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86
28 머리를 박은 타조 (3)
벨츠머츠!
요 며칠 동안은 온 세상에 그놈들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도살자와 벨츠머츠의 대결은 전파를 탔고 대중들은 보기 쉽지 않은 이 대결에 환장했다.
주변에 떠돌던 마나 때문에 촬영 화질이 열화됐다고 해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시리게 빛나는 얼음 창과 검붉게 빛나는 마기의 대결은 깍둑썰기 당한 화면 안에서도 제법 그럴싸하게 빛났기 때문이다.
각성자의 등장 이후 각종 매체에서 각성자들이 대단하다고는 떠들어도 일반 대중이 각성자들의 능력을 볼 일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예능에서 3성급 이하의 각성자들이 손에서 불을 뿜거나, 물을 뿜는 등의 재주를 부릴 뿐이었다.
이렇게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6성급 이상의 각성자 둘이 맞붙는 장면은 처음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이번 일은 단순한 빌런 둘의 싸움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도살자가 둘도 없는 악인이라면, 그에 맞서 싸운 벨츠머츠에게는 어느새 선인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며칠 전만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빌런으로 알려졌던 벨츠머츠의 이미지가 이렇게 변하게 된 데에는 이번 도살자와의 대결이 한몫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와중에 인질을 구해 낸 선행이 그들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다.
그 선행을 이미지 세탁을 위한 얕은 수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현장에서 꼼짝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을 구해 낸 것은 벨츠머츠가 맞았다.
게다가 이 구조 현장은 수많은 이의 눈으로 목격되었다.
벨츠머츠의 멤버로 보이는 거구의 사나이가 아이들을 나르는 장면, 스켈레톤이 입을 딱딱거리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장면 등등.
겉으로 보기에는 험상궂고 거칠어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제법 친절했다. 중간에 아이들을 향해 날아든 마기를 막아 준 벨츠머츠의 리더의 모습도 현장에 있던 모든 이에게 목격되었다.
“감사합니다.”
마침내 아이들을 품에 안은 부모들의 얼굴은 생생하게 현장으로 퍼졌다. 적어도 그들에게 벨츠머츠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현장의 모두를 경악시킨 거대한 번개까지.
벨츠머츠가 그날 남긴 임팩트는 대단했다.
그저 좀도둑에 불과했던 벨츠머츠가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대단한 빌런이 되어 있었다.
벨츠머츠와 접촉해서 그들을 회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인간이 나올 정도였다.
벨츠머츠의 정보가 밝혀지면 질수록 그 관심은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 일련의 흐름이 영 못마땅한 사람도 있었다.
편한 옷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쓴 채로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은 바로 시리우스의 부길드장인 진연화였다.
진연화는 화면을 보며 자신의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이래서는 안 돼요. 7성급 뇌 속성 능력자라니이. 우리 선제랑 완전히 겹쳐 버리잖아요오. 아니지, 복합 재능이라면 지는 건가?”
유선제는 시리우스라는 이름답게, 수많은 4세대 헌터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유선제라는 이름은 벨츠머츠에 밀리고야 만다.
왜 하필이면 같은 번개였을까.
유선제 또한 잠재력으로는 곧 7성급이 될 거라 평가받고 있지만, 실력이 없는 지금은 5성급일 뿐이다. 7성급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A급 게이트 다섯 개, 혹은 S급 게이트 하나 정도는 토벌해야 했다.
문제는 ‘복합 재능’이다. 그 모든 걸 하고 나서도 ‘동일한’ 7성급이라고 비빌 수가 없게 된 거다.
진연화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곤란하네, 곤란해애.”
그러고 보니 저번 옥션에서 그녀에게 물을 먹인 것도 벨츠머츠였다.
영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은 그들을 건드릴 수가 없다. 당장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전력도 심상찮다. 그들을 잡으려면 잡을 수야 있겠지만, 시리우스의 전력을 투자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다.
