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4
3 나는 노가다가 싫다 (2)
나는 사람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미 많은 자원이 파헤쳐진 게이트 안쪽은 폐허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황량했다.
식물 한 포기 남은 것이 없이 황량한 길을 따라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흙산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배낭을 풀고 채굴 장비를 꺼내 들었다.
흔히 채굴 하면 광산만 생각하기 마련이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마나가 풍부한 이세계에 있는 것들은 모든 게 우리 세상과 달랐다.
채굴꾼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곡괭이를 꺼내 들었다.
나 또한 배낭에 손을 넣어 곡괭이를 꺼냈다.
접이식 손잡이를 풀고 곡괭이 날에 연결하자 곡괭이가 완성되었다.
허술해 보이지만, 곡괭이의 날부터 손잡이까지 모두 게이트 부속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평범한 금속은 차원을 넘는 순간부터 부식되기 시작하고, 이곳의 광물에 닿으면 마치 두부처럼 뭉그러졌다. 수백만 원이나 하지만 채굴꾼을 하기 위해선 이 곡괭이를 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곡괭이를 조립한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채굴의 시작이었다. 할당량은 15kg. 그 이상 채취하는 마나석은 내 몫으로 챙길 수 있기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할당량을 채운 뒤에 자신의 몫을 가져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정신계 재능을 지녔기 때문일까. 나는 유난히 마나의 기운에 민감한 편이었다. 특히 설록진과 함께한 이후 내 능력을 혹사당할 정도로 많이 쓴 뒤로는 더더욱 마나에 민감해졌다.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물체는 마나를 품고 있다. 하다못해 이곳에 존재하는 공기마저 마나를 품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보통의 감각으로는 마나석만을 감지해 내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게는 가능했다. 차분히 마나를 느끼고 그 마나의 농도를 구분해 냈다. 마치 초음파로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는 땅속에 처박힌 마나석들의 위치를 느꼈다.
찾았다.
곡괭이로 땅을 파헤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날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나는 손을 뻗어 마나석을 꺼냈다.
마나석은 햇빛을 그대로 투과할 만큼 투명했다. 사실 마나석(石)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보기에 돌덩어리처럼 딱딱하지만, 이 녀석은 광석 같은 게 아니라 에너지가 뭉쳐 만들어진 거니까.
게이트가 처음 나타났을 때 처음 이 마나석을 발견한 사람은 이 마나석에 엄청난 에너지가 잠들어 있다는 걸 알고 유레카를 외쳤다고 한다.
십 년 전 마나석의 출력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공식이 도입되기 전, 마나석은 발전소의 에너지원으로만 사용되는 데 그쳤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정부가 주도해서 에너지 사업을 벌이며 마나석을 사들이는 게 끝이었지.
하지만 출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온갖 생활 도구들까지 마나석을 달고 출시됐다.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환경 공해도 없고, 게이트 내에서 얼마든지 수급 가능한 이 자원을 인간들은 신의 축복이라고 불렀다. 물론 채굴할 때 마나에 노출되어 목숨을 위협받는 인부도 있다지만, 그걸 신경 쓰는 소비자는 없었다.
마나석은 게이트 부산물 중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상품이었다.
게이트 안에서는 일반적인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만큼 마나석 채굴은 모두 인력에 의존했다. 보통은 이렇게 채굴꾼끼리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마나석이 발견되는 지역을 훑듯이 채굴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마나석은 이름 그대로 마나를 가득 품고 있었기 때문에 마나에 민감한 나는 그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배낭에서 꺼낸 주머니에 마나석을 넣었다.
이제 하나.
손에 훤히 잡힐 듯이 위치를 읽을 수 있으니 주머니를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여기에서 멈췄을 테지만, 나는 하나의 주머니를 더 꺼냈다. 더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생각이다.
“후욱, 후욱.”
허락되었던 다섯 시간이 다 지날 때까지 모두가 거친 숨을 내쉬며 쉴 새 없이 바닥을 파헤쳤다.
게이트 채굴이 허락된 시간이 지나자 맞춰 놓았던 알람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허리를 폈다.
“젠장, 아직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한 시간만 더 주면 뭐가 덧나냐고.”
“마나 중독 때문이라잖아요.”
모두가 불만에 찬 얼굴이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미 끝났다. 내 곁으로 다가온 임현수는 날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오, 뭐야. 오늘 진짜 야무지게 일했네?”
“하하, 운이 좋았네요.”
남들이 주머니 하나를 빠듯하게 채운 데에 비해 내가 채운 주머니는 무려 두 개 반. 남들의 두 배를 해치운 거다.
아무리 위치를 훤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땅을 파헤치느라 시간이 걸려 생각보다 건진 양이 많지 않았다.
임현수는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운이 좋다 정도가 아닌데.”
그 말을 받듯 주변에서 내 주머니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무슨 혼자 광맥이라도 캔 것 같네.”
“마나석도 광맥이 있나?”
“아니, 그놈들은 주변 마나를 흡수해서 생기는 거라 저마다 떨어져 있잖아. 그러니까 더 신기한 거지.”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나는 어떤 말도 없이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돈만 벌면 뜰 곳이다. 뭐라고 떠들어 대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설록진과 보냈던 지난 세월은 내 얼굴 가죽을 두껍게 하는 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
“우리 모르는 무슨 비법이라도 알아 온 거 아니야?”
실실 웃으며 내 성질을 긁는 임현수를 적당히 무시하는 데에도 그때의 경험이 아주 도움이 됐다.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나는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게이트 바깥으로 나왔다.
무언가 몸을 훑는 듯한 감각과 함께 어느새 바깥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사라지자 정말로 살맛이 났다. 시원한 바람은 땀범벅이었던 몸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채굴하신 건 여기에 놓으시면 됩니다.”
