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97
00496 #20 – 킹메이커 =========================================================================
#20 – 킹메이커(16)
언데드의 사기(死氣)란 지독히 모순적인 개념이다.
죽어있되 움직인다.
생명의 개념 자체를 뒤흔드는 모순의 극치.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배척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죽어서도 살아 움직이기를 바란다.
이보다도 이기적인 기운은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심하군.”
심층지구에 발을 들인 직후, 란도멜이 꺼낸 소감이다.
건물은 부식되다 못해 혐오스러운 살덩어리에 뒤덮여있다.
거대생물체의 유해마냥 속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은 마치 뮤턴트들의 콜로니(Colony, 군락)를 연상토록 하니, 어지간한 극한 환경을 조우해온 란도멜조차 질색할 수준이었다.
『부정한 대지, 필라 오브 이블(Pillar of Evil)에 진입했습니다. 필라 오브 이블이 발산하는 ‘악의 원천’에 노출됩니다.』
『거대한 정신력으로 인한 완전 저항에 성공. 디버프 효과가 말소됩니다.』
중심부가 어디인지는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
심층지구에 진입하기 전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거대한 악의 기둥이 출현했다.
미약한 정신력을 지닌 존재는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이지가 붕괴될 법한 뼈와 살점으로 뒤덮인 건축물이 중추시설이 아니라면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저것은… 분명 당대에 이르러서는 실전되었다고 전해지는 구 마왕군의 마력수급원이구나.”
악마종족인 셀레나는 한 눈에 저 시설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사르갈 연합국을 지나쳤을 당시, 본의 아니게 파괴했던 마왕부활을 앞당기는 중추시설과 원리는 똑같다.
탑 내지는 기둥이 모으는 기운이 고스란히 봉인된 마왕에게 전송되어 봉인해제까지의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루세트가 팔아넘긴 정보가 기어이 사단을 일으켰어.’
혹시나 싶어서 공략지점으로 삼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마왕부활의 시간이 본래보다 훨씬 더 앞당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도 못했겠지.
뒤는 뻔하다.
부활한 마왕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으리라.
가뜩이나 게이머들의 난입으로 인해 난이도가 상승한 게임이다.
이럴 때의 불멸의 마왕은 초월지경을 넘어서 반신의 위까지 넘볼 수준이 될 터.
악마군주의 전폭적인 협력이 없다면 녀석을 다시 봉인시키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이쪽은 제대로 된 신성력을 지닌 사제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신성봉인에 의한 불멸의 마왕의 무력화도 불가능.
목표가 봉인이 아닌 소멸이 됨에 따라 불멸의 마왕을 상대하는 난이도는 한층 더 가파르게 상승한다.
-허락되지 않은 자들의 침입이 감지되었다…
악의 기둥에서 불길한 어둠이 피어오르는 순간.
돌연 파티원들을 비롯한 우리들 전원에게 형언할 수 없는 파멸적인 감각이 치밀어 올랐다.
『필라 오브 이블을 매개체로 삼아 알 수 없는 존재가 ‘어둠의 표식’을 시전 했습니다.』
『폐허도시 디스트무라의 심층지대에 존재하는 모든 언데드 몬스터들이 파티의 위치를 인지합니다.』
사방에서 대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수를 예측할 수 없는 대규모 몬스터들의 준동이 감지되었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
마침내 폐허도시 디스트무라 토벌전의 타임아웃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저 기둥의 최고층. 마주치는 적들은 모두 무력으로 강행돌파해라. 여기서부터는 발이 묶이면 끝장이다.’
거침없이 달려드는 좀비들의 숫자만 무려 수천 구.
접전을 벌이면 반드시 이동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폭사하는 빛과 함께 좀비 무리는 단번에 소멸했다.
“내정으로 단련된 고속영창을 무시하지 마라.”
반복되는 초고강도의 근무!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욱 신속하게, 더욱 고효율로 마법을 시전 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숙련된 것이 고속영창이다.
어디 그뿐이랴.
동시에 다수의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멀티테스킹 능력은 동시다발적인 캐스팅을 가능하게 했다.
그야말로 내정으로 길러진 마법능력 그 자체.
사정을 모르는 넬은 황당해했지만.
사정을 아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면서도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Kiaaaa!”
“Kyaaaak!!”
마법에 적중당해 소멸한 좀비들의 사이로 들려오는 괴성.
좀비 가죽을 뒤집어 쓴 좀비포식자 구울(Ghoul)의 등장이다.
시기적절한 기습에 멀티캐스팅과 고속영창이 가능한 켄이치조차도 반응이 무뎌졌지만, 파티에는 그녀의 공백을 메울 검사가 존재했다.
스스슷
잔상을 남길 정도로 민활한 쾌검!
구울들은 좀비포식자의 악명이 무색하게도 폭사하였다.
어찌나 순식간에 녹아나는지 긴장한 표정의 넬이 황당하게 대꾸할 지경이었다.
