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변화하는 사람들】
눈앞에 주르륵 뜬 드롭 메시지에도 플레이어들은 전처럼 요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앞서 완료한 신전 레이드야 첫 클리어라 잭팟이 터진 거고. 이번 지하 도시는 두 번째 클리어라 첫 번째보다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지하 도시 두 번째 결과물에 대해 기대가 적은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신스펠과 신스킬을 얻었다는 제보가 속속들이 들어오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와! 대박! 팔라딘 신스킬 뜸!”
“진짜 뜨긴 뜨네요? 그럼 다음 세 번째에도 또 뜨려나?”
“어, 어! 저도! 전 가디언 스킬요!”
“바드 스펠도 나왔어요!”
테세우스의 호들갑을 시작으로 박회장, 와츠, 토토리아가 차례대로 환호했다. 눈 동그랗게 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동안, 리디안도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온 낯선 스킬 북을 멍하니 쳐다봤다.
일격필살처럼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날것 그대로의 기술명이나 스킬 북의 금빛 외관이 주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바보처럼 한참이나 뚫어지게 스킬 북을 쳐다본 리디안은 자연스럽게 대장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스킬 북은 대장군에게 갈 듯싶었다.
“이야… 진짜 나오긴 나왔네요. 두 번째 클리어라 약간 불안했는데.”
“나왔으니 다행이네요. 그 고생을 했는데, 안 나왔으면 울 뻔.”
규호, 먹구름이 피식거리며 서로를 마주 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 하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먹구름 덕분에, 내내 눈치만 보던 태양 연합 플레이어들도 슬그머니 따라 웃기 시작했다.
“빨리 뭐 나왔는지 체크하라고 해요. 업혀 왔다곤 해도 우리 몫은 제대로 챙겨야지. 지하 도시 템은 확실히 나누기로 한 거 맞잖습니까.”
분위기를 훑어본 무너스키가 핑크푸크에게 은근하게 속삭였다. 그동안 조용히 눈알만 굴리던 핑크푸크도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아이템이야말로, 이번 레이드의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레이드도 끝났으니, 정리할 거 있으면 바로 정리하죠.”
불쑥 앞으로 나온 핑크푸크가 넌지시 던졌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해도, 속으로는 빨리 아이템이나 나누고 끝내자는 뜻이 훤했다.
여태 조용하다 슬쩍 내민 그 한마디에, 신사의 눈이 아니꼽게 찌푸려졌다. 레온, 마제스티는 진작 그럴 줄 알았다며 동시에 헛웃음을 흘렸다.
“어… 바로 이동할 분위기네.”
하나둘씩 움직이는 모습에 리디안이 볼을 긁적였다. 한참 전, 페페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으면 페페가 미로에 남아 길을 알려 주겠다고 했었다.
리디안은 25분이나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미로를 한 바퀴 돌고도 충분할 터였다.
이 시간을 그냥 지나가기 아쉬워 주변을 살폈으나, 어째 분위기가 모호했다.
“그럼 바로 이동해요?”
“신세계는 어떻게 해요? 잡으러 안 가요?”
“일단 자리 옮겨서 아이템 정리부터 할게요. 바쁘신 분들도 있을 테니. 신세계는 저희가 나중에 따로 처리하겠습니다.”
어쩐지 바로 퇴장해 바깥에서 다시 모일 느낌이 가득했다. 리디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페페를 쳐다봤다.
“음.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것 같네요.”
페페도 그 분위기를 읽곤 멋쩍게 웃어 보였다. 리디안은 한숨과 함께 그러게요, 라며 아쉽게 웃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라도… 아니면 제가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서라도 꼭 알려 드릴게요.”
그 말에 리디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농담 반, 진심 반인 듯해도 무척이나 반가운 호의였다.
게다가 왠지 페페라면 꼭 해줄 것 같기도 했다. 리디안은 환히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뱉었다.
“왜요, 왜요. 뭔데, 뭔데? 뭐 좋은 일 있어요? 나도 같이 알고 싶다!”
지나가던 다람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리디안의 기분 좋은 표정이 무척이나 궁금한 듯했다.
달갑지 않은 불청객을 향해 쓰게 웃는 페페의 시선처럼. 리디안 역시 불쑥 끼어든 다람을 살짝 째려봐 주었다.
“그냥 별거 아니에요. 제가 지하 도시 미로 길을 외우고 싶었는데, 페페 님이 나중에 알려 주신다고 그랬거든요.”
