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73
72화. 실마리 (1)
요한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래서 취성은 왜 물어본 거냐?”
“아……!”
요한의 질문에 상념에서 깨어난 유리가 답했다.
“그 취성이란 창술이 마류의 흘리기를 타고 거슬러 오르더라고.”
“흠, 그러냐?”
“뭐 아는 거 없어?”
“당연히 있지.”
그 답에 유리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뭔데?”
“뭘 거 같으냐?”
“……?”
“흐흐흐, 숙제를 2개 내주마.”
“갑자기 뭔 숙제?”
“일단 들어 봐라.”
“…해 봐.”
“첫째, 앞으로 1년 안에 마검을 완성할 것.”
“마검? 그게 뭐야?”
“강검(强劍), 연검(煉劍), 화검(火劍), 그리고 마검(魔劍). 흔히 강·련·화·마라고 해서 공인 1단부터 4단까지의 경지를 나누는 잔기술이다.”
요한이 잔기술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는 그리 표현될 게 아니었다.
이름난 명가의 마체술이 아닌 이상 평범한 마체술을 통해 마나를 외부로 발출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바로 저 방식이었다.
또한 이는 마력과 더불어 공인의 경지를 구분하는 지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지금 요한은 아직 공인 1단조차 되지 못한 유리에게 1년 안에 공인 4단까지 오르라 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터무니없다고 혀를 내둘렀을 상황.
하지만 그 모든 설명을 듣고도 유리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지, 뭐.”
이에 요한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중단기 목표는 이 정도면 되겠고.’
지금까지 유리는 마류의 완성이라는 거대한 목표만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고 있었다.
이는 앞으로 언제 달성할지 모를 목표였다.
하지만 너무 멀리만 보고 달린다면 분명 무언가 놓치는 게 있게 마련.
하여 요한은 중간중간 유리에게 이런 식으로 작은 목표를 쥐여 줄 생각이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구체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목표를.
이는 유리의 성장에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그리고 요한이 쥐여 줄 목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지금부터가 요한이 유리에게 내주는 진짜 숙제였다.
“두 번째 숙제, 마류-잡기를 완성해 보거라.”
“마류-잡기?”
유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까지 마류를 익힌 유리가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마류를 읽을 것.
두 번째, 읽어 낸 흐름을 흘려 낼 것.
그런데 난데없이 잡기란 말이 튀어나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요한이 설명을 보탰다.
“흠… 보자, 흐름을 읽어 내는 게 1식이고, 흘리는 게 2식이라 치면, 이 잡기는 3식 정도겠네.”
“그래서 흐름을 어떻게 잡는데?”
지금까지 유리는 요한이 만들어 낸 마류의 마나 로드를 이용해 흐름을 통제해 왔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통제라 부르기에 상당히 애매했다.
유리가 하는 건 거대한 흐름에서 몇 줄기의 작은 가닥을 뽑아내 방향을 트는 일.
대충 비유하자면 거대한 강줄기에 곡괭이를 들고 작은 물길을 몇 개 만들어 내는 작업이랄까?
그게 바로 ‘흘리기’라 칭한 기술의 정체였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만들어 낸 작은 물줄기만으로도 무치의 공격을 흘려 보냈고.
나아가 검주의 기세 역시 이를 통해 흘려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유리는 이를 완벽히 숙달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겨우 흘리기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아 가고 있는 마당에 난데없이 잡기라니?
감이 잘 안 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흐름을 어떻게 잡느냐는 유리의 질문에 요한이 웃으며 답했다.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몰라.”
“…이게 뭔 개똥 같은 소리지?”
유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럴수록 요한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잡기를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할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건 나도 상당히 감각적으로 깨달은 거라서 말이지.”
“애초에 마류 자체가 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절기 아니던가? 흘리기도 그랬고.”
“그나마 그 두 개는 완성된 이론을 바탕으로 체계라는 게 있었지만, 마류-잡기는 그것조차 없거든.”
“그 소리는……?”
“마류-잡기는 이론적인 틀만 만들고 아직 완벽히 구현되지 않은 미완성의 기술이다.”
유리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곧장 투덜거렸다.
“지금 그걸 나보고 익히라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그래도 양심은 있…….”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완성시키란 소리다.”
“…양심 어디 갔지, 정말?”
