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97
00097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 =========================================================================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11)
결국 헤어스타일 건은 란도멜을 존중해주었다.
카심을 안받아줬냐고?
그럴 리가.
『[분무기]를 200p에 구매했습니다.』
셀레나는 떫은 표정으로 분무기를 던져줬다.
“뭘 해야 할지는 알고 있겠지?”
“…….”
카심은 인상을 벅벅 쓰며 머리에 분무기를 뿌렸다.
찍찍.
존나 진지한 분위기에서 물 뿌리는 게 웃기네.
사실 이걸 보고 싶어서 사줬을 뿐이지만.
-쓰레기 : 캐릭터성 눈물 난다 진짜ㅋㅋㅋ
-묵제 : 검왕이지만 헤어스타일에 신경 써야 하는 처지ㅋㅋㅋ 전형적인 친구 없는 놈이다 진짜
-뭵스러 : 토모다치 나이…?
-참피 : 와타시의 세레브한 헤어스타일을 존중하는 테치!
-구아악 : 갸아악 구아아악
갤러리들도 적당히 만족스러워했으니 상관없겠지.
어수선한 분위기도 잠시.
다시금 면접이 재개되었다.
면접의 주도권은 이미 카심에게 완전히 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이의 신분에서 합법적인 외교관으로 전직(!)한 이상, 다른 녀석들은 카심을 공격해도 재미를 볼 수 없다.
반면, 카심은 누구라도 공격해서 추락시킬 수가 있지.
“2번 지원자.”
“젠장!”
“8번 지원자.”
“제기랄!”
“14번 지원자.”
“이렇게 허무하게 탈락하다니…….”
뒤는 뭐, 두고 볼 것도 없는 카심의 압승이었다.
단독으로 다섯 명의 스파이를 탈락시키며 면접점수 50점을 얻었다.
이 정도로 유능하면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정도의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의향이 있다.
물론 사르갈 연합국에 이득이 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곧잘 취할 테지만, 그 정도야 놈의 유능함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문제될 정도의 사건은 알아서 잘 가려낼 녀석이니까.
“그럼 30분이 경과하기 전에 다섯 명의 ‘적’이 적발된 관계로 이번 1차 질문은 종료─”
“잠깐.”
“이번에도 카심인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가.”
셀레나는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뭐, 당연하겠지.
말 잘 듣고 눈치 잘보고 똑똑한 놈이 부하가 됐으니까.
비록 완전한 이쪽 소속은 아니어도 곁에 두기 아깝지 않은 녀석이다.
이제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가 기대될 정도였다.
“규정을 설명할 때 분명 이런 말을 했었지. 시간제한 30분. 그 안에 다섯 명의 ‘적’이 적발되지 않을 경우, 면접은 종료된다고. 하지만 시간제한 안에 다섯 명 ‘이상’의 적을 적발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지 않았나?”
먹이사슬의 정점에 도달한 포식자가 있다면 이러할까.
이 녀석은 진심이다.
오만한 눈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까지.
진심으로 다섯 명 이상의 경쟁자를 탈락시킬 심산이다.
어차피 동업자들 사이에서 적으로 돌아선 이상, 이번 1차 면접에서 확실하게 끝장을 내려는 것이 틀림없다. 순간의 판단력은 실로 놀랍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흥미롭기는 하나 제한시간은 이미 끝났다.”
“아직 30분이 경과하지는 않았을 텐데?”
“제한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아래로 떨어질 때’로 판정한다고 확답했었지. 보다시피 모래는 전부 떨어졌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
마도황국 질런에서 파견된 여자스파이 유키의 개입이었다.
어차피 사냥당할 처지라면 투명마법으로 몸을 숨겨서 카심의 적발을 피하고, 나아가 가속마법으로 모래시계를 전부 내려오게 만들어 1차 질문을 강제로 종료시킨다.
그런 작전은 보기 좋게 성공한 셈이다.
애초에 다이스 게임은 외모와 능력이 비례하는 세계관.
저 정도 미모를 지닌 여자라면 훌륭한 대응에 성공한다고 해도 놀라울 것은 없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이니라.”
