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2
41화. 다단계 (3)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군터 아이언스의 사고(思考)는 고장이 났다.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여기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시작의 숲이 맞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저 광경을 보고 어찌 의문이 생기지 않으랴.
“줄 서, 줄! 거기 너, 새치기하지 말라고!”
“에이, 그 가격에는 물건 못 팔지.”
“…그러지 말고 조금만 깎아 줘.”
삼삼오오 모인 십여 명의 예비 기수들.
나무를 쪼개 엉성하게 만든 좌판.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간 물건들까지.
그 모습을 본 군터는 자연스럽게 한 단어를 떠올렸다.
‘시장?’
무언가를 사고팔며 흥정하는 광경은 분명 시장이라 부르기 적합했다.
다만 문제는…….
‘…여긴 시작의 숲인데?’
당장 저들끼리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칼부림을 벌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건만 어찌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있는 거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군터가 넋을 놓고 있을 때, 같이 온 소년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자자, 이쪽으로!”
군터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갔다.
그렇게 조금 걸어가니 소년이 한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에릭!”
에릭이라 불린 이는 다름 아닌 처음으로 유리에게 토사바를 얻어먹었던 바로 그 소년이었다.
불과 열흘 사이, 처음 유리와 만났을 때의 꼬질꼬질한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제법 사람다운 몰골로 돌아온 에릭.
그는 단순히 모습만 말끔해진 게 아니라 자신감도 되찾은 듯 두 눈에 정광이 흘렀다.
“응?”
에릭이 시선을 돌리자 군터를 데려온 소년이 환히 웃으며 외쳤다.
“새로운 손님 데려왔어!”
그리 말하고는 군터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는 소년.
군터가 상황을 파악하느라 가만히 있는 사이, 소년이 에릭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당을 받고 싶은데.”
“벌써 할당량 다 채운 건가?”
“어, 이 녀석이 마지막이야.”
그 말에 에릭이 옆에 놓인 나무판을 꺼내 살폈다.
“보자… 이름이 데니스 웨인이었던가?”
“응.”
“데니스 웨인이라… 아, 여기 있네. 이걸로 딱 6명째군.”
목판에서 찾은 데니스란 이름 옆에 선 하나를 추가한 에릭이 데니스를 향해 물었다.
“그럼 수당은 뭐로 받을래? 식량? 아니면 다른 거로?”
“당연히 식량으로.”
“훌륭한 선택이야.”
고개를 끄덕인 에릭은 소년의 손에 꽤 굵직한 토사바 하나를 올려 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6명이나 데려온 단골이라 이번에는 신경 좀 써서 큰 거로 골랐어.”
“오? 고마워!”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앞으로도 좋은 거래 부탁한다.”
“그래!”
데니스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한편, 자신을 옆에 두고 일어나는 일에 군터는 얼이 빠졌다.
‘날… 판 건가?’
이렇게 대놓고 인신매매라고?
그리고 그 인신매매로 팔린 게 자신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군터가 극도로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자 에릭이 다 이해한다는 웃어 보였다.
“얼떨떨하지?”
“조금 전… 그건 뭐지?”
“조금 전?”
“데니스란 놈이… 너한테 날 판 건가?”
“아! 그거?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뭐지?”
“음… 일종의 수수료를 받아 간 거야. 기존 고객이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면 나한테 보수를 받는 거지. 2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면 원하는 품목으로 수당을 받을 수 있거든.”
“…보통 그런 걸 보고 인신매매라고 하지 않나?”
“에이, 다르지! 우리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오히려 도움을 주지.”
“도움?”
“여기서는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어. 가격만 치를 수 있다면 말이지.”
그리 말하며 에릭은 주머니에서 토사바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건 토사바라고 하는데, 구우면 풍미도 대단하지만, 두어 개만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지. 가격은 한 뿌리당 150은화!”
이어 에릭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서는 잘 마른 장작을 10개 한 묶음에 200은화에 팔고, 저 녀석은 부싯돌을 100은화에 팔고 있지. 그리고…….”
살짝 뜸을 들인 에릭이 군터의 차림새를 쓱- 훑었다.
벌써 시험이 20일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무언가 여유가 있어 보이는 듯한 모습.
이에 에릭은 군터가 예사의 인물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가 눈을 반짝이며 군터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급품도 있는데.”
“고급품?”
“새고기는 한 마리당 1,500은화. 그리고 석청과 목청은 한 조각에 2,000은화.”
고기뿐 아니라 꿀까지 종류별로 구할 수 있다는 소리에 군터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군터의 반응에 에릭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조금 단가가 있기는 하지만… 너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때? 관심 있어? 있으면 말만 해, 구해 줄 테니까.”