“푸흐흐, 그게 우리의 계약 아니었냐? 난 널 살려 주고, 넌 내 기술을 완성하게 도와준다는.”
“도와준다고 했지 내가 다 하겠다고는 안 했는데?”
“어허! 마류-잡기는 내가 반쯤 완성했으니, 엄연히 말해서 네가 다 하는 건 아니지!”
“예이예이, 그러시겠죠.”
어이없다는 듯 턱을 삐죽거리던 유리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럼, 마류-잡기 다음은? 그다음도 없는 건가?”
“그다음은…….”
요한의 입가에 약간의 씁쓸함이 깃들었다.
“아직 구상만 해 둔 상태다.”
“…갈 길이 머네.”
요한이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 낸 마류는 아직 세세함이 부족한 절기였다
이유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검주를 이기기 위한 방식을 깨우치는 데 몇 년.
이를 위한 자료 수집 및 이론을 쌓는 데 몇 년.
나아가 기존 레드너 가문의 마나 운용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마나 로드로 개량하는데 또 몇 년.
그렇게 15년을 쏟아부었다.
보통 한 가문이 수십, 수백 년을 쏟아부어야 겨우 해낼 일을 한 개인이 15년 만에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요한의 천재성은 충분히 입증된 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한계가 있는 법.
그래서 요한에게 유리의 존재가 필요했던 거다.
자신이 만든 이론을 검증하고 실전에 적용해 볼 사용자가.
나아가 문제점을 짚어 줄 천재가.
요한은 빵빵해진 유리의 볼을 향해 검지를 쿡 찔렀다.
마치 창술을 보여 주듯.
“윈체스터 가문의 창술 중, 네놈이 겪은 취성은 ‘흘리기’가 적용된 기술이다.”
발생한 힘을 흘려 보내는 일반 흘리기와.
힘을 발생시키는 근원, 마나의 흐름 자체를 건드리는 마류-흘리기.
어찌 보면 마류-흘리기에 일반적인 흘리기가 포함되는 형태였다.
이에 유리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흘리기였다고?”
무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에 요한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녀석이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 취성이 흘리기란 게 납득이 안 가냐?”
“조금은. 내가 아는 흘리기와 무언가 느낌이 달라서.”
“그 차이가 뭔지 알아 낸다면, 취성이 어찌 마류-흘리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왔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아니, 그래서 결국 그 취성이랑 영감이 내준 숙제랑 무슨 상관인 건데? 뭔 말을 이렇게 빙빙 돌려서 해? 사람 헷갈리게.”
“쯧쯧, 이 우매한 놈. 마류-잡기가 뭘 잡는 거겠냐?”
“당연히 마나의 흐름이겠지.”
“그럼 일반적인 기술 중에 힘의 흐름에 간섭하는 기술이 뭐고?”
“당연히 흘리기… 아!”
“이제야 알았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윈체스터의 취성을 이용해서 마류-잡기를 연습해 보라는 거지?”
“그래, 그거다! 당장 마류-잡기를 완성하는 건 어렵겠지만, 그보다 한 단계 낮은 힘의 흐름에 관여하는 거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
“과연…….”
꽤 그럴듯한 소리였다.
아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 간다면 언젠가는 마류 잡기에 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터.
거기에 요한이 첨언이 이어졌다.
“윈체스터 가문의 취성은 상당히 독특한 흘리기다. 그리고 마류-잡기를 연습하기에 매우 적합하지.”
“독특하다라… 어떤 식으로?”
“그건 네가 직접 겪어 보면 안다. 다만, 힌트를 좀 주자면… 통통 튄다고나 할까?”
이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대련 횟수를 좀 늘려야겠어.’
취성을 더 자주 접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이를 티 내지 않고 대련 횟수를 늘리느냐인데.’
만약 자신 쪽에서 아쉬운 티를 낸다면 테레시아가 대련 1회당 주기로 했던 1만 포인트를 취소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테레시아는 제법 눈치가 있어 보였다.
자칫 잘못 꼬투리라도 잡혔다간 분명 손해를 볼 터.
때문에 그녀를 살살 구슬릴 방법이 필요했다.
‘흠… 역시 순수한 호의만큼 좋은 방법도 없겠지?’
