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31
85 카르마 (6)
“뭐야.”
이곳에 도착한 쑤어하오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남주현과 이혜원, 유채린을 본 순간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다, 다 같이 왔다고?”
“그래! 다 같이 왔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남주현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왜 그쪽이…….”
혹시 협박이라도 당한 건가? 내 눈빛에 남주현이 외쳤다.
“협박 아니고 내 의지로 여기까지 온 거다!”
갑작스러운 반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용이 심상찮다. 어째서 여기까지 동행한 거지?
“왜죠? 그동안 섭섭지 않게 잘해 준 것 같은데요.”
심심할까 봐 주기적으로 할 일도 만들어 주고, 활동비도 심심찮게 챙겨 주고, 심지어 현질까지 허용해 줬는데!
나를 죽이러 오겠다는 쑤어하오주랑 붙어먹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섭섭지 않게 잘해 줘? 툭하면 사람을 버리고 가서는! 우리 집이 무슨 보육원인 줄 알아?”
“음…….”
젠장! 이건 할 말이 없군. 확실히 사람을 좀 많이 버리긴 했지.
“게다가 말이야. 그렇게 버리고 간 사람들 상태가 다들 어땠는 줄 알아? 말도 안 통하는 사춘기 여자애! PTSD가 가득한 공무원이라니! 나, 나는 그냥 평범한 기자라고! 나한테 케어를 맡기기엔 다들 힘든 사람들이었다고! 알아?”
이어지는 남주현의 말에도 할 말이 없었다. 음,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나는 필사적으로 남주현의 눈을 피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망을 들으래서 듣고는 있는데 말입니다, 이거 어째 주체가 바뀐 것 같습니다만.’
남주현의 폭발이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그 한서현조차 지금은 끼어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차송진이나 김재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감정이라는 게 존재는 하나 의심스러운 존재인 준뿐이었다.
━이게 다 네 업보다, 업보.
레이의 말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게 다 내 업보다. 그래도 할 말은 있다. 나는 남주현을 향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렇다고 쑤어하오주를 데리고 여길 오면 어떡합니까! 쟤랑 나랑 원수인 건 압니까?”
“그래! 그것도 말이지.”
문제는 내 이 말이 남주현을 완벽하게 폭발시켜 버렸다는 거다. 씩씩, 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콧김을 내뿜은 남주현이 내게 소리쳤다.
“그래, 그것도 들었어. 아주 듣고 나니 어이가 없던데! 당신이 그런 식으로 도망치면? 앞으로 얘는 어떻게 살란 말이야! 평생 당신에게 할 수도 없는 복수를 열망하면서 살라고?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러고 살아, 사람이!”
나는 그러고 살았는데…….
하지만 그 말을 꺼낼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그래도 쑤어하오주를 여기에 데리고 오면…….”
안 되었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 순간, 남주현의 얼굴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정이 들어 버린 걸 어떡해. 쟤 마음이 어떻게 찢어지고 있는지 아는데, 어떡하라고.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해 그럼. 쟤 소원이 당신을 보고 싶다는 거라잖아!”
남주현은 이제 펑펑 눈물을 흘려대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주변에 멀뚱히 서 있던 이희원과 유채린이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눈물을 흘려대는 남주현을 끌고 사라졌다. 겨우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겨우 트인 숨통은 곧 틀어막혔지만.
[션…….]
쑤어하오주, 그녀의 부름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남주현처럼 소리를 빼액 지르며 화를 냈으면 좋겠는데 쑤어하오주는 촉촉한 눈길로 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기만 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쑤어하오주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하긴, 여태까지 남주현과 그리 목소리를 높이며 싸워댔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그거 언제까지 쓰고 있을 거야? 너 같지 않아서 이상해.]
[음…….]
[얼굴, 보여 줘.]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나한테도 가짜 얼굴을 보여 줄 셈이야?]
쑤어하오주의 말에 나는 마지못해 주섬주섬 가면을 벗었다. 내 얼굴을 본 남주현이 입을 쩍 벌렸다. 유채린도, 이혜원도. 내 맨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겠지.
쑤어하오주는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눈길이 뜨거운지 얼굴에 구멍이 뚫리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잘 지냈나 보네.]
툭 던져진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 지냈다고 하기에는 요 며칠 잘 먹어서 얼굴에 광이 돌고 있었거든.
내 끄덕임을 본 쑤어하오주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우리 파파를 죽여 놓고?]
어쩐지 이런 대답이 나올 것 같더라니.
하긴, 제 아버지를 죽이고 잘 먹고 잘살았다는 말을 듣는 건 제법 빈정이 상할 것도 같았다.
[나는 잘 못 지냈어.]
음, 확실히 그래 보인다. 머릿결은 푸석푸석했고 눈 밑은 다크서클로 새까맸다. 저건 전부 나 때문이겠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날 죽이러 왔어?]
내 질문에 쑤어하오주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내가 널 죽이러 왔다고 생각해?]
[아무래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생각하면 그렇지?]
나와 쑤어하오주의 관계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그건 ‘원수’일 것이다. 나는 쑤어하오주의 아버지를 죽였고, 쑤어하오주는 나에게 그 복수를 하려 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맞아, 그동안 쭉 너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어. 죽여야 하잖아, 나는 너를.]
그렇게 말한 쑤어하오주가 두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 파파처럼 묶어 놓고 목을 찌를까. 주먹으로 죽을 때까지 널 짓이겨 놓을까. 물에 빠트려 죽일까, 목을 조일까. 별별 방법을 다 떠올렸어.]
