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58
00258 #12 – 미래의 가격 =========================================================================
#12 – 미래의 가격(3)
초일류 게이머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나니 부쩍 다른 게이머들의 플레이 근황이 궁금해졌다.
“조곽수의 플레이는 어때?”
범세계적 범죄연맹조직 ISO의 극동사령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한국에서 제일가는 영향력을 지닌 악성향 게이머가 아닌가.
심지어 언젠가는 내 앞을 가로막을 적이 될지도 모르는 상대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완벽한 승리를 바라지는 않아도 최소한 어떤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는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조곽수의 방송은 악성향 갤러리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해킹으로도 다이스 게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방송을 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네 실력으로도 안 되는 거야?”
“가상현실게임의 보안체제는 궤를 달리 합니다. 비록 게임으로 상용화된 기술이라고는 하나 그 가치가 적지 않기에 운빨좆망겜인 다이스 게임이라도 경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허.
가상현실게임 중에서는 최약체나 다름없는 다이스게임이건만, 상당한 해킹실력을 지닌 알파고가 엄두도 못 낼 정도라니.
잘 생각해보니 그런 게 가능했으면 진즉에 ISO의 범죄자들이 해킹기술을 연마해서 남의 방송을 터트리고 와트 수입을 못 내게 방해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래도 내게는 아직 믿을 구석이 하나 더 남아있지!
“구아악. 정보생물체의 자신감을 보여줘!”
[못해]
단칼에 기대감이 베였다.
[일정 부분에서는 알파고보다 해킹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내 인격 데이터가 박살날지도 모른다고? 정보생물체도 엄연한 생물체야. 죽기 싫어.]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아. 알았으니까 그만 진정해.”[자존심은 상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마.]
그럼 조곽수의 플레이 정보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한건가.
어쩔 수 없군.
그밖에도 궁금한 대상은 많으니 다른 게이머의 방송을 보자.
“그래. 발전소 연합에서 색마를 영입해서 트루엔딩 공략을 위해 지원한다고 했었지?”
당장에 적은 아니지만 발전소 연합의 지원이라는 건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곽수와는 다른 의미로 경계해야 마땅한 대상이지.
와트 옵션을 두둑히 지니고 와트구매물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둔다면 얼마나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할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츳키야. 색마가 하는 플레이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느닷없이 꺼림칙한 녀석 얘기를 꺼내네.”
츳키는 진심으로 넌더리가 난다며 혀를 찼다.
“여자로도 모자라서 온갖 종족의 암컷이나 따먹고 다니는 애가 뭐가 좋다고들 난리인지.”
“녀석이 익힌 색공은 위력이 대단하잖아.”
“성행위를 통해서 상대의 호감도를 강제로 끌어올리거나 체력을 제로로 만들고, 각종 버프나 디버프를 걸 수도 있는 기술 말이지?”
게이머의 성향에 따라 게임의 장르가 달라진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민지와쪄염이 종족 간 전략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한다면 색마는 다이스게임의 19금적 요소를 전적으로 활용하여 19금 배틀물의 끝장을 달리고 있다.
타고난 게이머로서의 재능과 숙련치를 모조리 ‘섹스하기 위해서’ 활용하는 녀석인 만큼 처음 컨셉을 들을 때에는 얕보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의 진정한 두려움은 타인과는 격을 달리하는 거대한 성욕에 있다.
녀석은 박을 수만 있다면 몬스터의 그곳부터 던전의 보물상자, 조각상의 둔부, 심지어는 불타는 샐러맨더의 거기에도 오입질을 시도한다.
“발전소 연합에서 지원을 약속했으니 공개방송은 안 할 거야. 그래도 여기로 도망치기 전에 본 영상은 있으니까 그걸 토대로 기억나는 대로는 알려줄게.”
츳키가 전한 색마의 플레이는 민지와쪄염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남녀노소 종족불문 생사불문 닥치는 대로 전력을 다해서 박으면서 아군을 늘리고 있다고?”
“그래. 정력제는 와트 아이템이니까 발전소 연합의 지원에 힘입어서 죽을 기세로 박고 다니는 거지. 내친김에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 더블 피니스를 습득해서 동시에 두 개체씩 공략에 나설 거라고 하더라. 지금쯤이면 뭐… 이미 했을 수도 있고.”
미친.
이런 애들을 상대로 내가 어떻게 앞서있는 거지?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운일까, 실력일까.
