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49
00448 #18 – 잊고 있던 것 =========================================================================
#18 – 잊고 있던 것(25)
락의 힘으로 파워가 충전된 아룡 아데브에클.
녀석의 위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가뜩이나 강해보이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형체가 이제는 불길에 휩싸인 것 마냥 푸른 귀화에 뒤덮였다.
이글거리며 솟구치는 원념은 이미 차가운 증오 따위를 운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대지가 얼어붙고 공기가 창백하게 질린다.
저런 녀석을 상대로 거리를 좁혀?
얼어 죽기 딱 좋은 소릴.
마탑주들의 마법진의 힘으로 당장 범위권 내에서 도망치는 것만은 막고 있지만 저만한 냉기를 견디며 접근할 수 있는 자도 거의 없다.
“사악한 존재와의 결전이 엑스칼리버의 승리를 더욱 찬란하게 빛낼 지어다!!”
그러한 몇 안 되는 극소수의 인물에 속한 아서 펜드래곤은 가장 먼저 아룡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아서 특유의 한계를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검기의 범람이 아룡을 덮쳐들었지만, 검기는 미처 아룡의 형체를 이루는 사념체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반투명한 역장에 가로막혔다.
‘틀렸어. 저런 막무가내 식의 공격은 아룡에게 통하지 않아. 오히려 통용되는 공격이 극도로 드물다고 봐야 해.’
“그럼 어떤 공격을 하도록 지시를 내려야 하는가?”
‘말했잖아? 일격필살의 필살기만 거듭 쏟아내야 한다고. 그럼 그 중에 유독 아프겠다 싶은 건 쟤도 맞으면 아프겠지.’
셀레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묘한 말이로구나. 필살절초를 수도 없이 가해야 그 중에 몇 개나 겨우 효과가 있을 거라니. 아룡의 내구력이 그 정도로 대단한 건가?”
‘글쎄… 뭐, 내구력도 대단하기는 한데. 역시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지.’
애초에 저건 진짜 피와 살로 이루어진 놈이 아니다.
원념으로 들끓는 사념체.
그것도 옛 시대의 명장이나 영웅이라 불리던 자들이 10만 8천이나 모여서 구성된 거대한 원념덩어리나 다름없다.
‘쟨 맞아서 아프다고 생각 안하면 데미지도 없을 거야.’
“뭐…? 맞아서 아플 공격이면 당연히 아프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야. 치명상을 남길 공격이라도 당사자가 이 정도는 문제없다, 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효과도 없어.’
셀레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런 존재를 대체 어떻게 해치우겠다는 건가.”
‘그야 맞으면 죽겠구나 싶은 공격을 맞게 해야지.’
“그런 공격은 동작이 커서 적중당하지도 않지 않은가!”
평범한 레이드라면 그렇겠지.
허나 누누이 말했듯이 이번에는 상대가 특별하다.
이번 적은 원념으로 이루어진 사념덩어리라고.
‘우리가 파괴해야 할 건 사념체들의 역장도, 실제 드래곤의 비늘과 동일한 강도를 지닌 사념체도 아니야. 바로 아데브에클이 지닌 [상식]이지.’
“상식 따위를 부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아룡을 백치로 만들어서 마법 시전을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건가?”
‘되겠냐? 그런 짓이!?’
원래 작전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셀레나의 발상은 훨씬 더 심각하군.
‘녀석이 지닌 상식은 [드래곤은 무적]이라는 녀석이다. 마법은 통하지 않고, 근접전에서는 검강 이하의 공격으로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는다. 그마저도 [역린]을 공격당하지 않으면 1분 내로 신체의 부상이 수복된다고 생각하지.’
“자, 잠깐!”
‘응?’
“그럼 저 아룡은 자기가 믿는 상식을 실제 결과로 이끌어내는 구현능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뭐 그렇지.’
저게 괜히 신화생물이라고 불리겠냐.
애초에 만물을 시금치로 만들 수 있는 드래곤들을 적으로 돌리고도 버젓이 살아남은 녀석이다.
그 정도 재주가 없고서야 신화생물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이제껏 생존할 수 있었을 리가 없지.
‘그러니 무력으로 저놈을 해치우려 드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다. 발을 묶기 위한 목적으로는 이보다 좋은 유인책도 없지만.’