“이거 별로 안 위험한 거 아냐?”
긴장감이고 나발이고 오는 족족 죄다 녹아버린다.
켄이치의 마법에 란도멜의 쾌검.
두 개만 해도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근거리까지 접근하기도 전에 모조리 쓰러진다.
‘긴장 풀지 마. 이곳에 주둔 중인 사천왕은 미래예지도 가능한 [암흑 주시자]다.’
암흑 주시자는 돌발행동이 가능한 게이머의 미래까지는 볼 수 없지만, 게이머의 주변에 있는 NPC들의 판단은 읽을 수 있다.
게이머의 행동이 주변 NPC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은 대체로 당연한 바.
녀석이라면 지금의 사태쯤은 얼마든지 예측하고 있으리라.
“녀석들, 전력을 비축하고 있었군.”
악의 기둥 입구에 도달하자마자 란도멜이 이를 갈았다.
물경 수만에 달하는 대군!
감히 섣불리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 몬스터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다.
“저 정도야 마법을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멈춰! 광역마법은 안 된다!’
“..뭐가 일어난 거지?”
‘인간들이 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니야.’
“!!”
인질이 잡혔다.
거리를 좀 더 좁히자 내가 목격한 광경을 NPC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색이 된 넬이 인질로 잡힌 자들을 보고는 소리쳤다.
“실종자들! 틀림없어. 근래 들어서 미로지구와 골목지구 일부에서 실종된 부랑자들이야.”
읽혔다.
인간을 위한다는 동기.
이쪽 NPC들이 지닌 최대의 약점이 간파 당했다.
‘빌어먹을.’
광역마법으로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희생을 낸다면.
당장은 괜찮을지라도 이 자리에 모인 NPC들의 성향이 적든 크든 악(Evil)을 향해 기운다면, 그 영향은 반드시 장기적으로 치명적인 위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과격한 행보.
인성의 파괴.
목적의 상실.
흔히 말하는 나쁜 짓 정도의 귀여운 수준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주화입마 내지는 심마.
그에 맞먹는 경지파괴는 물론이거니와 심할 경우에는 가치관의 변동으로 인한 타락이나 이적행위, 배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어떻게든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셀레나만큼은.
나의 정식주인을 고작 이런 전장에서 암흑 주시자가 설계한 함정에 빠뜨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수정구를 가동시켜.’
“알겠다.”
적의 전력이 스스로 집결하고 범위마법의 사용마저 원천봉쇄한 이상, 정면 돌파의 난이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심지어 저 기둥의 형태를 지닌 탑의 안쪽에는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
그만한 대군에 맞서며 인질들을 구출하는 일이 그리 간단히 풀릴 리가 없다.
‘주둔군의 지원이 도착하기까지는 이쪽에서 수세를 취한다. 그때까지는 철저하게 수세를 유지하면서 인질들이 죽지 않도록 버텨보는 거야.’
물론 면전에 인질을 들이대며 무장을 해체하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다 쓸어버려야 한다.
성향이 변하면 변했지, 파티원들을 몰살시킬 수는 없잖아.
암흑 주시자도 거기까지는 충분히 예측했을 거다.
지금의 병력배치는 필시 시간을 벌기 위한 것.
구 마왕군이 시간을 벌어서 볼 이득은 뻔하다.
증원을 불러서 이곳을 우리들의 사지로 만드는 거다.
“대치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변수가 너무 커. 지금이라도 후퇴하는 걸 권고하겠어.”
“동감이다. 만전을 기한 마왕군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엄청나게 귀찮아지겠는데. 이거 꼭 가야 되냐?”
켄이치와 란도멜, 난쟁이는 일시후퇴를 주장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네! 삼왕자의 정치적인 압박이 가해지면 본녀와 그대가 이곳에 올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단 말이네!”
“후퇴는 모험가의 소양이지만… 열세의 전장을 극복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제법 선호하는 방향성이지.”
“저놈들이 얼간이이기는 해도 유해한 병신은 아니야! 너희는 강하잖아? 제발 도와줘!”
셀레나와 리페일, 넬은 작전속행을 주장했다.
파티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진 상황.
모두를 하나로 추스를 수 있는 건 내 결정밖에 없다.
‘좋다. 정 그렇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이쪽의 수가 읽혀서 암흑 주시자가 함정을 설계했다지만.
녀석도 눈치 챌 수 없는 변수가 있다.
바로 게이머인 내가 벌이는 돌발행동이라는 녀석이다.
내가 하기에 따라서.
어쩌면 암흑주시자조차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사태가 역전될 수 있다.
덤으로 게이머인 나조차도 제어할 수 없는.
NPC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변수.
그런 건 당연히 이것밖에 없다.
‘랜덤마법 발동!’
뭐가 걸릴지는 나도 모른다.