차라리 다른 쪽으로 힘을 과시하는 게 나을 거다.
“선제의 데뷔전을 조금 더 당길까 해요오.”
진연화의 말은 뒤쪽으로 향했다. 진연화의 곁에서 언제나 모든 말을 듣고 있는 이혜원이 곧장 대답했다.
“유선제 씨의 데뷔전을 말입니까?”
“그래요. 벨츠머츠가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결국은 빌런아니겠어요오? 진정한 영웅은 이 게이트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헌터다! 그렇게 말해야겠어요오.”
이렇게 된 거 그쪽에 집중된 시선을 모두 가지고 와야 했다. 진짜 영웅? 아니, 벨츠머츠는 빌런이다. 결국은 사람을 죽이고 남의 것을 탐하고 이 세상을 좀먹는 악인이라는 거다.
유선제를 완벽한 헌터로 데뷔시키는 것, 그리고 이 대한민국의 최고가 시리우스임을 다시금 알리는 것.
진연화의 목표는 그러했고 그걸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선제만을 위한 무대를 만들죠.”
눈을 빛낸 진연화는 유선제의 완벽한 데뷔전을 위한 작전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진연화는 몰랐다.
그녀의 뒤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신의 보디 가드이자 수행원인 이혜원, 그녀가 이미 설록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 * *
“생각보다는 빠르네.”
이혜원에게서 진연화의 계획을 모두 흘려들은 설록진은 그렇게 읊조렸다. 유선제의 데뷔전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
욕심이 많은 진연화라면 유선제를 더 갈고닦기 위해 시간을 더 끌 줄 알았는데.
유선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이미 예전부터 생각해 놓은 바가 있었다.
시리우스는 분명 좋은 거래 상대였지만, 압도적인 최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워 버려야겠네.”
설록은 주저 없이 결정했다.
이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떨어트리겠다고.
* * *
“심심하네.”
나는 소파에 누워 중얼거렸다. 온종일 소파에만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밖에 나돌아 다닐 수도 없었다.
한서현과 김재호의 감시가 제법 매서웠기 때문이다.
하긴 두 팔이 이 상태라 밖에 나가서도 뭘 할 수 없기도 했다.
어느새 쌀쌀하다는 말을 넘어서 춥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온도가 낮아졌다. 녹음이 푸르렀던 숲은 어느새 갈색의 옷을 입었고, 그 갈색의 옷을 떨구어 내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첫눈도 내릴 것이다.
밖을 내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장도 봐야 하는데.”
내 중얼거림에 옆에 서 있던 한서현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직 식량은 꽤 여유가 있고, 어, 재호 형이 사냥도 해 왔는데, 그거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고기 손질법은 알고?”
“인터넷으로 어떻게든 배우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며칠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중병 환자 신세였다. 한서현은 집안일은 제법 잘했지만, 운전을 못했으니 비품을 채우러 장을 보러 갈 수가 없었고 김재호는 그냥 집안일이라는 것과는 상성이 맞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처박혀만 있을 건데. 슬슬 장도 봐야 하고,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집 안에 가둬 둘 수만은 없잖냐.”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딜 가려고요!”
“그럼 스마트폰이라도 주든가. 아주 심심해 죽겠다.”
내 말에 한서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머리 아프게 이런 거 저런 거 보지 말고 당장은 쉬는 데에 집중하라고요. 보스가 회복하면 싫어도 일 시키고, 스마트폰도 얼마든지 돌려줄 테니까! 손도 못 쓰는 사람이 스마트폰에는 왜 그리 집착하는 거예요?”
정론이긴 하지만, 저렇게 말하면서 내 눈치를 쓸데없이 많이 보는 게 수상했다.
‘확실히 뭔가 있는데.’
막말로 못 움직이게 하는 건 그렇다 치자. 왜 정보 통제까지 하냔 말이다. 대체 인터넷에서 우리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어 대기에?
