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78
277화. 공주님 납치하기 (2)
유리와 그 손에 들린 가죽 주머니를 본 순간 수잔은 일시적으로 사고가 마비되고 말았다.
‘저게… 왜 저기에 있지?’
분명 자신은 계획한 대로 시간을 끌며 유리를 유인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 유리 홀랜드가 저기에 있고.
자신의 가죽 주머니는 왜 저자의 손에 들려 있는 거지?
“아……?”
멍하니 유리를 바라보던 수잔.
하지만 이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빼, 뺏겼다!”
수잔의 외침이 메아리치자 바삐 움직이던 100여 명의 기수가 우뚝 멈췄다.
“도, 도대체 언제?”
“어떻게 된 거지?”
그들 중 유리가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본 이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역할을 하다 보니 어느새 상황이 끝나 있었을 뿐.
그들은 유리의 손에 들린 가죽 주머니를 보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그사이 유리는 가죽 주머니를 풀어 뒤집고 있었다.
곧 그 안에서 엄지손톱만 한 구슬 하나가 튀어나왔으니.
“쳇, 꽝이네.”
검은 구슬을 본 유리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는 멀찍이서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수잔과 다른 이들을 무시한 채 시간을 확인했다.
“흠… 4분 정도인가?”
그가 가죽 목걸이를 빼앗아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4분여.
이를 머릿속에 새긴 그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좋아, 그럼 이번에는 어디로 가 볼까나.’
유리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현재 그가 있는 진영은 2번.
왼쪽으로 간다면 1번.
오른쪽으로 간다면 3번 진영이 나온다.
선택지는 2개였지만, 다음에 어디로 갈지는 이미 답이 정해진 상태였다.
‘동선을 최소화하려면 3번으로 가는 게 옳다.’
만약 3번에도 진짜 공주가 없다면 4번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동선이 짧아질 테니까.
빠르게 결정을 내린 유리가 다리를 움직였다.
‘좋아, 그래도 대충 볼 건 다 본 거 같고.’
가벼운 탐색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간.
파측-.
뇌전에 휩싸인 유리의 신형이 번개처럼 사라졌다.
한편, 유리가 머물다 사라진 장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잔과 다른 100여 명의 기수.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 우리가 처음이라서 다행이다…….”
“율리아의 말이 맞았구나.”
이 대결이 시작되기 전 율리아가 말했었다.
자신이 파악한 유리 홀랜드의 성향이라면, 그는 처음 들르는 진영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최대한 상황을 관찰하려고 할 터이니 첫 상대가 될 진영은 겁먹지 말고 되도록 시간을 끌어 보라고 당부했었다.
그리고 정말 율리아의 조언처럼 유리는 첫 번째로 방문한 진영에서 검 한 번 뽑지 않고 다음 진영으로 넘어갔으니.
첫 번째 진영을 담당하고 있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당연했다.
‘다음은 3번 진영인가.’
수잔은 유리가 이동한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쪽을 맡은 공주가……?’
3번 진영의 공주 역을 맡은 이를 떠올린 수잔.
“이런…….”
그녀의 눈에 살짝 측은함이 깃들었다.
* * *
펑-!
하늘에서 터져 나가는 붉은 연막탄에 3번 진영의 공주, 제리의 눈에 허망함이 깃들었다.
저게 터졌다는 뜻은 ‘그’가 자신의 진영으로 왔다는 뜻이니까.
‘왜… 왜 하필!’
제발 우리만 아니길!
제발 좀 다른 곳으로 꺼지게 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였건만!
역시 신은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젠장…….”
나직이 욕설을 내뱉은 그의 뇌리에 율리아가 했던 말들이 두둥실 떠돌았다.
[첫 번째 진영에서 상황을 분석한 유리 홀랜드라면 아마 다음 진영부터는 본격적으로 날뛸 가능성이 커.] [특히 유리 홀랜드가 두 번째로 찾아 들어간 진영은…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첫 번째 진영을 관찰하며 허비한 시간을 두 번째 진영에서 만회하려 들 테니까.]유리가 시간을 단축하려 할수록 해당 진영의 피해가 커질 거라고.
그러니 최대한 대항하지 말고 그냥 시간 끄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그런 율리아의 조언을 떠올리고 있을 때.
