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93
292화. 죄의 미궁 (2)
쏴아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호수의 수면을 매섭게 때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독안의 사내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하아… 우중충하군.”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아는 듯 날씨마저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다.
애꾸눈의 사내, 듀란은 우울한 눈으로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와 함께 그의 입에서 속내가 흘러나왔으니.
“…복귀하기 싫다.”
엠마가 붙인 첩자 놈들에게 붙잡혀 귀환길에 오른 지 몇 달여.
그 결과, 듀란은 마침내 몽파르체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하가 씌워 준 우산 아래, 그는 휑하니 빈 선착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대로 도망치고 싶군.’
비록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어째서인지 너무도 부대로 복귀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달아나 며칠 신나게 놀다 오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정말로 튀어 버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 직후였다.
촤아아악-.
우중충한 호수의 정경 속에 검은 배가 등장했다.
마치 유령선처럼 나타난 흑선의 모습에 듀란은 움찔거렸고.
선두에 당당히 서 있는 이를 본 순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하아아…….”
듀란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그의 뒤에 자리한 흑검병들의 낯빛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변했다.
“부장님이다!”
“에, 엠마 부장님!”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선두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듀란의 부관인 엠마 그린이었다.
촤악-!
잠시 뒤, 흑선이 완전히 선착장에 정박하고.
“…안 바쁘냐?”
그런 듀란의 물음에 엠마는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직속상관께서 복귀하신다는데 마중을 나와야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혹시라도 여기까지 와 놓고 다른 데로 샐 생각은 안 하셨겠죠?”
“…그럴 리가.”
듀란의 답변 속 묘한 공백에 엠마의 눈이 게슴츠레 변했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평소의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갔다.
“아무튼 임무 복귀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부단장님께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뭐부터 들으시겠습니까?”
“나쁜 소식부터.”
“기쁜 소식부터 들으시죠.”
“…네 마음대로 해라.”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는 듀란을 보고 입을 연 엠마.
“부단장님이 안 계시는 동안 죄의 미궁이 열렸습니다.”
“응? 벌써 그 시기가 된 건가?”
“예.”
“하하, 그거 진짜 듣기 좋은 소식이네.”
대략 10년 주기로 열리는 죄의 미궁.
그때마다 수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이미 죄의 미궁이 열렸다면 그런 준비 과정이 다 끝났다는 소리였다.
즉 자신이 할 일은 없다는 뜻.
이에 환하게 미소 짓던 듀란의 표정이 곧 이어진 이야기에 와락 구겨졌다.
“그리고 부단장님을 대신해서 죄의 미궁을 준비한 건 코코 부단장님이십니다.”
“…그 할망구가?”
“예.”
“…많이 뿔났냐?”
“벼르고 계십니다.”
“…나, 복귀 안 하면 안 되냐?”
“안 됩니다.”
엠마의 단호함에 듀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으니 그 지랄 맞은 코코의 성격상 한동안 자신을 괴롭힐 거다.
‘쯧, 꽤 시달리겠군.’
비록 전투를 좋아하고, 그게 특기였기에 부단장의 지위까지 올라간 듀란이었지만.
반쯤 눈깔이 돌아가서 쌍절곤을 휘두르는 코코는 무서웠다.
그런 듀란의 떨떠름한 표정을 본 엠마는 희미하게 웃으며 공손히 손을 뻗었다.
“오르시죠. 코코 부단장님이 더 미치시기 전에 업무 인계받으셔야지 않겠습니까?”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듀란은 엠마의 안내에 따라 흑선에 올랐다.
그렇게 오랜 시간 떠나 있던 듀란 비코비치가 마침내 요람으로 복귀를 완료했다.
한편 선착장으로부터 2㎞가 떨어진 거리.
그리 높지 않은 산 정상의 나무꼭대기에서 한 여인이 선착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떤 미동도 없이 관측에 임하던 그녀는 듀란을 태운 흑선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단망경에서 눈을 뗐다.
찰칵-.
그녀가 단망경을 짧게 줄여 품속에 갈무리하는 순간.
사락-.
그녀의 앙가슴 쪽에 특이한 문신이 언뜻 보였다.
길쭉한 십자가가 둥근 원을 반으로 가르는 듯한 문양이.
1
* * *
“흐음…….”
괴츠는 턱을 쓸며 배낭에서 꺼내놓은 물건들을 내려다보았다.
부싯돌과 모포.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품.
물이 가득 차 있는 수통 2개.
그러나 정작 커다란 배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엄청난 양의 건량이었다.
‘3개월은 거뜬하고, 아껴 먹으면 4~5개월까지도 버틸 수 있겠어.’
