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65
93 작전 C (2)
진연화는 눈을 깜빡였다. 머리가 더럽게 아팠다. 조금 전에 누군가를 부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어어!”
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탈출했던 행사장 건물 안쪽으로 사나운 마력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허!”
진연화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제 몸 위로 보디가드의 몸이 겹쳐지는 걸 느끼며 진연화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무언가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일어난 바람이 진연화와 보디가드를 덮쳤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고 곧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하아, 하아…….”
그 정적 안에서 진연화는 그제야 자신이 벌벌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서웠다, 이런 상황이.
시리우스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었지만, 진연화는 각성자가 아니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내던져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오늘 깨달았다. 그녀가 부리고 있는 헌터들이 어떤 전장을 걷고 있는지.
‘앞으로는 쪼오끔 더 잘해줄까.’
가벼운 생각에, 긴장이 조금은 날아간 기분이었다. 진연화는 애써 긴장을 털어내고 보디가드의 부축도 마다하고 제 발로 당당하게 섰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벨츠머츠라는 글자가 건물 바깥에 새겨져 있었다. 참으로 요란한 자기 주장법이랄까.
‘중국에서 그 난리를 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 또 이런 난리를 치다니.’
정말이지 진연화는 벨츠머츠라는 놈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차라리 첫 등장 때처럼 옥션을 털면 이해가 된다. 아! 돈이 필요하셨구나!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얻을 것도 없는 테러를 저지르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저지른 일도 그렇고, 도대체 그런 일을 저질러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냔 말이다. 악명만 쌓일 뿐이지. 그나마 중국과는 달리 별다른 인명 피해가 없어 보인다는 게 다행이려나.
어느새 그녀 주변에 시리우스에서 급파한 헌터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부길드장님!”
참 빨리도 왔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린 진연화는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난 괜찮으니 다른 사람들을 돕도록 해요오오.”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았는지, 겁에 질린 사람들 여럿이 얽히고설켜 건물 안쪽은 엉망이었다. 벨츠머츠에 의해 파손된 건물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고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그 슬로건의 팬은 아니지만, 시리우스의 길드장으로서 미리내 당의 의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맞아, 마침 그 사람도 여기에 왔었지. 그러니까…….’
어렴풋이 중요한 누군가를 본 기억이 머리를 스쳤지만, 누구였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치매인가.’
벌써부터 그걸 걱정해야 할 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짧게 혀를 찬 진연화는 눈을 굴리다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
어떻게 잊고 있을 수가.
“김명철 헌터도 여기 근처에 있었어요오오. 그 사람이랑 협력해서 이 소란을 수습하면 좋겠네요.”
붉은개 길드와 공을 나누는 건 영 별로지만, 그래도 영 밉진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길드를 걸고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까지는 없더래도, 개인적으로는 응원해주기로 하기도 했고.
진연화의 말대로 시리우스의 헌터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람들을 구호하기 시작했다. 벨츠머츠가 요란하게 공격한 건 건물뿐이었기에 부상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꽤 되었다.
깨진 유리창을 넘으려다가 손바닥이 다 찢어진 사람도 있고 말이다. 이런저런 유혈 사태에 진연화는 눈을 찌푸렸다.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저런 부상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부, 부길드장님! 이쪽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진연화는 얼굴을 찡그렸다. 가뜩이나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저렇게 큰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다니.
“갈 테니까 목소리 좀 낮춰요오.”
진연화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자신을 이렇게 요란하게 부르는 것인지.
자신을 이끄는 쪽으로 가자 그곳에는 김명철 길드장이 있었다. 이 사람을 만나라고 그 난리를 친 건가.
하긴, 고위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서로 나눌 만한 얘기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진연화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어어, 어어어어. 아는 사람이다아아.”
그 익숙한 말투에 진연화의 얼굴이 굳었다.
* * *
대가라는 게 뭔지,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김명철 길드장, 상태가 이상한 거 같아요.”
“상태가 이상하다니?”
“말 그대로예요. 그 작자가, 떠나기 전에 뭔가를 한 게 분명해요.”
한서현은 분한 얼굴로 덧붙였다.
“보스가 그랬잖아요. 세뇌를 당한 다음에는 머리가 어떻게 돼서 바보가 돼버린다고…….”
“아.”
나는 얼굴을 구겼다.
“전부 알고 있었어…….”
설록진은 내가 누굴 지키러 그곳에 간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여유 있게 나를 보내주는 척했지만, 결과적으로 설록진은 자신이 원하던 걸 모두 얻었다.
나에게 협박을 섞은 제안을 건네고, 내가 지키려던 사람, 제게 방해되던 적을 한순간에 꺾어버렸다. 모든 게 설록진의 손아귀에 있었다.
“젠장.”
그 모든 짓을 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하다니.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조금만 설록진이 더 늦게 왔다면, 무사히 그쪽을 빼돌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납치하는 쪽이 좋다고 했잖아요.”
“7성급 헌터를 어떻게 납치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잘나도 그건 무리라니까! 내 말에 한서현이 순식간에 우울해져 버렸다.
“하긴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요. 모래도 빼앗겨서는 보스만 더 힘들게 만들고…….”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됐어요, 훈련하러 갈래요…….”
한서현은 우울한 얼굴로 나를 밀어냈다. ‘어떻게든 보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할게요.’ 그 말에는 차마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건 내 잘못인데.
한서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게도 우울증이 찾아 들었다. 레이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거기에서 설록진을 어떻게든 공격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내 생각을 읽은 레이가 곧장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기도 하다고요. 알아버렸잖습니까, 설록진이.’