제리의 시야에 ‘그 녀석’이 잡혀 들었다.
‘아…….’
얄밉게도 손을 짤랑짤랑 흔들며 걸어오는 녀석이 자신을 발견하고 환히 웃는다.
“이야, 이게 누구야? 쩨리 공주님 아냐?”
매번 그렇기는 했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환한 저 미소가 재수 없게 느껴지는 건… 단순한 자신의 착각일까?
스르릉-.
그리고 마침내 뽑힌 유리의 새하얀 검을 보며 제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부지, 어무니…….”
…아무래도 이 큰아들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가문은 둘째 놈한테 맡기시길.
그렇게 제리가 마지막 유언을 속으로 되뇐 순간.
콰앙-!
지축을 울리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3번 진영의 기수들이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으아악!”
“꾸에엑!”
…괴상한 비명과 함께.
* * *
“막아!”
“이, 이쪽으로 온다!”
“도와줘!”
혼잡하게 뒤섞이는 고함.
“으아아!”
선명히 들려오는 비명을 한 귀로 흘리며, 권터는 무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여린 양 떼 사이에서 미쳐 날뛰는 한 마리 괴수를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여전히 거침없군.’
두 번째로 방문한 진영.
제리 비가 공주 역을 맡은 3번 진영을 유리는 말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도망치는 제리 비를 쫓아, 자신을 막는 벽을 전부 부수며 가죽 주머니를 손에 넣은 것이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분 남짓.
사실 그것도 제리가 고군분투를 한 끝에… 아니, 죽어라 도망친 끝에 이뤄 낸 성과였다.
그렇게 가죽 주머니를 손에 넣었지만, 행운은 유리의 편이 아니었다.
두 번째 역시 검은 구슬이 나온 것이다.
그로 인해 유리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3번 진영에서 가장 가까운 4번 진영으로 이동했고.
권터 역시 그런 유리를 쫓아,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이전에 비해 더 빨라졌다.’
그건 유리를 따라다니며 관찰한 끝에 권터가 내린 결론 중 하나였다.
2번 진영에서 본 유리의 움직임.
그건 한순간이나마 자신 역시 완전히 놓쳐 버릴 정도의 극쾌였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틈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보이던 허점들도 사라졌다.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던 괴리감.
열심히 노력하는 티가 났지만, 그래도 높은 경지와 달리 너무도 부족한 기본기로 인해 벌어졌던 순간순간의 빈틈.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유리 홀랜드의 기본적인 역량이 경지를 따라잡았다.’
그것도 고작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말이다.
그리고 유리가 기본기의 역량을 키워 냄으로써 달라진 점도 눈에 띄었다.
‘시간의 간극 역시 사라졌다.’
공수를 주고받는, 단 1초의 순간일지라도.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수천수만 가지에 달하는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검을 움직이는 경로.
타이밍을 조절하는 방식.
힘의 강약 등.
아무리 전투 감각이 탁월하다고는 하여도 결국 행동을 하는 건 육체다.
생사가 교차하는 찰나 속에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여야 하며, 그걸 해내게 하는 건 바로 기본기.
‘유리 홀랜드는 그 부족한 기본기의 문제를 상식 밖의 전투 감각으로 때우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머리로 먼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기에 미세한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권터가 발견한 유리의 변화는 아직 그 외에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더… 강해졌군.”
자신이 강해지는 시간 동안, 유리 홀랜드도 강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
말없이 유리를 바라보는 권터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 * *
4번 진영의 공주 역할을 맡은 안드레스 체이슈.
열심히 도망 중인 그는 파죽지세로 쫓아오는 유리한테 쓸려 나가는 기수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유리 홀랜드…….’
그제야 안드레스는 어째서 다른 기수들이 유리 홀랜드의 이름만 들으면 학을 떼는지.
그리고 자신이 없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를 대략적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정도였던가…….’
무룡 대전에서 권터 라이더를 꺾으며 자신의 힘을 증명해 낸 유리 홀랜드.
이에 안드레스도 유리가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은 그것을 크게 실감하지는 못했었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요람 전체가 한 명을 어쩌지 못하고 이리 야단을 떠는 건 문제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이렇게 도망치기 전에 단 한 번.
호기롭게 공수를 주고받은 순간, 그는 단번에 깨달았다.