녀석의 목적은 드래곤을 죽이는 것.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 각지의 오지에 틀어박힌 드래곤들을 밖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만일 인간족 영웅과 고위급 실력자들을 대거 죽이고, 몬스터와 인간 사이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초래한다면?
엄청 시끄럽겠지.
그 결과, 드래곤들은 단단히 빡쳐서 튀어나올 테고.
잠복하던 아룡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어주는 것처럼 뒤통수에 대고 드래곤 브레스를 내지르며 국가 하나는 가볍게 멸망할 대격전을 벌이기 시작하리라.
물론 그게 이루어지면 우린 다 죽어있을 거다.
드래곤을 부르는 전제조건이 우리들의 죽음이라고.
그게 저 덩치 큰 머저리가 날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하는데 씩씩거리며 아서를 죽이려고 손짓 한 번에 수천 개의 바위를 낙하시키거나 지면을 늪으로 바꾸는 이유였다.
‘그나마 언령마법까지 발휘하지는 못해서 다행이지.’
녀석이 지닌 [심상구현화]의 능력은 자신의 신체 외부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공격은 다 받아도 막상 저놈이 할 공격은 사념체를 이루는 10만 8천 명에 달하는 패배자들의 능력밖에 없는 셈이다.
진품 드래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것도 무시할 수준은 못 된다.
절대자급 실력자들이 10만 8천 명이나 있다고.
그것도 수천 년간 원념만 키운 녀석들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마법공세에 아서는 변변찮은 반격을 시도하지조차 못한 채 급격히 위기에 내몰렸다.
집채만 한 마법을 가로막은 것은 짧막한 시스템 알림과 마탑주들의 공들인 마법진으로부터 발동한 자동마법방어기능이었다.
“어째서 저들의 공격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건가!”
‘너 같으면 그런 소리 듣고 싸울 맘이 나겠냐? 가뜩이나 패잔병 같은 몰골을 하던 마탑주들이 잘도 여기까지 버틸 생각을 하겠다.’
“윽. 그, 그건…”
‘됐어. 주공은 저 녀석들이 아니니까.’
“뭔가 비책이라도 있는 건가?”
당연히 있다.
나는 게이머.
공략을 빼면 돌연사 성분밖에 남지 않는 몸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돌연사가 아니다.
대국을 역전시킬 공략이다.
‘상식을 깨부수려면 상식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공격하면 되지.’
아룡 아데브에클의 최대의 방어구가 단단한 비늘과 역장이 아니듯이, 녀석이 지닌 최대의 무기 또한 거대한 몸과 위협적인 마법 따위가 아니다.
사념체들을 한 자리에 묶는 근본적인 힘.
믿는 것은 무엇이든 실현시키는 [심상구현화]의 능력이다.
덤으로 이러한 능력은.
놀랍게도 정복왕을 상대로 내가 발휘했던, 마음을 무너뜨리는 공략만이 정상적인 공략이다.
진짜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저딴 걸 권능이나 검으로 모조리 쳐부수거나 동료로 만드는 TOP 3의 게이머들이 이상한 거라고.
모쪼록 심상구현화는 동일한 심상구현화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아룡은 저게 상시발동하는 녀석이지만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만 영향을 미친다.
반면 이쪽은 랜덤마법이 잘 맞아 떨어질 때에만 발동하지만 한 번 발동하면 상대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할 정도로 몰아세울 수 있다.
‘그래, 여기서부터는 운의 승부.’
운이 좋다면 한 번 만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이 나쁘다면?
몇 십 몇 백번의 도전으로도 성과를 얻지 못한다.
그래도 제로는 아니다.
그렇기에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누구도 아룡의 신체에 제대로 된 데미지를 입히지 못하는 지금, 나의 심상구현화로…….
“아직이다!! 내 라이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악마 녀석…! 이만한 격전에 휘말리고도 살아남다니.」
“진정한 락커는 유황불 속에서 좌선을 하면서도 락을 연주할 수 있는 법이다!!”
뭐야 저 녀석.
왜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건데.
뒤로도 잔뜩 일어나고 있잖아!?
-소마 : 악마 군악대 전원 생존인데? ㅋㅋㅋ
-프랑 : 일단은 초고렙존에 서식하던 악마들이잖아!
-졸라 : 하는 짓은 병신 같지만 의외로 강한건가!?
일단은 악마니까 강하기야 하다.
최소 절정지경은 될 걸.
그 전투력을 고스란히 락 연주에 올인 하는 게 문제지.
