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04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04화>
한 세계의 끝(2)
세계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남들과는 다른 탁월한 재능.
거기에 천하칠검에게 선택받아 재해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짊어지고 싸웠다. 모든 재해를 쓰러트려 세상에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
그래서, 결말이 어땠지?
‘모두 죽었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줄곧 느끼긴 했었다.
용의 재해를 쓰러트리고 신의 재해를 도전할 때.
반쯤 궤멸한 세계 속에서 만난 세계의 지배자들은 파비안을 두려워했다.
각국의 왕, 다양한 종족의 지도자들.
모두가 감히 파비안과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어리석었다.’
마지막으로 신의 재해를 쓰러트리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그때부터 자신의 고삐를 어떻게 쥘지 답을 찾고 있었다.
‘마리아.’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영원한 소녀.
결국 그녀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죽었다.
세계의 구세주가 된 파비안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는, 이미 세계의 상권을 한 손에 쥐고 있었고 적이 많았다.
결국 마리아는 자신의 방에서 죽었다.
시녀가 보낸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음독당해 피를 토하며 눈을 감았다.
‘이안, 그리고 키세아.’
자신의 라이벌과 연인.
각국의 지도자들은 파비안을 억제하기 위해 키세아를 이용하고자 했다.
하필 신의 재해는 파비안이 아니면 감히 대항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최후의 전투를 위해 나선 건 파비안 혼자였다.
이안과 키세아는 아스크탈린 제국이 멸망한 이후,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한 왕국에서 머물고 있었다.
수많은 병사와 기사, 그리고 역전의 용사들이 그 둘을 사로잡기 위해 나섰다.
치열한 싸움 속에서 이안은 숨을 거뒀으며, 키세아는 그들에게 포위당했다.
하지만 키세아는 그들이 노리는 바를 알았고, 그것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키세아는 사로잡힌 순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결했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신의 재해를 쓰러트리고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기는 이는 없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지쳤을 때 죽여야 한다며 수많은 군대가 그를 습격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도망쳤다. 갑자기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파비안은 머릿속의 이성이 처음으로 끊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 재해는 아홉 번째가 끝이 아니었어.’
여태 그가 얻은 모든 정보에선 재해의 숫자가 열 개라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재해라고 생각한 신의 재해는 아홉 번째.
마지막 열 번째가 무엇인지 파비안은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내가, 열 번째 재해였던 거야.’
인재(人災).
인간의 재해, 그것이 바로 파비안 자신이었다.
자신의 모든 걸 앗아 간 세상을 파비안은 용서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걸 모두 죽였고,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세상을 멸망시켰다.
정말, 이처럼 인재라는 말이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인간들은 언제나 그렇다.
자신들 스스로 크나큰 재해를 초래한다.
그렇기에 인재(人災).
그러나 이를 뜻하는 건 단순히 파비안만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이 결국 재해였던 거다.
다른 재해와 달리 특별한 능력도 없으며, 그저 평범한 인간들이 결국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세계를 멸망시켰다.
결국 파비안은 세계를 완벽히 궤멸시키고, 최종적으로 마계에 도달했다.
그리고 마계까지 모두 타올랐을 때, 그는 천하칠검과 함께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떠올렸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다.
신들의 세계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보잘것없었다.
* * *
“주인공?”
파비안은 내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클레이 반하르트, 아직도 이 세계가 저쪽과 같다고 생각하나? 주인공이 무슨 의미가 있지? 아, 내가 엑스트라라고 해서 그런 말을 한 건가?”
녀석은 자신의 검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나의 손에 쥐어진 것과 같은 제노바의 칼날이 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주인공…… 그래, 주인공. 참 좋지. 그런 게 되고 싶었나? 하지만 주인공이라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그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점차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의 결말이 중요하지. 제대로 끝맺음을 맺지 못한 소설은 결국 조롱받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소설의 주인공도 함께.
나는 파비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녀석이 주인공인 소설은 이미 전부 읽었으니까.
검의 소리가 들려.