‘저건… 막을 수 없다.’
요람에서 보낸 시간 동안 수많은 천재를 만나 보았다.
하지만 유리 홀랜드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무언가 달랐다.
‘유리 홀랜드의 강함은… 이질적이다.’
다른 수많은 천재, 그리고 권터.
그들의 강함은 ‘저것’과 비교하면 차라리 인간적인 수준이었다.
단순히 유리의 강함과 이를 만들어 낸 천재성이 비인간적인 수준이란 게 아니다.
유리가 내보이는 강함의 기질.
그것이 품은 근본적인 느낌이 마치 인외의 것과 같다는 뜻이었다.
‘저게 정녕… 나와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저건 필시 사람이 가져서는 안 되는 종류의 재능으로 만들어진 강함이리라.
유리의 강함을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순간, 안드레스는 그런 강렬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가 인외의 강함으로부터 도망치던 그 순간.
“내가 저번부터 느낀 건데.”
갑자기 안드레스의 바로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오른 안드레스는 망설이지 않고 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체이슈가(家) 비전 마체술.
적사혈염(赤獅血染).
거침없이 아가리를 벌린 붉은 사자의 형상.
하지만 안드레스의 사자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깨물어야만 했다.
그때였다.
“그쪽, 엄청 대범한 척은 다 하는데…….”
다시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와 함께 거친 손이 안드레스의 뒤통수를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이에 안드레스가 저항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하체를 타격한 강한 충격에 그의 균형이 허물어 졌다.
그와 함께 사나운 손길이 안드레스의 얼굴을 지면에 처박아 버렸다.
콰득-!
“컥!”
그 와중에도 안드레스는 다급히 마나를 끌어올려 얼굴을 보호하는 기지를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강렬한 충격에 눈앞이 아찔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사이 뒤통수를 잡은 손이 다시금 얼굴을 지면에 여러 번 처박으니.
콰- 쾅!
콰득-!
연이어진 충격에 뇌가 흔들린 안드레스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처참한 몰골로 기절한 그의 뒤통수에 나직한 목소리가 닿았다.
“생각보다 은근히 쫄보란 말이지?”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못 할 말을 내뱉은 유리는 안드레스의 목에서 가죽 주머니를 뜯어 냈다.
스륵-.
주머니 안에서 흘러나온 검은 구슬을 확인한 유리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옘병, 이놈의 망할 운빨.”
[2], [3], [4]의 진영을 차례로 격파한 유리.하지만 정작 진짜 공주는 [1]번에 있었다.
이에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몸을 틀어 [1]로 향하려던 순간.
피유유융- 펑!
하늘에서 녹색의 연막탄이 터졌다.
이를 본 유리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쳇, 벌써 10분인가.”
아무리 탐색전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3개 진영을 도는 데 10분이나 허비하다니.
유리는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만약 누군가 그걸 보았다면 의문을 표했을 것이다.
이 대결의 제한 시간은 70분.
이제 고작 10분이 지났으니 여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건 율리아가 기획한 또 하나의 변수를 몰랐을 때의 일이었다.
이번 ‘공주님 납치하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
유리가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바로…….
“쯧, 이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10분 동안의 공격 이후에는 강제로 10분의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는 유리만의 휴식이 아니었으니.
만약 유리가 10분 이내에 진짜 공주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후 연합 측은 10분 동안 진영을 재정비한다.
‘그리고 그 10분간의 정비 시간 동안 진짜 공주의 위치 역시 바뀌겠지.’
앞선 10분의 시간이 유리에게 주어진 공격의 시간이었다면.
지금부터 벌어지는 재정비의 시간은 연합 측이 펼치는 수비인 셈.
이런 공수의 교대가 이 대결의 핵심 요소였다.
‘일단 방금 내 기회는 이걸로 한 번 날아갔고.’
대결 시간은 총 70분.
유리가 선공하였고 10분씩 번갈아 가며 시간을 사용한다면,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총 4번.
그중 처음을 탐색하는 데 사용했으니 남은 3번의 기회에 승부를 내야만 했다.
하여 유리는 이제부터 신중하게 진심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진심이 된 유리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저들의 재정비 계획을 염탐하는 일이었으니.
“흐헤헤, 구경하러 가야지.”
이른바 몰래 숨어서 훔쳐 듣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