생각 이상으로 넉넉한 식량.
거기에 자잘한 생존 물품까지.
그것들을 요람에서 ‘직접’ 챙겨 주었다는 사실에 그들이 이번 퀘스트를 제법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만큼이나 이번 퀘스트가 어렵다는 방증이리라.
괴츠는 코코가 말한 생환율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죄의 미궁이 열렸을 때, 456명 중 생환율이 20%라…….’
그런데 그 말을 잘 뜯어 보면 무려 456명이나 죄의 미궁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건 다르게 말해 당시에도 대부분의 기수가 죄의 미궁에 들어갔다는 말일 터.
이에 괴츠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수들의 욕심은 똑같은가 보구나.’
다섯 번째로 열린 죄의 미궁.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코코가 앞서 생환율을 알려 주었고, 거기다 유리에게 경고하며 간접적으로 위험성을 강조하였지만, 기수 전원이 죄의 미궁에 들어섰다.
그건 가장 마지막으로 죄의 미궁에 들어온 괴츠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긴 백룡고라면 충분히 혹할 만한 보상일 테니.’
웬만한 기수는 수료할 때까지 백룡고 근처에도 가 볼 수 없는 게 요람의 현실.
그나마 백룡고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무룡대전의 우승이었으니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니 기수들이 이번 퀘스트를 큰 기회로 여기는 건 당연했다.
이에 괴츠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인들 그들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사실 그는 백룡고보다는 진명로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괴츠뿐 아니라 제법 이름 높은 명가의 자제들이라면 모두 똑같을 것이다.
‘진명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죄의 미궁이었다니.’
마체술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꿈의 비약이라 불리는 몇 가지 약들이 있었다.
3대 고대 종족의 후예들이 보유한 비전 비약들.
엔라이트 황가의 비약.
그 외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명가의 몇몇 비약들까지.
그들 모두가 못해도 수백 년 전부터 명성을 날리던 비약들이었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인 40년 전, 또 다른 비약 하나가 꿈의 비약 반열에 추가로 이름을 올렸으니.
이름난 대가문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그 이름이 바로 진명로였다.
공인 9단이 영혈을 뚫는 데 도움을 준다는 천고의 비약.
공인 9단과 명인 사이의 그 높디높은 벽을 허무는 데 힘을 보태 준다는 효능 하나만으로도 많은 명가가 군침을 흘려 댔다.
가문의 일원이 명인으로 등극한다면 이는 곧 가문의 번영으로 이어질 테니까.
실제로 데보라 가르시아가 진명로 덕분에 명인에 오를 수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그 가치는 더욱 치솟았다.
괴츠 역시 그걸 알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죄의 미궁으로 들어선 것이다.
‘최소 2개 이상의 진명로를 찾아야만 하겠구나.’
그래야만 하나의 진명로를 가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
그리고 다른 기수들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니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바지런히 움직여야지 하나의 진명로라도 더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괴츠가 여태껏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비약인 거지?”
그가 기억하기로 진명로는 분명 비약이라고 했었다.
자연 상태의 영약.
그리고 그런 영약을 인공적으로 배합한 게 비약.
그게 괴츠가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런데.
‘흑검병의 설명대로라면 분명 진명로는 이 미궁 내에서 자연적으로 채취하는 거였을 터인데?’
그들의 설명대로라면 진명로는 영약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은가.
‘소문이 와전된 건가?’
아니면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괴츠는 자신의 상식과 현 상황의 괴리감에서 오는 찝찝함을 해소하고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곧 상념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끄아아악-!
공동의 벽면에 파인 수많은 동혈.
그 개미굴 같은 구멍 중 어딘가로부터 비명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 * *
널찍한 통로를 여섯 사람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저벅저벅-.
오로지 발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선두에 서 있던 유리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거 알아?”
이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테레시아가 고개를 유리 쪽으로 돌렸다.
“뭘?”
“코코 씨가 알려 준 건 생환율뿐이지 생환자 중 몇이, 얼마나 되는 진명로를 가지고 나왔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거.”
“그게 어째서? 원래 요람이 그런 걸 알려 줄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잖아?”
“물론 그렇기야 하지. 그런데 니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뭔가 구린내가 확 풍기네?”
그 말에 아린이 쪼르르 따라붙으며 유리와 테레시아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데 그게?”
그리고 이는 아린뿐 아니라 다른 이들 모두가 가진 의문이었다.
이에 유리가 덤덤한 투로 답했다.
“요람에 들어오면서 한 비밀 서약 때문에 그간 죄의 미궁에서 진명로가 난다는 게 소문이 나지 않았을 수는 있어.”