알파고는 개의치 말라고 했고, 스스로도 이유를 알고는 있지만 남은 남이고 나는 나라고 넘기기에는 이번 건은 충격이 상당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진즉에 트루엔딩 보고도 남지 않았어?”
“걱정 마. 신한테까지 그걸 박아댈 일은 없으니까. 신위경쟁을 어떻게든 넘긴다고 해도 외계침략은 못 넘길 이유도 있고.”
“이유가 있다고?”
츳키는 왠지 모를 확신에 가득 차있었다.
“외계침략에서 나오는 외계인들. 물량이 많아서 다 박기도 부담스럽고, 생긴 것도 하도 징그러워서 저 색마마저 꺼림칙하다고 못 박는다더라.”
그거 참 묘하게 현실적인 이유로 클리어를 못하고 있네.
이렇게까지 호언장담하니 색마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접어둬도 좋을 것 같다.
“맞다. 혹시 발전소 연합에서 조곽수의 플레이에 대해 알아둔 건 있어?”
“폐쇄방송은 우리라도 답 없기는 마찬가지야. 와트가 부족해서 매수가 가능한 애들도 아니고.”
“걔들이 그렇게 전기를 잘 벌어?”
“요즘 갤러리들은 절대 다수가 악성향이잖아. 방송 자체는 통쾌하다거나 현실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범죄교습 정도로 취급되어서 호평 받고 있다고는 하더라고.”
“방송 못 본다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숫제 애송이 취급하는 투로 츳키가 빈정거렸다.
“내가 못 본다고 다른 갤러리들까지 못 보는 건 아니거든? 입소문으로 들었지. 쓰레기가 걔네 방송도 간간히 보는 편이야.”
“그건 꽤나 있을 법도 한 얘기네.”
말 나온 김에 일 대 일 채팅으로 쓰레기에게 대화를 걸었다.
-개복치 : 조곽수 방송 스타일 좀 연구하고 싶어서 그런데, 갖고 있는 녹화영상이나 기록 같은 거 있으면 받아볼 수 있을까?
-쓰레기 :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개복치 : 3만 와트.
-쓰레기 : 5만.
-개복치 : 3만 5천 와트에 차단방지권 3개 얹어줌.
-쓰레기 : 콜.
역시 자금에 여유가 있으니 대화가 진척되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쓰레기 : 영상은 없지만 기억나는 만큼은 알려줄게.
조곽수는 전형적인 범죄형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초반에는 온갖 비주류 세력이나 범죄길드를 통합하여 마왕군과 연줄이 닿은 세력과 접선하고, 이들의 정보를 역이용해서 단숨에 정계의 중추로 진출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중반에는 무력과 범죄를 적절히 엮은 정책을 기반으로 국가를 운용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악성향 NPC들을 모아 세계멸망 플래그에 맞서는 모양이고.
다만 이 방식의 한계는 제법 뚜렷하다.
마왕부활은 어찌어찌 막는다고 쳐도 마신강림이나 신위경쟁을 넘어서다가 삐끗하기 십상이며 외계침략에 도달해서는 손도 못쓰고 박살난다고 한다. 선성향 NPC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다보니 전력부족을 감당할 수 없다는 모양이다.
-쓰레기 : 이번 플레이도 별반 다를 건 없어. 애초에 그 양반 특기가 남의 플레이에 훼방 놓는 거니까.
-개복치 : 고마워. 덕분에 참고가 됐어.
-쓰레기 : 그렇다고 악성향 플레이에 너무 재미들이면 안 된다? 나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재밌게 볼 테지만, 니 방송이 선성향이라서 보는 갤러리들도 제법 되니까.
뜻밖의 인물에게 들은 뜻밖의 충고였다.
이 녀석, 내 방송에 이렇게까지 애착을 지니고 있었던가.
가만 생각해보면 꽤나 초창기부터 방송을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이나 계정이 블록당하면서도 싫은 소리도 별로 없이 다른 계정으로 봐왔었지.
-개복치 : 명심해둘게.
약간의 팬서비스라고 할까.
평소라면 쓰레기를 상대로 이런 온건한 대화를 나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호의에는 호의로 답하는 게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험난한 22세기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호의는 등쳐먹으라고 있는 나약한 약점으로 여겨지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신경 쓰이는 건 컨트롤마스터 정도인데.”
“오픈방송이지만 방송정원 한계치까지 갤러리들이 꽉차있습니다. 애청자들도 때때로 본방사수를 놓치니 직접적인 관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합니다.”
“역시나 거물들이네. 나처럼 한가한 방송은 아예 없구나.”