근엄하게 말을 꺼낸 셀레나가 입을 다물었다.
뭔데.
의아해하니 셀레나가 지팡이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서… 두 번째는 무슨 질문을 하면 좋은가?”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냐!
너무 새하얗잖아!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인 건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렇게 나올 줄이야.
귀찮은 건 전부 내 몫이군.
하지만 어쩌랴.
이런 주인도 내가 직접 고른 주인이거늘.
도구는 도구답게 주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섹스 배틀은 어떨까. 완전 내 취향인데.’
“일단 질문도 아니게 되네만.”
‘그럼 갤러리들한테 공모 받는다고 해봐.’
“또 그건가? 다중인격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만.”
새삼 셀레나의 머릿속이 두려워진다.
나와 갤러리들을 다중인격으로 여긴다니.
낭자아이나 츳키나 알파고나 기타 등등과 한 몸이 되는 느낌이잖아.
어…….
이거 의외로 괜찮을지도.
-쓰레기 : 공모라 이거지? 일단 배틀로얄부터 열어라.
-츳키 : 만 골드 당 발언권 하나씩 팔고 돈 장사 어떰?
-묵제 : 랜덤가챠 같은 소리 하고 있네ㅉㅉ
-츳키 : 네 다음 거지
-묵제 : 시발
얘들은 왜 틈만 나면 지들끼리 싸우고 있냐.
-형 : 형 일단 남자는 다 탈락시키는 거 어때요?
-그랜드슨대 : 여죽남겁!
-폐급페도 : 남죽여겁이겠지. 아, 물론 13세 이하로만^^
틀렸어.
오늘의 갤러리들은 지나치게 하이텐션이다.
이건 도저히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렇다면 자력으로 궁리하는 수밖에 없다.
“저, 마왕님? 질문은…”
“닥치거라. 지금 고민하고 있지 않느냐!”
“…….”
이 이상 험악해질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파탄 났는데.
에라 모르겠다.
복잡할 때는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제일이겠지.
“그래, 결정했다.”
겨우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셀레나가 말했다.
“질문에 앞서서 우선 팀을 짜라.”
“인원수의 제한은?”
“없다. 혼자서 전원을 대적해도 좋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자들끼리 힘을 합쳐도 좋다. 팀별로 합격과 탈락이 결정되며 추후에 변동은 불가능하다. 신중히 결정하도록 하라.”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팀 대항 미션이라는 거다.
한 놈씩 걸러내기가 귀찮으면 뭉텅이로 처리해야지.
아차.
무심코 본심이 나와 버렸군.
“역시나 이렇게 구성되었는가.”
팀은 모두 넷으로 나뉘어졌다.
제 1팀.
국가 소속 스파이들의 모임.
팀장은 9번 지원자 마에다 유키이며 총원은 6명이다.
제 2팀.
마왕군 소속 간부들의 모임.
팀장은 1번 지원자 발드 마이저이며 총원은 5명이다.
제 3팀.
신전 소속 처단자들의 모임.
팀장은 4번 지원자 그레고리이며 총원은 3명이다.
제 4팀.
이쪽은 변절자의 모임이라고 할까.
팀장은 3번 지원자 카심이며 총원은 1명이다.
그냥 카심 혼자 덜렁 남아서 만들어진 팀 되겠다.
“이런. 단단히 미움 받는군.”
“자업자득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수다스러운 마왕님이시군. 그래서 이번 질문은 뭐지?”
카심의 물음에 셀레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팀별면접은 단체 PT가 당연하겠지. 너희 팀을 뽑아서 득이 될 일이 뭐가 있는가. 그걸 밝혀라. 팀의 [공약]을 증명할 수 없거나, 공약의 현실성을 [논파]당한 팀은 탈락한다.”
“공약은 몇 가지를 제시합니까?”
“물론 시간절약을 위해서 [공약]은 가장 대표적인 한 가지 사항만 밝힌다. 다른 팀은 공약에 대한 의혹을 두 차례씩만 제기할 수 있다. 제기된 의혹은 무조건 해소해줘야 하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를 [논파]당했다고 판정하노라.”
