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죄의 미궁 (3)
절그럭- 철컹-.
검은 눈의 괴인이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이 요란히 부딪혔다.
유리를 제외한 일행은 괴인이 다가오는 모습을 긴장 어린 눈으로 응시했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 코코가 했던 말들이 떠돌았다.
[456명이 들어가 104명이 살아 돌아왔지.]그녀가 했던 경고를 떠올린 그들은 이 죄의 미궁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바로 저 괴인임을 깨달았다.
철컹-.
유리 일행과 10m 남짓을 남겨 놓고 멈춰 선 괴인.
치렁치렁 늘어진 지저분한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색 일색인 눈이 희번득거렸다.
“크흘흘.”
가래가 낀 듯, 탁한 웃음소리가 좁은 통로에 메아리쳤다.
그가 소름 끼치는 눈으로 유리 일행을 슥 훑어보았다.
“싱싱한 신입들이 들어왔구나. 이거 운이 좋군.”
얼굴이 반쯤 가려진 상태라 외모로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목소리로는 그가 젊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응? 가만… 그 옷은?”
잠시 가늘어졌던 눈매가 이내 화들짝 커졌다.
“허? 흐허허허! 그렇군, 또 기어들어 온 건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홀로 중얼거리는 그는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오며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빼 들었다.
스륵-.
그건 한 자루의 낡은 검이었다.
어찌나 오래됐는지 검 자루에 손때가 가득한.
그러나 날만은 예리하게 정비된 검.
“크흐흐, 간만에 배불리 먹을 수 있겠어.”
검붉은 혀로 입술을 할짝인 그가 검을 늘어뜨리며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절그럭 절그럭-.
처음에는 천천히.
철걱철걱-.
하지만 어느 순간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괴인.
그에 따라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려 댔다.
쾅-!
이후 강하게 도약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괴인이 가장 선두에 선 유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죽거라!”
번쩍-.
예리한 검광이 번갯불처럼 사위를 밝혔다.
그리고.
챙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은빛 물체가 하늘로 솟구쳤다.
공중으로 빙글빙글 돌며 떠오른 그건…….
“흐엇!? 내, 내 검?!”
다름 아닌 괴인의 반 토막 난 검신이었다.
그는 십수 년간 애지중지 해 온 자신의 보물이 부러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두 눈이 멍해졌다.
하지만 이는 정신적 충격일 뿐.
진짜 물리적 충격은 그다음에 이어졌으니.
훙-!
새하얀 검광이 수직으로 번쩍이고.
빠가아아아악-!
“컥!”
괴인의 정수리에서 울린 기괴한 충격음과 짧은 비명.
이를 들은 좌중의 어깨가 절로 움찔했다.
“어우야…….”
“윽!”
그사이 괴인은 그대로 지면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풀썩-.
아니, 그건 처맞고 처박혔다는 표현이 옳았다.
밟힌 개구리처럼 대자로 뻗은 괴인을 보고 아린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에게? 약해?”
물론 괴인은 약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내보인 실력만 따진다면 최소 공인 2단급.
이는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저 첫 상대가 좋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필 칼질을 날려도…….”
“운이 없군.”
“배고프다.”
“아, 아프겠다.”
분위기 있게 등장한 것과 달리 너무 처참한 몰골로 기절한 괴인을 보고 일행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사이 유리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발로 툭 밀쳐 뒤집었다.
그르륵-.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그를 본 유리가 턱을 쓰다듬었다.
“뭐냐, 이 정신 나간 늙다리는?”
누워 있는 덕분에 드러난 괴인의 얼굴은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였다.
‘미궁 안의 사람이라…….’
그것도 이렇게나 연배가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 살고 있다?
의혹이 무럭무럭 들었다.
그리고 그 의혹에 답을 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퍽-!
“어이, 늙다리! 일어나 봐!”
모르면 물어보면 될 뿐.
조금 과격하게 말이다.
빠득-!
* * *
하루 전, 듀란이 서 있던 선착장.
그곳에 또 한 대의 흑선이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오갔으니.
“빨리빨리 실어!”
“그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져가야지!”
전날, 흑선이 선착장을 찾아온 이유가 사람을 태우기 위함이었다면 오늘은 물건을 싣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의 물건을 말이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십여 명의 흑검병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흠…….”
한편 책임자로 보이는 흑검병은 수레가 흑선으로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살짝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를 확인하더니 하역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야, 이 머저리 새끼들아 그건 저쪽으로 가져가라고 내가 몇 번이나……!”
“하역장.”
“뭐야, 바빠 죽… 응?”
어떤 놈이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이 말을 거냐고.
대뜸 화를 내려던 하역장은 자신에게 말을 건 상대가 흑검병 책임자인 것을 보고 급히 눈에 힘을 풀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하역하고 있는 수량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군.”
