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여신의 영역이 유지되던 20초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리디안은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부는 어느 정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와중에 힐하고 버프하고 신축까지 쓰면 진짜 사기지.”
“나름의 밸런스 조정인 셈인가. 그럼 영역 쓰는 동안은 다른 세인트들이 보조해야죠, 뭐.”
“쿨타임 120초라고 그랬죠? 2분이네. 매지션 스펠 대미지도 봐야 하고, 중첩 효과도 봐야 하니까. 그럼 그때까지…….”
여신의 영역 재사용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엔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괴자에게 향했다. 그녀가 새로 배운 스펠은 ‘초월자의 손길’이라는 전체 회복 스펠이었다.
괴자는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달려 나와 조금 전 실험으로 피가 줄어든 파티원들 향해 바로 스펠을 시전했다.
여신의 영역과 같은 색감인, 초록빛의 회오리가 파티원들의 몸을 휘감다 사라졌다. 여신의 손길의 상위 호환 회복 스펠로, 기존보다 10% 상승한 회복력이 특징이었다. 두어 번 스펠을 사용한 괴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나쁘지 않네요. 이건 ‘초손’이라고 부르면 되나? 스카디 아래 단계 무기 대신, 보조로 쓰기에 적당한 듯?”
“우와. 레기온 메인 힐러 빵빵해져서 부럽다. 우리 쪽엔 스펠보다 스킬이 더 나와서…….”
부러워죽겠다는 규호의 중얼거림에 앵두군이 갸웃했다.
“버베나 님은요? 서모너도 스펠이잖아요. 아까 레이드에서 서모너 스펠도 나왔다고 한 것 같은데.”
몇 명의 시선이 ONE 길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리디안도 궁금해 쳐다봤지만, 멀리 있는 버베나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 근처에 있는 딜러들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는 물음에, 규호는 한숨을 푹푹 쉬며 답했다.
“맥스비 님이 ‘물어뜯는 이빨’ 공격 스펠을 먹어서 줬는데 버그인지, 소환수들이 대상을 한 번 공격하고 바로 증발해 버리더라고요.”
“헐. 재소환은요? 대미지는 제대로 들어가요?”
“재소환은 되는데 본격적인 공격도 못 해보고 증발해 버리니……. 대미지도 뒤죽박죽으로 뜨는 거 보니까 진짜 버그인 것 같아요. MP는 MP대로 잡아먹고, 쿨타임도 길고. 진짜 망스펠이에요.”
“저런. 게임이었으면 바로 수정 각인데. 지금 상태로는…….”
가망 없는 상황이라, 다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쩜 재수가 없어도……. 버베나와 막역한 사이인 이노센트도 이번만큼은 동정한다며 짧게 혀를 찼다.
파피루스와 맥스비가 애써 버베나를 위로하고 있는 듯했지만, 레온이 얼굴 앞에서 배를 잡고 웃고 있는 바람에 버베나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친남매다웠다.
“그럼 갑니다~!”
ONE 길드 쪽의 분위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막 배운 신스펠에 신이 난 테세우스가 백검을 상대로 손을 뻗었다. 매지션의 신스펠 시험인지라 버베나의 망스펠에 쏠려 있던 관심도 차츰 분산되기 시작했다.
“시우 님도 같이 해보세요. 엘레멘탈 붐이랑 썬더 스톰이랬나?”
온갖 버프로 무장한 백검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차례를 기다리던 시우는 백검의 제안에 흘깃 눈치 보다 테세우스의 옆에 섰다.
든든해진 테세우스가 백검을 도발했다. 여신의 영역도 없어졌는데 가능하겠냐는 물음이 떨어졌지만, 백검은 픽 코웃음 치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나도, 나도!”
대미지 테스트는 자신의 방어력 자랑이기도 해서, 레기온 길드 몇 명이 자신도 같이 맞아보겠다며 백검 옆에 쪼르르 줄 섰다.
허수아비가 늘어나자, 시우와 테세우스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 눈짓하다 동시에 스펠을 외웠다.
“엘레멘탈 붐.”
“썬더 스톰.”
백검의 주위로 오색찬란한 폭발이 일고, 곧장 하얀 번개 다발이 떨어졌다. 육안으로도 위력적으로 보이는 이펙트와 장내를 뒤흔든 커다란 소리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또치 님이 탈락하셨습니다.] [세자 님이 탈락하셨습니다.] [삼촌 님이 탈락하셨습니다.]난데없이 뜬 메시지 창에 어리둥절한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가외로 향했다. 순식간에 HP를 잃고 탈락한 세 사람이 당혹스러운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뭐야, 방금?”
“헐. 남은 사람들 HP도 아슬아슬한데요?”
“스펠 두 개 맞고 저렇게 된다고? 말이 돼? 그리고 도적 계열이 암만 마법 방어력이 낮아도…….”
“이 정도면… 매지션이 나이트 씹어 삼키겠는데? 뭐, 나이트 신스킬이 어떨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선 답이 없다.”
“와, 개사기 스펠. 게임이었으면 당장 다운그레이드 감임. 밸붕 쩌네!”
매지션 신스펠의 지나친 성능에 주변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정작 스펠을 사용한 당사자들도 놀랐는지,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저와는 다른 성능에 버베나가 폭주하는 사이, 매지션의 신스펠 중 하나인 ‘프로즌 스피어’를 배운 맥스비의 표정도 흥분으로 물들었다.