음, 그렇구나. 나는 그 살벌한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난 매일 네 생각을 했어.]
달콤한 말이지만, 조금 전에 들었던 말 때문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매일 내 생각을 했겠지. 나를 어떻게 죽일까, 고민을 했을 테니.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말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멋지고 좋은 것들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나더라. 저 바보 같은 여자가 사다 주는 달달한 걸 먹을 땐, 너와 만났을 때 먹은 젤라또 생각이 났고, 여자가 가르쳐 준 게임을 할 땐 우리가 같이했던 게임이 생각났어.]
제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가볍게 말을 잇던 쑤어하오주가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에는 널 죽이고 싶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 파파의 복수를 하지도 못했으면서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보려니, 네가 마음에 걸리는 것뿐이라고.]
쑤어하오주의 말이 내 숨통을 조였다.
[근데, 아니더라. 나는 그냥 네가 보고 싶었을 뿐이더라.]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알아, 나는 너를 죽여야 해. 너도 그렇게 말했지.]
맞아, 너는 나를 죽여야 해.
[맞아, 그래야 해.]
나는 쑤어하오주의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이 뒤에 이어지는 말이, 내가 바라는 말이길.
하지만 쑤어하오주는 내 기대를 배신했다.
[근데 내가 그러기 싫으면?]
[아…….]
[너랑 같이…….]
쑤어하오주가 나를 보며 말했다.
[살고 싶으면?]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가슴을 그대로 들이박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어째서…….]
나는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의 파파를 죽였잖아.]
[죽였어, 알아. 그런데도, 그런데도 내가 너랑 살고 싶으면. 함께 하고 싶으면?]
[난…….]
난 쑤어하오주가 자신을 위해 살기를 바랐다. 파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죽는 게 아니라, 나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불태워서라도 살아남기를 바랐다.
하지만 쑤어하오주는 복수를 꿈꾸지 않았다.
복수가 아니라, 삶을 꿈꾸게 됐다.
그것도 나와 함께하는 삶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왜? 왜 나에게 복수하지 않겠다는 건데? 어떻게 나를 용서할 수 있는데? 내 시선에 쑤어하오주가 말했다.
[착각하지 마. 난 너를 용서한 게 아니야. 용서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내게 죽어 주겠다는 소리 같은 거 하지 말고 나랑 살겠다고 말해. 넌 내 파파를 죽였으니까, 그러니까 네 삶을 나한테 달란 말이야.]
귀 끝을 벌겋게 물들이고, 볼을 붉히며 그렇게 내게 말하는 쑤어하오주를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난…….]
머뭇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쑤어하오주가 눈을 빛냈다.
[너도 죽기 싫지? 그러니까 도망쳤잖아. 내가 널 죽이지 않으면, 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면 도망치지 않아도 돼. 아니, 도망치면 안 되지. 넌 날 책임져야 해. 네가 내 파파를 죽였잖아.]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쑤어하오주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만 난 쑤어하오주의 원수인데. 내가 바랐던 건 쑤어하오주가 홀로 서는 거였다. 나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이걸 홀로 섰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나는 쉬이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혹여나 나를 버리고 갈 생각이라면…….]
이를 드러낸 쑤어하오주가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때야말로 죽여 버릴 거야. 응, 찾아서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말한 쑤어하오주가 뒤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텐 이제 좋은 부하들이 있거든.]
부하라, 친구도 아니고 부하라니. 나는 쑤어하오주의 뒤에 선 사람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여자들은 쑤어하오주가 자길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는 있는 건지.
[그러니까 나랑 살아. 나 책임져.]
[어, 그게 말이야. 나도 혼자면 바로 오케이를 하겠는데…….]
나한테는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동료들하고 한 번 상의는 해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을 따라 새로 시선을 돌린 쑤어하오주의 얼굴이 굳었다.
[쟨 누구야?]
[으응?]
쑤어하오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표독스러워졌다.
[저 여자애는 누구냐고.]
쑤어하오주의 말에 준이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그래! 너! 너 뭐야!]
[내 이름은 준이야.]
그런 걸 물은 게 아닐 텐데. 준을 확인한 쑤어하오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너……, 너!]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 쑤어하오주의 몸에서 마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말이야.]
오해다. 이건, 정말이지 오해다. 진짜로 오해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준은 장인일 뿐이다. 어? 절대로 나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고, 아니, 근데 내가 애초에 왜 쑤어하오주에게 그런 걸 설명해야 하냔 말이다.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는 나를 보며 쑤어하오주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죽어…….]
나는 내게 날아드는 주먹을 가까스로 피했다.
“으악!”
위력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한 방을 제대로 맞으면 하체와 상체가 따로 분리될 정도로 강력한 주먹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새에 올라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도 난리가 났다.
“저 미친 여자가!”
“역, 역시 너를 죽이러 온 거지?”
“아니? 잠깐!”
나는 일행들에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쑤어하오주의 후속타를 피하는 게 먼저였다.
[다른 여자를 만나? 죽여 버리겠어!]
한서현은 곧바로 나에게 모래를 보냈다. 쑤어하오주의 주먹은 모래에 처박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쯤, 한서현의 모래가 내 몸을 그대로 끌어당겼다.
“자, 잠깐만!”
“빨리 저 미친 여자를 피해서 도망가자고요!”
한서현은 내가 무어라 말을 내뱉을 새도 없이 곧바로 새를 이륙시켰다. 나는 하늘을 날며 소리쳤다.
“오해라고오오오!”
제3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