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혼령화는 전체 공격 패턴 중 하나로 검은 구슬 비에 맞은 일부 플레이어를 강제로 혼령으로 바꿔버리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혼령화가 된 플레이어는 스펠, 스킬 사용 불가, 대화 불가, 이동 속도 감소가 되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무서운 건 혼령화에는 상태 이상 저항 수치가 먹히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누구든 랜덤하게, 상태 이상 저항 수치 상관없이 무조건 걸리는 탓에 리디안이 바짝 긴장했다.
‘혼령화가 되면 최대한 보스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했었지? 그래야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대응 방법을 떠올린 리디안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윽고 허공을 향한 로크바의 두 손에서 검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커다랗게 변한 구체는 작은 알갱이를 무수히 증식해 냈고, 사방으로 흩뿌렸다.
겉보기에는 큰 대미지가 없어 보였는데, 총알처럼 빗발치는 구슬 공격에 플레이어들의 HP가 반이나 깎이기 시작했다. 20% 남짓 깎이던 체인 라이트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머리, 몸 할 것 없이 전신을 두들겨대는 구슬 탄에 모두가 짜증스러운 고통을 표현했다. 잠시 후, 공격이 멎고 나니 몇몇 사람들의 몸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오염된 것처럼 말이다.
리디안은 그들의 머리 위로 새로이 생겨난 검은 게이지를 바라보며 단박에 이해했다. 저 게이지가 다 닳아야 원래대로 돌아오는구나!
혼령화는 ‘신축’으로도 해제할 수 없는 터라 무조건 스스로 움직여 푸는 수밖에 없었다.
토토리아, 앵두군, 푸우, 기사, 마프로, 탐식자, 또치. 총 일곱 명이 혼령화에 걸린 것을 확인한 레온은 서둘러 멀리 떨어질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응답 없이 돌연 파티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악! 뭐야? 토토, 왜 그래?”
“야, 잠깐. 같은 파티에 동맹인데 왜 공격이 돼?”
“어우, 이거 엄청 아픈데?”
“식자야! 아파! 그만 때려!”
“뭐야, 뭐야? 다들 왜 그래요?”
“설마 핑푸한테 의뢰받고 이러는 거 아니죠?”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혼령화가 된 토토리아, 푸우, 기사, 마프로, 또치는 온갖 스킬을 사용하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보스의 공격도 힘든데, 아군의 공격까지 빗발치자 메인 힐러들의 입이 바빠졌다.
리디안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초점 없는 그들의 눈동자를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다들 장난인 줄 알고 있었으나, 지켜보건대 그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님이 틀림없었다.
“야! 야! 앵두 님이랑 식자, 스펠 낭비한다!”
“앵두 님! 식자 님! MP! 귀한 MP 낭비하면 큰일 나요!”
“악! 앵두 님 잘못했으니까 그만 때려요! 셉터가 뿅망치도 아니고! 아악! 머리! 내 머리!”
격수들이 아군에게 공격 스킬을 난무하는 것처럼. 비격수인 그들도 전용 무기인 셉터나 하프를 이용해 주변인을 두들겨 패거나, 갑작스레 스펠을 외워 MP를 마구잡이로 소모하고 있었다.
“갑자기 저한테 왜 그러세요!”
세상 서럽고 억울한 목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기사와 같은 파티인 ‘그리고’였다. 들고 있는 창으로 나이트의 검을 가로막은 그리고는 울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현재 혼령화가 된 기사에게 공격당하고 있었다.
창을 든 그리고의 팔은 후들후들 떨렸고, 상대방이 내리찍는 힘에 눌려 점점 몸이 기울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검에 베이고 찔릴 거라고 확신한 그리고의 눈동자는 점점 공포로 물들어갔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힐러들이 알아서 힐을 줬을 텐데 뭐가 그리 무서운지, 그리고는 사색이 된 얼굴로 몸을 비틀어 기사의 시야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새된 비명을 지르며 정원을 종횡무진했다.
그에 비해 다른 이들은 차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레이드 경험이 많다 보니, 작은 실수와 진열 이탈이 얼마나 큰 피해로 이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캐티스는 잔뜩 겁에 질려 뛰어다니는 그리고를 바라보며 머리를 짓눌렀다. 아, 쟤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차피 이번 공략은 테스트 목적이니 크게 상관없겠다 싶어, 잡몹이나 처리하라고 데려온 건데, 레기온 사람들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제어가 안 되니 뒷골이 잔뜩 당겼다.
“그리야! 진정하고 자리로 돌아가! 힐 받으면서 버티면 돼! 괜찮아!”