“이봐, 마왕님. 만일 모든 팀이 논파당하지 않으면?”
“그때는 물론 제일 마음에 안 드는 형편없는 공약을 탈락시킨다. 쉽고 안일한 공약을 제시한 정치인이 인기가 없는 것과 동일하지. 국가를 경영할 인재를 뽑는데 정치적인 감각을 높이 여기는 건 당연한 미덕이니라.”
분명 말은 그럴싸하게 해도 셀레나도 아무 생각도 없겠지.
애초에 면접이라고.
뭘 데스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평범하게 단체PT만 시키면 알아서 경쟁하게 될 텐데.
나는 정말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별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정작 PT가 개시되자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 되었다.
“1팀 팀장 마에다 유키입니다. 지체할 거 없이 곧장 공약부터 밝히죠. 저희 팀의 공약은 [해상무역 활성화]입니다.”
“잠깐. 브륜하스텔 군도연맹과 각국의 해군들이 모여 체결한 [무역협정]에 의거하면 해상무역은 강하게 규제되고 있을 텐데. 그건 군도연맹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건가?”
“군도연맹과의 무역협정에 해당하는 내역은 군선과 상선을 포함하여 각국에 제한된 선박수를 넘어서지 않을 것. 군도연맹이 관리하는 해역에서는 반드시 보호비를 상납할 것. 이상의 두 가지이지요. 무역물품에 대한 규제는 없습니다.”
“호오. 그 무역물품에 대해서 들어보실까. 수량과 품목에 대해서 현실성 있는 비전을 내놓지 않는다면 해상무역 활성화라는 거창한 공약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
이 새끼들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재미없어.
존나게 지루하다고.
배에다가 참치를 싣든, 곡물 종자를 싣든, 전염병을 싣든 알게 뭐야.
“잠깐. 종자를 유출시킨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시장성 있는 종자 하나만 잘 배양해도 일국의 경제사정이 달라질 수 있거늘, 그만한 대가를 이유 없이 지불한다고?”
“물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을 겁니다. 그쪽이야말로 종자에 대한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무리하게 논파를 시도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신을 모시는 사제라고 믿기에는 실로 추악한 모습이 아닐 수가 없군요.”
“감히! 우리의 신성을 모독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어.
싸우는 건가.
뭔가 말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이미 공약과는 아무 상관없는 주제로 다투기 시작했는데.
역시 내 알바는 아니겠지.
알아서 재밌게 해주겠다는데 팝콘이나 씹고 있어야지.
그런 안일한 태도야말로 크나큰 실수였다.
세상에서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부류의 인간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로 [종교인]은 반드시 손꼽힐 것이다.
하물며 이곳은 신이 실재하는 세상이 아닌가.
신 따윈 마나찌꺼기로 여기는 순혈마법사들은 가차 없이 폭언을 쏟아 부었다. 그야말로 화약고에 불붙은 기름을 끼얹는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
결과는 두고 볼 것도 없지.
폭발이다.
그것도 무진장, 경악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대폭발이다.
“신이시여! [신성모독]을 일삼는 이 괘씸한 마법사들에게 [천벌]을 내려주시기를 염원하는 바이오!”
바보들인가.
신이 무슨 애 엄마도 아니고.
신자가 마법사랑 좀 싸웠다고 싸움에 끼어들겠어.
-감히 이 몸의 권위에 도전하는 필멸자가 있다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보구나!!!
시발.
철저한 오산은 내가 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낭자아이 : 오우야..
-츳키 : 헉 시바..
-퐁삽 : 사망플래그가 알아서 찾아오는 개복치 퀄리티
귀청이 찢어져라 면접장에 [신언]이 울려 퍼졌다.
신계에서 체스나 두면서 놀고 있어야 할 신이 대뜸 지상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씩이나 돼서 왜 쪼렙들 놀이터에서 깽판이야!?
“시, 신언!?”
“제정신이냐! 고작 이 정도의 논쟁에 신을 부르다니!”