사고를 치긴 했다만, 결과적으로 도살자 박상편을 성공적으로 처치했고 인질도 모두 구했으니 그리 나쁜 얘기는 없을 텐데.
‘수상해.’
나는 한서현을 바라보았지만, 내 눈빛을 피해 한서현은 바쁘다며 사라졌다. 훈련하러 간다는 소리에 더는 잡을 수도 없었다.
나도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서현의 말대로 지금 당장은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다.
━네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안 되는 건 없죠.’
사실, 내 몸은 어느 의미에서는 이미 회복 완료다.
레이는 내 몸 중에 완전히 타 버린 양팔만큼은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 내 몸에서 붙어 있는 것도 그 속에 존재하는 마나 회로 때문, 아니면 썩어서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할 정도니까.
‘그래도 초재생을 익히면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
━며칠 전부터 그 얘기 중인 건 아냐? 그렇게 간단하면 당장 낫지 그러세요.
레이의 말대로 방법은 알아도, 해결이 어려웠다.
나는 아직 초재생을 익히지 못했고, 재생으로 살릴 수 있는 건 손끝의 감각과 어깨까지의 부위가 끝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노력을 하다 보면 뚫리지 않을까? 슬슬 감이 오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거실로 돌아간 내 눈에 한서현이 두고 간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그걸 본 나는 슬금슬금 걸어 스마트폰 곁에 다가갔다.
━정말 이렇게 쥐새끼처럼 굴 거냐?
‘쥐새끼라뇨! 말이 심합니다. 애초에 스마트폰을 두고 갔으면 안 되죠!’
나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이야 기특하지만, 언제까지 나에게 모든 정보를 감추고만 있을 수는 없다.
어쨌거나 나는 이 팀의 리더고, 벨츠머츠를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큰일을 하나 터트렸으니, 뭐라도 반응이 있을 테고 그 반응에 따라 벨츠머츠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해야 했다.
뭐, 이런저런 이유야 많지만.
솔직히 말해서 답답해 죽을 것 같다는 이유가 제일이다. 나는 손가락을 꿈틀거려 한서현의 스마트폰을 건드렸다.
“으흐.”
스마트폰 옆면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는 데에도 고통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겨우 이 정도의 움직임만으로도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니, 한서현과 김재호의 과잉 보호도 사실 그리 과한 건 아닌 셈이었다.
팔을 아예 굽힐 수가 없으니 휴대폰을 손에 쥔다는 건 꿈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겨우 스마트폰 화면을 연 나는 패턴을 입력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터치로 패턴을 푸는 장면을 봐 온 터라 패턴은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내 모습을 본 레이가 머릿속으로 혀를 찼다.
━어쩐지 요 며칠간 집요하게 곁눈질하더라니.
‘정보 엄폐에 대처하는 제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정보 엄폐라니 그렇게 말하니 퍽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거짓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히 거짓말도 아니다.
도대체 뭘 감추고 있는 건지.
문제는 스마트폰의 패턴을 푸는 데도 한세월이 걸렸다는 거다.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떻게든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들겨 대는 나에게 레이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바보 같으니, 염동력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
‘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멍청하니까!
얄밉지만, 나는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염동력으로 내 팔을 움직였다. 염동력으로 물건을 움직여 본 경험이 거의 없던지라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집어 던진다든가, 팔을 꺾어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꺾든가 했지만, 곧 제법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벨츠머츠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며칠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졌다.
나는 신중하게 그 모든 정보를 확인했고…….
결론은…….
개판이었다.
‘서현이가 왜 그렇게 저한테 정보를 숨겨 댔는지 알겠네요.’
나는 화면에 떠오른 정보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벨츠머츠 멤버로 추측되는 용의자 공개 수배.
한서현(17세, 성호 헌터 아카데미 재학 중 실종)」
사진까지 떡하니 박혀 있는 공개 수배서였다.
제8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