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여신의 손길!”
사방천지로 붉은 빛무리 끊임없이 떨어졌다.
메테오가 지면에 닿을 때마다 굉음이 솟았고 덩달아 플레이어들의 HP가 크게 요동쳤다.
리디안은 화끈하고 따끔한 충격에 연신 눈매를 찌푸렸다.
그러나 아프다고 뭐라 표현할 틈이 없었다.
보스, 타락의 사제는 쉴 틈 없이 메테오를 던졌고 리디안은 들쭉날쭉 왔다 갔다 하는 HP 게이지에 집중해야 했다.
“이런, 미친! 저 새X는 쿨타임 매너도 없어요?”
메테오에 잠시 멈춰 선 추장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본인은 분노에 가득 찼지만, 경험자들에겐 작은 재미였다. 곧 여러 사람에게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리디안도 따라서 웃고 싶었으나 입으로 계속 ‘여신의 손길’을 외워야 했다.
거의 2, 3초마다 외우는 통에 타이밍이 어긋날까 봐 노심초사였다.
“여신의 손길! 여, 여신의 손길!”
재수 없어 메테오가 연달아 떨어질 땐 놀라서 똑같이 연달아 외치기도 했다. 다른 세인트들이 알아서 힐을 넣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다행히 리디안의 MP가 넉넉한 편이라 새삼 눈치 보일 일은 없었다.
그래도 초반부터 쓸데없이 낭비했다며 리디안이 반성하던 때였다.
[저주.]메시지와 함께 낮은 음성이 출력됐다. 두 손을 번쩍 든 사제의 모습에 신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디버프 준비하세요!”
각자의 위치에서 기다리던 페페의 팀이 재빨리 스위칭을 준비했다.
곧 타락의 사제 발아래로 붉은 마법진이 번져 나갔다.
얼핏 보기에도 다크 템플러가 행하는 디버프 필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 퍼지는 마법진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와, 범위 무슨 일? 원래는 끽해야 근거리 딜러까지였는데.”
“그러게요. 이젠 원거리 딜러 있는 자리까지 다 삼키네.”
“저주 범위 증가! 신축 팀 참고하세요!”
리디안은 아슬아슬하게 몇 발자국 앞에 멈춰선 붉은 마법진을 바라봤다. 세인트들이 서있는 자리까지 닿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이윽고 저주 필드의 효과가 발동됐고 세 시, 여섯 시, 아홉 시 방향에서 애탄 외침이 울려 퍼졌다.
“신성한 축복! 신성한 축복!”
페페의 목소리가 유난히 간절해 보인다고 생각했을 때. 리디안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서둘러 고개 돌리자 각종 상태 이상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아무리 늦어도 상태 이상은 5초 내로 풀렸어야 했기에, 다른 이들도 의아함에 힐러들을 흘끔댔다.
“신축 팀! 디버프 해제해 주세요!”
“지능 스위칭해도 안 풀리고 있습니다!”
신사는 다급한 페페의 대답에 휘둥그레 눈떴다. 마찬가지로 상황을 파악한 세인트들도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저거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레이스가 불안한 눈으로 우물거렸다. 그에 여신의 손길을 외우던 캐티스가 반대편을 쳐다봤다.
“보조 팀! 신축 지원요!”
초반 버프 이후 간간이 보조 힐을 넣고 있던 낙루와 앵두군, 돌아다니며 보조하던 추장이 긴급히 투입됐다.
“신성한 축복!”
여럿의 세인트가 이구동성으로 한참을 외쳐 댔다. 상태 이상은 그제야 풀렸고 딜러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페페는 몹시 당혹스러운 눈으로 신사를 바라봤다.
“이거 너무 이상한데요. 이렇게까지 안 풀리는 경우는 처음이에요.”
“어이없네. 내가 지금 지능 스탯이 템발로 35가 넘는데. 이게 말이 돼요?”