“예? 그, 그럴 리가요?! 저희도 전달받은 대로 준비했을 따름입니다!”
당황한 하역장은 억울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에 흑검병은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발주 명령서.”
“아, 예! 여기 있습니다!”
하역장은 품에 넣어 두었던 명령서를 흑검병의 손에 올려놓았다.
사락-.
빠르게 하역장의 명령서를 살피는 흑검병이 살짝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훨씬 많군.”
그 중얼거림에 하역장이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안 그래도 어제 갑자기 준비된 것보다 물량을 늘리라고 하셔서 그거 맞추느라 조옷… 음… 아, 아무튼, 힘들었습니다.”
“…….”
“무, 물론 시키시면 저희야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만…….”
하역장이 흑검병의 눈치를 보며 움츠러들었다.
그때 흑검병이 명령서를 지그시 응시하며 물었다.
“이 명령서가 전달받은 게 어제라고?”
“그, 그렇습니다만?”
“흠…….”
“무슨 문제라도……?”
혹여 흑검병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 진땀을 빼는 하역장.
이에 흑검병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제는 없다.”
확인해 본 바 명령서는 진짜였다.
‘듀란 부단장님의 친필 명령서군.’
흑검병 책임자가 가진 수량 품목 일지는 한 달 전에 작성된 것.
즉, 한 달 치를 미리 계산해서 만들어 놓은 일지였다.
때문에 이렇게 수량이 변경되는 건 종종 있는 일.
다만 그에 따른 명령서가 하역장에게만 전달된 건 이상한 경우였으나.
‘…부단장님이 어제 복귀하셨다고 했던가.’
수개월 만에 사무직으로 복귀하신 거니 아직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시겠지.’
그분이 그랬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물론 그런 듀란을 보좌해 실수를 방지하는 게 엠마 부장의 역할.
하지만…….
‘그분도 사람이시니…….’
엠마가 소화하고 있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생각하면 이 정도 사소한 실수는 그냥 자신의 선에서 처리하는 게 옳았다.
즉즉-.
흑검병은 일지의 내용을 오늘 확인한 수량으로 바꿔 기입했다.
그 모습에 한시름을 놓은 하역장이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 혹시 말입니다… 요람에서 무슨 전쟁 준비라도 하시는 겁니까? 발주를 넣으시는 철광석 물량이 근 1년 새 꾸준히 늘고 있어서…….”
“…….”
펜을 놀리던 흑검병이 우뚝 멈췄다.
어지간해서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용의 요람.
하지만 그런 그들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품목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철광석을 비롯한 광물이었다.
호수 위에 만들어진 요람에는 광산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철광석의 발주 물량이 늘어난 이유.
그건 바로 기수들의 무구가 툭하면 파손되어서이자.
자꾸만 부서져 나가는 요람의 시설물을 보수하기 위함이었다.
즉, 다시 말해 전부 유리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놈 하나 때문에 전쟁 준비를하냔 소리까지 듣게 되었군.’
어이도 없고.
짜증도 나고.
때문에 그의 눈빛이 냉랭해진 건 당연지사.
“네놈이 관심 가질 일이 아니다.”
“죄, 죄송합니다.”
“일이나 서둘러라.”
“예, 옙!”
흑검병을 향해 허리를 굽신거린 하역장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 인부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싸늘히 바라보던 흑검병.
턱-.
그는 펼쳐 놓았던 수량 일지를 소리 나게 닫았다.
* * *
빠각-!
강렬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크게 뒤로 꺾였다.
하지만 이내 제자리로 다시 돌아와 우렁찬 고함을 토해 냈다.
“말… 말하겠다고 했잖으냐!”
“아, 그랬어?”
빠각-!
“끄악!”
또다시 뒤로 넘어가는 고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머리가 울먹였다.
“왜… 왜 자꾸 때리는 게야…… 말하겠다고 했는데…….”
성한 곳이 하나 없는 얼굴.
사람의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울퉁불퉁한 머리통.
멀쩡한 곳이라고는 입뿐인 얼굴 앞에 쪼그린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 쩨리 선배 보고 싶다.”
“…갑자기?”
너무도 뜬금없는 이야기에 테레시아를 비롯한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유리와 제리 사이에 있었던 추억을 모르니까.
“우리 쩨리 선배도 머리만 내밀고 있을 때가 제일 잘생겼었는데.”
“너… 걔도 묻었었어?!”
테레시아가 경악 어린 시선으로 유리와 머리만 남겨 놓고 묻힌 괴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한편 그런 테레시아의 반응을 무시한 유리는 괴인의 머리통 옆에 침을 찍- 뱉으며 표정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렸다.