유리가 그리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
“크흥, 그럼 난 갈 터이니 다음에 볼 때까지 숙제 잘 끝내 놓고 있거라.”
어기적어기적 요한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그렇게 동굴을 떠나려는 찰나.
“아, 맞다! 영감!”
유리가 다급히 요한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자기 목에 걸린 펜던트를 꺼내 보여 주었다.
“영감, 혹시 이거 뭔지 알아?”
이에 요한이 유리에게 다가가 펜던트를 들고 살폈다.
진녹색의 액체가 담긴 귀해 보이는 수정 목걸이.
이를 보자마자 대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어디서 훔쳤냐?”
유리의 이마에 혈관이 불거졌다.
“훔치다니!”
“그럼 이 귀해 보이는 게 어디서 났는데?”
“포인트 주고 산 거거든!”
“호오? 그래?”
그러고는 요한은 유리의 펜던트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보통 물건이 아닌 거 같은데?’
펜던트의 세공 정도며, 수정의 견고함과 단단함이 쉬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누가 만든 것인지 몰라도 최소 이 분야의 장인이라 불릴 만한 이가 만든 물건이었다.
그런 펜던트 안에 담긴 진녹색의 액체 역시 예사의 것은 아닐 터.
‘녹색… 녹색이라.’
요한은 녹색의 약 중 귀하다는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유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거 품목명이 골족의 비전이었어.”
“……?!”
요한이 놀라 굳어 버렸다.
그가 유리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뭐의 비전?”
“골족의 비전. 그런데 골족 하면 유명한 게 많잖아? 그래도 대충 추스려 보면 독 아니면 약이란 소리인데…….”
“멍청한 소리!”
유리의 이야기를 끊고 요한이 버럭 소리쳤다.
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열변을 토했다.
“골족의 비전 독이 왜 유명한 줄 아냐! 바로 무색, 무취, 무미이기 때문이다! 골족의 독은 이리 색이 짙을수록 저급한 취급을 받는단 말이다!”
“오, 그럼 비전이란 명칭이 붙었으니 이건 약이란 소리네? 요람에서 구라 친 게 아닌 이상?”
“그래, 그것도 보통 약이 아냐! 골족에게 비전이라 불릴 만한 약은… 딱 하나뿐이다. 바로…….”
“바로?”
“엘릭서다!”
“오! 엘릭서!”
“그래, 이게 그 유명한 엘릭서라는……!”
“그게 뭔데?”
“…….”
“엘릭서가 뭐야?”
“이 무식한… 아!”
유리를 욕하려던 요한은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빵긋 웃었다.
다만 표정은 바꿨어도 연신 꿀렁대는 목젖은 숨기지 못했다.
“별거 아니다. 엘릭서라고 해 봤자 그냥 조금 특이한 약일 뿐이다.”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 이거 나한테 팔래?”
요한을 바라보는 유리의 표정이 매우 매우 뚱하게 변했다.
‘일단 엘릭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네.’
이 영감탱이가 저렇게나 욕심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니, 엄청 좋은 게 맞다는 걸.
“어허, 당장 내 엘릭서에서 그 더러운 손을 치우지 못할까!”
유리가 잽싸게 요한의 손에 들린 엘릭서를 뺏어 옷 속으로 갈무리했다.
“쩝…….”
손안에서 빠져나가는 엘릭서에 요한이 입맛을 다셨다.
이에 가슴을 양손으로 가린 유리가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그래서 엘릭서가 뭔데?”
“…지 손에 들린 게 뭔지도 모르는 미개한 놈한테 저 귀한 게… 에잉, 쯧즛즛.”
“아! 그래서 뭐냐고요!”
유리의 독촉에 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치 선심 쓴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에휴, 무식한 놈. 잘 새겨듣거라, 엘릭서란…….”
* * *
엘릭서에 관한 설명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엘릭서가 무엇인지 깨달은 유리.
달달달달-
그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펜던트를 꺼냈다.
수정 속 진녹색의 액체가 영롱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아니,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보다 제 손안에 들린 펜던트가 가장 아름답고 영롱했다.
멍하니 펜던트를 바라보던 유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작은 중얼거림.
“…시발, 그래, 인생 한 방이지.”
크나큰 횡재를 한 유리의 두 눈에 벅찬 감동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