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78
00278 #12 – 미래의 가격 =========================================================================
#12 – 미래의 가격(23)
파란만장한 민간사찰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광장과 번화가에서의 소란은 시작에 불과했지.
도장거리에서는 ‘북두모근권’이나 ‘모발 탄 초인문’ 따위의 간판을 건 무관이 늘어선 광경을 목격했다.
어디 그뿐이랴.
장인의 거리에서는 두피를 보호하기 위한 특제 투구가 폭발적으로 유행하며 시민들의 생활필수품으로 거듭 떠오르고 있다. 눈 뜨고 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광경이다.
“켄이치.. 이 일은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단단히 따지도록 할 테다…”
‘그렇게까지 언어적으로 따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화가 나는 걸 어떡하는가!”
‘보통 화가 나면 욕을 하지,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따지지는 않아.’
“요, 욕이라고?”
셀레나의 애매한 반응을 보자니 묘하게 감이 온다.
맙소사.
이건 욕을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다…!
‘설마 악마족에 마왕씩이나 돼서 욕도 할 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오체불만족 녹색템 주제에 감히 입을 놀리다니.”
‘!?’
방금 난 무엇의 편린을 본 거지…?
-낭자아이 : 히이익;
-퐁삽 : 다시는 여왕님을 화나게 해서는 안 돼!
-쓰레기 : 원래 아닌 것 같은 애들이 내숭 더 쩐다고!
-츳키 : 뭐야? 너 지금 내가 내숭 쩐다고 까는 거냐?
-쓰레기 : 아니 넌 존나 맞는 것 같은데.
삽시간에 키배의 장으로 돌변한 채팅방을 외면하며 나는 얌전히 침묵을 고수하기로 했다.
“음? 드문 일이네. 네 쪽에서 집무실을 먼저 찾아오고.”
“켄이치. 방금 민간시찰을 다녀왔는데 말이지.”
“그래? 외각도시에 비하면 아직 나은 편이니까 좋은 것만 구경하고 왔겠네.”
“!?”
“무슨 표정이 그래? 꼭 산타할아버지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소릴 들은 어린아이처럼.”
셀레나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굳었다.
“그럴 리가 없다네!”
“…응? 농담이라고 생각했나본데, 외각도시 쪽은 정말로 수도보다도 훨씬 더 심하고─”
“산타 할아버지가 가짜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쪽의 경악이었냐…!
“하… 뭐… 그래… 있을 수도 있겠지.”
“있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있다네!”
‘그건 맞아. 산타 있음.’
셀레나를 향한 지원사격에 켄이치의 표정이 떫어졌다.
“그렇게까지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냐?”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있는데.’
“증거나 대보시지.”
‘12월 25일 00시 00분에 폭설지대에서 결박한 페가수스나 유니콘 따위의 천마종을 지니고 있으면 산타클로스 할아범이 직접 나타남.’
“………진짜?”
누구 게이머 짓 한두 번 해본 줄 아시나.
“그럼 산타가 왜 순록 대신 그런 번거로운 걸 타야하는데.”
‘1년차 때 천마종으로 안 갈아타면 과로사로 사망한 변사체가 랜덤한 지역에서 발견되거든.’
“…구체적으로 짜증나는 썰이군.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까지 하면서 날 놀리고 싶었냐?”
하 진짜 미치겠네.
게이머 개념을 NPC한테 어떻게 알려줄 수도 없고.
이걸 어찌 설명해야하나 갑갑해하자니 셀레나가 날 가리키며 말했다.
“지팡이는 정신이 불안정해서 머릿속에 있는 공기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묻곤 한다네. 분명 저것도 공기친구들이 알려준 거겠지.”
‘누굴 정신지체로 만들려는 거냐.’
“걱정 말게나. 비록 그대가 지닌 친구의 99%가 공기 친구일지라도 본녀는 1%에 속하는 현실 친구이니까!”
자상함이 쓸데없이 무거워!
게다가 NPC가 현실 운운하지 말라고!
상냥함이 도리어 엄청나게 아픈 딜로 박혀오잖아!
-쓰레기 : 우리 공기친구였음? ㅋㅋㅋ
-묵제 : 켄이치도 착각이 넘 심하네
-퐁삽 : 역시 공기친구는 아니지
그렇지?
우리가 그렇게 얄팍한 사이는 아니었잖아?
-쓰레기 : 그냥 친구도 아닌걸ㅋㅋㅋ
-묵제 : ㅇㅇㅈ ㅋㅋㅋㅋ
-퐁삽 : 복치야 와트 줄게 웃겨봐ㅋㅋㅋ
아무 사이도 아니었구나…!!
아니, 오히려 질이 더 나쁘잖아!
빵 셔틀 때리는 일진보다 나쁘다고!
‘아무튼 산타클로스 할아범은 실재한다. 그러니까 셀레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이래봬도 정식주인이니까 무시 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지팡이… 그대란 남자는…!”