“당연히 소문이 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마찬가지로 10년 전에 죄의 미궁이 열렸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비밀 서약 때문에.”
“그것도 당연한 소리인데?”
“그런데 만약 요람의 기수 중 누군가가 진명로를 2개 이상 캐냈고, 그중 하나를 가지고 나갔다면… 그 진명로에 관해서는 소문이 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명로 자체는 비밀 서약에 묶여 있지 않을 텐데?”
“…어?”
“니들 말처럼 진명로가 그렇게 희귀하고 대단한 비약이라면, 10년 전 그게 세상에 나타났을 때는 조금의 소문이라도 돌았어야지. 혹시 그런 소문 들어 본 사람?”
유리의 질문에 군터가 표정을 굳히며 반론했다.
“10년 전에 우린 그런 소문을 하나하나 확인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더욱이 진명로급의 보물이 풀렸다면 더욱 신중하게 소문을 관리했을 수도 있고.”
그런 군터의 이야기에 유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분수에 맞지 않는 보물은 화를 불러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뭐지?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냐?”
군터의 되물음에 유리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입을 열었다.
“코코 아줌마가 생환율만을 언급한 건 어쩌면 더 큰 절망을 감추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더 큰 절망이라면…….”
말끝을 흐린 군터의 의문에 답을 준 건 아린이었다.
“생환자 중 그 누구도 진명로를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는 절망.”
담담하기에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아린의 목소리에 테레시아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생존율이 극히 낮은 위험한 퀘스트인데, 거기에 보상을 얻을 확률까지 희박하다면… 확실히 절망적이기는 하네.”
“어? 그, 그래서 일부러 보상을 크게 부풀려 보이게 말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 정도 보상이면 위험성을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하게끔? 흐헉! 이거 진짜 엄청 구린내가 나잖습니까?!”
무치가 깜짝 놀랐다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다른 이들도 무치처럼 유난을 떨지는 않았지만, 유리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유리가 다른 건 몰라도 저런 구린내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고.
또 높은 확률로 그게 사실인 걸로 판명 난다는 것을 경험상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분위기가 축 가라앉은 가운데.
“유리, 유리, 그래서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아린이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그리 묻자 일행을 이끌고 있던 유리가 배낭을 툭툭 건드렸다.
“우리한테 부족한 거 찾으러.”
“응? 그런 게 있어?”
잘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리는 아린을 보고 테레시아가 대신 답했다.
“개인에게 주어진 식량은 여유롭고 넉넉한 데 반해 물은 고작 수통 2개 분량. 그래서 식수원을 찾으려는 거지?”
그러고는 답을 확인하듯 바라보는 테레시아에게 유리는 엄지를 치켜올려 주었다.
“정답.”
이에 테레시아가 살짝 뿌듯한 얼굴로 물었다.
“상은 없어?”
“어? 상도 주는 거야? 다른 문제! 이번에는 나도 맞힐 수 있어!”
유리가 정답을 맞히면 상을 준다고 한 적도 없건만 득달같이 달려드는 아린.
그래도 그 덕분에 분위기가 환기되려던 찰나.
저벅-.
선두의 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
“…….”
잔뜩 굳은 그의 옆모습을 본 테레시아가 덩달아 경직된 얼굴로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사람이다.”
나직한 유리의 답에 군터가 놀라 되물었다.
“사람? 우리보다 먼저 이곳까지 도달한 기수가 있었다고?”
자신들은 그 어떤 기수들보다 먼저 미궁에 들어와 쉼 없이 이동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의 맞은편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이는 한 가지를 의미했다.
“흠… 그 많은 통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인가?”
출발지인 거대 공동에서 보았던 그 수많은 구멍이 정말 개미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군터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요람의 기수가 아냐.”
수원지를 찾기 위해 위:영역을 전개하고 있던 유리.
그의 영역장에 걸려든 기운은 요람에 속한 소년·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오래 묵어 탁한.
그러면서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
“…….”
그렇게 유리가 굳어진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가운데 조금씩 시간이 흘러갔다.
10초, 30초, 1분, 2분…….
그리고 4분.
절그럭 절그럭-.
무려 4분여가 흘렀을 무렵, 유리 일행의 정면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그럭 절그럭-.
기괴한 쇳소리와 함께 서서히 가까워지는 인영.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시야에 들어온 괴인을 보고 유리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넝마에 가까운 옷.
봉두난발한 머리.
꾀죄죄한 모습.
그리고 양발에 묶인 족쇄.
하지만 그보다 그들을 놀라게 한 건.
“뭐, 뭐야?!”
“어?”
“눈이… 전부 까매?”
괴인의 눈에 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