“오? 정말요? 나도, 나도! 나도 알려 줘요! 나 다 까먹어서 다시 배워야 함!”
다람은 두 팔을 날개처럼 퍼덕이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딱히 재미난 일도 아닌데, 어디 놀러 가는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에 리디안도 실없이 웃고 말았다.
얼마 안 가, 다람의 바쁜 입 덕분에 ‘페페의 미로 강의’가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오, 괜찮네요.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나 했는데. 직접 그려서 설명해 주실 정도면… 역시 페페 님. 모범적이십니다.”
소문을 들은 매지션 맥스비가 손뼉을 치며 페페를 추켜세웠다. 그 칭찬을 시작으로 점차 교육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덕분에 길을 모르는 나머지 사람들도 휩쓸려 나도, 나도를 외치기 시작했다.
부쩍 불어난 강의 인원에 페페는 난감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새 제 앞으로 쭉 모여든 인파에, 페페는 영혼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 속도 모르고. 슬프게도 리디안은 얄밉게 방글거리는 다람의 옆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네요! 배우는 김에 다른 분들도 다 같이 배우면 좋겠죠?”
미소 가득한 물음에 페페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바로 마을 이동하겠습니다! 내빈실 대관 한 번 더 진행할 예정이니 바로 길드 성으로 모여 주세요!”
신사의 지시로 전원이 움직이던 때였다.
건너 건너 ‘페페의 미로 강의’에 대해 듣게 된 크라이그가 성큼 다람을 향해 다가갔다. 다람은 크라이그를 목격하자마자 바로 멈춰서 경계했다.
“아, 뭐야. 뭔데. 나 잘못한 거 없… 아니, 있나? 아니, 아니! 뭐! 어쩌라고!”
복수하러 온 거라면 한참 전 혼령화 패턴 때문임이 분명했다. 죽지 않은 크라이그를 향해 아깝다며 깐족대던 게 생각난 다람은 일단 뻔뻔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크라이그의 보복이 두려운 건 사실이었다. 다람은 잔뜩 움츠러들어 자신의 앞에 멈춰 선 크라이그의 눈치를 살폈다.
스윽 올라오는 손에 다람이 움찔, 어깨를 떠는 순간. 크라이그는 말없이 다람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한 대 맞을 줄 알았던 다람은 표정을 찌푸렸다. 대체 뭘 하려는 거냐는 눈빛에 크라이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니, 그냥. 잘했다고.”
“내가 뭘?”
크라이그는 말없이 돌아섰다. 뜬금없는 칭찬에 다람은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미드가르드 길드 성―내빈실 1호] [맵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불가합니다.]지하 도시 클리어 후, 레이드 팀은 또다시 길드 성 내빈실로 집합했다. 대관료가 만만찮았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인기 도시의 광장이든, 주점이든. 공개된 곳에서 모였다간 일반 플레이어들이 득달같이 몰려올 상황이었다.
실제로, 아직도 바깥은 침공 이벤트 건으로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일단 지하 도시 인원만 생각해서 100인용으로 했어요. 혹시 더 오셔야 하는 분 있나요?”
“아뇨. 이 인원이 끝이에요. 아무튼, 대장군 님 감사합니다.”
솔선수범 대관을 진행한 건 대장군이었다. 그것도 직접 자신의 사비를 들여 빌린 모습에 레온과 마제스티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근데 신전에서 나온 건 어떻게 하죠?”
들어선 인원이 자리 잡기가 무섭게, 신전 아이템 처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겉으로 내색만 안 했지, 그러잖아도 모두가 궁금했던 문제였다. 한꺼번에 합죽이가 된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간부들을 주시했다.
애초부터 신전과 지하 도시를 서로 클리어해 나누기로 했던 터였다.
그러나 태양 연합은 지하 도시를 온전히 해치우지 못했다.
더욱이 그들이 지하 도시 지원 요청을 하는 바람에 소유권에 대한 기준이 꽤 모호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처음부터 약속했으니까 나눠야 하겠지?”
“에이, 신전은 솔직히…….”
곳곳에서 아이템에 관한 얘기로 수군거리던 때. 그래도 양심을 내세운 아퀴나스가 나서 한마디 했다.
“신전에서 나온 건 제외하죠. 지하 도시에서 나온 템만 분배해 주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이치에 맞기도 하고요.”
신전 아이템에는 숟가락을 얹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에 레기온 연합 측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이 그려졌다.
아까워하는 건 무너스키뿐이었다.