아예 신축만을 위해 지능 수치 위주로 세팅한 규호조차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 수준이면 신축으로 낭비되는 MP가 상당할 터라, 페페의 표정은 더 심각해졌다.
시작부터 높은 난관에 부딪히자 분위기가 굳어졌다. 그동안의 레이드를 통틀어 이 정도로 신축이 안 먹히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 어려웠던 지하 도시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모두가 황당해하며 불안한 미래를 자동으로 그렸다.
“이러다 디버프 때문에 전멸하는 거 아닌지 몰라.”
“어… 이거 잠시 중단하고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청풍명월의 섀도우 헌터인 무희가 조심스럽게 간부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시작 10분 만에 도전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지하 도시 때가 생각났지만, 신사는 이를 악물었다. 하다못해 패턴이라도 하는 데까지 해야 했다.
“모두 집중해 주세요! 레이드 중단 없습니다. 다음 저주 패턴부터는 나머지 세인트분들이 번거롭더라도 신축 몇 번 넣어서 지원 부탁드립니다!”
신사는 차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좌중을 진정시켰다.
아무리 안 풀린다지만. 신축 여러 번이면 모를까. 고작 한두 번으로 MP가 크게 소요되는 스펠이 아니라며 말이다.
그 말에 메인 힐을 맡던 세인트들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신사의 빠른 판단 덕분에 저주 패턴에 대한 대비책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러나 메테오는 여전히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노르드 월드 특성상 몹에게 MP가 부여된 건 아니라, 보스의 공격은 끝이 없었고 딜레이도 제한이 없었다.
추장의 말대로 우스갯소리로 보스에게 매너 좀 챙겨 달라는 부탁이 절로 나왔다.
리디안은 수시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 정도로 여신의 손길을 연달아 외운 게 처음이라, 종종 발음이 꼬일 때도 있었다.
‘MP는 괜찮으려나?’
짐짓 불안하여 쳐다봤으나 다행히 파피루스의 신스펠인 ‘마력이 깃든 축복’ 덕분에 MP는 문제없이 잘 차오르는 상태였다. 거기다 파파의 신스펠 ‘음유시인의 하프 연주’ 스펠이 다른 세인트들에게 정상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다만 리디안은 ‘스카디의 영광’ 옵션과 중복되지 않아 아쉬운 효과였다. 그래도 나머지 사람들의 MP 부담이 적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좌우 잡몹 출현! 5파티, 6파티!”
수시로 주변을 살피던 신사가 더 큰 목소리로 경고했다.
붉은 태양의 신전 보스는 소환 패턴이 따로 없는 게 특징이다. 대신 보스의 활동에 반응해 몹들이 조금씩 리젠되는 방식이다.
다른 곳에 비해 나타나는 횟수도 적고 수도 적긴 하지만 잡몹이라고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다들 힐 범위 안 벗어나게 거리 조절해요!”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잡몹 떼에 5파티와 6파티가 바삐 일을 시작했다.
가디언인 일반인과 물리학자는 보스와의 적당 거리를 벌리기 위해 세심하게 발밑을 살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미치광이 신도’가 메테오와 비슷한 광역기를 난사했다. 빗발치는 공격에 플레이어들의 HP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메인 힐을 맡은 세인트들은 더욱 바빠졌다.
다시금 정신없는 분위기에 리디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붉은 태양의 신전……. 동굴이나 ‘죽사막’, 지하 도시와는 다른 의미로 아주 귀찮은 곳이었다.
[축복.]또다시 불쾌한 음성이 메시지와 함께 출력됐다. 다른 패턴의 등장을 알아챈 플레이어들의 야유와 함께 타락의 사제가 또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생겨난 붉은 빛이 회오리치며 지면으로 스며들었다. 그러곤 줄기처럼 뻗어져 잡몹들에게 옮겨졌다.
“몹 버프요! 5파티, 6파티 조심하시고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 말씀 주세요!”