마치 너에게만 주는 특별한 기회라는 듯한 말투에도 군터는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파악하고자 했다.
“…일단 생각해 보지.”
“그럼 그럼, 한두 푼도 아니고 신중해야지. 그래도 너무 고민하지는 말라고. 고급 품목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찾는 사람이 많아서 물량이 금방 떨어지거든.”
“알았다.”
“아, 그리고…….”
“……?”
“너도 만약 새로운 신규 고객을 데려오면 나한테 와. 신규 고객 관리는 내가 하고 있거든. 신규 고객 두 명을 데려오면 토사바 하나가 수당이다.”
“…참고하지.”
짧게 고개를 끄덕인 군터는 에릭이 더 떠들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아,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언제부터 여기서 물건을 팔고 있었던 거지?”
“흠… 제대로 자리 잡은 지는 며칠 안 됐는데, 그래도 언제부터냐고 한다면 대충 한 열흘 정도 됐을걸?”
“…열흘? 열흘이나 이곳에서 물건을 팔았다고? 도대체 그 많은 물건들은 어디서 구해 오는 거지?”
군터의 물음에 에릭이 움찔거렸다.
그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남의 장사 밑천을 알려 달라고 하면 쓰나. 여기서 파는 물건은 이상 없는 것들이니까 신경 끄고 가서 구경이나 해.”
사뭇 쌀쌀하게 답한 에릭은 더 언급하기 싫다는 듯한 얼굴로 군터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공터 쪽으로 밀려나게 된 군터.
곧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여긴… 시장이 아니라 상점이다.’
주로 거래되는 건 식량을 비롯한 생존에 필요한 물품.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족히 수십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었다.
이곳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점차 이해되자 군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그가 파악한 상점의 핵심 요소는 모두 세 가지였다.
첫째, 대량의 물건.
‘최소 십수 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식량과 물품을 팔고 있다. 대체 이 많은 물건이 어디서 나는 거지?’
둘째, 상점을 찾는 손님과 홍보.
‘굳이 홍보하지는 않아도… 한번 상점을 찾은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려와서 신규 고객을 유치시키는 방식이다.’
셋째, 안전성.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 줄 곳은 여기뿐이니… 다른 예비 기수들도 이곳이 유지되기를 원할 거다. 그들에게도 꼭 필요한 장소이니까.’
서로의 은화를 노리는 경쟁만 포기한다면 애초에 요람에서 내건 ‘생존’이란 시험 주제만큼은 무난히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그 시험만 통과하면 예비 기수가 아닌 진짜 50기 기수가 될 수 있으니 대다수 예비 기수들도 이 상점이 계속 존재하길 원하는 게 보였다.
그런 심리는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일수록 더 컸기에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점의 가드를 자처하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군터는 혀를 내둘렀다.
‘비록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상점이라고 하나,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균형 있게 맞물리도록 만드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대단한 일이었다.
고작 열흘 만에 이런 체계를 가진 상점을 만들었다는 게.
‘비록 이 상점은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체계이지만…….’
물건이 계속 공급되더라도 시작의 숲에 풀린 은화는 한정적이다.
언젠가는 유통 가능한 재화가 바닥날 테니 상점도 폐쇄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시험이 끝날 때까지라면?’
그 정도라면 충분히 운영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이곳을 만든 이도 그것을 노리고 만들었을 터.
정확히는 단기간에 다량의 은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이곳 주인의 목표일 것이다.
‘대체 누가?’
군터의 시선이 상점을 이용하고 있는 예비 기수들을 훑었다.
그중 몇몇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에릭이라는 녀석을 포함해서 3명… 그들이 이 상점의 핵심이다.’
에릭은 신규 고객 관리.
그리고 나머지 둘은 고정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몇이 그들을 돕는 거 같아 보였지만, 핵심 인원은 에릭을 포함한 세 사람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큰 흐름이 굴러가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팔리는 물량을 생각하면… 저들 셋으로 끝이 아닐 거다.’
고작 셋으로 여기서 풀리는 물량을 어찌 소화해 내겠는가.
분명 따로 물량을 채집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집하는 조와 판매를 하는 조. 아마 이 상점은 그들이 협력하여 만들어 낸 장소일 가능성이 크다.’
몇몇 예비 기수들이 공동의 주인인 상점.
군터는 제 생각에 확신을 품었다.
이는 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어느 누가, 이 많은 물량을 단 한 명이 모았을 것이라고.
이 체계를 구축한 주인이 한 명일 거라고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리고 심지어 그 상점의 주인이…….
“에릭, 여기 물건 가져왔어!”
“어, 수, 수고했어.”
“이건 저쪽으로 치울게!”
“그, 그래…….”