그 속물적인 마음을 눈치챈 마제스티가 스윽 핑크푸크를 쳐다봤다.
핑푸라면 어찌 나오려나, 하고 기다렸지만 핑크푸크도 아퀴나스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퀴나스 님 말대로 하죠. 신전은 저희가 도움 드린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지하 도시 아이템만 나눠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뭐, 그러시다면.”
그리 말하면서도 신사는 솔직히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행여나 태양 연합이 신전 아이템까지 요구하면 참지 않을 요량이었다.
어찌어찌 평화롭게 타협된 분위기에 간부들이 서둘러 드롭 목록을 파악했다. 지하 도시에서 나온 아이템은 공정하게 배분하기로 했기에, 리디안도 담담하게 ‘살육의 채찍질’과 ‘어리석은 현자의 세계’, 그리고 인첸트 스톤을 신사에게 전달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한데 모인 목록에 백검이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신스펠이랑 스킬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요? 잘 나와 봐야 한두 개일 줄 알았는데. 괜찮네, 처음 나오는 것도 있고.”
“일단 신스펠, 스킬부터 분배하죠.”
모두가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맨 앞, 단상으로 모인 황금빛 스펠, 스킬 북에 플레이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왼쪽에 있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섀도우 헌터 살육의 채찍질. 세인트 초월자의 손길. 나이트 참격난무. 아쳐 멀티 샷. 바드 영웅을 위한 축복. 서모너 물어뜯는 이빨. 로그 암살. 가디언 숭고한 방패. 팔라딘 심판의 사슬.”
섀도우 헌터나 로그, 가디언, 팔라딘의 경우 처음 공개된 것들이었다.
특히 공격 스킬인 살육의 채찍질이나 암살은 관심과 기대가 높았다. 크라이그나 레온, 매지션인 시우, 테세우스, 맥스비가 배운 공격기가 사기적인 위력을 자랑했으니 당연했다.
“우선 섀도우 헌터부터 분배하겠습니다. 대상자 대장군 님, 페이지 님, 작약 님, 토토리아 님. 앞으로 나와 주세요.”
자리에 있는 인원을 고려해 호명했으나 선뜻 앞으로 나오는 이는 없었다.
스펠이면 모를까. 스킬의 경우 80레벨 제한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신스킬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 대장군뿐이었다.
“전 이제 겨우 77이기도 하고. 대장군 님 계시니까 패스요.”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나서야, 페이지가 먼저 손들어 소유권을 포기했다. 작약, 토토리아도 마찬가지로 포기하며 손을 내저었다.
자연스레 혼자가 된 대장군은 제게로 이목이 쏠리자 잠시 당황했다. 그래도 일단 와서 받으라는 신사의 독촉에 마지못해 단상으로 나섰다.
솔직히 그냥 받아도 문제없었으나, 대장군은 계속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그런 그가 답답했던 신사는 다짜고짜 스킬 북을 대장군에게 떠밀 듯 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더 괴물이 되시겠네요.”
“…정말 제가 받아도 되나요?”
“네. 그럼 누가 이걸 배우겠어요. 이제 대장군 님 스킬이니까 꼭 배워서 자랑해 주세요.”
그만 내려가라는 신사의 손짓에 대장군은 멍하니 눈을 끔뻑댔다.
설마하니 섀도우 헌터의 스킬이 나올 줄이야.
직접 보고도 놀라웠다. 거기다 약간의 부담감도 느껴졌기에 대장군은 한참을 단상에서 머뭇거렸다.
결국, 못한 백검이 장난스럽게 한마디 했다.
“대장군 님. 부담스럽겠지만 그냥 받으세요. 여기 섀헌 80이 대장군 님 말고 또 누가 있어요? 그나마 근접한 갤럭시 님은 지하 도시 참전도 안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레벨 미달이라 일찌감치 포기했고. 그러니까 마음 편히 받으시고 더 괴물 되세요.”
장난기 섞인 말투에 몇 명이 웃어 보이며 말을 얹었다. 그를 따라 나머지 사람들도 박수치며 응원하자 대장군도 그제야 마음의 부담을 덜어 냈다.
조금은 얼떨떨한 눈으로 스킬 북을 쳐다본 대장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제공자인 리디안을 쳐다봤다.
스킬 북을 처음 먹은 이가 리디안이니, 리디안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건 당연했다.
“감사합니다.”
간부들과 파티원들,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한 정중한 인사에 리디안도 멋쩍게 웃어 보였다.