에 불과했다. 거실에 있는 책장을 열자,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좁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그곳에는 제법 널따란 복도가 나왔다. 그 복도에 튄 피를 보며 내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치앤츠리앤이 입을 열었다.
“경호원 둘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치앤츠리앤은 확실히 현장을 보존했다. 그 말뜻이 무엇이냐. 경호원의 시체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흘린 핏자국은 그대로 남았다는 뜻이다.
핏자국은 깔끔하게 한곳에 고여 있었다.
기습이었고, 반응할 새도 없었으며, 단번에 경호원의 숨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나는 그 핏자국을 넘어 걸음을 옮겼다. 내 등 뒤에서 차송진이 히익, 하고 기겁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복도를 따라 걸으니, 카드키를 대고 들어갈 수 있는 전자 도어락이 보였다. 하지만 카드키는 누군가에 의해 훼손이 되어 있었다.
“침입자의 짓입니까?”
“예.”
마치 이곳에 카드로 여는 도어락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침입한 것처럼, 정확히 도어락만을 부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하 연구실. 나는 열린 문틈 안으로 걸어가 안쪽을 확인했다.
환기 시설이 잘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지하는 지하. 쿰쿰한 냄새가 나는 방 안에는 과학 교실에서나 볼 법한 기구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약을 만들었다는 건 사실인 듯, 마약 제조를 할 때 흔히 쓰이는 화약 약품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정갈하게 놓여 있는 이 연구실에, 유난히 흐트러진 공간이 있었다.
“샤오첸은 아마도 자는 도중에 습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연구실 한쪽에 놓인 매트리스와 그 주변에 있는 물건들만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특히 입구로 나오는 길에 있는 파일 캐비닛은 완전히 엎어져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자다가 납치되는 도중에 발버둥을 쳐서 캐비닛을 쓰러트렸다? 충분히 말이 되는 가정이다. 그래도 그것뿐. 범인들에 대한 정체를 알아내기엔 여전히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내 마나 회로를 살펴보았지만,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최소 5획은 개방해야 사용할 수 있었다.
‘4획부터는 어떻게 개방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아서 내버려 두었는데, 이거 슬슬 개방을 고려해 봐야 할지도요.’
이런저런 고급 재능은 죄다 위쪽에 몰려 있으니 말이지.
━아니면 그 사이코메트리 친구를 데리고 다닐 수도 있지.
‘그쪽은 멘탈이 너무 말랑말랑해서요.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때마다 그 고통을 받는데, 굳이 데려다가 고생을 시키고 싶진 않네요.’
설록진에게 시달려 정신이 붕괴될 뻔한 게 겨우 며칠 전인데, 이번 일에 그 사람을 끌어들일 수는 없지. 푹 쉰 다음에 정신력이 돌아온 뒤라면 또 모를까.
대충 현장을 살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에서 납치를 당한 게 맞는 것 같네요.”
“예.”
혹여나 우리에게 도움이 될 정보가 있을지, 조금 더 살펴봐야겠는데.
나는 치앤츠리앤의 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일행들과 눈을 마주쳤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하도록 하죠.”
거추장스러운 사람을 떼어 낼 때가 됐다.
제2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