“도망치지 마라, 아룡!!”
「도망? 이 내가, 너희 따위에게서 도망친다고?」
“그렇다! 이건 락의 대결! 설령 우리의 목숨은 앗아갈 수 있을지라도 락에서 우리들을 앞서지 못하는 한, 네 녀석은 영원토록 성스러운 락의 대결의 패배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딴 대결 따위 있을까보냐.
없다고.
음악의 신은 넴루드보다 훨씬 더 저력이 약한 약체신.
그마저도 락은 신에게도 버림받은 장르의 음악이다.
성스러움을 거론하기에는 너무나도 마이너하다고!
「그럼 기꺼이 패자가 되지. 개소리 말고 죽어라!」
조금의 흥미도 보이지 않고 문답무용으로 악마들을 때려 죽이려는 아룡.
다가오는 공격을 보면서도 악마 군악대 대장은 피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며 비웃었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드래곤을 죽이는 건 무리이겠군!”
위대한 검주라도 막아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공격은, 놀랍게도 아룡의 자의로 인하여 멈추었다.
「이 몸의 저력은 강하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드래곤의 육체를 모방하였고, 이 가슴에 어린 10만 8천 개의 원념은 꺼지지 않는 동력이 되어준다! 결코 패배할 리가 없다!」
“하하하! 드래곤의 몸을 모방하면 무얼 할까! 정작 가장 중요한 정신은 조금도 드래곤에 미치지 못하고 있거늘!”
악마 군악대 대장은 마치 목숨이 수백 개라도 되는 것처럼 대담하게 호통을 내질렀다.
“검은 검으로! 마법은 마법으로! 락은 락으로!”
「……!?」
“이것이야말로 드래곤이 만능을 자처할 수 있는 비결이자 힘의 원천! 어떠한 도전에서도 패배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초월종이라 불릴 자격을 얻은 것이 아닌가!!”
듣기에는 멋지지만 결국은 자신의 장기인 락으로 승부하자는 내용일 뿐이잖아!
「비열한 녀석! 교묘하게 자신의 주특기로 겨루자고 유도하는 것이 실로 악마답구나!」
“그게 뭐 어쨌단 말이냐! 너는 드래곤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려던 것이 아닌가? 그럼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잖아! 신성한 락의 대결을 거절할 셈이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로군. 좋다. 널 이겨서 나의 힘이 드래곤을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기가 막히게도 그게 먹혔다!
‘근데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시간 벌이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연주의 부작용은 앞서 확인했다.
버프 걸린다고.
피아 구분도 없이 아데브에클의 전투력까지 상승하잖아.
「하하하! 어리석은 녀석. 이대로라면 내 전투력만 계속해서 상승할 뿐이다. 괜찮겠는가?」
“상관없다! 락의 대결은 완력으로 겨루는 것이 아니니까!”
「실로 어리석구나!」
아룡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맹점을 짚어내었다.
「버프는 신체능력을 상승시키며 몸으로 하는 모든 활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하지. 그건 락을 부르는 것에도 마찬가지이다!!」
“뭣이…! 네 녀석, 진심으로 락을 하겠다는 거냐?”
「걸어온 도전은 피하지 않는다. 이것이 드래곤의 방식이라 알려준 것은 바로 네놈이 아니었던가?」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나는 한층 더 강력한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극의와 비의 따위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진정한 드래곤의 힘에 한층 더 가깝게 말이다!」
…성장 플래그냐.
그렇게나 강한 주제에 아직도 파워 업이 가능하다니.
노력하는 자세는 실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왕이면 적은 노력 대신 방심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그보다 이거.
전부 다 저 빌어먹을 악마 새끼 때문이잖아.
‘야 인마! 그만두지 못해! 이러다 아룡이 더 강해지면 악마군단이 책임지고 막기라도 할 거야!?’
“지지 않는다!”
‘쓸데없이 당당해…!?’
나는 이제야 녀석이 뭘 믿고 이리 자신만만한지, 그 끝없는 자신감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결에서 내가 패배할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뭘 믿고? 의외로 아룡이 엄청나게 락 잘할지도 모르잖아. 사념체가 10만 8천 명이나 있는 걸.’
“나는 세계제일의 락커! 누더기 따위에게는 지지 않는다!”
원천 같은 건 없었다.
근자감.
이른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녀석이었다.
============================ 작품 후기 ============================
믿는 구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