새로운 스킬을 두고 입맛만 다시던 딜러들은 혹시나 하는 상황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이거 딜러들 스킬도 저만큼 사기적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그럼 좋죠. 안 그래도 요즘 레이드 빡세서 힘들었는데. 스펠, 스킬 보정이라도 있어야지.”
“지하 도시 도전하길 잘했네요. 신스펠, 스킬 덕분에 다음 레이드 돌기는 더 편해질 테니까.”
“그때까지 80 찍는 게 문제죠.”
“에이, 껌이죠. 게임 하던 버릇대로 돌면.”
“와, 스타일 님. 무서운 소릴 하네.”
“폐인이 괜히 폐인인가요.”
상대적으로 스킬을 많이 먹은 ONE 길드 측에서 희망찬 대화가 오갔다.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신스펠 실험이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진행됐다.
여신의 영역은 이제 핵심 스펠이라, 리디안은 쿨타임마다 여기저기 불려가 증폭시켜 주느라 몹시 바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버프 신스펠을 배운 파피루스도 와 테스트를 도왔다.
처음엔 별생각 없던 리디안도 몇 번 사용하다 보니 적당한 사용처라든가 타이밍 등, 스펠 최적화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민해야 했다.
그에 도움을 준 이는 괴자였다.
애당초 그녀에게 대인전 플레이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었다. 리디안은 그 뒤로 괴자와 오토마타, 도도, 시우, 페이지를 따라다니며 가벼운 컨트롤을 익혔다.
중간에 괴자를 통해 불려 온 크라이그도 있었지만 리디안을 상대로 극한으로 몰아붙이라는 주변의 제안에도 크라이그는 선뜻 나서지 않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크라이그한테 시달렸으면 좀 나았을 텐데. 덕분에 리디안은 도도, 시우, 페이지에게 정신없이 쫓기며 생존력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
결투장에서의 스펠 테스트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30분가량의 생존력 수업이 끝난 이후로도 리디안은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파티를 바꿔가며, 2분마다 여신의 영역을 외워야 했다.
리디안은 비로소 시들시들해진 분위기에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조금 지치는 감은 있었어도, 오늘은 정말 보람차고 즐거운 하루였다.
지금까지도 나름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오늘만큼 정신없고 재미있던 날이 있었나 싶다.
리디안은 아는 얼굴들이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쭉 지켜보고 경험하다 보니, 대인전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뀐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투를 무서워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본 게 바보 같을 정도였다.
그저 하나의 재미, 놀이였을 뿐인데 왜 그리 겁을 먹고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는지. 뒤늦은 깨달음이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어때? 해보니까 재미있지? 별거 아니지?”
멀리서 리디안의 스파르타 훈련을 지켜보던 이노센트가 불쑥 다가와 물었다.
깜짝 놀라면서도, 리디안은 민망한 웃음을 보이며 붉어진 볼을 매만졌다. 이노센트는 신세계 길드전을 언급하며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리디안은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며 못다 한 말을 꺼냈다.
“저 사실 처음에는 좀 무섭고 걱정됐는데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걸 해보나, 해서……. 덕분에 좀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근데 만약 졌으면 정말 속상해서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 덧붙이는 리디안의 대꾸에 이노센트는 어깨를 팡팡 두드려줬다.
“괜찮아. 아주 바람직했어. 아까도 괴자 님 따라다니면서 잘하던데, 뭘. 그리고 원래 이런 건 친한 사람들끼리 해야 더 재미있고 접근하기 쉽거든.”
“앗, 맞아요. 그것도 영향이 컸어요. 다들 너무 편하고 믿음직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지금 생각해도 우리 길드에 가입하길 잘했지?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 그치?”
불쑥 들어온 질문에 리디안은 배시시 웃으며 끄덕였다. 수줍은 긍정이었다. 이노센트는 흐뭇한 얼굴로 리디안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뭐, 리디안이라면 어느 길드를 갔어도 잘했을 테고 지금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지만, 리디안이 좀 더 레기온에 마음을 열고 정을 붙이고 지내길 바라는 욕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아니, 근데 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 그러는 거야? 아까는 강화한다고 난리더니.”
결투장에 슬슬 질린 이노센트가 간부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며 투덜댔다. 시선을 따라간 리디안 역시 지칠 기미가 없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아직도 스펠, 스킬을 주고받으며 실험하는 사람. 자리가 만들어진 계기를 빌려 일대일을 하는 사람들, 또는 구석에 주저앉아 사담을 나누는 사람들 등.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만 보자면 점심시간 때의 학교 운동장이었다.
크라이그도 아직 마제스티와 스킬을 한 번씩 주고받으며 뭔가 진지하게 대화 중이었다. 연구할 게 남았는지 아까부터 실험을 끝내지 못하는 모습은 정말 게임 중독자 같았다. 그게 다소 웃음 포인트가 되어, 리디안은 몰래 웃음을 삼켰다.
[편지가 도착했습니다.]익숙한 알림 음과 함께 작은 메시지 창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웃음을 멈춘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아이콘을 눌러 확인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리디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발신자는 과일박스의 길드 마스터, ‘프루츠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