“으아아, 광신도 새끼들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어!”
신언 한 번에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깨진다던데.
아무래도 신 하나가 제대로 꼭지까지 돌아버린 모양이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이기에 이리 좀생이처럼 구는 걸까.
감별스킬로 정체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광기와 혼돈의 신, 노스트라(Nostra).
내 기억이 맞는다면 신자들을 무진장 잘 챙겨주는 신이다.
덤으로 지 신자 건드리면 매우 화를 내기도 하지.
빼애액 거리는 귀여운 수준이 아니다.
광기와 혼돈이라는 상징에 걸맞게 매번 굉장한 [천벌]을 내린다.
대륙에 존재하는 [지옥으로 가는 길]의 태반은 노스트라의 천벌로 인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순히 죽여주는 자비는 베풀지 않겠다. 눈 먼 자들의 광기에 빠져들어라!!
그리고 지금.
지옥포탈도 여는 정신 나간 신이 대뜸 천벌을 내렸다.
뭐든지 벨 수 있는 위대한 검주급인 난쟁이라도 보이지도 않는 신의 권능까지 베어내는 건 버겁다.
사실상 이 자리에 모인 어느 누구도 신의 천벌을 막을 수가 없다.
여기에 더 끔찍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노스트라의 천벌은 뭐가 내려올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천벌을 내린 당사자, 노스트라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유?
그거야 간단하다.
천벌이 랜덤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광기의 룰렛이여, 저들의 운명을 혼돈으로 물들여라!!!
붉은 색 동심원이 허공에 번져 나왔다.
물결치듯 흔들리는 원 안으로 다시금 붉은 원이 한 겹, 그리고 또 한 겹, 계속해서 수어 겹의 원이 새겨졌다.
최종적으로 열두 겹의 원이 완성된 직후.
커다란 룰렛이 원 위로 솟구치며 주사위 하나가 떨어졌다.
빙그르르.
데구르르.
이윽고 회전이 멈춘 순간.
건반을 주먹으로 내리치듯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콰쾅!
『광기의 룰렛에서 [이거 빼고 전부]에 당첨됐습니다.』
시발.
걸려도 정말로 뭣 같은 것에 걸리고 말았다.
이것 빼고 전부는 말 그대로 이거 빼고 전부 다 걸린다.
룰렛에 있는 천벌리스트.
그게 한 번에 죄다 발동한다는 거다.
『[면접실]에 [지옥으로 가는 길]이 개방됩니다.』
『[면접실]이 [던전]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합니다.』
『혼돈 속의 생물체들이 던전에 대거 풀려납니다.』
『망각의 안개가 던전을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광기의 저주가 랜덤 3체에게 부여됩니다.』
무슨 수를 쓰든 저 병신 같은 싸움을 말렸어야만 했는데.
편하게 꿀이나 빨려다가 면접실이 졸지에 던전이 되었다.
삽시간에 걸린 천벌만 수십 개가 훌쩍 넘어가버리네.
그보다 광기의 저주는 대체 누가 걸린 거냐.
셀레나라 다른 녀석들이 걸렸으면 얼른 저주해제 포션을 구매하려 했는데 다행히도 그럴 필요는 없었다.
신을 모시는 처단자 셋이 저주에 걸려버렸다.
-옷아람 : 신님의 상태가…?
-졸라 : 이것이 팀킬! 이것이 광기!
-약탕연구 : 그래서 동경해버려!
심지어 저주의 상태도 참으로 미묘하기 짝이 없다.
“짹짹 쮸쀼쮸쀼!”
“이히히히히힣!!”
“으르릉… 컹컹!”
새랑 말에 개가 되어버린 건가.
경이로운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참으로 소박한 저주구나 싶다.
============================ 작품 후기 ============================
심신이 상해서 12시까지 깨있기가 힘들군요..
오늘도 예약연재로 두 편을 올려둡니다.
그래도 병가는 없이 꾸준히 정진하는 약쟁이 작가가 되겠습니다. >_<
오늘도 여러분의 많은 성원에 감사드리며 후기는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