『랜덤마법으로 [무효화]가 선택되었습니다.』
결과가 어떨지조차도 모른다.
『마법시전 성공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57』
『마법성공률 16%에 미달! 마법시전에 실패합니다!』
그렇기에 암흑주시자는 이 마법에 대처할 수 없다.
『부작용 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4』
『[부작용 No.4]의 효과로 마법이 애매한 효과를 일으킵니다.』
나조차도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말이다.
뭐가 무효화되는 거냐.
애매한 효과라니,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잔뜩 긴장하며 상황을 주시하던 순간.
돌연 켄이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 이럴수가!”
‘무슨 일이냐. 뭐가 일어난 거냐!’
“원격으로 사무를 처리하던 마법이 해제되었다!”
켄이치의 원격 사무처리마법이 무효화되었다.
-쓰레기 : 시밬ㅋㅋㅋ
-도화원 : 여기서도 일하고 있었던 거냐!
-묵제 : 애매해! 존나 애매하다고!
아무리 애매한 마법이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애매하잖아!
대국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조심해라. 아무래도 암흑주시자가 뭔가 술수를 부린 것 같다.”
‘어? 어…….’
그거 내가 쓴 건데.
차마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법을 시전 할 때마다 전음으로 내용을 알려준 셀레나도 필사적으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붙드느라 곤혹스러워했다.
-네놈들…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거냐.
헌데 음침한 목소리와 함께 악의 기둥의 안쪽에서도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나의 탈모방지 마법을 해제시키다니…!
정체불명의 적에게 부여된 탈모대책마법도 덩달아 해제된 모양이다.
-낭자아이 : 애매해! 초 애매해!
-어썸 :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랜덤마법 ㅋㅋㅋ
-폐급페도 : 상황에 안 어울리게 뜬금 터져버렸네 ㅋㅋㅋ
확신했다.
랜덤마법.
이건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잉여한 효과만 발휘하는, 존나 의지할 게 못되는 마법이라고 말이다.
두두두두…
정체된 상황에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났다.
후방으로부터 들려오는 대군의 기척.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을 웃도는 기마병의 등장이다.
스켈레톤 기마대?
언데드 울프라이더?
그도 아니면 유령마에 탑승한 데스나이트의 군세?
무엇이든 관계없다.
적의 준비가 예상보다 더욱 삼엄한 것이 득이 되지는 못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두 번째 랜덤마법을 발동해야겠다고 결심하던 찰나.
“수정구에 반응이 왔다!”
셀레나의 외침에도 우리는 별반 기대를 품지 않았다.
원군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을 터.
허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는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둔군 도착까지 앞으로 3분!”
아무리 숙련된 기마대라고 해도 이 정도의 거리를 벌써 돌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정말로 배후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주둔군의 선두에는 기사 에포르드 마서가 있었다.
“조금 전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수정구에는 숨겨진 기능이 있었습니다. 짝을 이루는 다른 수정구로 정보를 전송하는 기능입니다.”
“!”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배신자에게 속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증오로 가득 찬 눈동자.
틀림없다.
에포르드 마서는 우리가 삼왕자와 연계를 이루며 도착한 정식 정찰부대가 아님을 어떤 경위로든 간파해낸 것이다.
이 상황에서의 결전인가.
한층 더 악화된 사태에도 더욱 전의를 불태우는 파티원들의 모습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다. 내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괜한 소리 마라. 이 상황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켄이치는 고개를 저으며 쓸데없는 탓은 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네놈 운이 없는 걸 하루 이틀 안 것도 아니고. 새삼 이 정도로 원망하지는 않는다.”
“젠장. 첫 대면부터 네놈과 엮이면 단명할 것 같더라니. 운도 오지게 없는 녀석.”
란도멜과 난쟁이도 싫은 소리는 하면서도 착실하게 전투의지를 불태웠다.
그래.
적어도 우리 파티의 신뢰는 이 정도 위기로 무너지지 않는다.
적이 좀 늘면 어떤가.
사망플래그에 사망플래그를 끼얹어봤자 결국 죽을 위기인 건 마찬가지이다!
“하여 결심했습니다. 폐허도시 디스트무라의 실상을 숨기고 주둔군을 능멸해온 삼왕자 폐하가 아닌, 당신들을 돕겠노라고!”
“!!”
“전군, 돌격하라! 사악한 악의 마수들에게 사로잡힌 제국의 신민들을 구출하는 거다!”
운에 기대는 랜덤마법 따위와는 다른 확실한 지원.
주둔군 기병 1200기의 가세!
에포르드 마서의 변심으로 전황의 흐름은 급변하였다.
‘아까 운이 뭐가 어째?’
“그거야 불운에 강하다는 말이었지.”
“영웅은 원래 단명할 팔자다. 그만큼 네가 걸출한 녀석이라는 말이었다.”
란도멜과 난쟁이의 말도 술에 물탄 것처럼 급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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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르급 태세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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