“어이, 늙다리 형씨. 좋은 말로 할 때 알고 있는 걸 싹 불어야 할 거야.”
“그, 그러니까, 다 말하겠다고 했잖으냐…….”
“아, 좀 더 버텨 봐. 나 이거 오랜만이라 더 하고 싶다고. 고작 한 시간밖에 안 했잖아?”
불만스럽게 틱틱거리는 유리를 보고 그 뒤에서 ‘악마 새끼’라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 또한 무시하며 주먹을 말아 쥐는 유리.
이를 본 괴인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제, 제발! 제발 물어봐 주십쇼! 뭐든지!”
말투마저 바뀌어, 기어코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 모습에 유리는 맥 빠진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쯧, 생긴 거랑 달리 뭐 이렇게 맷집이 약해?”
“죄, 죄송합니다.”
“뭐, 그래, 빠르게 끝내자. 대신 주둥이 잘못 놀리다 걸리면… 죽는다?”
서늘해진 유리의 눈빛에 괴인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옙!”
“좋아, 너 뭐냐?”
“예?”
“여기 사는 놈이야?”
“그, 그렇습니다.”
“어쩌다 여기 갇힌 거지?”
정확히 ‘갇혔다’라고 표현하는 유리의 질문에 괴인은 살짝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답했다.
“붙잡혔습니다… 흑검병한테.”
“흑검병한테? 흑검병이 널 잡아서 여기다 가뒀다고?”
“예.”
“여기에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냐? 다른… 흑검병들에게 잡혀 온?”
“물론입니다.”
그 말에 유리를 비롯한 일행은 어째서 이곳이 ‘죄의 미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 깨달았다.
‘여긴… 감옥이었구나!’
‘죄수들을 가두는 미궁이었어!’
저 괴인이 왜 잡혀 온 것인지는 모른다.
딱히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현재 그들에게 중요한 건 요람이 그런 죄수들을 가둬 둔 곳에 기수들을 밀어 넣었다는 사실뿐.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행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반면 유리는 침착한 어투로 물었다.
“얼마나 갇혀 있었는데?”
“십 년? 잘 모르겠지만… 그쯤 된 거 같습니다. 여긴… 밤낮이 없는 곳이라.”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 말투.
그리고 생각보다 오랜 세월에 유리의 심문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이들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십 년?”
“밤낮을 알 수 없다면 그보다 더 됐을 수도 있다는 거군.”
뒤에서 속닥거리는 추측을 한 귀로 흘리며 유리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 아까 우리보고 한 얘기 뭐냐.”
“예?”
“또 기어들어 왔냐며.”
“아… 그건… 그전에도 똑같은 옷을 입은 요람의 애송이들이 들어온 적이 있어서…….”
“10년 전에 들어온 기수들을 말하는 거군.”
“그게… 벌써 10년 전이군요… 허… 그럼 제가 이곳에 있은 지가 못해도 15년은 되었을 겁니다.”
어딘가 모르게 허망함이 담긴 목소리를 무시하고 유리는 빠르게 여러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무얼 먹고 15년을 버텼냐.
이곳에 식수원이 있냐.
미궁의 구조는 어떻게 되냐, 등.
이에 괴인은 충실히 답했다.
“흑검병들이 다른 죄수를 집어넣으면서 식량도 같이 딸려 보냅니다, 그 외에 이끼 같은 게 자라서 그걸 먹기도 하고… 식수는 지하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궁의 구조라면 뭘 말하는 겁니까?”
“총 몇 층까지 있지?”
“저도 1층을 벗어난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듣기로는 5층까지 있다고 했습니다.”
괴인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유리는 살짝 인상을 쓰며 턱을 쓸었다.
‘너무 이상한데?’
죄인들이 있는 곳에 기수들을 집어넣은 것도 이상하고.
그 죄인들을 진명로라는 보물이 있는 곳에 가둔다?
그러다 죄인들이 진명로를 발견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무언가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자꾸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계속 의혹만 더 늘어나는 느낌이랄까?
‘아직 정보가 더 필요해.’
굳은 인상을 푼 유리가 다시 삐딱한 어조로 물었다.
“늙다리, 너 눈깔이 왜 그 모양이냐.”
그건 괴인을 보자마자 든 첫 번째 궁금증이었다.
온통 검은색 일색의 눈.
이는 괴인이 특수 마체술을 익혀 그리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유리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눈깔… 분명 뭔가 있어.’
괴인의 검은 눈이 이 죄의 미궁과 어떠한 연관이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유리의 질문에.
“크흐… 프흐흐흐.”
괴인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애매모호한 괴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끄흐흐흑!”
그의 새카만 눈에 일렁이는 빛이 강한 분노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