셀레나는 무척이나 감격 받은 표정으로 두 손을 맞잡았다.
훗.
내가 차가운 도시 남자이기는 해도 내 여자에게만은 따스한 녀석이지.
“하나뿐인 친구를 위해서라면 그런 티나는 거짓말도 할 수 있었구나…! 진심으로 감동했다네!”
죽어줘.
제발 죽어줘.
‘아무튼 간에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체 하루 사이에 뭔 짓을 했기에 수도가 이 지경이 된 거야?’
“레이널드의 주도 하에 법문을 설파했지. 허락도 제대로 받았잖아?”
‘공문 돌린다고 했지 이런 미친 짓을 한다곤 말 안했잖아.’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눈치 챘는데, 용병들도 검술전문가 정도의 계급이 되면 머리를 기르기는 한다.
하지만 진정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기를 수 있는 머리카락 개수에 한계를 둔다.
자연히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은… 세기말 모히칸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북반구라는 점에서는 배경이 일치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이스 게임은 북X의 권하고는 다르다고. 북X의 권하고는.’
“북X의 권이 뭘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알바야? 국민정서에 맞춰서 제대로 하지 말라는 건 못하게 했잖아.”
‘그땐 설마 이런 정신 나간 경우까지 발생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걸…!’
더는 지나간 일을 탓해봤자 의미도 없을 것 같고.
아까의 발언도 신경 쓰인다.
수도가 이 지경인데 외각도시는 더 심하다면 거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까.
“원형 콜로세움을 열어서 참가한 대머리들에게 모발을 한 가닥씩 제공하고, 승자는 패자의 모발을 모두 소유할 수 있지. 그렇게 우승까지 도달한 자는 모은 모발을 모아서 가발을 만들 권리가 주어져.”
‘…그만.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해.’
“국민들의 전투력이 상승하면 공국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잖아? 지지도 제대로 받고 있고. 이 기세면 궤백 불교 따위는 말끔하게 잊힐 것 같은데.”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임팩트가 너무 크다.
궤백 불교 같은 건 깜빡 잊고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묻겠는데. 카심은 언제 구하지?”
‘어?’
“어가 아니잖아. 지팡이, 너 설마…”
의혹어린 켄이치의 목소리에 나는 단호히 부정했다.
‘잊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러면?”
‘그런 멍청한 녀석 따윈 잊고 싶은 거다!’
왠지 모르게 켄이치와 셀레나가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날 매도했다.
‘아니, 구하고 싶어도 지금은 방법이 없는걸.’
“그러면 방치하겠다고?”
‘일단은 식까지 기다려. 그 때가 되면 좋든 싫든 결착을 낼 수밖에 없으니까.’
나라고 태평하게 시간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다닌다고.
평상시의 소소한 이벤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망플래그가 보이는 곳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지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지팡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본녀도 그대를 믿노라.”
나름 모험을 함께 한 사이라고 신뢰를 보이는 건 좋은데.
시발.
친구 없어서 혼밥하는 가여운 사람 취급하는 눈은 그만둬.
‘이제 딱 하나만 더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불교의 교세는 확고하다만, 아직 문제가 있는가?”
‘신을 위장해도 실제로 신성력을 발휘해서 증명하는 건 별개의 문제잖아. 신위를 발휘할 수 있는 신이 조력자로 있으면 좋겠네만…’
후보군 1.
넴루드.
이미 신위를 상실한 상태라서 써먹을 수가 없다.
후보군 2.
노스트라.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라 신용도 안갈 뿐더러 적절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엿 먹으라고 이상한 짓만 할 것 같다.
게다가 티가 다 나잖아.
불교 신자를 모조리 노스트라의 신도로 만들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절대로 안 된다.
‘다른 사제들과 손을 잡는 건 가능하더라도 신이라는 족속들은 그놈이 그놈이니까. 위장을 해봤자 1초도 못 가서 다 들켜버릴 걸.’
“흐음. 그럼 익숙하지 않은 신이라면 되는 건가?”
‘그렇기야 한데. 없잖아, 그런 신.’
“없긴 왜 없어?”
‘있어?’
켄이치는 정말로 까먹은 거냐고 몹시 놀라워했다.
“너, 아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은근히 별 관심 없었구나?”
‘아이라니, 넴루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넴루드 말고. 후요가 있잖아.”
………어?
진짜네.
랜덤마법의 부작용으로 초월마법 [신의 저울대]에 힘입어 탄생해버린 후요 전용 수호신 [달님]이 있었잖아.
그런 기이한 신을 다른 사제들이 알고 있을 리도 없고.
어디 가서 노출시킨 적도 없으니 이 상황에는 적임이다.
‘그래봤자 별 거 없잖아. 권능을 써먹을 게 없다고.’
불교의 신이랍시고 강력한 대머리들을 거느린 악신으로 악명을 떨쳐도 모자랄 판국에 사탕이나 툭툭 던져주다니.