이것만큼은 실력이 딸려서 발생한 결과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말도 없다.
더욱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
정복왕의 솔로레이드에 성공하며 느슨해졌던 마음이 팽팽히 조여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정체될 때가 아니야. 역시, 좀 더 분발해야만 해.”
“분발한다고 해도, 뭘 어떻게?”
“그건…”
딱!
츳키의 매서운 알밤이 이마를 가격했다.
“아야… 무슨 짓이야.”
“거봐. 아무 생각 없이 의욕만 만땅이잖아. 네가 사망플래그를 밟고 죽는 건 대부분 그런 때였다고.”
“윽.”
“자각은 있어서 다행이네. 열 오르지 말고 찬찬히 생각해봐.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잔뜩 있을 테지만, 지금까지 놓친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
분명 신경 쓰이는 일은 차고도 넘칠 정도로 쌓였다.
게임 내적으로는 실종된 마왕 마이너 카피에 대한 수색이나 루세트가 오드마이어 제국에서 팔아넘긴 정보, 차원의 틈에서 아직 회수하지 못한 육국의 보물들 등이.
게임 외적으로는 구아악의 정보저장크기를 늘려주기 위한 비밀연구소로의 침투, 알파고를 비롯한 휴머노이드들의 생산공장에 대한 탈환, 머지않아 닥칠 해상지진 등이 있다.
“제일 우선적으로는… 결혼인가?”
공략과 관계되지 않더라도 전쟁을 핑계로 미뤄두었던 일이나 쌓여버린 일들도 적잖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발드 마이저와 셀레나와 치를 혼례식.
잊어버렸다면 절대로 원망 받았을 중대사이지.
“으음. 지금이라면 특별히 귀중한 조언에 대한 대가를 머리 쓰다듬기 한 번으로 통칠 수도 있어.”
“그런 것까지 대가를 거는 거냐… 평범하게 요구해도 된다고.”
“잠, 으으.. 역시 부끄러우니까! 됐어! 하지 마!”
멋대로 요구한 게 언제냐며 제 풀에 얼굴을 붉히며 달아난다.
츳키도 은근히 소녀 같은 면모가 넘쳐난다니깐.
계단을 오르다가 자빠지는 그녀를 무장요원이 어깨에 짊어지고 올라가는 모습이 실로 흐뭇하다.
“지이이.”
“…알았어. 해주면 될 거 아냐.”
결국 머리 쓰다듬기의 최대의 수혜자는 알파고가 되었다.
[공을 세운 건 나인데 어째서 알파고가 칭찬 받는 거야!] “너도 머리라도 쓰다듬어줘?”[홀로그램으로 기분을 내봤자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거든!?]
아차.
구아악을 다루는 방법은 츳키나 알파고와는 다르지.
나는 좀 더 그녀의 스타일에 맞는 칭찬방법을 구사했다.
“성과금으로 5만 와트 쏴줬어.”
[와아! 이거라면 하이퍼 넷 게시글을 5천개나 열람할 수 있어!]
“에로한 영상 다운받기에 너무 열성들이지 마라. 메모리 다 차면 또 지워야하니까.”
모쪼록 마냥 시무룩해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최상급 게이머들과 비교하면 일신의 재주는 떨어질지라도 나를 향한 갤러리들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믿기지 않는 성과를 이룩했으며 수많은 변수로 인해 이번 플레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으니,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정형화된 공략법과는 다른 신선함과 만족감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목표를 분명히 정해둘 필요가 있다.
무엇을 우선적으로 공략해야 하는가.
현실의 문제들도 언젠가는 손을 써야 하지만, 당장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거라면 구아악과 관련된 이벤트겠지만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호된 꼴만 보기 십상이다.
우선은 게임.
거기에서부터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줄여나가야 한다.
여타의 강력한 게이머들과 달리 내가 지닌 강점으로 임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왜 이걸 진즉에 생각하지 못했지?’
나의 강점.
그것은 비단 사망플래그의 감지와 역이용, 사망플래그를 통해 다져진 정신력만이 아니다.
철저한 이익과 이권으로 묶인 악성향 갤러리들의 파티와 달리, 내게는 무분별한 도전으로 덤벼들었다가 단단히 족쇄가 채인 게이머가 둘이나 있지 않은가.
[루세트]와 [못지나간다].
이들의 견해를 빌리자면 게임 내부의 상황을 보다 손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꽁냥꽁냥은 진도부터 빼놓고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