설록진의 약점이 오만함이라면, 내 약점은 이 물렁물렁한 정신력이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들 모두를 희생해서라도 설록진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심이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었다.
‘그 선을 넘는 것만이 설록진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요?’
내 질문에 레이는 한탄했다.
그동안 겨우 사람 꼴을 만들어 놨는데 도루묵이 되었다고 말이지.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설록진을 죽일 수 없다면? 내 약점을 잘라내는 것만이 내가 설록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차송진의 말이 나를 내 우울한 고민에서 건져냈다.
“응?”
“김명철 길드장 말이야. 그, 그 상태로 둘 거야?”
그 질문에 나는 가만히 차송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송진이라면 내가 하는 고민에 어떤 대답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나만 물어도 돼?”
“응?”
“만약 세상을 구하기 위해, 눈앞에 있는 사람 여럿을 죽여야 한다면,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를 죽여서라도 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질문에 차송진은 눈을 깜빡거렸다.
“아, 그거 알아! 트롤리의 딜레마 아니야.”
“트롤리의 딜레마?”
“응, 저번에 도덕 교과서를 만들다가 알게 된 건데…….”
잔뜩 신이 난 얼굴의 차송진이 메모장을 가지고 와 내 앞에 그림을 그렸다.
기차 하나와 두 개의 갈림길. 그 길에는 각각 사람 한 명과 다섯 명이 서 있었다. 기찻길은 다섯 명의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달리고 있고, ‘나’는 변환기에 서 있었다.
“만약 당신이라면 변환기를 당길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게 질문이야. 질문은 변환기를 당기느냐, 마느냐지만 사실상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할 것인가를 묻는 실험이지. 네가 말한 것도 이거 하고 똑같은 것 같아서.”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건데?”
차송진은 내 질문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 나는 잘 모르겠어. 사실 이 질문에 ‘옳은’ 대답 같은 건 없잖아. 사실 난 그래서 한참이나 이 선택을 거부했어. 그리고 나도 똑같은 걸 애들한테 물었지.”
“응?”
“대답하고 싶지 않으니까, 대신 물어본 거야.”
차송진의 말이 내 심장을 쿡 찔렀다. 대답하고 싶지 않으니까, 대신 물어봤다는 말.
“그래서 애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데?”
“서현이는, 음, 글쎄, 일단 나한테 이렇게 물어봤어. 저 한 명이랑 다섯 명이 누군데요? 내가 말했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전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서현이가 이렇게 말했어. ‘그럼 알 바가 아닌데.’……라고. 그래, 서현이에게 큰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어쨌거나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서현이는 이렇게 말했지. ‘다섯 명을 죽일래요.’ 진심? 나는 그 대답에 놀랐어.”
“어, 다섯 명을 죽이겠다고 했다고?”
“그래! 한 명이 죽으면 저승길에 외롭지 않겠냐고……. 게다가 다섯 명이 죽으면 해골이 다섯 배라니, 내가 진짜 무슨 말을 들었나 했다니까.”
“……재호는?”
“아, 재호는! 재호는 기차를 다른 데로 옮기면 된다고 했어.”
“응?”
“기차 따위는 자기가 들어서 옮길 수 있대?”
“그건 옳은 대답이 아닌데…….”
내 말에 차송진도 웃음을 터트렸다.
“응, 근데 재호는 영 납득하지 못하더라고. 왜 기차를 옮길 수도 있는데, 왜 사람을 죽여야 하냐고 그러더라. 자기는 죽이기 싫대. 한 명도 잃기 싫대. 그러더니 화를 내면서 메모장을 찢어버렸어. 그리고 나한테 이런 거지 같은 거 다시는 묻지 말라더라.”
차송진이 말했다.
“그날 수업, 덕분에 완전히 망해버렸지……. 뭐.”
“그래서 형은 뭘 택했는데?”
내 질문에 차송진이 말했다.
“난 변환기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럼 다섯 명이 죽는 거잖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차송진이 말했다.
“응, 나는 겁쟁이니까. 내가 손을 대서 한 명이 죽느니, 그냥 손을 대지 않고 다섯 명이 ‘사고’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어…….”
이건 내가 차송진에게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내 속을 읽은 듯 차송진이 말했다.
“난 비겁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난 책임질 자신이 없거든. 손을 대는 순간, 내가 무언가를 하는 순간, 그건 내 책임이 되는 거잖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 질문이 힘든 건 그 때문일 거야. 책임을 져야 하니까. 내가 저 다섯 사람을 살리는 대신, 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차송진이 말했다.
“어려운 게 당연해. 힘든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까 모든 걸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어.”
“응?”
“서현이는 간단히 선택해줄 거야. 재호라면 기찻길에 놓인 기차를 어떻게든 치워버리자고 하겠지. 그리고 나는, 글쎄,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너를 이해해주려고 하겠지. 네가 한 선택의 의미를 아니까.”
차송진이 말했다.
“나쁜 건 이 질문을 만든 놈이야.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애초에 이 질문에 ‘옳은 답’ 같은 건 없어. 무슨 선택을 하든,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한 차송진이 말했다.
“만약 이 질문 자체를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질문 자체를 없애 버린다라…….
만약 기찻길에 기차가 오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사람들을 미리 빼돌릴 수 있다면…….
작전 C.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작전 C일지도.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는 나에게 차송진이 물었다.
“그래서 김명철, 그 사람은 어떻게 할 건데?”
아, 맞다. 그 사람. 나는 곧장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 이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제36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