남자의 말에 우리는 모두 등에 메고 왔던 주머니를 저울 앞에 내려놓았다. 우리가 저 안에서 하루에 채굴해야 할 마나석 할당량은 15kg. 오늘도 그 할당량을 넘겨 추가 인센티브를 받아 갈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반대로 그 할당량조차 채우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저, 저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됩니까?”
한조희였다. 어쩐지 몸이 안 좋아 보이더라니. 할당량을 채우는 데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한조희가 채집한 양은 고작 12kg. 할당량에서 3kg나 비어 버린 터라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아시다시피 저도 그냥 직원이라서…….”
“아이고, 조희 저거. 일당까지 깎이면 안 될 텐데.”
임현수는 내 옆에서 혀를 찼다. 나는 내 주머니를 봤다. 주머니 두 개를 꽉 채운 나에게 3kg는 얼마 되지 않긴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누굴 도울 만큼 내 사정이 좋은가?
당장은 내 코가 석 자였다. 암, 그렇고말고. 여기에서 후딱 돈을 벌고 뜨는 게 내 계획이잖아.
저 인간을 도와준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인간이잖아.
그렇게 말하던 나는 순간 흠칫했다. 내가 아니라 내가 알던 누군가가 할 법한 생각이라서.
원래의 나는 오지랖이 넓었다. 까칠하게 굴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의 손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설록진은 내 오지랖을 혐오했다. 나같이 정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면 언젠가 큰코다칠 일이 올 거라고 설록진은 말하곤 했다. 그리고 내 ‘나쁜 습관’을 직접 고쳐 주었지.
설록진은 그렇게 본래의 나를 조금씩 망가트렸다.
순간 속에서부터 열불이 치솟았다.
설록진은 엿 먹으라지.
“잠깐만요.”
앞으로 나선 나는 한조희의 주머니 위로 내 작은 주머니에서 꺼낸 마나석을 몇 개 얹었다.
“어어?”
“이래도 되죠?”
“그게, 안 되는 건 아닌데…….”
한조희에게 슬쩍 눈빛을 보낸 나는 재빨리 뒤로 빠졌다. 멍청한 얼굴로 굳어 있던 한조희가 뒤늦게 나를 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 고마워.”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고 다시 줄로 돌아갔다. 줄에 돌아오자마자 임현수가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너 제정신이야?”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을 뻔했다.
자기가 양념을 치고 있는 한조희를 내가 건드려서 화가 난 건 알겠지만, 이렇게 티를 내다니.
내 시선에 임현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너도 먹고살기 힘든 처지에 누굴 도와.”
“저야 혼자잖아요. 가족까지 챙기는 사람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편이죠.”
“그래도 그렇지. 다시는 이러지 마. 저렇게 도와줘 봤자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어. 오히려 쟤를 위해서는 도와주지 않는 편이 나을 거야.”
대충 듣기에는 나를 위하는 듯이 하는 말 같지만, 임현수의 꿍꿍이를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 속이 뻔히 보였다. 임현수는 내가 한조희를 도운 게 아니꼬울 것이다. 한조희가 더 나락으로 떨어져야 자신이 구원이라는 이름의 함정을 팔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제가 운이 좋았잖아요.”
보기만 해도 욕이 나올 만큼 역겨운 놈이었지만, 겉으로 그걸 드러낼 수는 없지.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니고 말이다.
주머니를 들고 간 나는 뒤이어 정산을 받았다.
오늘 내가 정산받은 금액은 130만 원.
하루 벌이치고는 많은 금액이었지만, 내가 넘긴 마나석 양을 생각했을 때는 결코 많은 금액이라고 할 수 없었다.
주먹만 한 마나석 하나에 못 해도 십만 원은 넘을 테니까.
한조희에게 마나석 3kg를 떼 줬다고는 해도 30kg이 넘었는데.
이 정도 마나석으로 겨우 이 정도밖에 못 받다니.
게이트 이용 수수료로 대체 얼마를 떼먹는 거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게이트 채굴꾼 일을 계속할지 말지 일단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사무소로 돌아가는 봉고차 안에서 한조희는 나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솔직히 할당량을 다 못 채운 걸 알았을 때 눈앞이 깜깜해졌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요즘 갑자기 돈이 들어갈 곳이 많이 늘어서…….”
“말했잖아요, 오늘 운이 좋았다고. 그거 혼자 다 먹으면 뒤탈 생길까 봐 그런 거예요.”
나는 선을 그었다. 내가 한조희를 도운 건, 이제 곧 여기에서 뜰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전과 달리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나석을 쓸어 담은 것도 그 때문이고.
하지만 내 정 없는 말에도 한조희는 여전히 내게 고마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 내가 살게.”
거절할까 생각했지만, 공짜 밥은 나쁘지 않지.
그 거지 같은 고시원으로 돌아가 봤자 먹을 수 있는 건 라면밖에 없고 말이다.
“오, 나도 같이 갈까?”
임현수의 말에 내가 재빨리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이, 현수 형님. 조희 형이 저 먹을 거 사 준다는데 형이 끼어들면 좀 그렇죠.”
“아, 조희는 너만 사 주라고 해. 나는 내 돈으로 따라갈 테니까.”
“형 있으면 제가 마음 편하게 못 얻어먹잖아요. 안 그래요?”
내 말에 임현수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봤다. 임현수가 기억하던 나는 제대로 말도 못 하던 찐따였을 테니.
옆에서 보던 이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래, 현수야. 저녁 먹을 거면 우리랑 먹으러 가자. 술이나 한잔할까?”
“예예, 뭐.”
임현수는 형님들과 같이 자리를 뜨면서도 나와 한조희의 사이를 곁눈질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제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