일부 ONE 길드원들도 그녀를 부르며 제자리로 돌아가라 조언했지만, 넋 나간 그리고의 귀에 들릴 턱이 없었다. 덕분에 한동안 정원에선 그리고와 기사의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플레이어 사이를 누비며 이리저리 뛰어다닌 덕분에 그리고는 기사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 있었다. 그녀를 쫓던 기사는 제 시야에서 그리고가 사라지자, 가장 가까이 있던 다른 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엉뚱하게 피해를 받은 이는 파파였다.
파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도망쳐 버린 그리고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마터면 쌍욕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윗사람을 상대로 철없이 굴 수도 없는 노릇. 참자, 참자. 참을 인을 중얼거린 파파는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여신의 손길 회복 스펠을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도망친 그리고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여섯 시 방향에서 주춤거렸다. 하지만 로크바의 전체 공격은 범위가 무제한 힐러의 힐은 일정 범위 제한이 있었다. 로크바가 또다시 체인 라이트닝 공격을 시전하자, 겁에 질린 그리고가 다시 뛰어오기 시작했다.
한편, 보조 비격수 파티는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수를 동원하고 있었다.
“30초 지났나? 게이지 왜 이렇게 안 줄어?”
“지금 다들 조종당하는 거야?”
“자아를 잃은 느낌인데?”
“멀리 떨어지면 풀리는 거 아니에요? 마프로 님 한참 떨어져 있는데도 게이지가 안 줄어요.”
“상태 이상인 건 맞는 것 같은데, 검은색 게이지 보이는 거 보니까.”
“신축이 아예 안 먹히는 느낌인데요?!”
“지능 신축도 소용없어요. 아무래도 해제 불가인 것 같아요.”
괴자, 그레이스, 드림드림은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레온은 한순간에 난잡해진 진열을 바라보며 머리를 짓눌렀다. 그러던 중, 혼령화가 된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페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크게 외쳤다.
“다템분들! 일반 모드로 상태 이상 필드 깔아 보세요!”
눈치 빠른 하츠와 인드라가 재빨리 실행에 옮겼다. 겹겹이 깔리는 필드에 발이 걸리자, 거짓말처럼 그들의 행동이 멎었다.
줄기차게 떨어지던 파파의 HP를 신경 쓰느라 조마조마했던 리디안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PK 모드 아니죠? 근데 저주 필드에 바로 적용되는 걸 보니, 혼령화되면 몹으로 인식되나 보네요?”
마제스티의 빠른 판단에 확신한 레온이 다급히 외쳤다.
“하츠 님, 인드라 님이 필드 영역 안 겹치게 거리 계산해 주시고, 다른 분들은 가급적 필드 범위 안에서 움직여 주세요! 누리 님은 바쁘시겠지만 오브젝트 및 잡몹 파티 보조, 영역 벗어난 혼령화 플레이어까지 담당 부탁드려요!”
급작스러운 진열 변경에 호명된 이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메인 힐러들과 붙어 있던 하츠가 왼쪽을 맡았고, 오브젝트 담당이었던 인드라가 오른쪽을 맡아 자리 잡았다. 잡몹 담당이었던 누리는 울상을 지며 파티를 왔다 갔다 이동했다.
혼령화에 걸린 플레이어들이 다크 템플러의 상태 이상 필드로 무력해지자 난장판이었던 분위기도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리고도 눈치를 살피며 제자리에 정착했다. 몇몇이 그녀를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울먹이는 표정을 보곤 뭐라 말도 못 한 채 사람들은 한숨 쉬며 다시 고개 돌려버렸다.
“야, 한유원. 꼬라지 아주 잘 돌아간다. 그치?”
슬그머니 레온의 곁에 다가온 버베나가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날이 서있는 버베나의 목소리에 레온은 껄끄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길드 분위기 친목 도모용으로 바꿀 거 아니면 후딱 정리해라. 지금 저 언니 때문에 분위기 얼마나 흐려졌는지,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또 파아란 꼴 나기 싫으면 알아서 해.”
레온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규율이 확실하게 지켜지고 항시 긴장을 늦추지 않는 ONE 길드의 특성상, 자유분방한 파아란이 그랬던 것처럼 대충, 원만하게― 를 고집하는 그리고 역시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리고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곳에 갇히기 전만 해도 그리고는 존재감 옅은, 초보 플레이어이자 접속률도 낮았다. 그 때문에 거의 제명되기 직전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벤트 접속과 함께 갇혀버린 것이었다.
게임 때만 해도 그녀의 존재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버베나였지만, 둥글둥글한 그녀의 성격을 겪을수록 버베나는 그리고가 ONE 길드에 맞지 않음을 판단했다.
그렇다고 파아란처럼 예의 없이 구는 건 아니고, 살갑게 여기저기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 공식적으로 퇴출할 이유가 다소 부족했다. 무엇보다 대충, 원만하게― 라는 모토답게, 매번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탓에 크게 지적하는 이도 없었다.
