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11
82 내일을 위한 밤 (2)
지닝시에서 일어난 참사는 한국에서도 꽤 크게 다뤄졌다. 참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한국에서도 다루는 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언론의 방향성이다.
한국 언론은 ‘각성자가 일으킨 참사’라는 데에 포인트를 잡았다.
‘다들 신이 났지, 안 그래도 각성자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말이야.’
참사가 일어난 지닝시보다 한국의 언론들이 훨씬 그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당장 오늘 메인에 오른 기사들의 헤드라인만 해도 이렇다.
「미등록 각성자가 벌인 참사인가, 중국에서 수만 명 사망」
「강력한 정부의 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참사, 결국 미등록 각성자가 일을 내」
이런 헤드라인을 단 기사들이 하는 얘기야 다들 똑같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한 법으로 각성자를 단속하는 중국에서조차 결국 각성자 참사가 일어났다고. 저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이런 언론의 뒤에 있는 사람이야 뻔하다.
미리내당, 그리고 설록진 의원.
그들의 수가 뻔히 읽혔지만, 남주현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언론을 뒤엎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막말로 이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을 전부 없애 버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런 기사를 만들어 내는 이를 잡지 않으면 똑같은 기사가 생길 터이니.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남주현은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또 꼭꼭 숨기는 건데?]
쑤어하오주였다. 남주현은 쑤어하오주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숨기긴 뭘 숨겨. 아무것도 안 숨겨.”
남주현의 말에도 쑤어하오주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남주현의 주변을 돌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쑤어하오주는 툭하면 털을 세우며 하악질하는 야생 고양이처럼 사방에 더러운 제 성질머리를 뽐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얌전해진 쑤어하오주였지만, 여전히 한 가지 키워드에는 예전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혹시 그 녀석들이랑 몰래 연락한 거 아니야?]
“아니라고! 나 아침마다 뉴스 보는 거 알잖아. 그냥 하루 일과잖아, 하루 일과!”
“내놔.”
쑤어하오주의 말에 남주현은 순순히 휴대폰을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이럴 때마다 말로 쑤어하오주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쓰인 기사였지만, 쑤어하오주는 거침없이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 내용 전부를 이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외운 단어가 이 안에 있는지를 빠르게 확인하는 거다.
예를 들어 벨츠머츠라든가, 벨츠머츠라든가, 벨츠머츠 같은 거.
쑤어하오주가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린 건 오직 그 벨츠머츠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기사 안에 자신이 찾는 단어가 없다는 걸 깨달은 쑤어하오주가 숨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남주현에게 돌려주었다.
[별거 없네.]
“별거 없다니까.”
두 사람이 말하는 걸 뻔히 바라본 이희원이 악의 없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두 분은 정말 잘 통하는 것 같아요.”
“통하긴, 무슨!”
남주현은 팔을 벅벅 문질렀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데도 기가 막히게 말이 통하잖아요?”
“그야! 하오주가 말하는 거야 늘 뻔한 소리니까 그렇죠.”
“그래도요.”
잘 통하긴 무슨. 아침을 하러 사라진 이희원의 뒷모습을 보며 남주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쑤어하오주랑 잘 통한다는 건 칭찬이 절대로 아니다! 그동안 쑤어하오주 때문에 했던 고생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인데!
고향 땅에서 일어난 참사를 접했음에도 쑤어하오주의 표정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넌 괜찮아?”
남주현의 질문에 쑤어하오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뭐가?”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남주현의 말을 해석한 쑤어하오주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관심 없어.”
모두가 참사에 애도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네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데 저렇게까지 덤덤할 수가 있는 건가. 하긴 쑤어하오주가 관심을 가지는 건 벨츠머츠뿐이었다. 다른 건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아, 그래도 돼지갈비에는 환장하긴 했지,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바나나 우유도 엄청 좋아했어…….
어째선지 생각하면 할수록 먹을 것에만 눈을 빛내던 쑤어하오주의 모습이 떠올라 남주현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어린애처럼 보여도 방심할 순 없어! 저, 저 사람은 엄청나게 위험한 범죄자라고!’
암, 암.
그때, 남주현 앞에 놓인 과자에 검은 그림자가 졌다.
“이거 안 먹어?”
자신의 과자를 노리는 쑤어하오주의 눈빛을 본 순간 남주현이 소리를 빼액 질렀다.
“먹, 먹을 거거든! 난 아침에는 꼭 당을 먹어 줘야 머리가 돌아간단 말이야!”
“체.”
“주현 씨, 또 밥 먹기 전에 과자 먹어요?”
멀리에서 들려온 이희원의 목소리에 남주현이 쑤어하오주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소리를 질렀다.
“아니요! 이따 먹으려고요!”
“이따?”
쑤어하오주의 말에 남주현이 과자를 손에 들고 과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따만큼 먹는다, 이따만큼!”
“체.”
그 모습에 쑤어하오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라졌다. 남주현은 그제야 과자를 두 손에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방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랬던 게 며칠 전이다.
그리고 오늘.
“꿀꺽.”
평상시처럼 일어나자마자 뉴스 탭부터 살피던 남주현의 이마에는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
‘이건’ 들키면 진짜 큰일이 난다.