정말, 지랄 맞은 결말로 끝난 소설이다.
“주인공이 하고 싶다면, 해도 좋다. 하지만…… 결말은 내가 정하마.”
파비안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가 대지를 박차는 순간, 땅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고, 그의 신형은 탄환처럼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낙월(落月).
단월신검의 초식이 펼쳐지며 세계가 일자로 갈라졌다.
콰과과광!
“……!”
이전의 나였다면 그것을 피하거나 어렵사리 흘려 냈을 것이다.
녀석이 가진 검의 경지는 분명 나보다 높았으며, 순수한 신체의 힘도 천쇄의 무구를 사용한 나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조금 힘겹지만 정면에서 막아 냈다.
“너,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설마.”
실력 따윈 전혀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습게도, 이 큰 부상이 내가 전력을 내는 데 도움을 주는 거지만.’
사자의 심장.
마왕을 꺾었을 때, 사자의 심장을 익힐 수 있는 마지막 개연성이 달성되었다.
그것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5회 처치하는 것.
나는 그것을 마왕을 쓰러트림으로써 달성했다.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을 때, 그리고 몸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신체를 극도로 활성화시켜 주며 한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그 수치는 무려 세 배.
‘거기다…….’
까드득!
서로 힘을 겨루듯 마주친 두 개의 검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나나 파비안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슨?!”
파비안은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뒤쫓지 않는 나를 경계하며 제노바의 칼날을 황급히 확인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칼날의 이가 빠져 있었다.
“제노바가, 부서졌다고?”
인검 제노바.
기원검이라 불리는 그 검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소유자의 의지가 닿는 한 끝없이 단단해질 수 있으며, 수많은 기원이 모일수록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으로 탈바꿈한다.
“내가 재해이기 때문인가……?”
파비안의 목소리가 조금이지만 떨렸다.
나는 당혹스러워하는 녀석을 보며 살며시 심호흡했다.
녀석을 바로 쫓지 않은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준비가 필요했을 뿐이다.
‘모네.’
멀지 않은 곳에서 드래곤으로 변해 날고 있는 메르사야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모네가 있었다.
유명 BJ의 채널을 사용해 세계 곳곳으로 현재 서울의 상황을 유일무이하게 전달하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드득, 드드드득!
제노바가 조금씩 진동하며 황금색 칼날이 점차 빛을 더한다.
여태 내가 제노바를 사용한 건 꽤 되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기원이 모인 적은 없었다.
만약 내가 검의 힘을 제어하지 않았다면, 거대한 빛의 칼날이 서울을 반토막으로 갈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흐읍!”
파비안이 당황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파비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을 위로 치켜들고 수직으로 내리찍는다.
단월신검과 다른, 일륜지천검의 불꽃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며 일대를 단숨에 불태워 버린다.
“검이 부서진 건, 네가 재해이기 때문만이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이유에 불과해.”
“하나의 이유라고?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냐!”
“말했잖아, 내가 주인공이라고.”
“……뭐?”
검을 부딪친다.
허공에서 몇 번이고 파비안의 검과 나의 검이 격돌한다.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 파비안의 검을 피한 뒤, 제노바의 형상을 변환시켰다.
뒤이어 나는 오른발을 강하게 앞으로 내디뎠다.
‘성천무극.’
그란세시아의 말이 맞았다.
나는 검보단 주먹에 재능이 있었다.
3배로 신체 능력이 활성화된 지금이라면, 나의 주먹은 파비안의 검보다 빠르다.
콰아아앙!
폭음이 터지며 파비안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큭!”
그 짧은 시간에 파비안은 검을 회수하여 나의 주먹을 막았다.
빠직.
조금이지만 재차 파비안의 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파비안은 그럼에도 제노바로 나의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천하칠검은 천하칠검으로밖에 상대할 수 없다.’
단순히 공격을 가하는 거라면 몰라도, 공격을 방어하려면 제노바를 사용하여 막을 수밖에 없다. 제노바는 모든 걸 깨부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힘이 발현된 제노바를 막기 위해선 똑같이 제노바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힘이 길항할 때의 이야기.