부지런히 잡일이나 하는 검은 머리 소년일 거라고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유리가 만들어 낸 다단계 상점은 시작의 숲 외곽에서 성황리에 장사를 이어 갔다.
이후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시험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갔고.
그와 함께 유리의 은화 주머니는 두둑하게 몸집을 부풀려 갔다.
* * *
유리가 요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요람이 예비 기수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게 아니란 거였다.
예비 기수는 총 503명.
그 모든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예비 기수 한 명당 흑검병 한 명이 붙어야 했고, 한 달 동안 임무를 이어 나가야 했기에 교대 인원까지 필요했다.
그렇다면 족히 천여 명은 필요할 터.
대륙 곳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흑검병은 늘 인력난에 시달렸기에 고작 예비 기수들을 감시하고자 그 정도의 대규모 인력을 차출할 수는 없었다.
이에 요람은 예비 기수들의 대략적인 동향만 주기적으로 파악했고, 그마저도 은화 주머니를 나눠 주는 것을 끝으로 중단해 버렸다.
그렇게 감시 인원을 철수시켜 버린 탓에 요람은 유리의 기행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이를 알아차리게 된 건 한 가지 이상 징후를 포착하게 되면서였다.
그 이상 징후란 바로…….
“어째서 울리지 않는 거지?”
낙오자가 생겼음을 알리는 종, ‘버러지의 갈등’이 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물론 10일 차에 종이 한 번 울리기는 했지만, 그건 예비 기수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애꾸눈 사내가 벌인 짓이었다.
문제는 그 뒤로 단 한 명도 종을 친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기수마다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많든 적든 간에 지금쯤 낙오자가 발생해 왔었다.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건 지금껏 유례가 없는 일.
특히 은화가 배포되고 경쟁이 심화하면 낙오자가 발생하는 속도 또한 가속화되었다.
그런데 은화가 배포되고 한참이 지났음에도 단 한 명의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 무슨 이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애꾸눈 사내는 숲속으로 흑검병들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기가 막힌 보고를 접했으니.
“…뭐가 어쨌다고?”
애꾸눈 사내의 되물음에 보고를 하는 이도 조금은 어색한 투로 답했다.
“몇몇 예비 기수들이… 시작의 숲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허……?”
애꾸눈 사내는 오랜만에 헛바람을 토해 냈다.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하라는 쌈박질은 안 하고 나눠 준 은화로 장난이나 치고 있다는 거냐?”
문제는 그 장난이 그냥 장난질이 아니란 거였다.
경쟁이란 목적으로 쓰여야 할 은화가 버젓이 경제 활동에 쓰이고 있지 않은가.
거기서 조금 더 자세히 파고드니 더더욱 가관인 점이 드러났다.
“상점을 운영하는 건 세 놈이지만, 그 물건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며칠간 흑검병들에게 ‘일단은 상점이라 이름 붙인 곳’을 감시하게 했다.
한데, 어디서인가 물건은 계속 들어오는데 그게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루에 팔리는 물량만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지만, 감시를 맡은 흑검병들조차 그 많은 물건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하루에 열댓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 풀린다. 지금까지 풀린 물량만 해도 족히 수백 명 치건만, 그 출처조차 발견할 수 없다?’
대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행동했기에 흑검병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
그리 혀를 차던 순간, 애꾸눈 사내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족히 수백 명이 사용해도 될 정도의 물품이 비축되어 있던 어느 동굴의 모습.
현 사태의 숨겨진 주범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자, 애꾸눈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녀석이군.’
그 녀석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 많은 물량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아마도 유리라는 놈은 엉뚱한 녀석 세 녀석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이익 대부분은 자신이 가져가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홀로 깨달은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 지랄 맞은 놈.”
처음 애꾸눈 사내가 유리에게 내린 평가는 그저 ‘재밌는 놈’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유리에 대한 평가가 ‘요주의 인물’로 격상하고 말았다.
한편, 이번 사태의 주범이 누구인지 알아차렸으나 애꾸눈 사내는 숲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분명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는 건 요람의 계획에 없던 일.
그럼에도 요람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왜냐고?
굳이 지금 손을 쓰지 않아도 어차피 해결될 문제였으니까.
‘그래, 마음껏 날뛰거라,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일 테니.’
다만 약간의 계획 수정이 필요하긴 했다.
“일정을 조금 앞당긴다. 아이들을 불러라.”
애꾸눈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한 달이라는 생존 시험의 종료가 이틀 남은 시점.
한 척의 검은 배가 선착장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잠시 후.
애꾸눈 사내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선포하니.
“현 시간부로…….”
그건 누군가에는 축제가.
혹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무대가 펼쳐짐을 알리는 신호였다.
“용패갈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