「백주 대낮을 물들인 검은 모래, 그리고 일어난 참사. 벨츠머츠, 중국에?」
「지닝시의 참사도 그들의 짓인가? 한국의 빌런 벨츠머츠, 중국에 등장」
「벨츠머츠가 누구? 중국에까지 마수를 뻗친 한국의 빌런」
며칠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헤드라인에 대놓고 적힌 그들의 이름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동안은 잘도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더니,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쳐 놓은 것인지.
이 기사를 쑤어하오주에게 들켰다가는…….
난리, 난리가 날 거다.
하지만 숨긴다고 숨길 수 있을까? 차라리 일찍이 일러바치고 이 일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잡아떼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래, 생각해 보면 남주현이 이렇게 벌벌 떨 이유는 없다. 벨츠머츠와 ‘협력 관계’이기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일어난 일에 한하지 않았던가. 저쪽도 설마하니 중국에서 일을 치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리가…….
그때 남주현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하하, 기사를 봤는지 모르겠는데 중국에서 일이 터져서 말입니다. 그쪽 도움이 필요…….」
“미친…….”
그 메시지를 본 순간 남주현은 열이 뻗쳐 눈앞이 새하얘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진짜 이 새X? 진짜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거 아닌지? 정말이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
두 손으로 휴대폰을 잡은 채로 남주현은 분노로 덜덜 몸을 떨었다.
“신이시여, 그대가 존재하신다면, 부디 이 새X의 얼굴에 새똥이라도 한방 갈겨 주소서. 제발, 제발…….”
따지자면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왜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에게 구명의 은혜보다는, 그저 명치에서부터 끌어올린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그러나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뭘 봤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주현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순간 남주현의 머리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일단, 숨, 숨겨 볼까? 아니, 잠깐 숨기고 싶다고 해서 숨길 수 있나? 아니, 숨겨도 문제지. 언제까지 숨길 수 있는데. 결국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쑤어하오주가 알아내면,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거 아냐! 그러다가 괜히 벨츠머츠의 그놈들과 아직도 잘도 연락하고 있었다는 걸 들키면?
생각을 끝낸 남주현은 두 손을 쭉 뻗어 휴대폰을 쑤어하오주에게 내밀며 소리쳤다.
“벨츠머츠야! 그놈들이야!”
그 말에 쑤어하오주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놈들이, 어, 막, 중국에서! 일을 저질렀고! 나는 몰라!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랑은 조금도 상의 안 했고, 나는 이런 일 저지르라고도 안 했고! 나는 진짜 모르는 일이야!”
남주현이 요란하게 외치는 동안에도 쑤어하오주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굳은 얼굴로 남주현이 내민 휴대폰을 가지고 간 쑤어하오주는 천천히 휴대폰 안에 적힌 기사를 확인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기사의 내용이 하나하나 박혀 들기 시작했다.
벨츠머츠.
그녀가 찾고 또 찾았던 그 단어.
그 단어를 본 순간 쑤어하오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쓱쓱 휴대폰의 화면을 아래로 내린 쑤어하오주는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몇 번이나 그 동작을 반복한 쑤어하오주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와줘…….”
“어, 어으?”
쑤어하오주의 말에 남주현은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당장 자신에게 화를 낼 줄 알았던 쑤어하오주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래, 너무나도 이상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흐려진 얼굴로 쑤어하오주는 남주현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남주현의 입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
남주현이 쑤어하오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딱 하나, 벨츠머츠에게 어떻게든 아버지를 잃었고 그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벨츠머츠를 찾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표정을 본 순간, 남주현은 깨달았다.
그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일은 단순히 그렇게 정리될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의 원수를 찾았다는 분노도, 드디어 그들의 꼬리를 잡았다는 희열도 아니다.
쑤어하오주의 부탁에 남주현은 곧바로 이희원을 불렀다. 곧바로 달려온 이희원은 쑤어하오주에게 차근차근 기사를 해석해 주었다.
벨츠머츠가 저질렀다는 끔찍한 일을 들으면서 쑤어하오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기사를 모두 들은 쑤어하오주가 말했다.
[어디에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어, 그건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나한테 중국에 갈 기회를 준다고 했지? 그 기회 지금 쓸게.]
[하지만!]
이희원은 쑤어하오주를 붙잡고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거기 간다고 해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릅니다.]
[알아. 하지만 가야겠어.]
이희원은 쑤어하오주의 말을 모두에게 전했다. 뒤늦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게 된 유채린도, 남주현도 복잡한 표정으로 쑤어하오주를 바라보았다.
그때, 침을 꿀꺽 삼킨 남주현이 쑤어하오주에게 물었다.
“왜! 왜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건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무슨 말?”
남주현의 질문에 답한 건 유채린이었다.
“비밀, 비밀이라고 했어요.”
“비밀?”
“예.”
“어쨌거나 대화 맞아? 막 만나자마자 배때기를 쑤셔 버리고 싶다든가, 머리를 날려 버리고 싶다든가,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대화?”
남주현의 과격한 말에 유채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희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현 씨.”
“그, 그게! 아니,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거잖아요! 당연히, 어,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죠? 게다가 어, 그동안 했던 행동을 보아 짐작하건대,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단 그 추측이 어, 타당한?”
남주현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모두에게 변명했다. 확실히 그녀의 추측에는 일리가 있었다. 쑤어하오주도 분명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대화 먼저.”
쑤어하오주의 말에 입술을 깨문 남주현이 말했다.
“그럼 우리도 먼저 하자, 그 대화라는 거.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몇 달간, 꾹꾹 눌러 참은 그녀의 호기심이 폭발했다.
제3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