파비안의 검은 조금씩이지만 금이 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를……!”
“모네.”
“뭐?”
파비안의 단월신검이 내 허리를 찢는다.
붉은 피가 흩날리며 몸이 크게 휘청였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이마를 꿰뚫으려는 검을 고개를 기울여 피한 후,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크게 올려친다.
“모네는 아주 운이 좋아.”
기적과 같은 행운.
실낱같은 확률을 손에 쥘 수 있게 해 주는 힘.
그러니 클레이는 모네에게 모든 걸 맡겼다.
‘모네가 없었으면 시작도 못했겠지.’
마치 개연성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클레이는 파비안을 꺾기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파비안은 솔직히 정면으론 결단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나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으니까.
나보다 오랫동안 검을 휘둘러 왔으며, 천하칠검도 더 오랫동안 다뤘다.
아무런 계획 없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승산을 찾자면, 현재 파비안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
파비안은 열 번째 재해.
당연히 제노바의 힘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기원을 최대한 모아야 해.’
파비안을 이길 방법은 하나였다.
제노바를 부수는 것.
천하칠검을 가진 자는 천하칠검을 가진 이밖에 상대할 수 없었으니까.
‘유명 BJ의 채널을 사용해, 남들이 감히 촬영할 수 없는 영상을 독점으로 인터넷에 올린다.’
이미 세계 곳곳에는 드래곤과 천사들로 인해 각종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세계의 지원군과 이쪽 세계의 우수한 병력들이 상대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슈가 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상으로 올린다면 크게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상이 짧은 시간에 눈에 띄려면 결국 행운이 필요했다.
그러니 모네가 필요했던 거다.
지금 이 상황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하기 위해.
수많은 인간의 기원을 지금 이 장소에 모으기 위해.
파비안의 검이 움직인다.
이미 데미안을 넘어선 극성의 단월신검이 펼쳐지며 나의 목숨을 노린다.
나는 그것을 침착하게 받아쳤다.
파비안을 노릴 필요는 없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제노바. 휘둘러진 검을 향해 마주 주먹을 휘두른다.
그리고 내게 단월신검은 아주 익숙했다.
특히 이 정도로 완벽한 단월신검이라면, ‘설정’과 조금의 오차도 없는 검격이라면 더더욱.
“어째서.”
파비안이 이를 으득 깨물었다.
“대체 어째서냐! 그땐 그렇게 간단히 죽었으면서, 대체 어떻게 나를 막을 수 있는 거냐! 너는 그냥 엑스트라였잖아!”
울분에 찬 그 외침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파비안이 외치는 ‘엑스트라’는 지금의 나만이 아니었다.
‘너’에는 그를 두고 죽어 버린 원작의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비안.”
“……?”
평온하게 묻는 내 목소리에 녀석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나는 휘둘러진 검을 주먹으로 튕겨 내며 말을 이었다.
“제노바의 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냐?”
“뭐?”
“제노바는, 작가의 펜이다.”
간단히 말해, 소설을 쓸 때 필요한 도구.
연필이나 펜, 혹은 이곳에선 키보드와 같은 것.
활자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물건.
“인간의 기원을, 꿈을 모으는 것처럼 제노바의 힘은 결국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에서 나와.”
부딪치고 튕겨진다.
몇 번이고 마주친 파비안의 제노바엔 거미줄처럼 잔금이 퍼져 나갔다.
파비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무래도 이제야 모든 걸 이해한 모양이다.
듀튜브를 통해 내 모습은 세계 곳곳에 영상으로 비치고 있었다.
라르기오스와 리야의 싸움.
그리고 수많은 용과 천사와 맞서는 이 세계의 인간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파비안과 싸우는 나.
무대는 이미 만들어졌다.
모든 설명도 영상에 편집되어 들어가고 있었다.
세계의 인간들이 나를 응원하도록.
그러니, 나는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