웃는 낯에 침 뱉었을 수 없다고, 그리고는 그 말이 딱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아바타뿐인 게임이었으면 모를까. 실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 보니 웃는 얼굴을 보며 나가라 할 수 없었기에 그냥 품고 가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로써 레온은 다시금 생각해야만 했다. 평소 같았으면 버베나를 향해 신경 쓰지 말라며 으르렁거렸을 텐데, 크게 느끼는 바가 있는지 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와, 간 떨어질 뻔했네.”
하마터면 토토리아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할 뻔한 규호가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토토리아는 현재 규호의 곁에서 슬립 필드에 걸려 선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다.
“혼령화되면 몬스터로 분류되어 피아식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신축도 안 되고 보스한테서 좀 떨어져도 게이지 회복 기미가 안 보이는 걸 보니……. 그냥 다템 필드로 막는 수밖에 없겠네요.”
크라이그의 빠른 정리에 간부들이 차례차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잠시 후, 검은 게이지가 닳아 원래 상태로 돌아온 이들은 한결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내가 여기에 있어?’ 그리 묻는 걸 보니, 아무래도 혼령화 상태의 기억이 없는 모양이었다.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간결히 설명하고 나서야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며 경악했다.
“이거 좀 무섭네. 조금 전은 그럭저럭 넘겼다지만, 저기 하이 랭커 딜러들이 걸려서 공격하면 순식간에 시체 밭 되겠는데……?”
리디안은 캐티스가 검지 끝으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며 어깨를 떨었다. 레온, 버베나, 크라이그, 마제스티, 신사 등등. 다들 공격력 면에서 톱 자리를 차지하는 데다 PVP전에서는 항시 대학살자의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저기 매지션 쪽도 마찬가지고요.”
페페도 껄끄럽게 대꾸했다. 매지션 파티의 구성원을 확인한 세인트들은 절망의 한숨을 뱉었다. 간부들도 그 사태를 예측하곤 걱정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하츠와 인드라가 가능한 한 재빨리 반응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확인 변수 공지합니다! 첫 번째, 체인 라이트닝 경직 시간 증가. 두 번째, 랜덤 디버프 지능 신축 해제 필요. 세 번째, 보스 회복력 증가 패시브 적용. 네 번째 혼령화 걸린 플레이어의 몬스터화. 기억하시고 움직여 주세요!”
“추가로, 아군 공격 시 무조건 제자리에서 버티세요. 움직이지 말고.”
레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지간하면 나서지 않는 버베나가 모두를 향해 또렷하게 외쳤다. 그녀를 잘 아는 주변인들은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걸 깨닫곤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눈치 없기로서니, 저를 지적한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는 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또 몹시 속상한 표정으로 잠시 버베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기도 했다.
잇따른 변수 패턴에 아수라장이 됐던 분위기가 좀 진정되었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패턴이 더 있었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 리디안은 연달아 떨어지는 공격 패턴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 이후로 나온 패턴은 전체 공격 중 하나인 혼령 폭탄과 오브젝트 버프였다.
전체 공격기인 혼령 폭탄은 기존과 다를 것 없었다. 로크바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은 혼령이 사방에서 불시에 폭발하고 모든 플레이어의 HP가 50% 고정으로 줄어든다.
다행히 이 부분은 리디안의 여신의 손길로 100% 회복 가능했기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추가로 걸리는 상태 이상인 석화 역시, 일반 ‘신축’으로도 쉽게 해제되는 탓에 힐러들의 걱정이 줄었다.
“곧 오브젝트 생성됩니다! 담당 파티 준비해 주세요!”
신사의 외침에 리디안은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저 위, 열두 시 방향으로 붉은 빛의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안개처럼 흐릿하던 그것은 점차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변화해 ‘로크바의 사념’이라는 이름을 표기했다. 저 사념이 떠있는 동안은 로크바의 공격력이 대폭 상승하기에 서둘러 파괴해야 했다.
오브젝트 자체는 방어력의 개념이 없어 딜러의 대미지가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갔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오브젝트가 가진 기본 체력이 큰 탓에 빠른 처리는 힘들었다. 대신 크리티컬이 잘 먹히는 특성이 있어, 은신을 활용한 무한 크리티컬이 가능한 섀도우 헌터들이 분발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오브젝트의 HP가 거의 다 닳은 것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안심했다. 사기적으로 증폭된 로크바의 공격력에 다들 앓는 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리디안도 곧 없어질 오브젝트를 바라보며 몹시 기뻐했다.
“오브젝트 패턴도 기존이랑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모양…….”
페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브젝트가 제거됐다. 쾅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지만, 붉은 안개가 사라지고 눈에 들어온 건 섀도우 헌터 세 명의 시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