축복은 특이하게도 보스의 시야 기준이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직접 부딪히는 잡몹 팀 말고는 사실상 변화를 캐치할 수 없었다.
신사는 보스를 향해 화살을 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축복’의 효과는 몬스터의 공격력과 방어력 증가였다.
보스가 시전한 ‘축복’에 의해 몬스터들의 몸 위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알기 쉬워 좋았으나, 시각적으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게 큰 문제였다.
척 봐도 강해 보이는 모습에 일반인과 물리학자가 긴장을 삼켰다.
팔라딘이 아니라 잡몹 팀에 배정되었다지만, 이곳은 잡몹 모두가 마법 공격형이다. 물리 방어 전문인 가디언에겐 잡몹도 부담스러운 게 당연했다.
잠시 후, 잡몹의 반격과 함께 날아든 큰 대미지에 탱커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짤막하게 신음했다.
“아, 공격력 반감됐네.”
딜러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보다 반이나 줄어든 자신의 대미지에 주먹질하던 개복치가 혀를 찼다. ONE 길드인 날개도 신사에게 외쳤다.
“부길마 님! 잡몹 공격력이랑 방어력 증가, 기존이랑 똑같은 것 같습니다!”
몇몇이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서야 박회장이 그 밖의 특이 사항을 알아챘다.
“얘네 추가로 체력이랑 지속 시간도 늘어난 것 같아요!”
타락의 사제 좌우에서 잡몹을 처리하던 딜러들도 박회장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요. 방어력 증가라고 해도 HP가 너무 많은데? 시간도 오래 가는 것 같고.”
이후 5파티, 6파티의 딜러들이 몇 번의 체감을 더 해보고 확실시하자 신사도 그를 인정했다.
“축복 패턴, 몹 체력 및 지속시간 증가 추가로 확인되었습니다!”
정신없는 와중에 리디안은 짬을 내어 각각의 잡몹 팀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지금으로선 축복을 따로 풀 방법이 없어 그저 버텨야만 했다.
“아니, 진짜. 내가 전부터 다템한테 몹 버프 역으로 푸는 스펠 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말이야. 그거 그대로 만들어 주면 어디 덧나나? 그거 생겼으면 지금 완전 도움될 텐데. 안 그래요?”
대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는 몰라도, 다람이 사람들을 쳐다보며 툴툴거렸다. 엉겁결에 시선을 받은 하츠와 인드라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당황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람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다크 템플러 직업에 문외한인 리디안도 진작부터 그 생각을 해왔기에 그러게, 라며 속으로 동의했다.
“하기야, 사이도 가끔 하던 말이긴 해요. 다템한테 버프 해제하는 스펠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니까.”
도도 역시 친구였던 사이의 푸념이 생각나 한마디 얹었다. 그에 딜러들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고 다람은 자신의 의견이 주목받는 것에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그래도 아직 다템 신스펠 정보가 없어서 기대해 볼 만 하지 않아요?”
“그쵸. 솔직히 다템 스펠이 거기서 거기라, 이제 나올 만한 게 디스펠 계열뿐이지.”
“나와도 몹 따로, 플레이어 따로 분리되겠죠?”
“악손, 악발 무기로 스펠 트리 나뉜 거 생각하면 그게 공평하긴 해요.”
“지금쯤 태양 애들도 지하 도시 하고 있을 테니… 신스펠, 스킬 나오는 거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근데 다템 스펠 나오면 거기 사이나 블루벨한테 밀어줄 것 같은데요? 스펠은 레벨 제한도 없고 해서…….”
보스를 향해 썬더 스톰을 날린 테세우스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아주 가능성 큰 얘기라 몇 명이 인상을 구기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정말 태양 연합이 그리하겠다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도 모두가 열불을 내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에, 보다 못한 레온이 개입했다. 사담은 나중에 하고 집중하라는 따끔한 경고에 그제야 모두가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