비주얼 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납득이 안 된다.
그런 거 보여줘 봤자 온갖 국가의 최고수뇌부와 각 교단의 요직에 위치한 인재들 앞에서 국제적인 개망신을 당할 뿐이라고.
“권능이 왜 없는가?”
셀레나는 아직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사탕 주는 권능을 어떻게 보여줘.’
“그거 말고 있지 않은가.”
‘그거 말고…? 헉! 설마 다음 권능을 개방한 건가!’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당장 확인하러 가자!’
“확인하러 가는 건 좋다만, 왕복 이틀이나 걸리는 거리가 아닌가.”
‘뭐가 문제야? 켄이치 있잖아.’
느긋하게 이쪽을 비웃으며 커피 잔을 홀짝이던 얼굴이 왕창 구겨졌다.
-퐁삽 : 영고 켄이치ㅋㅋㅋㅋㅋ
-쓰레기 : 넌 자유의 몸이 아니야!
-낭자아이 : 갸아악 구아아악
구아악 녀석.
12년을 줄창 밀더니 드디어 유행어 등극에 성공했구나!
소소한 재미를 느끼던 것도 잠시, 켄이치의 공간이동 마법에 힘입어 무사히 놀이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덤으로.
왠지 모르게 바리깡을 들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보스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이, 직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지나가던 악마 한 명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벤트에요.”
‘이벤트?’
“마침 공국 전역에서 불교라는 게 유행이라기에 저희도 도입해봤죠. 머리카락 50개를 모아오면 놀이기구 1회 무료 이용권으로 교환해드려요.”
‘지거 뽑으면 되잖아. 왜 남의 거 밀려고 저러는데?’
“지팡이라 모르시겠구나. 자기 거 머리카락은 뽑으면 아파요.”
아.
얘네들 전부 다 악성향이었지.
“저, 저길 보게!”
“뭐 대단한 구경거리가 있다고… 헉!”
별거 아닌 호들갑이라며 셀레나에게 핀잔을 주려던 켄이치가 흠칫 놀랐다.
뭘 저리 놀라.
마찬가지로 대수로울 것 없는 일에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며 시야를 돌린 나도 흠칫 놀라버렸다.
“보, 보지 마…! 나라고 좋아서 헐벗은 몸으로 다니는 게 아니라구…! 흐끄으윽!”
온몸을 뒤덮어야 할 풍성한 털은 어디 갔는지, 생살이 훤히 드러난 보스몬스터 그리핀 한 마리가 울먹이며 달아난다.
새 털도 뽑아가는 거냐…!
놀이공원 이용객 녀석들, 쓸데없이 응용력이 대단하잖아!
‘……굉장하네, 여기.’
“그래도 관리는 제대로 되는 모양이구나. 즉위식 때도 예산이 없어서 스킵 된 불꽃놀이도 하고 있고. 폭죽을 터트리는 광경은 처음 보는구나.”
“왜 날 보면서 따지는 거야. 국고 털어놓고 차원주머니랑 세트로 잃어버린 지팡이를 탓하라고.”
그건 할 말 없네.
공왕 즉위식 때는 접속종료 상태로 시간 경과해서 같이 어울려주지도 못했었고.
새삼 셀레나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든다.
나름 감수성에 젖어서 켄이치와 셀레나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을 올려다본다.
나도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까, 다음 번 접속종료 때에는 알파고랑 같이 불꽃놀이나 시도해볼까.
“네? 저희 불꽃놀이 일정은 없는데요?”
헌데 직원이 얼빠진 소리를 하며 황당해한다.
“그럼 저건 뭔가. 본녀의 눈에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불꽃놀이로 보인다만.”
“아아. 저거 초월자 고객님들이 시설이 박살나지 않는 선에서 머리카락을 뽑겠다고 상공 1500m 위에서 격투하고 있는 거예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묘하게 익숙한 소리도 들린다.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악마군주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도록 하자.
“하하하!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내게 굴복하라! 네 털은 이미 뽑혀있다!”
“히이익! 악마군주다! 모두 도망쳐!”
“나이도 먹을 대로 처먹은 초월자 새끼가 왜 저래 대체!”
절박한 외침이 진심으로 안쓰럽기 짝이 없다.
저 녀석이 다이스 게임 세계관 내에서 랭킹 10위권에 드는 터무니없는 초월자라고 누가 믿기나 할까.
‘그냥 지나가는 악마족한테서 뽑으면 되잖아. 지 수하들 내버려두고 왜 저기서 저러는데.’
“악마족은 의외로 털이 있는 개체가 거의 없다고 하시던데요. 애들 밥그릇 뺏기도 싫다고 하시고.”
‘…..아무래도 상관없어. 후요가 있는 곳으로 안내나 해줘.’
그만 알아보자.
============================ 작품 후기 ============================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착실하게 스토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려 불교-를 사칭한 무언가-와 후요를 콜라보 시키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